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47)화 (47/120)

046화 자고 갈까요?

“너 부사장 잡고 싶지? 타겟은 부사장이잖아.”

‘이건 어떻게 알았대.’

사장과 부사장의 대립은 모르는 이가 없었고, 도희는 사장 사람이라고 소문이 다 났으니.

‘모르면 이상한 건가.’

“그래서?”

“내가 도와줄게.”

“부사장 비리 증거라도 있니?”

박현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그는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 추켜세웠다.

“그냥 주는 거야?”

“그럴 리가.”

“응. 그럼 꺼져.”

그를 밀치며 걸음을 옮기려 한 도희를 그가 다시 잡아끌었다.

“아! 안 놔?”

“재판에서 넌 아무것도 못 봤다고, 나 무죄라고 말해.”

“미쳤어?”

“무죄라고 증인만 서주면 증거고 뭐고 다 줄게. 어때? 서로 깔끔하잖아.”

“너 혹시 그거 믿고 인생 막살았니?”

미소 짓던 박현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네가 싫다면 네 뒷 빽 이무혁한테 가고.”

“박현일.”

“왜 불러, 설레게.”

“재판 전까지 즐겨.”

이번엔 도희가 박현일의 귓가로 다가갔다.

“넌 죽어도 무죄 못 받아.”

그때, 박현일의 손이 도희 머리채를 잡아챘다.

“아!”

“넌 세상 무서운 게 없어?”

“놔. 이 미친 새끼야!”

머리채를 잡힌 도희가 발버둥 쳤지만, 벗어나려 할수록 꽉 잡아 쥐는 박현일이었다.

—숨 참게!

‘어? 도사님?!’

갑자기 눈앞에 몽글몽글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흡!”

숨을 참은 도희에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강도희!”

“도희씨!”

도하와 우주가 황급히 도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시야에는 흐릿한 하얀 연기 속 박현일에게 머리채를 잡힌 도희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컥… 푸후… 이 연기들은 뭐야!”

“도희씨…! 커컥… 괜찮… 컥…….”

‘어? 여기…….’

도희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숨 참게! 마시는 순간 잠들 걸세!

그때, 툭 하고 박현일이 쓰러지며 도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급히 연기를 벗어난 도희의 눈에 보이는 건 새하얀 연기가 피어나는 곰방대를 문 도사의 얼굴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중에 뜬 서책 위에 그려진 도사 얼굴이랄까.

“도사님 다 재우면 어떡해요!”

서서히 흩어지는 몽글한 하얀 연기 속엔 세 남자가 누워 있다.

—끄응… 다른 방도가 없었네. 그렇다고 해를 가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긴, 재우는 방법이 깔끔하긴 했다.

“저까지 잠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항아리가 없었다면 야단 날 뻔하였어. 내 그러게 아침에 느낌이 좋지 않다 했거늘!

도희와 닿지 않은 도사는 혼자 도술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항아리의 정기를 빌리지 못했다면 곰방대는커녕 도희 곁으로 오지도 못했다.

“정기는 흡수하신 거예요?”

—쌓인 정기들이 흘러 들어오질 않으이. 당최 어찌해야 하는지. 아이고…….

“이 사람들은 어떡해요? 언제 깨요?”

‘아니, 그러니까 먼저 말하고 요물을 쓰시지!’

가만뒀어도 도하와 우주가 도착해 충분히 도희를 구해 줬을 것이다.

—이, 이놈이! 내 너가 몹쓸 일 당하는 줄 알고 어찌나 급히 날아온 줄 아느냐. 내 그럴 정신이 어디…….

“하긴, 이편이 더 깔끔하긴 해요. 괜히 박현일이랑 사람들이랑 엮일 일도 안 생기고.”

박현일이 혼자인 상황에서 남자 둘이 도착해 괜한 몸싸움이 발생했다면 박현일이 어떤 꼬투리를 잡을지 몰랐다.

‘집단 폭행이니 뭐니 없는 말도 지어낼 놈이지.’

“도사님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진심을 담아 방긋 웃으며 윙크하는 도희였지만 살짝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쯔쯔… 옛말에 까치도 은혜를 알고 보은을 한다 하였거늘…….

“이젠 까치랑 비교를 하시네. 그럼 까치 데려다가 정의 행하시던가!”

—뭐라?

“이 사람들 언제 깨어나요?”

도사는 연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안 들려요. 뭐라고요? 도사님?”

—한 식경! 한 식경 후면 깨어날 걸세. 이제 자네 알아서 하게!

대뜸 소리치더니 높이 떠오른 서책은 도희 집 베란다로 획 날아가 버린다.

“헐. 도사님 지금 삐진 거야?”

‘뭘 또 삐져, 삐지긴!’

“한 식경이면 얼마야. 아오.”

그게 몇 분이건 이 사람들을 여기 계속 누워 있게 할 순 없었다.

‘흔들어 깨우면 일어나지 않을까.’

도희가 도하와 우주의 팔을 양쪽으로 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도하씨, 우주씨, 정신 차려보세요!”

‘일단 경찰부터 불러?’

박현일을 이대로 둘 순 없었다.

“도하씨, 우주씨!”

도하와 우주를 번갈아가며, 미친 듯 흔들어도 미동도 없는 둘이었다.

‘박현일이 먼저 깨어나면 어떡하지? 아 곤란한데. 살짝 묶어?’

깨우기를 포기한 도희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도희씨.”

찡그린 표정의 도하가 몸을 반쯤 일으켰다.

“도하씨, 괜찮아요?”

“으… 전 괜찮아요.”

머리가 아픈지, 도하는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연신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도희씨는 괜찮아요?”

도희를 살피기 위해 몸을 일으킨 도하의 몸이 도희에게 기우뚱 기울었다.

“어!”

앉은 자세였던 도희는 날아든 도하 때문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아!”

“어… 죄송합니다, 도희씨, 괜찮아요?”

넘어진 도하와 아래에 깔린 도희가 어정쩡한 자세로 겹쳐졌다.

“전 괜찮아요.”

방금 찧은 엉덩이가 더 아팠다.

“괜찮으니까 비켜주실래요? 도하 대리님.”

둘의 얼굴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코앞에서 환히 웃는 도희의 미소에 넋이 나간 도하가 어물쩍거리는 동안 둘 사이를 가르는 음성이 끼어든다.

“두 분 뭐하십니까.”

어느새 깨어난 우주는 살벌한 눈빛으로 도하를 쏘아보며 다가왔다.

“일어나시죠.”

“괜찮습니다.”

도하는 우주의 손을 뿌리치며 홀로 일어섰다.

도하에게 시선을 거둔 우주는 바로 도희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려는 도희의 시야에 불쑥 손 하나가 더 나타났다.

‘뭐야.’

마치 경쟁하듯 자기 손을 잡고 일어서라고 눈짓하는 두 사람이었다.

“저도 괜찮습니다.”

혼자 벌떡 일어난 도희는 손바닥을 훌훌 털었다.

“근데 두 분 어떻게 같이 오셨어요?”

“그보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아까 연기는 뭡니까? 이 사람은 누구고요.”

“아, 일단 경찰부터 부르죠. 가서 전부 말씀드릴게요.”

‘어차피 설명해야 하니까 한 번에 하는 게 편하지.’

“제가 부르겠습니다.”

“아니.”

우주가 도하의 손을 막아섰다.

“제가 이미 불렀습니다.”

‘언제? 아, 오면서 부른 모양이네.’

역시 형사는 형사였다.

“이도하씨는 이제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제 이름을 아시네요.”

“아, 오션 오피스텔 1003호 사시죠. 그때 찾아뵀던 경위 우주입니다.”

우주가 내민 경찰 공무원증을 빤히 쳐다본 도하가 입을 열었다.

“근데…….”

경찰 공무원증에 있던 도하의 시선이 우주의 눈에 닿았다.

“그때 이름은 말 안 했는데.”

“입주민증 확인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오피스텔 사건 조사 중이라.”

“그럼 돌아가셔서 공무나 마저 보시죠. 여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싫은데요?”

“저도 싫습니다.”

‘둘이 뭐해.’

단호하게 거절하는 도하의 두 눈엔 적의가 묻어났다.

“형사인 제가 동행할 테니 걱정 말고 귀가하시죠.”

강력한 명령조였다.

“제가 보호자로 동행하겠습니다.”

“보호자 아니시잖아요?”

“도희씨가 전화한 건 그쪽이 아니라 저입니다만.”

“그쪽? 하, 그건 단순히 이도하씨가 집 근처 사시니…….”

“그만.”

보다 못한 도희가 나섰다.

“도하씨, 늦은 시간에 고마워요. 우주씨도 와주셔서 고마워요.”

도희가 차례로 도하와 우주를 쳐다봤다.

“곧 경찰이 올 테니 두 분 다 돌아가시죠.”

*     *     *

경찰서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우주가 보인다.

‘어쩐지 순순히 가더라니.’

“도희씨, 또 뵙네요.”

“기어코 여기까지 오셨어요?”

“여긴 제 근무지인 걸요?”

“진짜 사람 말 안 들으시네요.”

“오해십니다.”

“그럴 리가.”

“증인 필요하시잖아요.”

“무슨 증인요?”

우주의 긴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켰다.

“저 남자가 도희씨에게 상해를 가하고 있던 걸 두 눈으로 목격한 증인.”

‘그럼 일이 쉽긴 한데.’

“나 어디에 앉아요?”

“여기요.”

그가 지목한 자리에 털썩 앉은 도희가 입을 열었다.

“조서부터 쓰면 되죠?”

이젠 경찰서가 편한 도희였다.

*     *     *

도희가 조서를 쓰는 내내 옆에서 조서를 읽은 우주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도희씨, 회사 화장실에서 몰카 현행범으로 붙잡힌 사람인데.”

도희가 고개를 끄떡였다.

“보석 받고 나오자마자 신고자인 도희씨를 찾아가 보복행위를 했다?”

유치장에 누워 있는 박현일을 보며 말하는 우주의 목소리엔 분노가 차올랐다.

도희의 고개가 또 한 번 끄덕여졌다.

“보석 중에 보복 범죄라니, 이제 무조건 구속 수사일 겁니다.”

도희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피해자인 척 연기하는 도희였다.

우주는 그런 도희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냥 이상해서요,”

“뭐가요.”

“이번에도 범죄자는 누워 있고 도희씨는 멀쩡하네요.”

“아이고… 머리야. 아까 저 자식이 막 제 목도 조르려고 했는데, 여기 멍들지 않았어요?”

옷을 끌어 내리며 목을 내보이는 도희였다.

“이리 와봐요.”

우주의 손이 도희의 손을 잡아 세웠다.

“크흠…….”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우주의 손길에 민망한 도희는 괜한 헛기침을 해보였다.

“병원 갑시다.”

“아니에요.”

“아프다면서요.”

“안 아파요.”

“그래도 갑시다.”

“저 멀쩡해요. 제가 다쳤어야 했나요?”

“그럼 저 자식이 저기 혼자 누워 있겠어요?”

유치장을 가리키는 우주의 손짓에 토끼 눈을 한 도희가 눈을 꿈뻑인다.

“얼씨구, 형사님이 폭력이라도 쓰시게요?”

“그럼 안 되나요?”

“이 형사님, 선 넘으시네.”

“제가 원래 선 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저 자식 몇 대 쳐서 같이 유치장 들어가실래요?”

“원해요? 도희씨가 원하신다면 뭐.”

망설임 없이 일어서는 우주를 도희가 잡아끌었다.

“1절만 해요. 1절만.”

그때, 마침 담당 형사가 돌아오고 조서 작성은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     *     *

“집 앞까진 안 데려다주셔도 되는데.”

둘은 이미 도희 집 문 앞이었다.

“어차피 일 때문에 이 근처로 와야 했습니다.”

“그 자식 재판 전까지 풀려날 일은 없겠죠?”

“불안하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서 그놈 죽여 버릴까요?”

“큰일 날 소리 하시네요.”

“진짠데.”

“아까 안 말려도 안 할 거 아는데.”

도희는 이를 꽉 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우주씨가 민망할까 봐 말려준 거예요.”

우주가 유치장에 들어간다며 일어선 일을 말한 거였다.

“이제 형사님이라고 안 하시네요.”

“제가 실수했네요. 선은 지켜야 하는데.”

“말씀드렸는데.”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띤 우주가 도희 눈을 곧이 바라본다.

“선 넘는 거 좋아한다고.”

‘이 남자가?’

“그런 의미로 오늘.”

곁으로 다가온 우주는 허릴 숙여 도희와 눈높이를 맞췄다.

‘뭐, 뭐야.’

그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자고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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