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50)화 (50/120)

049화 저도 남자구실 할 줄 압니다.

길고 긴 소하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소하씨.”

“네, 팀장님.”

“저희 뭐 하나 짚고 넘어가죠.”

“전 어떤 욕이든 들을 준비됐어요.”

“욕은 안 해요. 소하씨 잘못이 아니니까.”

그 환경을 소하가 만든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어요. 회사엔 지켜야 할 룰이 있고.”

“…네.”

“근데 소하씨는 그걸 둘 다 넘었어요.”

오늘 진명과의 일도 포함, 어제 도하와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소하의 태도가 과했으니까.

“앞으로도 그 태도를 유지했다면 분명 저와 부딪혔을 거예요.”

도희는 개인적인 사유로 분위기 흐리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소하씨가 진심으로 변할 생각이라니까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사회생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놀고먹고 아무것도 안 해도 월급이 나온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소하씨가 겪어 보고 싶다는 회사 생활, 사회생활이 쉽진 않을 거예요. 그동안 누려 왔던 거랑은 다를 테니까.”

소하는 말 그대로 온실 속 꽃이었다.

비바람은커녕 찬바람 한 번 맞아본 적 없는.

“그리고 무조건 소하씨가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는 없어요. 제 말이 모두 정답도 아니구요.”

“그래도 전 팀장님이 좋아요.”

“풉, 또 고백 타임이에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팀장님 덕분에 저 자아 성찰한 거 아시면서.”

“으, 맨정신에 듣기엔 조금 힘들었어요.”

“헐, 제 고백을!”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우리 팀장님 어쩜, 겸손까지.”

양손으로 턱을 괸 소하가 도희를 바라본다.

“그래도 전 남자를 더 좋아해요. 아시죠?”

“저도 남자 좋아해요.”

도희에 말에 작게 웃어 보이는 소하였다.

“팀장님, 편한 팀장이 되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랬죠.”

[놀기 편한 팀장 말고, 일하기 편한 팀장이 될 생각인데, 놀 생각이라면 제 팀에선 아주 힘들 거예요. 서로 깔끔한 게 좋잖아요?]

도희가 개선부 첫 회의 때 한 말이었다.

“그 말 듣고 나니까 또 정신이 번뜩 들더라고요.”

“오, 제 의도가 먹혔군요.”

“사무실에 있으면 막 숨이 막혔다구요…….”

소하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뭘 할지도 모르겠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자꾸 민폐만 끼치는 거 같고…….”

“또 자아 성찰 타임이에요?”

“그래서 더 예민했던 거 같아요.”

소하의 입술이 우물쭈물 들썩였다.

“이런 저를 들킬까 봐…….”

“소하씨.”

큰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떨어트리지 않으려 애쓰는 소하를 보니 가슴이 찡한 도희였다.

“전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소하씨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기죽지 말아요!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     *     *

소하와 대화를 끝낸 도희는 전 상무부터 만났다.

때마침 점심시간인지라 장소는 회사 앞 한식당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2년 동안 경영지원 2팀에 있으면서 명절 선물 고르고, 체육대회 준비하고 초청 강사 명단 고르고…….”

도희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이 어이없는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내뱉었다.

전 상무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이 일들도 1팀에 있는 친구 업무 도와준 거랍니다.”

전 상무가 손에 들린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윤소하씨, 아버지가 법원에 계신다고요?”

“예. 명단에 적힌 지원2팀 전부 낙하산이라네요. 소하씨 말로는.”

“회사에 낙하산 인사는 흔하긴 합니다.”

“팀 전체가 아무런 업무도 하지 않는다는 게 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고작 10명입니다.”

“와우, 월급 루팡이 열 사람이나.”

도희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크게 손뼉을 쳤다.

“그래도 팀 전체는 아닐 겁니다.”

비꼬는 듯한 도희의 행동에 전 상무가 곤란한 투로 대답했다.

“맞아요. 2팀 팀장님은 아니래요.”

팀원들의 편안한 회사 생활을 위해 팀장이 도맡아 팀원들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했다.

“그쵸?”

“네, 10명 중 한 명이니 루팡은 9명이네요.”

“뭘 그렇게 비꼬십니까.”

“전 상무님.”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다.

“지원2팀 연봉이 1팀보다 2배는 많던데. 이것도 흔한 일인가요?”

팀장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돈 때문에 그러십니까?”

“헐. 이사님 사람을 뭘로 보시고!”

“크흠…….”

뭘로 보긴, 아주 잘 본 것이었다.

“이사님, 소하씨가 개선부에 왜 왔을까요.”

“글쎄요.”

“일하러 왔대요.”

“예?”

“쪽팔렸대요.”

“예?”

“2년을 탱자탱자 놀다 보니 자기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랍니다.”

업무를 받고 싶어도 할 일이 없었단다.

“분명 본인은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을 예상하고 입사했는데.”

도희가 젓가락을 들었다.

“회사와도 재미는 없고, 일을 안 해도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고.”

정갈하게 깔린 반찬들에 의미 없는 젓가락질을 해대는 도희였다.

“퇴사는 하고 싶은데, 아무리 집안 좋아도 백수는 결혼 상대 고르기 안 좋다며 집에서 못 하게 하고.”

이내 그녀의 젓가락은 허공을 휘저었다.

“맨날 소개팅 나가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는 안 나타나고.”

“그래서요.”

“나중엔 친구 눈치가 보이더래요.”

“친구 눈치가 보여서 부서 이동을 했단 말입니까?”

“자기가 한심하더래요.”

도희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간다.

“아버지는 법을 수호하는 검사인데, 자기는 아버지 빽으로 대기업 다니면서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는 게.”

전 상무는 그런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

“커서 자기도 아버지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검사인 소하의 아버지도 회사와 연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부적절한 관계로.

“자기도 아버지도 다 너무 실망스럽더래요.”

“사춘기 소녀 같네요. 그 윤소하씨라는 분.”

“헐.”

“보통 사람이라면 즐기겠죠. 그 상황을.”

“보통 사람이 아닌가 보죠.”

소하가 도희를 보고 느낀 것이 많아 부서 이동을 했다는 것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자기 자랑 같아 부끄럽기도 했고.

“그분 말이 사실이라 해도 좀 더 알아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팀원 모두가 낙하산이라면 각각의 커넥션이 있을 테니까?”

“잘 아시네요.”

“긁어 내실 건가요?”

“글쎄요. 아직 확답은 못 내리겠네요.”

“업무 부여부터 하면 어떨까요.”

“몇 년 동안 놀았는데 갑자기 일을 시키면 반발이 없겠어요?”

“반발하겠죠. 그럼 그걸로 꼬투리 잡으세요.”

“반발 안 한다면요?”

“이제 일한다는 직원을 자르실 거예요?”

“그대로 두겠죠.”

“그럼 해결되는 거죠. 긁어 부스럼 없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었으나 제일 깔끔한 방법이었다.

“회사도 그들에게 받은 게 있으니까 그들의 낙하산 인사가 있었을 테고.”

전 상무가 수긍하듯 끄덕였다.

“그건 그동안 팀원들이 논 걸로 퉁. 그리고 지금부터 일할 사람은 일하고, 안 할 사람은 전 상무님이 처리하셔야죠.”

“깔끔하네요.”

“이런 부서가 더 있진 않겠죠?”

“낙하산 인사를 한 팀에 몰아두는 생각을 아무나 하진 못합니다.”

“그 말 들으니까 더 찝찝하네요…….”

“예?”

“그런 미친놈을 알 거 같아서.”

찝찝한 듯 인상을 쓰는 도희와 눈썹이 꿈틀거리는 전 상무의 시선이 맞닿았다.

“회사의 이득과 바꾼 낙하산 인사인지, 개인적 이득들의 교환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부디 깔끔하게 정리되는 선에서 끝났으면 좋겠네요.”

“회사가 또 시끄러워지겠네요.”

“회사 시끄러워질 일은 그 일 말고도 많아요.”

“게시판 벌써 뜨겁던데요.”

“난리도 아니에요. 제 발 저려 자진 신고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가 끊길 틈이 없어요.”

“전화해서 뭐라고 합니까. 글 내려달라고?”

“작성자까지 대놓고 물어봐요. 익명의 뜻을 모르나.”

“그렇게 멍청한 사원들이 있단 말이죠…….”

“것보다 눈이 뒤집어진 거죠. 게시판에 대놓고 자기 욕이 쓰여 있으니까.”

“비판이 아닌 비난 글이 있었습니까?”

“근거 없는 비난 글은 아직 못 봤습니다. 대부분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판 글들이죠.”

“초과 근무 시간 조작은 저도 봤습니다. 부서명까지 밝혔던데.”

“거기 부장 사무실까지 찾아왔어요. 글 내려달라고.”

“이미 감사부가 조사 들어갔습니다.”

“감사부요?”

“예.”

“아하하… 믿음이 확 가는 소리네요.”

“믿음이 가신다고요?”

“확 간다고요. 가. 저기로 간다고.”

“풉. 저쪽도 당분간 쓸데없는 짓은 못할 겁니다.”

“손 쓰셨어요?”

“스파이엔 스파이랄까요.”

“스파이가 있어요?”

“아니요?”

“방금 스파이엔 스파이라면서요.”

“아닙니다. 스파이 붙였다 그 말입니다.”

도희의 눈이 쭉 찢어지더니 미간에 옅은 세로 선이 생겼다.

“그리고 강 팀장. 가드 다시 붙을 겁니다.”

“예? 안 돼요!”

“뭐가 안 됩니까. 어제 박현일이 찾아왔다면서요. 그 난리를 당해놓고.”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 김 변?”

박현일의 변호사가 전 상무의 소식통이었다.

“저 정말 괜찮아요. 가드 필요 없어요.”

“제가 안 괜찮습니다.”

“아니, 제가 괜찮다니깐요?”

“저도 안 괜찮습니다.”

도희의 등 뒤에서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전 상무 섭섭할 뻔했어.”

“뭘 또… 연락드렸잖아요.”

“내가 전화했는데?”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무혁이 자연스레 전 상무 옆자리에 앉았다.

“강 팀장, 밖에서 보니까 더 좋네요.”

“네. 그렇네요.”

도희의 눈이 어색하게 휘었다.

“전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식사 안 하고 가십니까?”

“다 먹었습니다.”

“숟가락 들지도 않았는데.”

무혁이 깨끗한 도희의 숟가락을 가리켰다.

“젓가락으로 먹었어요.”

“내가 불편해요?”

“…조금?”

도희의 대답에 전 상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왜요. 전 상무랑은 친하면서.”

“사장님은 사장님이시잖아요.”

“그게 불편한 게 아닌 거 같은데.”

“그게 맞는 걸로 하면 안 될까요.”

“그럼 같이 식사하면서 생각해 볼까요.”

“사장님.”

“네, 강 팀장.”

“정말 전 상무님처럼 편하게 대해요?”

“제가 그렇게 편하십니까?”

억울한 목소리의 전 상무였다.

“전 상무님은 저를 여자로 안 보시잖아요.”

“아니, 저도 남자구실 할 줄 압니다!”

“전 상무.”

“예?”

낮게 깔린 무혁의 음성과 한껏 동그래진 도희의 눈을 본 전 상무는 제 얼굴을 감쌌다.

“아니, 제 말은 그 말이 아니라…….”

“전 상무 남자구실 못한다는 말은 아무도 안 했어.”

“푸흐… 흡.”

“사장님도 이제 도희씨 그만 불편하게 하십시오.”

웃음 터진 도희를 흘겨보던 전 상무의 시선은 무혁을 향했다.

“흐음…….”

“그거 이상한 승부욕입니다.”

“강 팀장, 불편했다면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근데 저 강 팀장 여자로 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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