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64)화 (64/120)

063화 멍청하거나, 운이 없었거나

‘둘 다 스파이라는 건 말이 안 돼.’

진명과 두산이 부사장과 접촉한 시점은 개선부 발령 후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둘 다라는 건 좀 충격인데… 아니지? 그냥 만나기만 했을 수도 있잖아.’

지이이잉―

휴게실로 오라는 도하의 문자였다.

도하가 자릴 뜨고, 연이어 도희마저 자리를 벗어나자 소하가 입을 열었다.

“저 두 사람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에요?”

“모르죠. 팀장님 오늘 도하 대리랑 같이 출근했다는 소문은 파다하던데.”

“저는 두 분 응원합니다. 저보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있습니까.”

두산에 말에 소하는 소개를 갸웃거리고, 진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두산씨, 팀장님 좋아하는 거 아녔어?”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왜, 그때 회식에서 게임할 때 부서 내 관심 있는 사람 질문에 손가락 접었…….”

진명의 크게 뜨인 두 눈은 두산에서 소하에게 향했다.

“아…….”

고갤 끄덕인 진명은 두산의 어깰 두드리더니, 모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도하가 도사의 말을 듣는다는 걸 깜빡한 도희였다.

“또 무슨 일을 꾸미시는 겁니까.”

“네? 꾸미긴요, 제가 무슨 일을 꾸며요.”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도하에겐 안 통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도 평범한 일은 아닌 거 같던데요. 도희씨가 산에서 한다는 불법은 무엇이며, 백 실장은 누굽니까?”

도하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제가 산에서 무슨 불법을 저지르겠어요. 그냥 저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예요.”

“진명 대리와 두산씨가 스파이라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도희가 아랫입술을 짓이기자, 선홍빛 입술에 닿은 도하의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제가 다 설명해야 하나요?”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싶어서요.”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어쩌죠. 전 도하씨가 몰랐으면 좋겠는데요.”

도하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도희였다.

도희의 뚱한 표정에도 여전히 무표정한 도하였다.

“제가 걱정됩니까?”

답하지 않는 도희였다.

“저는 걱정돼서요.”

둘 외엔 아무도 없는 휴게실.

오후엔 잡혀 있는 회의도 없다.

개선부 사무실과도 가깝지 않은 곳이라 근처엔 아무도 없단 말이었다.

도하의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엔 고요함이 흘렀다.

“살면서 남 일에 신경 써 본 적 없습니다.”

도하는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싫다고 하시면 더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불편한 정적만이 들어찬 휴게실에 진명이 들어오고 도하가 문을 나설 때까지, 짓이겨 꽉 다문 도희의 입술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     *     *

―네가 결정하거라. 네 말에 따르마.

진명이든 두산이든 서책에 닿기만 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생각은 듣고 싶지 않아요.’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그들도 사람인데 제 욕할 일 없겠어요? 모르는 게 서로 일하기 편해요.’

―그럼 어쩔 셈이냐.

‘정면 승부해야죠. 팀원은 건들지 말라고.’

―그 자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던데, 괜찮겠느냐.

‘도사님이 봐도 그렇죠? 불리한 건 교묘히 빠져나가는 교활한 뱀 같아요.’

만나도 부사장실에서 만나기에 한 부장처럼 서책에 닿게 하기도 힘들었다.

‘무작정 만져 보라고 할 수도 없고.’

가뜩이나 의심 많아 보이는 그가 도희의 수상한 행동을 놓칠 리가 없었다.

‘혼자 해결해야 된다는 건데… 휘둘리지 않으려면 대화는 짧게, 할 만만 간단히!’

마음을 굳게 다잡은 도희는 부사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     *     *

“보고 싶었습니다.”

문을 열고 도도히 걸어 들어오는 도희를 본 황이재의 첫마디였다.

“여기에 앉으면 되나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접객 의자에 앉는 도희였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먹었죠.”

일부러 되묻지도 않았다.

곧이어 커피를 든 박 비서가 들어왔다.

“전 괜찮습니다.”

도희의 거절에도 박 비서는 도희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후… 휘둘리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바쁘실 테니 용건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안 바쁩니다. 천천히 놀다 가세요.”

상석에 긴 다릴 꼬고 앉은 황이재는 느릿한 동작으로 커피 잔을 들었다.

“제가 바빠서요.”

커피 잔을 든 그의 손은 잠깐 멈추더니, 곧 다시 움직인 커피 잔은 올라간 그의 입가에 닿았다.

“개선부 활동은 보고받으셨죠?”

그는 대답 없이 커피만 홀짝인다.

“회사에 실보다는 득이 많은 부서입니다.”

“회사에 득보다 실이 많은 부서도 있나요?”

말하는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간다.

“더 잘 아실 텐데요?”

유난히 한쪽 입꼬리만 솟구치더니, 끝내 그의 입가엔 비웃음이 걸려 있다.

“그럴 리가.”

“득이 많은 부서인 걸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몰라도, 팀원들은 건들지 마세요.”

“강 팀장은 건드려도 된단 말인가요?”

“그냥 두란다고 두실 건가요?”

“글쎄요.”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유리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서 대리는 제가 개선부로 보낸 게 아닙니다.”

황이재와 도희의 눈이 마주 닿았다.

“저는 다른 두 팀원 말씀드린 건데.”

“…흐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힘드네요.”

“설마요. 알아들으셨을 거라 믿고 가겠습니다.”

“강 팀장.”

자리에서 일어선 도희를 불러 세운 황이재는 고고하게 꼬고 있던 다릴 풀고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이무혁이 뭘 약속하던가요. 설마 소문대로 둘이 그런 사이는 아닐 테고.”

그는 도희 곁으로 다가와 마주서더니 굳이 허릴 숙여 눈높이를 맞춘 후 진하게 웃어 보였다.

“궁금하세요?”

그보다 더 진한 미소로 답한 도희였다.

황이재는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가 불편했다.

“보통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사람은 두 분류죠.”

황이재는 손가락 한 개를 들어 보였다.

“멍청하거나.”

그의 중지마저 들린다.

“운이 없었거나.”

“멍청하거나… 운이 없었거나.”

그가 한 말을 되뇌며 고갤 끄떡인 도희가 말했다.

“전 어느 쪽인 거 같나요?”

“글쎄요. …둘 다인가. 아직은 모르겠네.”

“그 말 꼭 기억하세요.”

황이재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대로 돌려받으실 테니까.”

싱긋 웃으며 말을 마친 도희는 그대로 뒤돌아 부사장실을 나와 버렸다.

*     *     *

도하가 도희의 옆자리에 앉자, 우주는 도희 맞은편으로 자릴 옮겼다.

“난 마주 보는 게 좋던데. 도희씨는요?”

이미 불편한 저녁 자리가 되리라 예감한 도희였다.

“뭐 시킬까요. 여긴 뭐가 맛있지.”

못 들은 척 메뉴판을 열었다.

“여기 A세트 괜찮아요.”

메뉴판을 보는 도희의 눈이 휘둥그레 뜨인다.

“형사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수사 협조에 대한 감사 인사로 밥을 사겠다며 억지로 도하를 끌고 온 우주였다.

‘괜히 따라왔나.’

도희에게도 물어볼 게 있다기에 스스럼없이 합석한 그녀였다.

‘너무 비싼데.’

외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고급스러움에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가격대가 더 높은 곳이었다.

“이왕 사는 거 제대로 쏴야죠. 2차까지 제가 쏘겠습니다.”

“에? 2차까지 가시려고요?”

“밤은 길어요, 도희씨.”

“허, 진짜 못 말려. 그런 말은 어쩜 그렇게 잘해요?”

“‘밤은 길다’라는 말이 왜요? 무슨 생각 하신 겁니까. 풉.”

“아, 아니… 말이 그렇잖아요…….”

“예? 전 전혀 모르겠는데요?”

장난기 가득 담은 반달눈의 우주는 도희 놀리기에 여념 없었다.

“2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도하씨는 술도 안 마시잖아요.”

“빚지고는 못 살아서요.”

“두 분이 가세요. 두 분이. 저는 오늘 일찍 들어가 봐야 해요.”

아직 오늘 운동 시간도 못 채운 그녀였다.

“빚이라뇨. 도하씨 협조 덕분에 범인 잡기 수월했습니다.”

우주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전 한 게 없습니다.”

거짓말을 잘도 내뱉는 도하였다.

“그놈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에요. 조사 중인 것만 최소 3건 이상입니다. 이번에 못 잡았으면 또 사고 쳤을 놈입니다.”

“그런 흉악범이 잡혀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누가 잡았는지, 너무 고마워서 밥이라도 사고 싶더라고요.”

‘엥? …뭐야.’

왠지 모를 찝찝함에 고갤 갸웃거린 도희였다.

“범인 이중인격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기사 보니까 그렇던데.”

“다른 인격이 살인하는 인격을 잡은 거다? 도희씨도 그렇게 믿나요?”

분명 생글생글 웃고 있는 우주였지만, 풍겨지는 묘한 분위기는 불편함을 남겼다.

“그냥 뭐, 저희처럼 모르는 사람들은 기사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도희씨가 모르는 사람에 끼진 않을 텐데.”

“하하… 제가 뭘 알까요. 저 아무 것도 몰라요!”

어색하게 손사래 친 도희는 급하게 밥 먹는 시늉을 했다.

“와, 여긴 에피만 먹어도 배부르겠어요.”

“이게 메인입니다.”

가자미눈으로 우주를 흘겨보는 도희 모습에 우주와 도하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 이도하씨 웃는 건 처음 보네요.”

다시 새침한 표정으로 변한 도하였다.

“저도 자주 웃습니다.”

“난 이도하씨 로봇인 줄 알았잖아.”

“풉. 우주씨, 조심해요. 도하씨 칼 들었잖아요.”

도하는 괜히 손에 든 스테이크 칼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저 봐, 이도하씨가 도희씨 말은 잘 듣는다니까?”

“제가 그쪽 말을 왜 듣습니까.”

“우리가 만난 게 몇 번인데 그쪽이라뇨. 이름 부르기 뭐하면 우 형사라고 하셔도 됩니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의 우주는 윙크까지 해 보인다.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도하가 잠시 자릴 비우자, 우주가 말했다.

“저 도희씨랑 둘만 할 이야기가 있는데 저녁 먹고 잠깐 시간 어떠세요?”

*     *     *

‘뭔가 알아챈 건 아니겠죠?’

오늘은 정말 일이 있다며 대화를 피하고 온 도희였다.

‘하, 더 이상 다른 사람 끌어들이고 싶진 않은데.’

―정 불안하면 내가 나서…….

‘놉! 이제 더 이상 주위 사람들 생각 읽고 싶진 않아요.’

―네게 들리냐, 내게 들리는 게지.

‘도사님이 아는 것도 싫어요! 이제 악인 쫓을 때 말고는 도사님 도움 받는 거 자제해야겠어요.’

도하 일은 술 먹은 실수였다 쳐도, 더 이상 주변인들과 연결 짓지 않고 싶은 도희였다.

도사와의 약속이 끝난 후도 생각해야 했다.

‘이제 형사님이랑 마주칠 일 없으니까 적당히 피하면 알아서 잊히겠죠, 뭐.’

―편할 대로 하거라.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띠띠띠띠―

도희는 비밀번호를 누른 후 문을 열면서 마음 편히 입을 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이제 안 만나… 어?! 이게 뭐야?”

집을 들어선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바닥 가득 어지러이 흩뿌려진 물건들로 엉망이 된 집안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