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저는 어떻습니까.
“하… 지금 상황 심각한 거 알지?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예.”
“옙.”
“예.”
“근데 팀장님, 그 기자도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형사도 모르는 내용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막내는 자신을 쏘아보는 선배들에 눈빛에도 꿋꿋했다.
“그래. 지 순경, 네가 가서 기자 잡고 물어볼래? 어떻게 알았냐고?”
“옙.”
서 팀장은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휴… 박 경위, 피해자 빵 동기 만날 때 지 순경 데려가.”
“예.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그 설 기자란 놈이랑 접촉하지 말고. 정보 샌 거, 우리 쪽 아니면 광수대 쪽인데 저놈들은 죽어도 아니란다. 우리가 덤탱이 쓰기 딱 좋으니까 조심하고.”
말을 끝낸 서 팀장이 차 문을 열었다.
“팀장님, 어디 가십니까.”
“청장님 만나러 간다. 왜!”
“다녀오십시오.”
팀원들에 인사에도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서는 서 팀장이었다.
“아이고, 숨 막혀라.”
“창문 좀 내릴까요?”
“그게 그 말이냐? 아오, 누가 우리 막내 눈치 좀 사 줬으면 좋겠네.”
“이 경위님 웃자고 한 말입니다.”
웬일인지 막내의 실없는 농담에도 박 경위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짜 숨 막히긴 하네. 차 안에서 잠복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다인승 승합차지만, 한 덩치 하는 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터라 턱없이 비좁았다.
좀처럼 투정 부릴 일 없는 이 경위가 툴툴대며 의자를 뒤로 젖히자 박 경위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단서가 나오고 있지 않냐. 언론에 밝혀진 이상 제보도 더 들어올 테고, 그럼 이 짓도 곧 끝나겠지.”
“하, 제발요. 아마 이번 사건으로 죽을 때까지 먹을 욕 다 먹었을 겁니다.”
“이제 경찰 욕하면 다 네 욕 하는 거 같아? 우리 막내 형사 다 됐네. 크큭.”
“살인자보다 못 한 경찰은 아니지 않습니까? 꼴랑 ‘악에는 악’ 그 글 하나 가지고!”
하필 피해자가 15년 전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온갖 핑계와 술수로 겨우 15년형만 받은 인간이었다.
설 기자가 피해자의 예전 사건까지 낱낱이 조명하면서, 여러 가지 여론이 형성된 상태였다.
지은 죗값을 돌려받았다느니, 이게 다 법이 허술해서 범인이 대신 응징한 거라며 오히려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살인범 죽였어도 살인은 살인이지. 뭘 신경 써. 우린 그냥 범인만 잡으면 돼.”
이 경위가 툴툴대는 막내를 다독였다.
“근데 설 기자는 진짜 어떻게 알았을까요?”
의문을 잔뜩 품은 표정의 막내는 연이어 열변을 토했다.
“다른 내용은 다 저희도 아는 내용이라 치고, 피해자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 오피스텔에서 먹고 자고 했다는 건 저희도 몰랐잖아요!”
“자 봐라, 막내야. 피해자 신원 나왔지?”
“예.”
막내가 고갤 끄덕였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됐지? 그럼 최근 근황을 아는 사람은 감빵 동기들뿐이네?”
“그렇죠?”
“그중 한 명도 비슷하게 출소했지?”
“그놈 만나서 알아냈다고요? 그럼 설 기자가 저희보다 빨랐다는 거네요?”
“애초에 우리가 피해자 신원을 파악한 게 어제저녁이잖냐. 근데 설 기자는 어제 낮에 빵 동기를 만났다고. 이게 무슨 말이겠냐.”
“어… 설 기자 똑똑하네요.”
“내부에서 누가 소스 주는 거라고 그것도 형사들보다 윗선에서.”
* * *
피해자의 감빵 동기는 설 기자에게 한 말과 같은 말을 내놓았다.
출소하면 자신을 도와줄 후원자가 있다며, 그 후원자가 이미 살 집도 준비해 뒀다고 했단다.
“도대체 누굴까요. 갈 곳 없는 살인범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추가로 두 달 전에 제 발로 오피스텔을 걸어 들어가는 피해자의 영상이 발견됐다.
그 후로 나오는 영상은 찾지 못했다.
“굳이 도와주고 나서 죽인다? 진짜 이상한 놈이네.”
“도와준 사람이랑 범인은 다른 사람은 아닐까요?”
“피해자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그것도 이상하네요.”
“두 달 동안 여기서 한 발짝도 안 나갔어. 청소 아주머니 증언에 따르면 쓰레기통에 인스턴트 음식만 가득했다고 했지? 누가 음식을 가져다줬다는 건데…….”
“그러게요. 음식을 누가 어떻게 가져다줬을까요.”
“어?!”
잠자코 있던 우주의 입에서 갑작스런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왜?!”
“우 형사님 왜요? 뭐 알아내셨어요?!”
“공실!”
“공실요?”
“이 오피스텔은 인기가 좋아서 공실 회전율이 빠른데 유독 이상하게 공실 기간이 긴 집이 있었습니다. 1003호.”
도하가 이사 온 집이었다.
“집주인부터 알아봐.”
“예.”
“이 경위는 해당 기간 공실 목록 다시 뽑고.”
“예.”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사들 사이, 우왕좌왕하던 막내는 우주를 따라나섰다.
* * *
“사실 전 팀장님이 회식 싫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온갖 고성이 오가는 시끌한 수제 맥주 집인데도 소하의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들렸다.
또랑한 목소리의 소하는 도희 잔에 맥주를 콸콸 따랐다.
맥주 반, 거품 반이었다.
“제가요? 그럴 리가요.”
내심 찔리던 도희의 눈매는 어색한 호선을 그려냈다.
그녀의 손은 소하의 맥주잔을 기울여 능숙히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팀장님 회식 싫어하시잖아요! 사외모임 싫어하신다고 하던데.”
“누가 그래요?”
‘어떻게 알았지?’
“팀장님 전 부서 사람들은 다 알던데요? 저 지선 대리님이랑 친해요! 같은 와인 모임 다녀요.”
소하는 생각보다 마당발이었다.
“아… 뭐, 어쩌다 한 번은 괜찮아요. 전 부서는 워낙 모임이 잦았어서.”
마 부장은 심심하면 주말 모임을 만들었다.
‘회사 출근하면 돈이라도 나오지.’
그녀에게 사외모임은 무료봉사와도 같았다.
잦은 무료봉사는 죽어도 싫은 도희였다.
“저희는 깔끔하게 회사에서만 봐요. 다들 주말엔 쉬고 싶잖아요?”
“저는 주말에도 팀장님 보고 싶은데요?”
“헐, 소하씨가 이렇게 아부를 잘하는 줄은 몰랐네요.”
소하는 너스레를 떨며 웃는 도희 팔을 잡고 흔들었다.
소하의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들렸다.
“진짜예요!”
“크큭, 알았어요, 알았어. 믿을게요.”
크게 웃는 도희를 본 팀원들에게도 작은 웃음들이 새어 나왔다.
“자! 오늘 다들 고생했어요. 짠!”
“짠.”
“저도 짠.”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팀원들의 잔이 호쾌한 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크으, 이 집 맥주 잘하네요.”
벌써 한 잔을 원 샷 한 두산이 말했다.
“으, 너무 차서 전 머리가 띵해요.”
소하는 잔뜩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도희의 잔에는 맥주가 반쯤 남아 있었고, 도하의 잔은 줄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나저나 신문고 이제 시작인데 큰일이네요.”
“내일은 또 어떤 일이 터질지 벌써 골치 아프네요.”
“왜 골치가 아파요? 전 솔직히 좀 재밌던데.”
진명과 두산은 황당한 표정으로 소하를 쳐다봤다.
“다들 막 뒤에서만 하던 얘기를 앞에서 대놓고 하잖아요!”
마치 어린아이 같은 신난 표정이었다.
“하긴 뭐, 게시판이 오늘 사내 핫이슈긴 했죠. 게시 글 올라오는 속도가… 워! 다들 신나서 글 적었더만.”
일단 임시로 2주 동안만 운영하기로 했지만, 2주 동안 얼마나 많은 글이 쌓일지 깜깜한 진명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자기 시간 들여가며 적었겠어요. 아닌 걸 아니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니까 그렇게라도 하는 거죠.”
도희의 말에 다들 고갤 끄덕였다.
“전 오늘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스토킹이 젤 소름이었어요. 으!”
소하의 부르르 떠는 몸짓을 본 도희는 소름을 떨치기 위해 몸을 살짝 털었다.
“글 쓴 여자 말대로라면 스토킹하는 놈이 회사 사람인 거 같던데 1년을 어떻게 참았대요. 저 같으면 바로…….”
눈을 똥그랗게 뜬 팀원들이 도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자는 회사 사람이 스토킹하는 것 같다며 회사에 보고도 해봤고, 경찰 신고도 해봤는데 결국 누군지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어… 생각해 보니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하하.”
‘도사님 없으면 저도 별 방법이 없네요.’
—분주해지겠구나. 준비하마.
‘하,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네요.’
지이이잉—
강아였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 * *
바깥으로 나와 강아와 통화를 마친 도희가 호프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팀장님, 만나는 남자 있으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아니요?”
“저는 어떻습니까.”
“네?”
“저랑 만나볼래요?”
“어…….”
얼이 빠진 도희는 그저 넋을 놓고 도하를 바라볼 뿐이었다.
“팀장님 같은 분이 혼자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소문에 휘말리는 게 속상해서요.”
“무슨 소문요?”
“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네?”
‘도대체 뭔 말이야.’
“다음부터 누가 남자 있냐고 물으면 없어도 있다고 하세요. 방패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화가 난 사람 같았다.
그 대상이 도희는 아닌 거 같았고.
“네에…….”
얼떨결에 대답한 도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소문 듣고 나 대신 화내 주는 건가? 대체 뭔 소문이길래…….’
생각에 잠긴 도희는 조용히 앞서 걸어가는 도하의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회식 내내 표정이 좋지 않던데.’
도하가 평소에도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어머! 두 분이 같이 들어오시네요?”
두 눈을 빛내는 소하였다.
“화장실은 안에 있던데.”
“도하 대리님도 전화 받았나 보죠.”
장난기 가득 묻은 말들이었다.
“제가 할 말 있어서 따라 나갔습니다.”
도하의 대답에 셋은 당황하며 바쁜 눈짓을 주고받는다.
“크흠.”
도희는 어색한 기침으로 팀원들을 주목시켰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모두의 시선을 느낀 도희는 입을 열었다.
“요즘 제 소문이 어떤가요?”
다시 눈짓을 바쁘게 주고받는 셋이었다.
“팀장님 소문이요?”
진명은 되물었고.
“글쎄요. 전 잘…….”
두산은 모르는 척하였으며.
“한두 개가 아닌데 다 말씀드릴까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의 소하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