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59)화 (59/120)

058화 죽고 싶지 않고서야.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긴 도희는 어느 집 문 앞에 서 있다.

‘하, 눈 딱 감고 범인 잡는 것만 생각하자.’

스스로 가슴을 토닥이며 되뇌는 도희였다.

‘난 살인범 잡으러 온 거야. 강도희, 넌 일하러 온 거다?’

그녀의 속도 모르고 쿵쾅대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크흠!”

도희는 괜히 목도 한 번 가다듬은 후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드르륵—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인터폰에서 들어오라는 감미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

짧고 굵은 심호흡과 함께 도하의 집으로 들어섰다.

“저녁은 드셨어요?”

도하의 첫마디였다.

“아… 니요? 말씀드렸다시피 집에 전기가 나가서…….”

“같이 먹어요.”

편안한 사복 차림의 도하가 낯선 도희는 물끄러미 도하를 바라봤다.

“……?”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린 도하를 본 도희가 입을 열었다.

“사복도 잘 어울리시네요.”

늘 단정한 수트 차림의 도하였다.

항상 와이셔츠 차림만 봤기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도하는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그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예쁘네.’

옷이 예쁜 건지, 모델이 좋은 건지.

순간 구매 욕구가 든 도희의 머릿속엔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옆엔 지금의 도하가 그려진다.

‘헐.’

머리를 도리도리 털어 낸 그녀의 입가엔 삐죽한 미소가 걸렸다.

‘허, 별 상상을…….’

둘은 제법, 아니 꽤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하… 오늘 밤은 길겠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그녀의 예상은 가차 없이 빗나갔다.

*     *     *

어김없이 해는 떠오르고 날이 밝았다.

오늘따라 눈이 번쩍 뜨인 도희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

‘뭐가 이렇게 개운하지.’

—일어났느냐?

‘네. 너무 정신없이 잤네요.’

“으……!”

기지개를 켠 도희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아으… 잠깐 쉰다는 게 잠들어 버렸네.’

머릴 긁적이며 잠들기 전 기억을 떠올려 보는 도희였다.

거실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침대인 걸 보니 도하가 옮긴 모양이다.

도하에게 안긴 자신을 떠올린 도희는 순간 얼굴에 화끈한 열이 올랐다.

‘그냥 두지…….’

곧 그녀의 얼굴은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요즘 살찐 거 같은데…….’

—그러게. 젊은 처자가 외간 남자 집에서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들다니. 쯔즛, 사내가 따로 없음이야.

‘흥. 도하씨니까 잤죠. 이도하니까!’

절대 허튼짓은 하지 않을 거란 신뢰였다.

도희에게 도하만큼 믿음 가는 남자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잠시 우주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를 지워 내는 도희였다.

‘그 형사님은 좀 위험하지.’

—난 그자도 마음에 드네.

‘허. 아빤 줄.’

—쯔쯧, 이 고운 얼굴 속에 고얀 마음이 있다는 걸 누가 알꼬. 내 속이 다 상허이.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서책을 흘겨본 도희는 재차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으!”

‘어젯밤엔 별일 없었어요?’

—고요하였네. 그 어느 밤보다 더.

‘다행이네요.’

일어선 도희의 눈엔 도하의 침실 풍경이 들어왔다.

‘여기가 침실인 거 같은데.’

작은 방치고는 무척 넓었다.

전날에 거실과 베란다만 오가느라 방 구경은 못한 도희였다.

회색 벽지에 검은색 가구들로 채워진 침실은 도희 집 거실만큼 넓고 심플했다.

‘센스 있네.’

화이트, 우드톤의 도희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오히려 본인 집 인테리어보다 마음에 든 그녀였다.

‘생긴 대로 집도 깔끔하네.’

방문 앞에 다다른 도희는 왠지 문 열기가 꺼려졌다.

한 집에 외간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묘한 기분이 드는 그녀였다.

‘도하씨는 아직 자나.’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더니 잠잠한 고요함이 몰려왔다.

넓은 거실에선 간간이 작은 기계음만 울릴 뿐 아주 조용했다.

—이미 외출하였네.

어쩐지, 둥둥 떠다니는 도사가 의아하던 도희였다.

“네? 시간이…….”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원래라면 도희도 회사에 있을 시간이다.

“놀고먹는 게 좋긴 좋네요. 잠자리가 좋은가 했더니, 오래 잔 거였어.”

—그 이유뿐이겠느냐.

“네?”

—되었다. 조식이나 들거라. 오늘 바쁠 터이니.

“배 안 고파요. 오늘 숙제부터 하죠.”

—차린 사람 성의는 생각해서 한 숟갈 들거라.

“뭘 차려요?”

도희의 시선이 주방을 향한다.

—이런 것이 무어가 예쁘다고.

주방에 들어선 도희의 눈에 투명 덮개 밑 식탁 빼곡히 차려진 음식들이 보인다.

“…이게 다 뭐예요?”

덮개 손잡이엔 하늘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연차라고 하셔서 안 깨웠습니다. 식사하시고 쉬세요.]

“…이걸 혼자 다 어떻게 먹으라고.”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그녀의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갔다.

—어젯밤 무언가 양손 가득 들고 들어오더니, 종일 이곳에 있더구나. 쯔… 아깝구나, 아까워. 50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딱 내 제자…….

도사의 말을 듣던 도희는 고갤 내저으며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어 보였다.

“전 반대예요. 누굴 고생시키려고.”

도사는 각진 눈썹 아래 검은 눈을 번쩍이며 부라렸다.

*     *     *

“자, 그럼 쌓인 숙제 좀 해볼까요?”

도희는 어제 산책하며 구매했던 역사 서적과 한국 지도를 꺼냈다.

도사의 은신처에 관한 이야기부터 할 요량이었다.

“일단 여기.”

도희의 손가락이 한반도 지도의 북쪽을 짚었다.

“평안도와 자강도 사이 있는 묘향산은 당장은 가기 힘들다 하셨고, 면왕산은 이번에 갔다 왔지, 그럼 남은 건…….”

—동천(洞天)이라 함은 신선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갑자기 서당 선생님으로 빙의한 도사의 지리 강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가 봐야 할 곳이 한국엔 두 곳, 북한에 한 곳이란 말씀이시죠?”

—그렇네. 허나 백운산터는 확실치 않으이.

“뭐, 도사님 친구네라고 하셨으니까 기대는 안 해도 확인은 해봐야죠.”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럼 이제…….”

역사책부터 읽을지, 도술 공부를 할지 고민하는 도희였다.

“도술 공부부터 하죠.”

도희는 휴대 전화를 들어 [술법]을 입력했다.

—크흠,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느냐?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음이야.

또다시 서당 선생님으로 빙의한 도사였다.

“언(言)에는 힘이 있고, 도사님은 그 힘을 자(字)에 실어 술법을 사용한다. 기억해요. 도사님은 기운을 받아들일 그릇이 없어 제 손을 통해 전해 오는 기운을 사용한다는 것까지도요.”

—술법의 첫걸음은 주문일세. 본래 입으로 외는 주문을 뜻하나, 나는 자(字)로 대신하는 걸세. 그러다 보니 입으로 외는 주문보다 효력이 덜한 것도 사실이지.

“주문이라…….”

—허나 당장 자네가 주문을 왼다 한들 술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니, 자네가 나를 도우며 접할 술법들 몇 가지만 내 설명해 주지.

고개를 끄덕인 도희는 인터넷에 적힌 도술의 내용을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바람술, 자유자재로 바람을 만들어 내며, 태풍도 만들어 낸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다… 도사님, 날아다닐 수도 있어요?”

도사가 만들어 낸 거센 돌풍은 이미 만난 적 있는 도희였다.

—기운만 넉넉하다면야 가능허이.

“차력…….”

—섭화차(攝化借)란 주문을 외면 인간과 사물이 하나가 되네. 사물의 깃든 기운을 빌려 인체로 그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도사가 답을 대신했다.

“그다음, 축지법! 이건 저도 알아요. 땅을 접어 걷는 방법.”

—가락지에 걸린 술법일세.

“아, 순간이동이 땅 접어 걷는 거였어요?”

—기운이 강할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모습이 보이지 않네. 상당한 기운이 필요한 술법이지.

‘맨날 그놈의 기운.’

“둔갑술.”

—일명 변신술이라고도 하지. 다른 이의 모습이나 동물, 사물로도 변신이 가능허이.

“분신술.”

—약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분신들은 그저 단순히 모습만 흉내 낼 뿐, 기운만 충만하다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격을 만들 수 있음이야.

입을 쩍 벌린 채 생각이 많아진 도희를 도사가 일깨웠다.

—다음.

“…환술.”

—환각으로 허깨비를 보게 하지. 그보다 상위로 정신법이라 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네.

“치유술.”

—상당한 내력이 필요한 술법일세. 자넨 감당 못할 게야. 되레 자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네.

“흡수?”

—차력이 사물의 기운을 빌리는 것이라 하면, 흡수는 인간이나 생명의 기운을 뺏는 것일세.

“무서운 술법이네요. 그다음 염동력.”

—염력이라고도 하지. 자네가 가진 기운에 따라 형체를 가진 모든 것들을 움직일 수 있네. 바람, 물, 불과 같은 것들도 말일세.

“지물(知物)술?”

—물건의 기억을 읽는 걸세. 자네 기운으론 시도도 못 허이.

“방중술? 이건 뭐예요?”

—허허허, 그건 네가 알아 보거라.

“수행법의 하나로 남녀의 기를 섞어서 체내의 음양의 기의 조화를 도모…….”

검색 결과를 읽어 내려가던 말똥하던 도희의 눈은 곧 가자미눈이 되어 서책을 향했다.

“이게 진짜라고요?”

—믿기지 않으면 행해 보든가.

“행하기 뭘 행해요!”

—쯔즛, 고얀 생각만 가져서는. 연모하는 남녀가 정을 나누는 것을 무얼 그리…….

“그만! 제 연애는 제가 알아서 해요. 알아서.”

—장수하고 싶으면 아낌없이 연모하거라. 허나 그저 욕정을 풀기 위한 교합은 되레 몸을 상하게…….

“그만!”

거칠게 쏘아지는 도희의 눈빛에 입을 다문 도사였다.

—쯔즛, 고얀 놈. 성질하고는.

“그다음, 퇴마… 으, 퇴마술은 제가 싫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

—허허, 나도 귀(鬼)가 아니냐며 알려 달랄 때는 언제고.

“크흠! 다음 인형술.”

—저주에 관한 술법은 행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요? 인터넷만 보고 공부해도 다 도사 되겠네. 도사님이 말씀하신 술법 책 필요 없겠는데요?”

—그리 쉬우면 천지사방 다 도사가 아닌 이유가 무어냐?

“음… 그렇네요.”

—정식 입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주문을 외도 효험이 없네. 술법이 응하질 않는단 말일세. 자네 말대로 지금은 흔해진 주문이라고 한들, 거저 얻은 주문들은 아무리 외도 소용이 없네.

“입문이 어려워요?”

—허허, 해볼 테냐?

“뭐, 굳이 제가 할 필요는 없지만…….”

—우선 술법의 기운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네. 주문을 왼 순간,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걸 자네가 감당해야 함이야.

“혹시 부적 같은 것도 진짜 있어요?”

—내 말을 허투루 들은 게냐.

‘아, 글에도 힘을 담을 수 있다고 했지.’

“그럼 뭐, 제가 굳이 도술까지 배울 필요는 없겠네요.”

이때는 몰랐다.

그녀가 이 말을 번복하게 될 것이라곤.

*     *     *

도심 속 고급 호텔의 최상층, 멀찍이 떨어진 고층 오피스텔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

도희가 머무는 오션 오피스텔이었다.

“죽고 싶지 않고서야…….”

전날 녹화된 영상에서 자신의 향낭을 가져가는 여성의 얼굴을 떠올린 남자는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감히 내 향낭을…….”

그의 눈이 손에 들린 서류로 향한다.

“…강도희.”

이미 도희의 인적 사항을 알아낸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도희의 집 주소에 한참을 머물렀다.

*     *     *

한가로이 누워 역사 서적을 읽던 도희의 귀에 도사의 전음이 들려온다.

—왔네, 왔어! 그놈이 온 것 같으이!

‘어디예요?!’

—바로 아래!

‘가요.’

급히 방문을 열고 나서는 도희의 눈앞에 도하가 나타났다.

“…도하씨, 아직 안 잤어요?”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도희였지만, 어딘가 어색한 미소였다.

“같이 갑시다.”

“어, 어딜요?”

“그놈 잡으러요.”

“네?”

도하는 자신의 귀를 톡톡 치며 말했다.

“저도 들립니다. 그 도사라는 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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