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56)화 (56/120)

055화 도하씨 여기 혼자 살아요?

도희는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도하씨, 나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팀장님.

“얼마 전에 오션으로 이사하셨잖아요? 부동산에서 알아보신 거예요? 아, 저도 이사를 알아보고 있어서요.”

도희의 어색한 거짓말에 얼굴을 감싼 우주는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아, 네. 전 부동산으로 알아봤는데 알아봐 드릴까요?

“괜찮아요. 제가 알아볼게요. 계약하실 때 집주인은 직접 만나서 하셨나요?”

—…혹시 경찰에서 저희 집주인 찾는 것 때문에 그러시나요?

‘이건 또 뭐야.’

도희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우주를 쏘아봤다.

도희의 눈빛을 받은 우주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뜰 뿐이다.

“알고 계셨어요?”

—아침에 형사님과 이야기 나눴고 저녁에 다시 뵙기로 했습니다.

‘헐! 아침에 일 때문에 왔다는 게 진짜 도하씨랑 이야기하러 온 거였어?’

“아… 네, 도하씨 점심 맛있게 먹어요. 들어가서 뵐게요.”

통화를 끝낸 도희에게 웃음기 가득한 우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 성격도 급하셔.”

가자미눈이 된 도희는 우주를 흘겨봤다.

“왜 말 안 했어요? 둘이 이미 이야기 다 한 거.”

“이제 말하려고 했습니다.”

“거짓말.”

“진짭니다.”

“도하씨 용의선상에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죠?”

“그건 사실이에요. 워낙 범인이 혼자 했다기에 대담하고 말이 안 되는 사건이라.”

“의심하는 이유는 1003호에 이사 왔다는 거 하나?”

“지금 상황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전부 용의선상에 올리는 실정이라서요.”

집주인도 같이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상황이 안 좋단 말이네요.”

“이도하씨의 이사 배경이 의문투성이란 말이죠.”

“도하씨는 그냥 부동산에서 계약만 한 계약자일 수도 있잖아요?”

절대 그가 사건과 연관 있을 리가 없다 믿는 도희였다.

“오션 오피스텔은 인기가 좋아서 공실률이 낮아요. 빈집이 나와도 금방 계약이 된단 말이죠? 근데 반년 동안 공실이었던 호실이 딱 세 곳이에요. 아까 그 세 호실.”

“반년 동안 이유 없이 비어 있던 공실에 사건이 일어난 후 갑자기 계약자가 들어왔다?”

“네. 부동산 업자들이 연락해도 그대로 둘 거라고 했대요. 아무런 계약도 안 하고.”

“같은 집주인의 집 세 곳 중 한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면 나머지 두 집도 사건과 연관 있을 가능성이 크긴 하네요.”

“그리고 그 집주인은 명의만 빌려줬다고 했어요. 근데 갑자기 한 곳을 마음대로 계약해 버렸다? 사건 호실은 그렇다 치고, 903호는 놔두고 1003호만? 그것도 이상하죠.”

이래나, 저래나 요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지금 집주인도 찾고는 있으니까 조만간 잡힐 거예요.”

“도하씨는 뭐래요? 집주인 만났었다면서요.”

“전세 계약을 매매로 바꾸려고 했는데, 집주인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대요. 그거 말고는 특이한 점은 없었고요.”

“도하씨 돈 많나 보네요.”

‘난 언제 집 사보나.’

“저도 돈 많습니다.”

“네? 풉!”

“저도 돈만큼은 지지 않아요.”

“좋으시겠어요. 형사님이 돈도 많으시고.”

“부질없네요.”

“헐. 돌 맞을 소리!”

“푸하하. 그 표정은 또 뭡니까.”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랄까요. 참나, 배부른 소리 말고 밥이나 드세요.”

“배부르면 그만 먹어야죠.”

“허얼.”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며 도희의 한쪽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입은 웃고 계신데.”

“웃겨서 웃는 거 아니거든요.”

“넵.”

몇 번의 실없는 농담이 더 오간 뒤, 점심시간은 끝이 났다.

*     *     *

“와, 이게 뭐야.”

마우스 스크롤이 끝도 없이 내려갔다.

“이게 다 오늘 온 거라고?”

신문고 게시판 관련 문의 글은 메일로 받는다고 공지를 올린 것이 오늘 아침이었다.

“진짜 이게 맞아?”

어찌나 황당한지, 쉼 없이 혼잣말을 쏟아내는 도희였다.

눈을 똥그랗게 뜬 소하가 도희 자리로 다가왔다.

“팀장님 무슨 일이에요?”

“소하씨 이거 보여요? 이게 다 문의 글로 온 메일이에요…….”

문의 글인지, 항의 글인지 애매할 정도의 감정이 실린 제목들도 다수 보였다.

“히이… 이게 다요? 설마 이거 다 답변 보내야 하는 건 아니죠?”

가뜩이나 큰 소하의 눈이 더 커졌다.

“작성자 관련 사항을 묻는다거나, 글을 내려 달라거나, 게시판 목적에 어긋난 문의 글은 답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대충 제목만 내려 봐도 답변할 글이 많아 보이진 않네요.”

문제는 어쨌든 메일의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팀장님 이거 제가 해볼게요!”

소하와 도희의 눈이 맞닿았다.

주먹까지 쥐며 굳은 의지를 비치는 소하가 귀여운 도희였다.

“그래 볼래요? 애매한 건, 저한테 토스하세요.”

“네!”

도희는 소하 노트북에 자신의 사내 메일을 로그인해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팀장님 답변 가능한 목록과 해당 답변들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도하씨 고생했어요.”

“그리고 답변 불가한 목록들은 불가 사유 추가해서 올렸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해오는 도하였다.

‘정말 일 하나는 확실하네.’

“팀장님 조사 필요한 부서 리스트랑 명단 보내드렸는데 문의 메일에 묻힌 거 같습니다. 프린터 해드릴까요?”

‘벌써? 빠르네.’

“네. 진명씨 프린터 좀 부탁할게요.”

“저도 기획안 하나 보내드렸는데 묻힌 거 같습니다.”

다소 억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네. 오늘 안으로 확인할게요. 두산씨.”

적극적인 팀원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도희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넵.”

도희를 힐끔 쳐다본 두산은 다시 뭔가에 열중했다.

도희의 시선은 프린터 앞에 선 진명과 모니터에 코 박을 듯 집중 중인 두산을 오갔다.

‘둘 중 한 명이 부사장 사람이라는 건데.’

차라리 전 상무가 잘못 알았길 바라는 도희였다.

*     *     *

도희가 한참 업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강도희입니다.”

—강도희씨, 저 손모아예요.

“……!!”

도희는 그녀의 목소리와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도희가 절대 잊지 못할 목소리였다.

[저 어제 문지혁씨랑 같이 있었어요. 호텔에서요.]

몇 개월 전 들었던 그녀의 말들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새카맣게 잊은 줄만 알았다.

이 여자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 전까지는.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그때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도희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잠깐 만날래요? 주소 보낼게요.

여전히 막무가내인 여자였다.

“누구신지 여쭸는데요.”

‘뭐라고 할 건데? 그때 문지혁이랑 바람 난 여자요? 문지혁 현 여친이요?’

—궁금하면 만나요, 우리.

“만날 이유 없어요, 우리.”

—문지혁이 자꾸 그 쪽에게 연락하죠?

“그게 누군지 몰라도, 저는 연락받은 적 없어요. 끊겠습니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도희는 그녀의 번호를 바로 차단한 후 휴대 전화를 멀찍이 내려놨다.

‘쯔, 어쩐지 아침부터 재수가 없더라니.’

꿈이란 건 신기했다.

‘전 남친이 꿈에 나온 날, 바람 난 여친의 전화라니…….’

바람난 전 남친에 집 나간 엄마 꿈이라니, 도희에게 이보다 더한 더블 콤보는 없었다.

‘도사님이 안 계셔서 꿈자리가 사나웠나.’

도사를 만나고 별 미신을 다 믿게 된 도희였다.

500년 전 도사의 혼이 서책에 갇혀 있는 마당에 못 믿을 게 무엇인가.

또 그 도사의 술법들은 어떻고.

‘그나저나… 도사님 화 많이 났겠는데.’

이제야 도사의 대한 걱정이 밀려드는 도희였다.

*     *     *

“도희씨도 오셨네요?”

“도하씨에게 뭘 좀 받을 게 있어서요.”

“선배님 이분은 누구……?”

남자는 산만 한 덩치와 달리 얼굴은 아주 어려 보였다.

우주 옆에 선 그는 맑은 눈동자는 반짝이며 도희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는 강도희씨, 1003호 이도하씨 직장 상사.”

아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소개였다.

“아! 그때 실종됐다가 돌아오신 분이시죠? 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시네요!”

“반가워요. 형사님이신가 봐요?”

“옙. 저는…….”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타시죠.”

우주는 도희를 먼저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우주를 힐끔 쳐다본 막내는 눈이 초승달로 변하더니 엘리베이터에 따라 올랐다.

“집에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가서 보시죠.”

우주의 질문에 냉랭하게 답하는 도하였다.

서책 핑계를 대며 따라온 도희도 이런 분위길 예상했는지, 별 말없이 층수 표시판만 바라볼 뿐이다.

띵—

“그럼 잠깐 협조 부탁드립니다.”

“예. 천천히 보셔도 됩니다.”

곧이어 현관 도어락이 열리고 다 함께 도하의 집으로 들어섰다.

‘도사니이이이임!’

—왔구나! 내 안 그래도 너를 기다렸음이야!

화부터 낼 줄 알았는데 화는커녕 도희를 반기는 도사였다.

‘정말 죄송해요. 이 못난 소녀가 어제 정신을 못 차리고…….’

—되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닐세.

또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중요한 게 아니라뇨?’

마치 다른 중요한 게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 집 아래에서 요물의 기운이 느껴짐이야!

“헐.”

“왜 그래요, 도희씨? 뭐 이상한 점 있어요?”

도희의 외마디 탄식을 들은 우주가 도희 곁으로 다가왔다.

“아, 아니에요. 집이 너무 넓어서. 도하씨 여기 혼자 살아요?”

대충 말을 돌리려 아무 말이나 내뱉느라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도희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과 블랙, 그레이 계열의 인테리어는 넓은 집을 더 넓어 보이게 만들었다.

“네. 집이 큰데 쉐어라도 해드릴까요?”

“헐. 도하씨 그런 농담도 할 줄 알아요?”

—농주고 받을 때가 아니래도!

‘잠깐만요! 말 거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럼요. 도희씨가 원한다면야.”

뚜벅뚜벅 우주를 지나친 도하는 주방으로 향했다.

“천천히 보세요. 음료수 준비해 드릴게요.”

“전 괜찮습니다.”

우주가 말했다.

그의 발과 눈은 천천히 도하의 집안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전 물이면 됩니다. 그리고 방도 좀 봐도 될까요?”

“예. 편하게 보세요.”

막내는 방을 둘러본다며 큰 방으로 들어갔다.

‘요물 말고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저번에 들으셨죠? 그 사건 현장이 여기 옆 호실이래요. 그리고 집주인이…….’

도희는 도사에게 상황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 헌앙한 청년은 작금의 사태와 관계없음이 분명하네.

‘헌앙한 청년?’

—내 저리 반듯한 심성을 가진 이는 처음일세.

‘그 정도…….’

“지 순경!”

다급한 우주의 외침이었다.

거실을 서성이며 도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희도 서둘러 베란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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