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39)화 (39/120)

038화 일 년 뒤엔……!

“도대체 어디 다녀오신 겁니까!”

검은 사내가 사라졌다 나타난 도희를 다그쳤다.

“아… 제가…….”

‘아니, 이게 아니지.’

목을 긁적인 도희는 고민하다 되물었다.

“그걸 왜 제가 설명하나요?”

“…….”

“이제 두 분 다 저 그만 쫓으세요. 백 실장 당신도.”

백 실장으로 보이는 똑단발의 여성은 검은 사내에게 어깨를 걸친 채 말없이 바닥만 볼 뿐이다.

“다쳤어요?”

“발목이 부러진 거 같습니다.”

“상관하지 마십시오.”

남자와 백 실장이 동시에 답했다.

날 선 그녀의 말투에 도희도 참을 위인은 아니었다.

“어떻게 내려가실 건데요?”

백 실장은 남자에게 걸쳤던 어깨를 내리더니, 혼자 걷기 시작한다.

“알아서 가겠습니다.”

절뚝거리며 위태롭게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는 그녀.

단발머리를 한 그녀의 뒷머리에는 바싹 마른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이고…….’

“아!”

역시나.

단발의 여인이 몇 발작 못 가고 넘어졌다.

‘아휴, 또 자존심은 더럽게 센가 보네.’

두 사람의 몰골은 이미 말이 아니게 상해 있었다.

팔뚝은 까져 피가 흐르고,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는 것이 반나절 내내 산속을 헤맨 모양이었다.

휴대 전화를 보니 신호가 잡힌다.

“신고는 왜 안 하셨어요?”

‘그 몰골을 하고.’

“아… 여기 위치 설명할 길도 없고… 뒤처리도 문제가…….”

‘미행하다 길 잃었다 할 수 없어서? 아니 그냥 대충 둘러대면…….’

“아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쉰 도희가 말을 이었다.

“제가 왼쪽으로 갈게요.”

‘가드’에게 눈짓하니, 그가 눈치껏 백 실장의 오른쪽으로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도희도 그녀에게 다가가 왼팔에 팔짱을 꼈다.

그러자, 백 실장은 냅다 왼팔만 빼버렸다.

‘얼씨고?’

“저분 도움은 받고 제 도움은 안 받으시게요? 남녀 차별이야 뭐야.”

생기 없던 백 실장의 눈동자에 어느덧 독기가 들어찼다.

‘얘 나랑 원수졌니.’

뭘 이렇게 싫어해.

“하, 감사 인사 안 바라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요.”

도희는 다시 억지로 그녀의 팔에 팔짱을 꼈다.

“일단 내려갑시다.”

“저… 근데 어디로 내려가나요? 아까부터 한참 내려왔는데 길이 안 나옵니다.”

“아.”

‘도사님.’

─좌로 가다 보면 보행길이 나올 걸세.

“이쪽으로 갑시다.”

하산하는 동안 가드를 통해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로는 도희가 사라지고서 한참을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걸었다고 한다.

백 실장이 도희를 찾으니, 남자 또한 도희가 걱정되어 안 따를 수가 없었다고.

‘그러게, 내가 안 보이면 포기하고 내려갔어야지! 으휴, 미련하긴.’

“어… 조심!”

도희의 발이 흙에 미끄러졌다.

사람을 부축하며 산길을 내려가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번엔 ‘매’로 변해 날아서 편히 내려가나 싶었는데…….

‘아오. 누굴 탓해… 내 죄지, 내 죄야.’

어느새 도사를 닮아 가는 도희였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걷다 보니 등산로가 나타났다.

안내 팻말에 위치 번호가 적혀 있었다.

“119 신고할게요.”

도희가 신고를 한 후 등산로에 따로 널브러져 앉아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강도희씨.”

멀찍이 앉아 있던 칼 단발의 백 실장이 도희를 불렀다.

“네. 백 실장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도희가 산속으로 줄행랑치고 나서야 백 실장은 도희가 자신의 존재를 안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여군이었나?’

절도 있는 목소리와 말 맺음이 군인들이 사용할 법한 말투였다.

“뭘요?”

“내가 누군지.”

“그걸 내가 말해야 하나요?”

도희 입에서 짜증 가득 묻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내 표정 변화 없던 백 실장의 얼굴에도 황당함이 들어찼다.

“나 계속 쫓을 거예요? 부사장이 뭐래요? 실종이라도 시키래요?”

쏟아지는 도희의 물음에 백 실장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몹시, 불편하다는 듯이.

“착하게 삽시다. 착하게.”

대답 없이 도희를 빤히 쳐다보는 백 실장.

‘뭐, 뭐야. 눈빛 살기 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도희 뒤에 앉아 있던 가드가 도희 앞을 막아섰다.

도희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하얀 이를 내보였다.

‘그래도 아침에는 멀쩡해 보였는데…….’

머리는 잔뜩 헝클어지고, 온몸은 흙투성이.

팔뚝엔 피딱지가 묻어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거 같진 않았다.

그의 몰골을 보니, 그 산길을 종일 헤맸으니 오죽할까 싶으면서도.

‘내가 지켜 줘야 할 거 같은데…….’

때마침, 저 멀리서 여러 개의 불빛이 이곳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왔네요. 구조대.”

*     *     *

앰뷸런스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어느 병원의 입구.

오른발에 깁스한 단발의 여성이 멈춰져 있던 택시에 올라탄다.

“삼무 오거리.”

그녀가 툭 던져진 한마디에 기분 상한 택시 기사는 인상을 쓰며 탑승자를 쳐다봤다.

무심하지만 독기 어린 여자의 눈빛.

이내 그녀는 뒷발로 기사의 좌석을 ‘툭툭’쳤다.

“출발.”

택시 기사는 알았다.

경험상 저런 심상치 않은 눈빛을 가진 사람을 건들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여자에게 들릴까 혼자 작게 혀를 찬 택시 기사는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차가 출발하자 여성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부사장님.”

내내 무심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오른쪽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리며 올라갔다.

“강도희 약점 찾았습니다.”

*     *     *

어제, 늦은 밤중 집에 도착한 도희는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

또 기를 과하게 소진했기에, 쓰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전날 무리를 했기 때문인지, 해가 중천인데도 그녀는 여전히 상태였다.

띵동─ 띵동띵동─

쾅! 쾅! 쾅!

띠리─

단잠을 방해하는 초인종 소리에 도희는 몸뚱이를 벌떡 일으켜 현관문을 열었다.

“강아야… 나 10분만… 으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녀는 다시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침은… 너… 혼자 먹…….”

잠꼬대하듯 소파에 누워서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저… 도희씨?”

‘…뭐야?’

남자 목소리에 다시 벌떡 일어난 도희였다.

억지로 눈 뜬 그녀의 뿌연 시야 사이로 현관에 서 있는 우주 형사가 보인다.

“에……?”

반쯤 일어나 앉아, 졸린 눈을 연신 비비는 그녀는 꽤 귀여웠다.

“헝사니미 웨 여기 계세요?”

제대로 뜨지 못하는 눈과 헝클어진 머리하며 어눌한 말투까지.

“도희씨… 어제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오늘도 전화가 꺼져 있길래…….”

우주가 말하던 중 도희의 잠옷이 한쪽으로 흘러내리더니, 그녀의 새하얀 어깨가 살짝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우주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닌가 하고…….”

고개를 획 돌린 우주는 아예 돌아서서 현관문을 마주 봤다.

“이만 가 볼게요. 아침부터 실례했습니다.”

띠리─

닫힌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희는 머릴 긁적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곧 드러나 있는 어깨를 확인하곤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풉, 순진한 척하는 건가?’

“으~”

기지개를 켜고, 시계를 확인하니 정오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침이라면서 이 양반아.”

‘큭, 어지간히 당황했나 보네.’

도희는 좌우로 팔을 쭉 쭉 뻗으며 몸부터 풀었다.

잠을 잘 잤는지,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부재중을 확인하니, 우주의 부재중 전화는 30통 넘게 쌓여 있었다.

‘도하 대리도 전화했었네? 무슨 일 있나.’

순간, 부재중 목록을 확인하던 도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 이 번호는…….’

“아놔, 이 새끼 또 어떻게 알아낸 거야.”

지긋지긋한 전 남친 놈이었다.

‘우리 회사 사람이 자꾸 알려 주나 본데…….’

이번에 바뀐 번호는 강아를 제외하면 회사에만 알렸었다.

‘에휴… 생각도 하지 말자. 차단이 답이다.’

더 이상 그놈에게 감정소비하고 싶지 않은 도희였다.

─약조한 건 잊지 않았겠지.

씻으려고 일어선 도희 앞에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서책에서 근엄한 표정을 한 도사 얼굴이 튀어나왔다.

‘아, 깜짝이야!’

예의상 놀란 기색을 감춘 그녀였다.

“암요. 암.”

오늘부터 도희의 저질 체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극단적 처방이 내려졌다.

─더 바라지 않겠네. 하루 반 시진, 달포 동안일세.

“도사님도 잊지 마세요! 저거 진짜 갖다 팔아도 돼요?”

도희의 손가락이 침실 옷장을 향했다.

그 속에는 고이 놓여 있는 보따리 하나가 있었다.

─시전에 내다 팔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하거라.

하루 한 시간, 한 달만 운동하면 고가구들은 도희 몫이었다.

백번 생각해도 남는 장사였다.

‘조선 시대 고가구니까 비싸겠지? 흐흐…….’

─이놈아. 네 말대로라면 저 귀한 것들을 어째 내다 팔 생각부터 하는 게냐.

“도사님, 소녀가 빨리 도사님을 도우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도사는 ‘얘가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려고’ 하는 표정이다.

“회사를 때려쳐야죠!”

도희의 손가락이 ‘딱’ 소리가 나며 튕겨졌다.

“그럼 퇴사하려면 뭐가 필요해요? 돈이라고요. 돈!”

도희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제가 도사님을 1년만 돕기로 했잖아요. 근데 1년 내내 회사 다니면 제대로 도울 시간이나 있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근데! 돈이 생기면 제가 퇴사를 하겠지요? 그럼 저한테도 좋고, 도사님한테도 좋고.”

도희의 양손이 도희와 도사를 차례로 가리켰다.

“도사님 시절 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 일거양득(一擧兩得) 오케이?”

─‘도무지 이 여인의 말에 반박할 길이 없구나… 허허.’

─뜻대로 하게. 단 요물(妖物)이 아닌 것들만일세.

“암요, 암요.”

회사 일도 최대한 빨리 해결 보면 될 터.

뒤가 구린 부사장의 그간 행적들만 파낼 수 있다면, 그도 쉽게 도려 낼 수 있을 거다.

‘일 년 뒤엔……!’

평생의 꿈.

놀고먹으며 여행 다니는 백수가 일 년 뒤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도희는 설레는 마음으로 머리를 대충 질끈 올려 묶고, 굴러다니는 편한 옷을 주워 입은 뒤 집을 나섰다.

운동하고 씻을 생각에 세수도 안 하고 나왔는데, 햇살은 왜 이리 밝은지.

“모자라도 쓰고 나올 걸 그랬나.”

‘에이, 볼 사람도 없는데 뭐.’

그 순간, 도희의 시야에 멀리 서도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이가 들어왔다.

‘헐. 쟤가 왜 여기 있어?!’

설렘 가득했던 그녀의 발걸음은 불편함으로 물들며 점점 빨라진다.

‘못 봤겠지? 못 본 거 같은……’

“도희씨!”

‘아오.’

그녀의 계획이 꼬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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