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화 그런 소릴 누가 믿을까요.
띠링─
도희 메신저에 메시지 하나가 띄어졌다.
도희는 도하가 보낸 링크를 클릭했다.
[오피스텔 살인사건 범인 검거, 사건 해결은 누가?]
“기사가 벌써 떴네.”
스크롤을 내리는 도희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진다.
“…이, 이게 뭐야.”
도하에게 휴게실로 오라는 문자를 보낸 도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혹시 경찰이 범인 잡은 사람 찾겠다고 조사하진 않겠죠?”
경찰이 찾는다고 한들 이들에게 적용될 죄명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정의의 사도가 나타났니 뭐니, 언론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언론은 범인을 잡은 누군가에게 온갖 진부한 수식어를 붙여 정의를 덧씌우고, 경찰에겐 무능의 프레임을 씌우느라 혈안이었다.
“조사한다고 한들 나오는 게 없을 겁니다.”
모든 일은 전기가 나간 상황에서 일어났기에 녹화된 CCTV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까지 아프다고 연차 쓸 걸 그랬나.”
아침에 연차를 취소하고 출근한 도희였다.
그녀는 사건이 해결되자마자 출근한 게 괜히 찝찝했다.
‘잡은 사람이 따로 있을 거라며 이렇게 떠들 줄은 몰랐지!’
종이에 글을 적은 것이 화근이었다.
“혹시 그놈이 일어나서 헛소리하는 걸 경찰이 진지하게 들을까 봐 적은 건데, 보통 그러면 ‘미친놈이 진짜 이중인격인가?’ 하지 않나?”
향낭이 어쩌니, 투명 목걸이가 어쩌니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까 봐 적어 놓은 덫이었다.
‘허, 내가 그 덫에 걸릴 줄은…….’
“저희를 의심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증거가 없긴 한데, 우주 형사님 촉이 이상하게 좋아서…….”
도희도 우주의 날카로운 질문에 뜨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시 흥분해서 정신이 혼미했던 도희는 이성을 되찾았다.
“다행인 건 뭘 알고 적은 건 아닌 거 같아요. 제 예상으론 그냥 경찰은 안 잡았다고 하니까 누군가 잡았겠고, 경찰 욕먹는 기사 쓰기 딱 좋은 재료라 쓴 거 같기도 한데.”
최초 기사가 나가고 나머지 기사들은 전부 복사, 붙여넣기에 가까웠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자극적인 기사는 조회 수를 부르니깐요.”
“일단 우리라곤 생각 못 할 테니까 상황 지켜봐요. 어차피 증거도 없고, 곧 조용해지겠죠.”
* * *
“내가 안 죽였다고.”
남자의 표정은 건조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네가 묵던 호텔에서 증거 다 나왔어. 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죽은 피해자가 찍힌 현장 사진을 어떻게 갖고 있는 거지?”
우주의 말에 남자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진짜 범인이 누군지 말해 줘?”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소름 끼치는 남자였다.
“누군데?”
“강도희.”
“뭐?”
의자에 등을 기댄 남자는 수갑 채운 손을 들어 올리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강도희라는 여자 조사해 봐. 그 여자가 범인이야.”
“이 자식 진짜 미친 새끼네.”
책상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우주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한테 증거도 있어. 큭, 크크큭.”
그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취조실을 가득 메웠다.
* * *
서 팀장의 손과 눈은 보고서를 훑고 있다.
“강도희가 누군데?”
“그 동네 사는 여자입니다. 범인이 묵던 호텔에서 강도희씨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가 발견된 걸로 봐선 아마 다음 타깃이었던 거 같습니다.”
“팀장님, 강도희씨 저번에 실종됐다 돌아온 그 분입니다.”
이 경위가 끼어들었다.
“아… 근데 왜 저 자식은 그 여자가 범인이라는 거지?”
“그건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범인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 보입니다.”
“저놈이 말한 증거는?”
“증거 같은 건 없었습니다.”
우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발견 됐을 때 종이에 적혀 있던 이중인격 어쩌고, 그거 진짜인 거 아니야?”
“검사 결과 나와 봐야 알 거 같습니다. 곧 정신 감정 들어갈 겁니다.”
“그래. 언론 또 난린 거 알지? 기자가 빨대 꽂은 곳이 우리 쪽이면 다들 가만 안 둔다. 다들 언론에 새어 나가는 거 조심하고.”
“예.”
힘없는 목소리의 팀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껴 있는 우주는 주머니에 있는 무언가를 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살인사건 범인, 이중인격 정신 질환자인가?]
새로 뜬 기사 제목이었다.
범인의 정신 감정 결과는 좋지 않았다.
조현병, 과대망상 정신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종이에 써진 대로 이중인격도 거론되는 중이었다.
결국 도희가 썼던 덫은 범인에게 제대로 놓은 덫이었다.
그가 묵던 호텔에서 여러 가지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과거 미제 사건의 증거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오피스텔 사건은 그를 범인으로 하여 검찰에 넘기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 * *
“우주씨 고생하셨어요. 범인 잡혔던데.”
—네. 이제 그 동네 갈 핑계가 없어서 아쉽긴 한데, 범인이 잡혔으니 다행이죠, 뭐.
“그러니깐요. 그런 흉악범이 같은 동네였다니. 으.”
—정신 나간 놈이에요. 조사 내내 헛소리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헛소리요?”
—뭐 이상한 향낭 이야길 하질 않나, 범행 자백을 하길래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투명하게 해주는 목걸이가 있다고 하질 않나. 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미친놈인 줄은 알았지만, 그걸 진짜 그대로 말했나 보네.’
설령 사실이라 해도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정말 제정신은 아닌가 보네요. 그런 소릴 누가 믿는다고.”
—그러게요. 그런 소릴 누가 믿을까요.
도희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우주가 어떤 표정인지.
* * *
“오늘 강도희가 출근했다고?”
“예. 아침에 갑자기 출근했답니다.”
“흐음… 어제도 그 남자 집에서 잤나?”
턱을 괸 그의 표정은 한없이 무심했다.
“예. 이도하 대리 집에서 잤습니다.”
“다른 수상한 행동은 전혀 없었고?”
“보고 드렸던 대로 첫날은 집 근처만 걸어 다니더니, 어젠 종일 집에만 있었다고 합니다.”
“박 비서.”
“예. 부사장님.”
“자네 생각은 어때?”
황이재가 모호한 질문을 한다는 건,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연차를 뺀 사람이, 첫날은 동네 산책, 이틀 차엔 방콕이라…….”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끝은 책상에 닿았다 떨어졌다 반복했다.
“첫날 서점에서 지도와 역사책을 샀다고 합니다. 어제 그걸 본 건 아닐까요.”
“지도? 역사책?”
그의 말끝은 의아함이 담아 불편하게 올라갔다.
“단순히 자기 계발이라도 하겠다고 연차를 쓴 건가.”
‘근데 왜 굳이 지도를…….’
인터넷 검색만 해도 모든 걸 알 수 있는 세상이었다.
‘설마…….’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엔 백 실장의 말이 맴돌았다.
—산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하는 게 분명합니다.
—산을 오를 때 가방과 내려올 때 가방이 달랐습니다. 산속에서 무언가 거래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 그 말이 진짜였다고?”
그는 도희가 그곳에서 뭘 했던 건지, 도저히 감은 잡히지 않았다.
“불법 활동이라…….”
작은 것, 그에게 필요한 건 꼬투리 잡을 만한 작은 거 하나라도 충분했다.
“박 비서.”
“예.”
“박 비서가 나서서 판 하나 짜야겠는데.”
“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웃지 않는 박 비서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판 짜서 한 방에 보내고, 사유는 그전 행동이랑 연관 지어서 적당히 붙이고.”
“예.”
도희가 실제로 불법 활동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만 잘 짠다면 도희를 제거하기엔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백 실장 다시 붙여.”
그녀의 말대로 뭔가 더 알아낼지도 몰랐다.
‘큭, 개선부만 도려내면 다시 원점인가.’
그의 입꼬리는 비틀리며 비열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 * *
“오늘 징계 공고 내려온 거 보셨어요?”
서류 뭉치를 잔뜩 안아 든 소하는 호들갑을 떨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봤죠. 일한 성과가 이렇게 바로 나타나다니 기분이 묘하네요. 항의 메일 더 쌓이겠네요.”
진명은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항의 메일 보낸다고 글 내려줄 팀장님이 아니신데, 사람들은 아직도 강 팀장님을 모르시나 봅니다.”
“원래 목소리 크면 이기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잖냐.”
어느새 친해진 두산과 진명이었다.
“워, 초과 근무 조작한 사람들 감봉이나 정직은 그렇다 쳐도, 불륜 커플 권고사직은 의외예요.”
“그 부장님 와이프가 우리 협력 광고사 실장인데 논개 작전 쓰셨답니다.”
“논개 작전요?”
“그동안 그 광고사랑 부당 계약한 거 다 불었다던데, 권고사직만 당하면 다행이죠. 이혼 소송까지 간다더라고요.”
“헐. 진짜 끝장났네요.”
“그전에는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어도 너무 조용하게 넘어가긴 했습니다.”
사내에 소문이 다 퍼진 큰 사건들도 묻히기 일쑤였다.
“보면 사람들도 겁나는지 게시글 수도 확 줄었습니다.”
“글 올라오면 조사부터 징계까지 바로 이루어지니까 겁낼 만도 하지.”
“그나저나 우리 부서 이러다가 미움 받는 거 아니에요?”
“잘못을 많이 한 사람들은 저희를 싫어하고 미워하겠죠?”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고개가 향한 곳엔 도희가 서 있었다.
“회의 벌써 끝나셨어요?”
“별 내용 없더라구요. 칭찬만 받아 돌아왔어요.”
“칭찬요?”
“칭찬이요?”
팀원들의 얼굴에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개선부에 오면 항상 불같이 화만 내다 돌아가는 한 부장이 강 팀장에게 칭찬이라니.
“감사부 대신 고생이 많다며 칭찬하던데요?”
진심으로 한 칭찬이었을까, 비꼬는 말이었을까.
모두의 머릿속엔 또 같은 생각이 스쳤다.
“좋은 소식도 하나 있어요.”
이어지는 도희의 말에 팀원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팀장님, 새로 오시는 분 오늘 발령받고 오늘 오시는 게 맞아요?”
“그렇다네요. 오늘 복직인데 원래 부서엔 인원이 필요 없어서 바로 저희 팀으로 온다네요.”
개선부의 새로운 인사발령은 도희도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바빴는데 정말 잘 됐어요!”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한가해지지 않았습니까? 괜히 지금 와서 ‘개선부 한가하네~’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조금 숨이 트였을 뿐이지 한가하진 않잖아요!”
적절한 업무 분담과 한결 익숙해진 업무 처리도 한몫했다.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이 와도 처음엔 정신없을 거예요. 우리가 잘 도와줍시다!”
모두가 새로 오는 이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득 찼을 때, 한 남자가 개선부 사무실로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어? 새로 오신 분인가? 어서 오세요!”
발 빠른 소하는 쪼르르 그에게 달려갔다.
다른 팀원들도 일어서서 그를 맞이하려는데…….
“…서 대리?”
분노에 찬 도희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고요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