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60)화 (60/120)

059화 그날부터 들렸습니다.

도하 입에서 나온 ‘도사’라는 한마디는 도희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무, 무슨…….”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던 도희의 등이 방문에 닿았다.

도하는 그런 도희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그날부터 들렸습니다. 도희씨 취한 날부터.”

도하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마주 볼 수 없는 도희는 고갤 돌렸다.

“어… 그게…….”

도하의 부드러운 손길이 도희의 어깨에 닿았다.

도희는 도하의 눈을 마주 봤다.

더 이상 피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는 눈빛이었다.

“도희씨 혼자는 못 보냅니다.”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듯, 도희의 어깨를 잡은 도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 알았어요. 일단 상황부터 정리할까요?”

*     *     *

모두가 잠든 어둑한 새벽.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의 불이 켜진다.

몇 초 뒤, 다음 층의 천장 등이 켜지자, 아래층 천장 등은 조용히 꺼졌다.

비상계단의 7층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불이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했다.

타타타다닥!

8층에 다다라, 누군가 소란스레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비상계단을 가득 메웠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음~ 음~ 으으~ 음.”

콧노래를 부르며 홀로 계단을 오르는 남자.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얼굴,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남자의 모습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그의 발이 9층 비상계단 문 앞에 다다랐다.

남자의 손은 그의 가슴으로 향한다.

그 손끝엔 무언가 딱딱한 물건이 닿았다.

남자는 가죽 끈 목걸이를 매고 있었는데, 그 끝에 달린 백(白)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나뭇조각이었다.

‘뭘까… 그 여자는.’

향낭만 가져간 것을 보면 여자도 무언가 아는 게 분명했다.

문으로 들어온 남자와 달리, 여자는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의문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왔다면 불이 켜졌을 텐데.’

그도 모습만 숨기는 것일 뿐, 자동문이나 센서 등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흐으음…….’

곱씹을수록 위험한 상황이다.

순간, 불안함이 섞인 공포가 발끝부터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서늘함을 느낀 남자는 여전히 목에 걸린 작은 나무 조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에게 이런 위협은 처음이었다.

‘…재밌네.’

고개를 좌우로 꺾는 남자의 얼굴이 기괴하게 구겨졌다.

“푸… 풉, 크킄크크큭.”

그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가더니, 갑자기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린 남자였다.

큰 소릴 내지 않으려 ‘끄극’ 대며 참다 결국 흘러나온 기괴한 웃음소리는 복도 가득 울려 퍼졌다.

“후…….”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남자의 손은 과감하게 문고리로 향했다.

끼이이익.

아직 그의 손이 문고리에 닿지 않았는데 비상문이 열린다.

‘뭐…….’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문이 열리며 자신에게 내려쳐지는 검은 물체였다.

*     *     *

“여기? 여기? 어디예요! 아, 몰라!”

도희는 눈앞에 빈 공간을 향해 서책을 든 팔을 이리저리 마구 휘둘렀다.

—되었네, 되었어! 그만!

“됐어요? 그 자식이 맞았어요?”

—아무런 생각이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의식을 잃었을 걸세.

비상문을 열자마자 서책을 위아래로 마구 내려친 도희였다.

“어디? 와… 어떡하죠? 안 보여서 큰일이네.”

긴장한 도희는 남자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직 여기 어디 있는 거 아니야? 닿은 거 맞아요?”

—요물의 기운이 바로 앞…….

비상문 안쪽으로 한 발 내딛던 도희 발에 물컹한 무언가가 밟혔다.

“꺄악! 읍!”

도희의 등 뒤에서 나타난 손바닥이 그녀의 입에 닿았다.

도희의 비명을 막느라 얼떨결에 뒤에서 그녀를 안아 버린 도하였다.

쿵, 쿵, 쿵.

도희의 귓가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도희는 손을 조심스레 가슴 위에 올렸다.

그녀의 심장 소리였다.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뒤이어 귓가에 닿은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인 도하였다.

—목에 걸린 물건부터 빼거라.

어차피 도희가 남자의 몸을 더듬기도 무리였다.

“바로 문 앞에 있는 거 같아요.”

문을 막고 서 있던 도희가 비켜서자, 도하는 바닥을 더듬기 시작했다.

*     *     *

목걸이를 벗겨 내자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체격이나 키는 비슷한 거 같긴 한데…….”

CCTV 영상 속 남자는 마스크에 가려 눈만 살짝 보였는데, 지금 누워 있는 남자의 눈이 감겨 있어 비교가 어려웠다.

“이 자식 맞는 거 같은데요?”

—확실허이. 방금까지도 짙은 살의를 내뿜던 자일세.

짙은 살의라는 말에 도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 잡긴 했는데 잡아도 애매하네요.”

비상계단엔 CCTV가 없었지만, 복도엔 널린 CCTV 때문에 무작정 살인범을 옮기기도 애매했다.

“이 사람이 살인범이고,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어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다면 무슨 수로 살인범인 걸 증명하죠?”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는 물건을 직접 본 도하는 믿는다 쳐도 경찰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요물을 대놓고 보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절대 안 될 말일세.

“알아요. 보여 줘도 속임수 아니냐고 안 믿을 사람들 수두룩할걸요.”

머릴 쓸어 올린 도희는 뒷머릴 긁적였다.

“하, 이놈이 카메라 부순 놈이 맞다 해도 살인범이란 증거가 없네요.”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는 상황.

“흐음…….”

비상계단의 센서 등만 켰다, 꺼졌다를 반복할 뿐, 이곳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누워 있는 살인범을 내려다보며 팔짱 낀 도희와 벽에 기댄 채 생각에 잠긴 도하.

먼저 입을 연 것은 도희였다.

“아! 이러면 어떨까요?”

*     *     *

작전은 간단(?)했다.

먼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목걸이를 채운 놈을 도하가 등에 업고 도하 집 현관 안으로 옮긴다!

마치 뒷짐 지고 걷듯 사뿐한 모습이었다.

그다음, 바로 목걸이를 찬 도하가 지하로 내려가 건물의 전기를 내린다!

건물의 전기가 나간 걸 확인한 도희는 놈을 사건 호실인 1004호 문 앞에 눕히고, 놈의 몸에 종이 한 장을 붙인다.

그리고 둘은 집으로 복귀한다!

이 모든 게 10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실수한 거 없겠죠?”

“CCTV에 찍힌 게 없으니 별문제 없을 겁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아으, 역시 난 도둑질은 못 할 체질이에요.”

—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도희의 사나운 눈빛은 둥둥 떠 있는 서책을 향했다.

—크흠.

곧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불이 들어오고 CCTV가 작동되면서 누워 있는 놈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문에 귀를 댄 도하가 말했다.

“경비원 분들이 먼저 올라오셨나 봅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소리가 들리네요.”

“종이에 대문짝만 하게 그런 글을 써놨는데 수상하게 생각하겠죠.”

본인은 이중인격의 살인범이니 제발 자길 멈춰 달라는 글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깨어나면 또 헛소리를 할 수도 있으니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덧붙였다.

“경찰들도 건물 전기가 나간 날 범인이 행동한 것이 아닐까 예상하는 상황이니, 오늘 또 전기가 나가고 범인이 나타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도희씨는 꽤 자세하게 아시네요. 사건 상황을.”

“형사님한테 들었어요.”

“우주… 형사님이라고 했나요.”

“네.”

“사이가 가까우신가봅니다. 수사 상황까지 공유하시고.”

“아… 그게 아니라, 사실 보다시피 제가 상황이 이래서 사건 해결에 도움드렸던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종종 이런 거, 저런 거 물으…….”

‘나 지금 변명하고 있는 거야? 내가 왜?’

“…뭐, 형사님이랑 나름 친해요. 도하씨만큼.”

“다행이네요.”

“뭐가요?”

도하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입가엔 처음 보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다.

“허…….”

그런 도하를 보며 도희도 작게 웃어 보였다.

띵동—

“왔나 보네요.”

“쉿! 잠깐 뜸 들였다 열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말하는 도희였다.

“네헤.”

도희를 따라 아주 작은 목소릴 내는 도하였다.

“뭐야. 풉”

도희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만요.”

도하가 문을 열려고 하자, 표정 관리에 실패한 도희는 웃음기를 없애기 위해 손바닥으로 얼굴을 아래위로 쓸었다.

이번엔 그런 도희가 귀여워 표정 관리에 실패한 도하였다.

“뭐야. 이번엔 왜 도하씨가 터졌어요.”

“후… 자중하겠습니다.”

이미 웃음보가 터져 버린 둘은 눈만 봐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풉. 뭐가 웃기다고 자꾸 웃어요! 도하씨가 웃으니까 나도 자꾸 웃음 나잖아요!”

작은 목소리로 타박하는 도희였다.

띵동—

“후… 이제 정말 안 웃습니다.”

표정을 싹 바꾼 도하는 도희에게 준비됐냐는 눈짓을 보냈다.

도희가 고갤 끄덕이며 현관에서 보이지 않게 숨자, 도하가 문을 열며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     *     *

우주는 이상한 소리나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냐고 물었고, 도하는 자다가 지금 깼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알겠다는 말을 끝으로 문은 닫혔다.

소란스럽던 복도도 곧 조용해졌다.

“대충 정리는 된 거 같네요.”

“그렇네요.”

‘도사님 이제 어떡하죠? 진짜 다 말해요? 아니, 도하씨는 어떻게 도사님 목소릴 들은 거예요?’

아무리 도하와 서책이 닿았다고 한들, 도희와 강아가 함께 있어도 각자에게 말할 수 있던 도사였다.

—저 청년이 너무 정갈한 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듯 허이.

‘예?’

—간혹 저리 타고난 자들이 있지. 이 청년에겐 내가 설명하겠네.

‘나한텐 자네, 너 하면서 웬 청년이래.’

—쯔쯧, 처자가 말버릇하고는.

그 순간 도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도사의 말은 전부 듣는다는 걸 새까맣게 잊은 도희였다.

“…혹시 지금도?”

도하가 고갤 끄덕인다.

“도사님 말만?”

도하는 재차 고갤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도희씨에게 말버릇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네요.”

“…하하.”

정말 오랜만에 부끄러워 숨고 싶은 도희였다.

그 시각, 도하 집 문 앞에는 아직도 서 있는 우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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