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43)화 (43/120)

042화 딱 봐도 수상한데.

“대리님들께 사과의 의미로 제가 커피 쏠게요!”

과하게 또랑한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앞으로 많이 도와달라는 뇌물입니다.”

어느새 밝아진 소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팀장님… 정말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한테 죄송할 거 없어요.”

미소 띤 도희를 본 소하도 환히 웃어 보였다.

“팀장님은 커피 뭐 좋아하세요!”

“같이 갈까요? 제가 쏠게요, 소하씨.”

어느새 사이좋게 팔짱까지 끼고 사무실을 나서는 도희와 소하.

그 뒷모습을 확인한 진명이 입을 열었다.

“한 십 년 팀장 하신 분 같네요. 우리 팀장님.”

분명 얼마 전까지 같은 직급이었는데.

소문대로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아까 말씀하실 때 전 쫄아서 키보드도 제대로 못쳤습니다.”

두산은 자신도 회의 기록하지 않은 것이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강 팀장님 낙하산이라 개선부 가면 놀고먹을 거라 떠들어 대던 것들 다 데려오고 싶네요.”

“그런 소문이 있었습니까?”

타 사원들과 교류가 적은 도하는 소문에 둔했다.

“물론 전 놀고먹으려고 온 건 아닙니다만.”

진명이 의자 뒤로 기대며 팔짱을 낀다.

“이제 강 팀장님 소문이라면 너무 많아서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구별도 힘들 겁니다.”

“전 그래도 강 팀장님 편입니다!”

두산이 뜬금없이 소리치자 진명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두산씨 제대한 지 얼마 안 됐어? 군기가 바짝 들어 있네.”

“아… 말투가 잘 안 고쳐집니다.”

두산은 멋쩍게 허허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잘 안 고쳐지지 말입니다.’ 안 하는 게 어디야. 티 많이 안 나.”

도하의 키보드 소리를 배경으로 군대 이야기를 꽃피우기 시작한 진명과 두산이었다.

*     *     *

“다시 나타날까요?”

“글쎄.”

“완전 용의주도한 놈이던데.”

“그러니까 그 자식이 본인 믿고 또 움직이길 바라야지.”

살인 현장에 다시 나타나 기물파손까지 한 놈이다.

버젓이 카메라에 찍혔지만, 강력팀을 물론 광수대까지 용의자 특정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용의주도한 놈인 만큼 아직 꼬리 잡히지 않은 것에 대해 자만하고 있을 거야. 또 실수하길 바라야지.”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실수.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형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시 나타난다면 그의 오만이자 명백한 실수였다.

이 경위의 말을 들은 막내 지 순경의 고개가 기울었다.

“근데 광수대는 진짜 아무 증거도 못 찾은 걸까요? 이 자식들 거짓말하는 거 같은데.”

“이번 사건 언론 터질 뻔한 거 서장님이 겨우 막고 있는 거 몰라?”

발등에 불 떨어진 건 광수대였다.

“하긴 용의자 특정이 우선일 텐데.”

수사 포위망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 용의주도한 놈이라고 한들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한 건 심각한 일이었다.

“이대로 언론에 사건 보도되면 경찰은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는 거야.”

“하, 잡는 건 둘째 치고 누군지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 순경의 큰 한숨 소리가 차 안을 메웠다.

“무작정 잠복한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다른 방법이 없잖냐.”

그때였다.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던 우주의 시야에 수상한 자가 들어왔다.

“어? 저 자식 뭐야.”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자가 형사들이 탄 차 앞을 지나친다.

곧이어 오피스텔 입구에 멈춰 선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딱 봐도 수상한대.”

“내릴까요?”

“잠깐. 지 순경 왼쪽, 우 경위 오른쪽. 나 정면. 도주 경로 열어 주지 말고.”

“예.”

“지금?”

남자는 여전히 입구에 서성이고 있었다.

“아니.”

그가 입구를 들어섰다.

“지금!!!”

우주와 박 경위, 지 순경은 동시에 차에서 내려 그에게 달려들었다.

형사들이 남자를 사방으로 둘러싸자, 형사들을 본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 와, 이거 진짜네.”

“협조 부탁드립니다. 신분증 제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막내 지 순경이 경찰 뱃지를 내보였다.

그러자, 남자는 느릿한 동작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비산일보 설민기 기자입니다.”

설 기자의 말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그가 건넨 신분증과 명함을 지 순경이 받아들었다.

“기자요?”

우주와 이 경위가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션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관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형사들의 낯빛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잠시 인터뷰 가능한 형사님 계실까요?”

*     *     *

“와… 저 기자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이 경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기자들을 저렇게 다 막무가내입니까?”

아무리 거절해도 설 기자의 질문 공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창문 내리라고 차 문 두드릴 땐 소름까지 돋았습니다. 으. 그 눈빛.”

몸서리치는 막내를 본 이 경위도 설 기자의 광기 어린 눈빛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기자들이 냄새 맡았다면 곧 몰려올 텐데.”

우주가 윤기 나는 머리를 쓸어 올리자, 그 모습을 본 지 순경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와… 선배는 왜 형사 하십니까?”

우주는 ‘뜬금없이 뭔 소리냐’하는 눈빛으로 막내를 쳐다봤다.

“아니, 세상 참 어렵게 사십니다. 제가 선배였으면 모델이나 연예인 하지. 이 고생 안 합니다.”

“야 모델이나 연예인은 쉽냐?”

이 경위가 콧방귀를 꼈다.

“이 형사님. 우 선배는 일단 얼굴이 되잖습니까. 얼굴이.”

“내 말은 고생 없는 직업은 없다는 말이지.”

“아이고, 뭘 해도 이 고생보단 덜 하지 않겠습니까?”

기약 없는 잠복 수사에 모두가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다.

게다가 누군지를 모르니, 조금이라도 수상하거나, 모자만 쓰고 있어도 잡아서 신원조회 하는 실정이었다.

“근데 쟤들이 다 쑤시고 다니면 저희 잠복이고 뭐고 소용없는 거 아닙니까?”

이 경위의 시선이 오피스텔 맞은편 카페 창가에 앉은 설 기자에게 닿았다.

“사건에 대해 절대 입 뻥긋하지 마. 알지?”

“에이,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막내는 손으로 입에 지퍼 잠그는 시늉을 했다.

우주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제일 문제야. 네가.”

마침 박 경위가 차 문을 열며 뒷좌석에 올라탄다.

“아휴… 대체 어디 다녀오십니까.”

“누가 잠복 중에 한숨 쉬어.”

“박 형사님 말대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막내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숨도 쉬면 안 됩니다. 숨도!”

툴툴거리는 막내를 보며 미소 지은 박 경위는 말을 이었다.

“박 형사님 아니고 박 경위님. 형사 호칭 바뀐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형사래.”

“폼이 안 나잖습니까! 전 형사라고 불러 주십시오.”

“지 순경, 힘남아 돌면 주변 조사나 갔다 와.”

“박 경위님 그러다 막내 도망칩니다. 크큭.”

이 경위가 막내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휴, 잠복 수사가 이렇게 지겨운지 몰랐습니다.”

“첫날엔 잠복은 처음이라고 좋아 죽더니.”

“그땐 이렇게 답답한 건지 몰랐죠.”

비좁은 차 안에서 남자 넷이 모여 있자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전 그때 우 선배가 현장으로 뛰어가실 때 뭐라도 찾으신 줄 알았습니다.”

조용히 있던 우주가 입을 열었다.

“현장에 다시 나타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

사건 발생 직후 현장 사진과 샅샅이 비교해 봐도, 벽에 써진 글씨 외에 달라진 점은 없었다.

“우리가 놓친 무언가 있는 거 같긴 한데.”

답답함을 느낀 우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입주민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입주민 중 체격 비슷한 남성들은 다 비교해 봤잖냐. 다들 알리바이 확실해.”

“살인범이랑 카메라 부순 놈이랑 다를 수도 있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니까 광수대랑 따로 조사하잖냐.”

“아…….”

며칠 전만 해도 왜 광수대가 끼냐며 노발대발하던 막내의 입이 다물어졌다.

“아님, 최근 이사 온 사람들 중에는…….”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랑 무슨 상관인데.”

“범인은 반드시 다시 현장을 찾는다! 기본 원칙이라면서요.”

“그거 다 옛말이야.”

“이놈은 다시 왔잖아요?”

“그래서 다시 현장 가려고 이사라도 왔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미친놈 맞잖아요.”

“…너 진짜 혼나 볼래?”

또 막내와 박 경위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사건 후로 이사 온 집은 한 집밖에 없습니다. 1003호.”

“1003호면 사건 호실 옆집이요?!”

이 경위에 말에 지 순경의 눈이 ‘내 말 맞죠?’ 하는 눈빛으로 반짝였다.

“신원조회 해봤어?”

“피의자, 아니 이사자 28세, 이도하, 화정 기획 근무하고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     *     *

애매한 감사부 소속이기 때문인지, 오후에 참석 예정이었던 팀장 회의에서 배제되었다.

할 일이 태산인 도희 입장에선 두 손 들고 반길 일이었다.

‘참나, 나야 땡큐지.’

도희는 콧노래가 절로 났다.

“팀장님 회의 들어간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지 말라네요. 시간 낭비 안 하고 좋죠, 뭐.”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모든 행동을 멈춘, 굳은 표정의 팀원들을 보니 도희는 왠지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업무 자체가 다른데 회의 들어가는 것도 이상하죠.”

진명이 위로하듯 나섰다.

“맞습니다. 팀장님 일도 많으신데 잘됐습니다.”

정말 도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팀원들은 아닌 거 같지만.

“팀장님 근무 만족도 예상 질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강 팀장님 신문고 게시판 신설 공지 문구랑 시안 보내드렸습니다.”

“1번보다 2번이 나을 거 같습니다! 팀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갑자기 다들 어찌나 열성적으로 업무에 임하는지, 기획안 하나씩 붙잡고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팀장님 개선안 공모전 상금을 얼마로 해야 적당할까요? 너무 많다고 하시니까 적정 금액을 모르겠어요.”

‘이상하네.’

다른 팀원들과 달리 소하의 질문은 거의 신입 사원 수준이었다.

“소하씨 다른 사내 공모전 참고하세요.”

“그건 어떻게 봐요?”

‘뭐지?’

“사내 홈페이지 공지에 있습니다.”

“아… 직접 다 찾아봐야 하는구나.”

그럼 직접 찾지, 누가 찾아 준단 말인가.

‘공모전 검색해서 몇 개 훑어보는 게 어려운 건 아닐 텐데?’

고개를 갸웃거린 도희의 손이 다급하게 움직인다.

곧 모니터에 문서 하나가 띄워졌다.

‘어?’

소하를 바라보는 도희의 눈빛에 의문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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