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58)화 (58/120)

057화 거절이야 하겠어?

도희를 바라보는 우주의 눈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눈이 마주친 둘이 당황하는 사이, 현관 등이 꺼졌다.

곧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실 등이 켜진다.

거실로 들어온 우주였다.

“도희씨가 왜 여기에…….”

“아… 그게 제가…….”

‘와, 뭐라고 하지? 빨리 생각해 내! 뭐라도 대충 말하자, 뭐라고 하지? 하! 미치겠네… 어? 근데…….’

“우주씨는 여기서 뭐 하세요? 영장은 내일 나온다고…….”

“아, 제가 성격이 급해서…….”

둘 다 제 발 저린 건 마찬가지였다.

“아… 저는 그게 원래 우주씨한테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사실 범죄 현장 추리하는 걸 좋아해서…….”

“네?”

‘그냥 대충 넘어가 줘. 말 안 되는 거 나도 알아.’

도희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가 호기심이 왕성해서… 현장을 너무 보고 싶은데 우주씨에게 부탁하면, 곤란하실까 봐…….”

억지로 울먹이는 목소리를 쥐어 짜낸 도희였다.

‘이 정도면 그냥 미친 여자라 생각하고 넘어가 주지 않나? 이상한 거에 집착하는 사람들 많잖아! 나도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해 줘!’

우주의 미간에 접힌 주름을 보니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 씨, 이걸로 안 돼?’

“사실 제 꿈이 프로파일러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만…….”

‘이 정도면 그럴싸하지 않나?’

“도희씨… 일단…….”

띵동—

주인 없는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이 집의 초인종이었다.

“도희씨, 일단 방에 들어가세요!”

“네? 네…….”

우주에게 등 떠밀린 도희는 강제로 방에 넣어졌다.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인데.’

도희는 귀를 방문에 바짝 가져다 댔다.

“선배, 이러다가 걸리시면 어쩌려고요!”

아까 본 덩치 큰 막내 형사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지금 나가려고, 여긴 내일 오자.”

“예? 뭘 또 힘들게 마스터키 구해서 문까지 열어 놓고, 그냥 지금 먼저 봐요.”

막내 형사가 밀고 들어오는 듯했다.

“어차피 낼 영장 나오잖냐. 내일 봐. 내일 보면 되지. 이거 불법이다, 너.”

“아니, 참나! 아까 그렇게 말릴 땐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더니, 기어코 집안까지 들어와 놓고 안 보고 간다고요?”

“어!”

“갑자기 왜요?”

“형사가 법을 어기면 되겠냐.”

“아까는 법 다 지키면 범인 언제 잡냐면서요. 편법도 법이라고. 어차피 영장 나올 거 몇 시간 일찍 보면 어떻냐면서요.”

“아깐 내가 미쳐서 그래. 아무렴 우리가 형산데 법을 어기면 안 되지. 우리 막내가 잘했네. 워우, 배고파. 배 안 고파?”

“저녁 드신 지 얼마나 됐다고…….”

“배고프지? 야식시킬까?”

“뭐 시키실 건데요?”

문 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갔을까요?’

—갔네.

“와, 진짜 심장 떨어질 뻔.”

문에 등을 기댄 도희는 털썩 주저앉았다.

—어서 물건만 챙겨서 나가세. 느낌이 좋지 않으이.

“아휴, 이 짓도 오래는 못하겠어요.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 심장이.”

억지로 몸을 일으킨 도희는 휴대 전화 불빛에 의지해 거실로 향했다.

“도사님 어디예요?”

—아까 그 중앙에 걸려 있는 걸세.

텅 빈 거실엔 가구라 불릴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 걸려 있어요?”

도희는 휴대전화를 들어 거실 양쪽 벽면을 차례로 비췄다.

“저기 있네.”

하얀 대리석 바닥과 대리석 벽.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홀로 오롯이 걸려 있는 물건 하나.

“근데 저게 대체 뭐예요?”

*     *     *

—아마 무척이나 힘들었을 게야.

“이게 악을 부른다고요?”

물건만 챙긴 도희는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네. 악을 부르는 향낭이지.

도희는 손에 들린 향낭을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멀찍이 내려놓았다.

“아니, 그러면 이거 우리 집에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어쩔 셈이냐? 내다 버리기라도 한단 말이냐.

“요물 다 없애신다면서요. 이거부터 없애요.”

—이 귀한 걸 왜, 하여튼 지금은 안 된다.

“뭔 소리야. 악을 부른다면서요. 악을! 게다가 살인범 집에서 가져온 물건이라 찝찝해 죽겠는데 저걸 우리 집에 둔다고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약조하지 않았느냐.

“뭐를요.”

—나를 도와 악을 쫓겠다고 약조하지 않았느냐? 이보다 더 쉬운 길이 있을까.

“아니, 그렇긴 한데. 쫓는 거랑 부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잖아요!”

—한 해가 안 걸릴 수도 있네.

“하… 차라리 일 년 걸리는 게 나아요. 전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그 나쁜 도사라도 덜컥 나타나면…….”

—내가 다 알아서 함세. 약조하네.

“와, 미치겠네.”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운 도희였다.

‘암만 그래도 악을 부르는 향낭은 아니지. 에이! 돈 많은 살인범 같길래 금 낳는 보석함이나 있을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어차피 버릴 수도 없는 물건일세.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 번만 눈 감아 주게나.

“하… 그럼 대신 제 소원도 무조건 하나 들어 주세요.”

—자네 소원은 이미 들어주기로…….

“그건 그거고, 다른 소원으로 하나 더요.”

—그렇게 하겠네. 무얼 원하…….

“지금 말고요. 나중에 말씀드릴 거예요. 엄청 힘들고 어려운 걸로.”

이미 도희 머릿속은 무슨 소원을 빌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둥둥 떠다녔다.

—자네 마음대로 하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 자네인데, 산 사람 소원이라고 내 못 들어 줄꼬.

“이제 더 바빠질 거 같은데 우리 합도 좀 맞춰 봐야 하지 않아요?”

나쁜 놈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플랜을 짜고 싶은 도희였다.

—뭣하러 기운을 빼는 게냐. 자넨 손만 대면 될 것을.

“저도 도사님 술법 공부할 거예요. 시기적절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도록.”

—술법에 관한 걸 책에 적어 두겠네. 필요할 때 보게나.

“어! 좋아요! 근데요, 도사님 그 살인범이 저 향낭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겠죠?”

문뜩 떠오른 의문이었다.

살인자 집에 걸려 있는 악을 부르는 향낭이라니.

너무도 꺼림칙하기에.

—힘들었을 걸세. 갖은 악이 다 몰려들었을 터이니.

“…네? 그 말씀은 저도 곧…….”

—자네는 내가 있지 않나. 뭐가 무서운 게냐.

“근데 저 요물도 도사님이 만드신 거예요? 저런 걸 왜 만드셨대.”

향낭을 쳐다보는 도희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미련한 짓이었지. 후에 자네도 알게 될 걸세.

‘맨날 나중에, 나중에. 제대로 말해 주는 게 없어.’

‘—허허, 미련한 것. 모르는 게 약인 줄도 모르고.’

*     *     *

—이보게, 어서 일어나게! 어서!

‘으… 응? 뭐야…….’

—일어나 보게나! 어서!

‘왜요… 도사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세! 당장 일어나야 하네!

도사의 목소리에 억지로 일어난 도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뭔 일 났어요? 벌써 나쁜 놈이라도 왔어요?”

잠을 깨려 억지로 기지개를 켜는 도희였다.

피곤이 쌓였는지 하품이 쉼 없이 밀려왔다.

—내 기억이 났네! 향낭 말일세, 도둑맞았던 물건 중 하나였네!

“…도둑맞아요? 그걸 누가 훔쳐 가요.”

잠이 덜 깬 도희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정신 차리게 이 사람아!

도희의 잠은 쉬이 달아나질 않았다.

연신 하품을 해대는 도희를 보니 속이 터지는 도사였다.

이내 도희는 자신의 양 뺨을 살짝 두드렸다.

“아우, 잠 와. 알았어요. 잠 깰게요.”

다시 두 뺨을 내려친 도희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근데 도사님 뭐라고요? 향낭을 도둑맞아요?”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투명 목걸이를 도둑맞았다고! 함께 도둑맞았던 물건이네!

평소와 달리 다소 격양된 목소리였다.

“헐… 근데 그게 몇 백 년 전 일인데 지금 그 범인이 설마 목걸이도 가지고 있을까요?”

—같이 전해져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이.

“…투명 목걸이를 가진 살인범이라니.”

잠이 확 달아난 도희는 양손으로 머릴 쓸어 올리며 정신을 다잡았다.

“듣던 중 가장 끔찍한 말이네요.”

*     *     *

“다시 그 아래층 집에 가서 뭐 더 있나 찾아봐야 할까요?”

심각한 상황이라 연차까지 쓴 도희였다.

—어제 그 집엔 더 이상 다른 물건은 없었네. 어쨌든 이놈이 그곳에 향낭을 놔둔 이상 이 근처를 다시 찾지 않겠는가.

그 큰 집에 달랑 향낭만 놔둔 걸 보면 살인범도 이 물건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는 듯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잠복 수사네요. 저기 커피숍 있는데, 저 정도 거리면 기운 느끼실 수 있죠?”

—글쎄. 크흠, 요즘 기운이 너무 허하여…….

“뭐, 일단 형사들도 범인이 이 동네 살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니까 동네 한 바퀴나 돌죠.”

—그러게나. 뭔가 느껴지면 말해 주겠네.

지이이잉—

막 발길을 옮기려는 도희의 시선을 뺏은 건 전 상무의 전화였다.

“네, 강도희입니다.”

전화를 받는 도희의 얼굴엔 불편함이 묻어났다.

“하…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저한테 일주일만 주세요. …네. 곧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도희의 고개는 뒤로 꺾였다.

바쁘게 사느라 오랜만에 본 하늘이었다.

‘전 상무도 참 착하네. 그냥 박현일이랑 거래하면 될 걸. 내 의견까지 들어주느라 골치 썩는 걸 보면…….’

사장이나 전 상무나 박현일을 무죄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쉽게 부사장을 옭아맬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두고 도희의 의견을 따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네를 적으로 돌리기 싫은 게지.

‘일단 일 마무리되는 대로 박현일부터 만나봐야겠어요. 그놈의 증거부터 뺏어야지.’

부사장의 목줄이 될 증거가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도 안 가는 도희였다.

*     *     *

감식팀과 함께 903호에 들어선 우주의 시선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거실의 왼쪽 벽이었다.

‘어제 분명히…….’

저곳에 걸려 있던 무언가를 기억해 낸 우주였다.

지금 그곳엔 벽에 박힌 못만이 우주의 기억이 맞았단 걸 증명하고 있었다.

‘저걸 왜 가져갔을까.’

못을 한참 쳐다보던 우주는 이상함을 느꼈다.

‘어? 저게 뭐야?’

장갑을 낀 우주의 손이 못에 닿았다.

그것은 못 모양의 소형 카메라였다.

*     *     *

해가 저물어 어스름이 내린 저녁.

종일 동네를 뱅뱅 돌며 걸어 다닌 도희는 이제 골반이 빠질 지경이었다.

“와, 이 짓도 하루 이상 못하겠는데요. 오늘 일주일 치 운동 다 한 거 같은데.”

—별다른 방도가 없지 않으냐. 필시 이 근처에 있을 터인데…….

내일도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니, 앞이 캄캄해진 도희였다.

“…하나 있어요. 힘 안 들이고 이곳을 감시할 수 있는 곳.”

도희가 휴대 전활 꺼내 들었다.

약간의 망설임이 묻은 손짓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 도희였다.

‘에잇, 몰라. 거절이야 하겠어?’

“여보세요, 도하씨. 저 강도희입니다.”

침을 꼴깍 삼킨 도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오늘 하루만 재워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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