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화 꽃뱀
젓가락을 내려놓은 여자는 침까지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그래! 며칠 전에 나도 봤다니까? 삼거리 보쌈집에서 모델 같은 남자랑 꽁냥꽁냥하면서 밥 먹는 거.”
“오늘 아침엔 도하 대리 차타고 같이 출근했다잖아.”
두 여자의 말을 들은 선미는 스치듯 두 여자를 노려본다.
“강도희는 대체 남자가 몇 명이야?”
눈길을 거둔 선미의 표정은 퉁명스러웠다.
“회사에선 사장에, 부서에선 도하 대리에, 밖에서 만나는 남자는 또 달라?”
“걔, 그 사장이랑 붙어 다니는 상무랑도 친하다잖아. 맨날 사장실로 불러서 셋이 뭐 하는지 몰라.”
“강도희 모임 하다가 실종됐을 때도 자기 혼자 남자 둘이랑 있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헐! 맞아! 그때도 폭포에서 떨어진 게 가짠지 진짠지 어떻게 알아? 혹시 꽃뱀 아니야?
이들에게 식사는 이미 뒷전이었다.
“설마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돈 뜯으려고 했다가 안 돼서 쇼한 거 아냐?”
“하긴, 마 부장은 다른 사고 친 게 많아서 그만뒀다 쳐도 서 대리는 다시 복직했잖아.”
“사장도 알면서 감싸주는 거 아냐? 막 편 들어주고? 그 일 핑계로 강도희 팀장 올린 거잖아!”
“어쩐지, 생긴 것도 딱 꽃뱀처럼 생겼어. 남자 홀리게 생겨서는. 회사에서 하란 일은 안 하고 남자만 꼬시고 다니나 보네.”
“참나, 능력자는 능력자야. 사장 홀려서 대리에서 팀장까지 진급이라니. 걔 예전에 조기 진급한 것도 마 부장 꼬신 거 아냐? 진짜 싫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회사 편하게 다녔네.”
“혹시 알고 보니까 사장 엄청 쉬운 남자인 거 아냐? 크큭.”
“왜? 너도 도전?”
“만나야 하지, 만나야. 사장은 어디서 만나냐.”
“하긴 대리가 사장 만나기 쉽나 어디. 엄청난 노력과 계획이 필요한 거지.”
“내가 걔 관상 보고 이럴 줄 알았다니까. 천하의 도하 대리도 헤헤 웃게 만들더니.”
“근데 능력은 대단하지 않아? 그 정도 얼굴이면 세상 편하게 살 수 있구나.”
“야 능력은 무슨. 여자가 죽자고 덤벼들면 안 넘어오는 남자가 어디 있냐.”
“풉. 야, 솔직히 강도희가 예쁘긴 하잖아. 그 정도는 돼야 죽자고 달려들어서 아무나 다 꼬시는 거지.”
“난 걔 예쁜 거 모르겠던데.”
선미를 힐끔 쳐다본 여자 둘은 서로 눈짓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뭐, 각자 보는 눈은 다른 거니까~”
“아무리 달라도 강도희 예쁘긴 하지. 대신 볼 게 얼굴이 다잖아. 성격이 뭐 같아서.”
“인생 편하게 사는 건 너무 부럽네.”
“도하 대리만 불쌍해. 강도희보고 헤벌쭉 웃는 게 이미 넘어간 거 같던데.”
은근 선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연 여자였다.
“이제 다 알게 됐으니까 정 뚝 떨어졌을걸?”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긴 대단해. 천하의 이도하를 꼬시다니, 정말 못 꼬실 남자가 없단 말이네.”
“궁금하면 어떻게 꼬셨는지 물어봐. 혹시 알아? 말해 줄지. 큭.”
“강도희 옆에 붙어 있으면 남자는 많이 만나겠네. 나도 강도희랑 친해져 볼까?”
“어떻게? 부서 이동이라도 하게?”
“개선부라면 나쁘지 않지. 회사가 밀어주는 부서인데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어?”
이들 외에도 이곳, 저곳에서 도희의 남자관계, 사장, 꽃뱀, 개선부란 단어들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 * *
“백 실장, 진짜 너 아니야?”
―내가 미쳤어요? 강도희한테 붙어먹게.
“하긴, 죽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긴 한데…….”
아무리 돈이라면 뭐든 다 하는 백 실장이라고 한들 자기 무덤 팔 일을 하진 않았다.
―박현일이네. 뻔하지. 부장님한테 말해 봤자 무죄 받긴 힘드니까 무죄 받아달라고 사장 쪽에 붙은 거네.
증인이 도희다 보니, 한 부장이 박현일의 무죄를 받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사장한텐 말했어요?
“그게 강도희가 좀 이상해서.”
―뭐가요?
혹여 다른 누가 들을까 한 부장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얘 진짜 신기라도 있나 봐! 내 머릿속을 막 읽더라니까?”
―뭔 헛소리예요.
“아니, 나도 처음엔 안 믿었지. 근데 막 내 미래가 그려진다면서 부사장한테 붙어 있으면 나부터 꼬리 잘리고 망할 거라잖아!”
박현일의 가지고 있는 증거는 대부분 감사부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한 부장 선에서 꼬리 잘릴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딱 그 생각하고 있는데 내 생각을 얘가 그대로 말하더라고! 가끔 다른 사람의 생각도 보이고 미래도 보이고 그렇다는데, 강도희 진짜 좀 이상해!”
―말도 안 돼. 자기가 뭐 무당이야? 그리고 그게 진짜라고 해도 그걸 강도희가 부장님한테 왜 말해요? 그것도 이상하잖아.
“자기는 부사장만 노린대. 나보고 선택하란다. 차마 말로 꺼내기도 힘든 내 비참한 미래를 봤다는데… 찝찝해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에이, 한 부장님 그걸 믿어요? 나도 그 말은 할 수 있겠다.
“하! 백 실장, 너도 만나 봐. 믿기 싫으면 믿지 말라면서 근데 계속 내 생각이 들린다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내 생각을 읽는데 너라면 안 믿겠냐?”
―아저씨, 내가 아저씨 몇 년을 봤는데. 아저씨 원래 겁 많잖아.
“진아야, 너도 진짜 이번엔 몸 사려라. 잘못하면 우리가 다 뒤집어쓰는 거야.”
백 실장으로 불리는 백진아를 부사장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한 부장이었다.
―알아서 할게. 아저씨나 조심해. 그리고 나 다시 강도희 마킹해.
“왜? 너 얼굴 털려서 빠지라고 했다며.”
―그때 말했던 거 있지? 붙어서 그거 다시 알아보래.
“그 산에서 뭐 한다는 거?”
―응.
“느낌이 쎄한데… 일단 알았어. 조심하고.”
* * *
사내 여기저기서 입방아에 오르느라 바쁜 개선부 사무실은 오히려 가장 평온했다.
“강 팀장님, 이번 주 안건 넘겼습니다.”
“네, 확인할게요. 조사 리스트 정리는 끝났나요?”
“넵, 오후 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에,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넵, 최선을 다해 빨리 드려야겠네요.”
“무리하지 마세요.”
미소 짓는 도희를 보며 진명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팀장님, 사내 공모전 시안인데 이 정도면 어떨까요?”
“워, 너무 좋은데요?”
“정말요?!”
“이대로 진행하면 될 거 같네요.”
“네. 이대로 진행할게요! 그리고 팀장님, 그 스토킹 당하던 여사원 기억하세요?”
“기억하죠.”
여사원에게 없는 번호로 문자는 물론 새벽마다 전화해서 이상한 신음 소릴 내고, 익명으로 집이나 회사로 혼자 사귀듯이 쓴 연애편지와 꽃을 보내는 놈이 있었다.
“이번엔 SNS에까지 글까지 남겼대요. 아무 게시글도 없는 계정인 거 보니까 세컨 계정인 거 같대요.”
“그래요? 와… 진짜 미친놈이네.”
해당 여사원은 이미 여러 번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어 속앓이만 하는 상태라고 했다.
“근무까지 다 알고, 연차 쓰는 거까지 아는 거 보면 회사 사람인 거 같은데… 정말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여자는 스토커가 회사 사람인 거 같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다며 신문고에 조언을 구했다.
“혹시 그 스토커 아이디 알아요? 친구가 누군지 알아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강아가 인터넷 사기범을 잡았던 일이 기억난 도희였다.
“네, 적어드릴게요.”
“에휴… 좋아하면 고백을 하던지,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싫다는데 그러고 싶나.”
“그러니깐요. 으, 질척거리는 거 딱 싫어! 그리고 스토킹은 범죄라구요.”
도희가 막 입을 열려는데 어느새 곁에 다가온 서 대리가 보였다.
“팀장님, 말씀하신 사내 평가 공지 안입니다.”
서 대리가 건네는 서류철은 받아든 도희는 눈으로는 서류를 훑으며 말했다.
“괜찮네요. 수정 없이 이대로 가면 될 거 같아요. 공지는 이렇게 가고 평가 사항은…….”
도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서 대리였다.
그녀는 서 대리를 다른 팀원들과 다름없이 대했다.
첫날이라 하는 일 없이 뻘쭘하게 앉아 있는 그를 위해 간단한 업무도 맡긴 그녀였다.
‘서 대리가 일은 잘했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리라 다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한 번만 더 사고 쳐봐. 그땐 나도 가만 안 있지!’
도희는 자리로 돌아가는 서 대리의 뒷모습을 보며 작은 숨을 내뱉었다.
“강 팀장.”
‘한 부장? 표정은 또 왜 저래.’
“네, 부장님.”
“혹시 산에 가는 거 좋아하나?”
순간 도희의 한쪽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네? 산이요?”
“아, 혹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지금도 막… 그러나?”
한 부장은 자신의 귀를 톡톡치며 말했다.
뜬금없이 등장한 한 부장의 말들에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자네가 한 말이 아직도 긴가민가한가 보이. 자네 이번 주 산에 가나 물어보러 온 걸세.
‘그건 왜 묻는 거래요.’
―자네가 산에서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
‘제가 산에서 뭘 해요?’
―“산에서 불법 저지를 게 뭐가 있어. 대체 뭘 하는 거야, 얘는.”
한 부장의 마음을 읽어주는 도사의 말에 도희는 더욱더 아리송해졌다.
‘불법요? 제가요?’
―“백 실장 말 듣고 괜히 왔나. 얘 진짜 내 속마음 듣는 거 아냐? 아으, 찝찝해 죽겠네.” 자네 이야길 안 믿는 눈칠세.
“네, 저 이번 주에 산에 가요. 따라오시려고요?
더 이상 뜸을 들일 수 없어 대답부터 던진 도희였다.
도희의 대답을 들은 한 부장은 사색이 되어 달아났다.
* * *
‘그러니까 한 부장은 제가 산에서 뭔가 불법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뭔지는 모르고?’
―본인도 자네 약점을 잡고 있다 강조하러 온 게지.
‘제가 생각 읽는 걸 안 믿는 눈치네요.’
―요상하다 생각은 하나, 그걸 믿긴 힘들 터이지.
‘여튼 산 어쩌고 하는 거 보니 백 실장 입에서 나온 말 같네요.’
―금주에 다녀오려 했건만. 조심해야겠구나.
‘상황을 봐야겠네요.’
―그리고 자네가 알아야 할 것도 하나 있으이.
‘뭔데요?’
―부사장과 접촉한 이가 누군지 알아냈네. 방금 저자의 생각을 통해서.
‘누군데요?’
―…저 둘일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