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42)화 (42/120)

041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아니, 도사님 저희 이야기 안 끝났잖아요!”

─듣고 있네. 말하게.

항아리 속 도사의 목소리는 동굴 속에서 말하듯 웅웅 울렸다.

‘아오.’

“이 반지는 어떻게 써요?”

─이동하고자 하는 곳을 떠올려 보게.

“장소를 떠올리면 돼요?”

─구체적인 공간을 떠올려야 함이야.

‘구체적 공간이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머릿속으로 침실을 떠올리는 도희.

“끄으응…….”

도희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거실을 메웠다.

“끄응…….”

가부좌를 틀고, 아무리 집중해서 눈을 감았다 뜬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사니이임!”

‘떠올리면 가진다면서요!’

아무리 침실을 떠올리고, 그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상상을 해도 침실로 가지지 않았다.

─자네 문젤세.

“항아리처럼 반지도 술법이 뒤틀린 건 아니겠죠?”

─아닐세. 네가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듯 허이.

영 못 미더운 표정의 도희는 오른손 검지에 껴진 ‘은가락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냥 장소를 떠올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동하고자 하는 공간을 아주 소상히 떠올려야 하네.

‘어떻게 이거보다 더 자세히 떠올리나!’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일세.

‘그리 쉬운 줄 알았느냐! 하면서 떵떵거릴 줄 알았는데 웬일이래.’

─내 네게 그리 고약하게 굴었느냐.

‘우리 도사 할배 기분 좋으신가 봐. 정기 찬 항아리 하나 더 나오면 아주 등선하시겠어.’

─이놈이!

“그러니까 나와서 봐주세요. 나와서!”

누런 서책이 항아리 입구 위로 둥둥 떠올랐다.

─요물은 자네가 직접 사용해야 함이야.

그렇게 도희는 거실에 누운 채로 밤새 침실로 가는 상상만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 보니 침실이었는데, 문제는 반지로 이동한 건지, 자다가 스스로 온 건지.

‘알 수가 없네.’

“도사니이임.”

─명상하느라 나도 보지 못했네.

도사는 여전히 항아리 안이었다.

어느덧 보자기와 요물들은 정리되어 있었고, 무겁고 커다란 항아리는 신줏단지 모시듯 거실 한복판에 고이 놓여 있다.

“도사님 오늘 항아리 안에 계실래요?”

─아닐세. 같이 가게나.

“혹시 모르잖아요. 오랜 시간 계시면 정기를 흡수할지.”

사실 도사도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항아리 안에 머물고 있던 것이었다.

─별일 없겠느냐.

“에이 평생 혼자 잘 살았는데요, 뭘.”

어제부터 백 실장과 가드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셨으니.

“걱정마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뭔가 찝찝한 표정의 도사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는 도희였다.

원래 사람 일이란 게 그렇다.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며,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도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녀가 모르는 사이,

이미 그녀의 주변은 잔뜩 꼬여 있었다.

그녀 혼자 풀지 못하는 매듭으로.

*     *     *

출근 전, 몇 번이고 다시 은반지를 사용하려 애써본 도희였다.

‘왜 안 될까.’

도사님에게 요물 문제인지 확인을 부탁드렸더니 멀쩡하단 답만 돌아왔다.

‘아오. 기필코 해낸다. 내가.’

도희의 두 눈이 빛을 내며 번뜩였다.

성공만 한다면 출퇴근 1시간은 굳을 터.

‘반지만 쓸 수 있다면… 흐.’

요즘 강아 차를 빌려 탈 일이 잦아지면서 차 한 대 사야 하나 싶었던 도희에게 굴러들어 온 떡이나 다름없었다.

‘인적 없는 구석진 곳만 외우고 다닐 테다!’

상쾌한 기분으로 일찍 출근한 도희는 강아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야! 강도희 너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돼?

“미안. 강아야, 진짜 정신없었어.”

걱정되니 제발 생활 공유 좀 하자는 강아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으으응. 알았어, 알았어.”

─제발 헛으로 듣지 말라고.

“알았다니까?”

─너 아무 일 없지?

“이야기하자면 긴데. 너 언제 올래.”

─…하.

‘이강아가 한숨?’

“무슨 일…….”

─엄마 입원했어.

“어디야, 지금 갈게.”

자리에서 일어난 도희는 겉옷부터 챙겼다.

─아니야. 지금 안정되셨어. 이제 괜찮아.

“어딘데.”

─진짜 괜찮아. 그리고 나 지금 잠깐 회사야.

심장이 좋지 않은 강아 어머님이 쓰러지신 게 벌써 두 번째였다.

“하… 미안. 혼자 힘들었지. 끝나고 바로 갈게.”

─아니야. 저녁에 퇴원 수속해도 된다고 전화 왔어.

“벌써 퇴원하래?”

─엄마가 안정되기도 했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니까.

강아 어머님은 평소 멀쩡하시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아프시다며 자주 통증을 호소하셨다.

병원을 가도 딱히 병명이 나오지 않으니 더 문제였다.

‘도사님이 말한 침만 있으면 혹시 모르는데……’

분명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집에 가서 닦달 한 번 해봐야겠네.’

문제는…….

‘도사님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건데.’

면왕산에 있다던 기운을 늘려준다는 영약도 막상 가 보니 없지 않았는가.

도희만큼 적잖이 당황한 도사였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모르겠다니 팔도강산 은신처를 다 뒤져야 할 판이었다.

결국 단기로 기운을 늘릴 방법이 사라진 터라 매일 운동하는 걸로 합의 본 상태였다.

“강아야 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하, 그랬으면 좋겠다.

“이따 퇴원 도와주러 갈게.”

─아냐, 엄마랑 바로 집에 가서 쉴 거야.

“알았어. 그럼 저녁에 전화할게.”

도희가 짧은 숨을 뱉으며 전화를 끊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팀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마무리 짓지 못한 기획안이 몇 개나 되었다.

‘도사님한테 분신술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만화 보니까 머리카락 뽑아서 후 불면 막 자기 복제되고 그러던데.’

일에 집중을 못 하는 그녀였다.

‘복제한 애는 회사 출근시키고 나는 맨날 놀러 다닐… 아니다, 요물 찾고 다니겠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도사에게 물을 질문들이 한가득 쌓여 갔다.

‘개똥에 비유한 거 들으셨으면 또 이놈이! 하시면서 거품 무셨겠네. 크큭.’

바쁜 도희를 배려해 회사에선 최대한 말을 걸지 않던 도사였다.

‘없으니까 또 허전하네.’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된다 싶었더니, 갑자기 머리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웬 두통이지.’

“팀장님 운영팀에서 답변 왔는데 신문고 게시판 바로 추가 가능하답니다.”

“네, 기획안 재확인하고 추가 수정 사항 없으면 그대로 진행하세요.”

힘없는 목소리와 생기 잃은 눈동자.

도하는 도희의 미간에 살짝 진 주름을 포착했다.

‘아이고, 머리야.’

“팀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니요오? 괜찮아요.”

덤덤한 말과 달리 그녀의 미간 주름은 펴질 줄을 몰랐다.

더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약이라도 먹어야겠네.’

“팀장님 안색이… 조퇴라도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하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팀장 회의 준비부터 사내 만족도 계획안까지 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정말 괜찮아요. 소하씨 지난주 회의 내용 정리되면 메일 부탁해요.”

오후에 있을 감사부 팀장 회의에서 이번 주 업무 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어? 그거 도하 대리님이 하신다고…….”

‘뭔 소리야.’

“소하씨 업무 아닌가요?”

회의 기록은 소하 담당이었다.

“팀장님이 업무 배당을 회의 끝나고 하셔서… 도하 대리님이 회의 내용 기록해 놓으셨길래 부탁드렸어요…….”

“소하씨는 회의 기록 안 하시나요?”

“아… 저는 제 관련 내용만…….”

첫 회의라 팀 관련 포괄적인 내용뿐이었다.

“회의 내용 중 소하씨가 관련 없던 내용이 있었나요?’

도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 그게…….”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저번 주, 소하에게 배정한 업무는 단 하나였다.

‘도하 대리는 자기 일이 있는데 그럼 당신은 뭘 하고.’

지금 팀원 중 도희만큼 바쁜 게 도하였다.

‘신문고 기획안 수정하고 진행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도희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크흠.”

무거운 정적이 흐르려는 찰나 잔뜩 꾸며낸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도하 대리님 바쁘시니, 제가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눈치 보듯 나선 진명이었다.

‘뭐 하냐, 강도희.’

업무 떠넘기는 걸 지극히도 싫어하는 도희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가 해야지!’

모르면 물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신입 시절, 그녀가 일 잘한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떠넘기던 선배들이 떠올랐다.

‘일 잘하는 거랑 본인들 업무 넘기는 거랑 뭔 상관인데! 아오.’

도희는 억지로 화를 가라앉혔다.

“네. 진명씨 오전 중으로 부탁해요.”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린 도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하씨.”

기죽은 듯 내리깔린 그녀의 시선을 보자니 괜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네, 팀장님…….”

“바쁘면 팀원끼리 서로 부탁하고 도와주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그래도 떠넘기는 건 아니지.’

“그래도 각자 할 일이 있으니 모르는 건 물어보고 본인 업무는 본인이 했으면 좋겠는데.”

울먹이는 눈망울의 소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제가 업무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회의 내용 하나 정리하는데 무슨 업무…? 다른 업무도 없잖아?’

본격적인 부서 업무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회의 기록을 제외하고 소하에게 주어진 업무는 단 하나였다.

개선안 기획, 그것도 기한 없이 주어진 공통 업무였다.

“다들 부서 이동해서 정신없을 텐데 서로 돕고 하면 되죠! 힘들면 쉬엄쉬엄합시다!”

떠오르는 물음들을 뒤로한 채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 지으려는 도희였다.

‘웃자, 웃어.’

도희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애써 띄워 보려 했다.

차라리 팀원일 때가 편했다.

할 말 다 해도 도희에 의해 분위기가 좌지우지되진 않았으니까.

‘마 부장 천하였지.’

마 부장이 이유 없이 만들어내는 살벌한 분위기에 눈치 보며 근무한 게 하루 이틀인가.

아, 물론 이유가 아예 없진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성질도 좀 죽이고.’

도희의 다짐과는 무관하게 그녀의 신경을 건들 일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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