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62)화 (62/120)

061화 그녀의 남자관계

도희도 새로 오는 인원이 부사장의 사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했다.

‘근데… 이건 너무 대놓고…….’

“강 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숙인 서 대리를 본 도희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부장을 믿은 내가 븅X이지.’

잠시나마, 겁을 먹은 한 부장이 이제 제대로 도와주는 건 아닐까 생각한 도희였다.

“서 대리 정직 3개월 아니었어?”

‘당연히 부사장이 풀어줬겠지.’

알면서도 그의 대답이 궁금해 물은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도… 마 부장에게 당한 피해자입니다.”

‘얘,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회사에서도 과한 처분이라 판단했는지 얼마 전 복직 명령받았습니다.”

‘오호,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대하는 컨셉인 거지? 그럼 나도.’

“오전엔 누구 만나고 오셨나요?”

“예?”

“출근은 오전에 하셨을 텐데, 지금에야 오시길래 궁금해서요.”

“인사팀 들렀다 오는 길입니다.”

“오전 내내요?”

그의 눈알이 사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알겠습니다. 보다시피 서 대리님 발령 소식을 오늘에서야 들어서요. 자리부터 준비해 드릴게요.”

아직 서 대리의 책상이 없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눈치껏 일어서는 진명과 두산이었다.

그때, 다른 부서 미팅 갔다 돌아온 도하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도하 대리님, 인사해요. 여긴 오늘부터 개선부로 발령받은 서 대리.”

서 대리를 물끄러미 바라본 도하는 말없이 그를 지나치더니 자리에 앉는다.

혀를 빼꼼 내민 소하는 도하와 서 대리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없었다.

“팀장님, 요즘 일부 부서에서 팀원들 사내 홈페이지 게시글 작성 목록을 확인한답니다. 저희 신문고 게시판 때문인 거 같습니다.”

“허! 강제 사찰이나 다름없네요.”

“작성자가 스스로 삭제하는 글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인 듯합니다.

“글 업로드 후엔 삭제 불가하게 수정 가능한지 알아봐 주시겠어요?”

“예. 가능하다고 하면 작성 전에 삭제 불가 동의 공지 띄우겠습니다.”

“넵! 좋습니다.”

곧 책상을 들고 나타난 진명과 두산은 서 대리의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사무실의 구조는 꽉 찬 ‘ㄷ’자 였기에 새로운 책상을 붙여 ‘ㅁ’구조로 변경됐다.

때문에, 도희와 서 대리는 마주 보고 일하게 되었다.

“팀장님. 항의 메일에 항의 반, 고백 반이에요.”

“고백이요?”

“메일 주소가 팀장님 거라 그런가 봐요. 직진 고백에, 데이트 신청에 하루에도 몇 통씩 장난 아니에요!”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니까 그냥 삭제하세요.”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도희였다.

“제정신이니까 팀장님한테 들이대 보는 거죠!”

“네? 풉.”

도희의 입에서 싱그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절한다는 답변이라도 보낼까요?”

“에이, 괜히 상처받습니다. 실연의 아픔은 오래갑니다.”

진명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두산이 맞장구를 쳤다.

“그게 진짜 고백이겠어요? 그냥 찔러보는 거죠.”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면 덜렁 메일로 할 리가 없었다.

“팀장님, 남자는 아무나 안 찔러봅니다.”

“다들 오늘 왜 이렇게 띄워 줘요?”

도희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자, 다른 팀원들에게도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서 대리는 묵묵히 그런 팀원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     *     *

‘도사님 준비되셨죠?’

―끄응, 내 살다 살다…….

‘급한 불부터 꺼야죠. 회사 신경 쓰랴, 요물 신경 쓰랴, 나쁜 놈 잡으랴! 제 몸은 한 개라구요!’

분신술을 쓸 수도 없고, 저질러 놓은 것이 많아 이대로 무책임하게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포기하면 두 번은 쉬워요. 제 책임감이 포기가 쉬워졌으면 좋겠어요?’

―하여, 내가 이리 깔려 있지 않으냐. 그놈의 잔소리 하고는… 내 참.

‘빨리 끝낼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지금 도사, 아니 서책은 도희 앞에 있는 의자의 방석 속에 넣어져 있었다.

일부러 아주 작은 회의실을 빌린 도희였다.

다른 의자는 모두 겹쳐서 구석으로 정리까지 해 놨다.

아주 완벽한 작전이었다.

‘왔다!’

“한 부장님 오셨어요?”

“갑자기 웬 면담?”

한 부장은 새침한 질문과 함께 책상에 걸터앉는다.

‘헐, 왜 또 저길 앉아!’

“다 말씀드릴게요. 일단 앉으세요.”

도희는 한 부장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나 바빠. 빨리 말해.”

‘아오…! 증말 밉상이네.’

한 부장은 여전히 책상에 걸터앉은 상태였다.

‘억지로 앉게 만들어야겠네.’

“서 대리, 부사장님이 꽂으신 건가요?”

“알면서 뭘 물어.”

역시나 새침한 말투였다.

“난 또… 한 부장님 마음이 바뀌셨나 하고… 그래서 저 도와주시는 줄 알았죠.”

“내가 무슨 마음이 바뀌어.”

“뭐, 이제 회사에 새로운 바람이 부니까.”

오른손을 든 도희는 물결 모양대로 손짓했다.

“겁은 안 나세요?”

연이은 도희의 말에 한 부장의 미간엔 옅은 주름이 생겼다 사라진다.

“허! 내가 뭘 했다고 겁을 먹나?”

“한 부장은 부사장님이랑 끝까지 가실 건가요?”

“아까부터 자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다혈질인 그는 슬슬 표정 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다.

“저한테 뭐가 좀 있는데… 한 부장님한테까지 불똥 튈 거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래도 부장님은 제 상사니까…….”

눈을 내리깐 도희는 괜히 책상 위를 휘휘 저으면서 최대한 소심하게 말했다.

“너한테 뭐, 뭐가 있는데?”

그의 귀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참 감정을 못 숨기는 인간이야.’

“부사장을 단숨에 보낼 증거?”

“……!!!”

“일단 앉으세요. 전부 말씀드릴게요.”

한 부장의 몸이 스르르, 의자로 내려앉았다.

‘됐다! 도사님 들려요?’

서책이 방석 속에 있어 직접 닿는 게 아니라 불안했다.

―“이 년은 뭘 가지고 있다는 거야? 혹시 백 실장이 저기로 붙었나? 아니면 박현일?! 이 개자…” 크흠. 그 후론 다 욕일세.

대답 대신 한 부장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도사였다.

‘백 실장도 가지고 있는 게 있나 본데.’

“부사장이 적이 많은가 봐요. 다들 자기 살 궁리 하나씩 차고 있던데.”

한 부장의 생각을 듣고 슬쩍 떠본 도희였다.

―“백 실장이 붙었을 리는 없고… 하! 박현일이네. 그자식이 가진 감사부 자료면 나 혼자 꼬리 잘릴 가능성이 큰데… 이 새끼 진짜 혼자는 안 죽겠다는 거야 뭐야.” 뒷말은 또 욕일세.

박현일 카드보다 백 실장의 카드가 더 위험하단 뜻이었다.

“왜 아무 말도 없으세요?”

“…네가 뭘 갖고 있든, 나랑은 상관없어.”

―“부사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일단 빨리 알려드려야…….” 이 자는 부사장이란 자를 너무 믿고 있구나.

‘그러게요. 이 정도면 충실한 개가 따로 없네요. 이제 저도 미끼를 던져야겠어요.’

“혹시 뭐, 제가 부사장님과 한 부장의 비리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부사장님이 알아서 처리하실 거란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뭐?”

한 부장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어떻게 읽었냐는 듯이.

“제가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이건 정말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사실 제가…….”

도희의 말을 듣는 한 부장의 표정은 경악을 넘어선 공포에 가까웠다.

*     *     *

“너무 겁준 걸까요?”

한 부장에게 자신에게 신기가 있는 거 같다며, 가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리고, 때론 그 사람의 앞날까지 보인다고 말한 도희였다.

―저런 자는 계기가 필요한 법일세. 선하게 살아갈 계기.

“그래도 한 부장 표정 보니까 좀 심했나 싶기도 하고…….”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 그 길이 잘못된 줄 몰랐던 게지. 저렇게라도 선의 길로 간다면 저 자에게도 잘된 일인 게지.

“근데 사람은 꼭 착하게 살아야 해요?”

―너는 어찌 살고 싶으냐.

“그냥 뭐,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죠. 남한테 피해 안 주면서.”

―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싶은 게지?

“찝찝하잖아요. 신경 쓰이고.”

―그래… 그렇게 살면 된다. 각자가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것은 행하고, 불편한 것은 하지 않으면 되는 게지.

“그렇게 마음대로 살아지나요.”

―어떠한 환경 때문이든, 다른 이 때문이든 결국엔 본인 마음이 가는 대로 살게 되는 거 아니더냐.

“마음과 달리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잖아요?”

―자신의 마음을 거스를 수 없듯, 그 또한 거스를 수 없는 게지.

도희의 고개가 의아한 듯 기울었다.

“…뭐, 결국 남이 어쩌건 ‘모든 것은 본인 선택이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인간은 본디 혼자 살아갈 수 없지 않으냐. 이런저런 이가 같이 어울려 살다 보면 때론 휩쓸리기도 하지 않겠나. 허나 그 또한 자신의 마음인 게지.

“휩쓸리는 것 또한 본인 마음이라는 거네요.”

―나도 내 마음대로 살다 보니 이리 악을 쫓고 선을 찾으며 사는 것이고, 너도 네 마음대로 살다 보니 그리 사는 것인 게지.

“어렵네요. 결국, 그냥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다?”

―그렇게 살라는 것이지.

“나쁜 놈들은 그냥 나쁜 짓 하고 살라는 거네요?”

―그것이 그들의 순리라면 그들을 막는 것도 나의 순리인 게지.

“뭔가 도사님이 할 법한 말씀이긴 한데, 도사님답진 않네요. 너무 철학적이라서 제 스타일도 아니구요.”

―그래, 넌 너대로 살거라. 하하.

역시, 도희다운 대답이라 생각한 도사였다.

“그나저나 박현일도 만나 봐야 할까요. 교도소 면회실은 접촉도 안 될 텐데.”

도사와 접촉이 불가한 상황이라면 기 싸움만 하다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걘 눈빛이… 으! 어차피 박현일보다 백 실장 증거가 확실한 거 같으니까 백 실장을 찾아야 하는데…….”

백 실장은 면왕산 이후로 도희를 쫓지 않았다.

“조용히 백 실장 찾을 방법부터 찾아봐야겠네요.”

*     *     *

“팀장님…….”

사무실에 들어선 도희는 어둠이 짙게 깔린 소하의 표정을 보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것 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진명의 표정도 소하 못지않게 심각했다.

“무슨 일인가요?”

“여기 이 글 좀 보셔야…….”

도희의 시선이 진명의 모니터에 띄어진 게시글의 제목으로 향했다.

“강도희의 문란한 남자관계를 고발합니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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