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도, 도둑일세!
―도, 도둑일세!
‘헐! 집 안에 있어요?’
―아무도 없으이. 이미 다녀간 듯하네.
“도사님 요물! 어떡해!”
허겁지겁 안방으로 달려간 도희는 옷장 문을 열어젖혔다.
“하… 여긴 안 뒤졌나 봐요. 집안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놨는데 옷장은 그대로네요.”
걸려 있던 옷들을 옆으로 제친 도희의 손은 옷장 더 깊숙한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 그 손엔 하얀 보따리 뭉치에 들려 나온다.
―미리 준비하고 나간 것이 천만다행일세.
집 비우는 게 불안한 도희는 나름의 준비는 해둔 상태였다.
“아니, 이 동네에 도둑이라니… 혹시 이게 향낭 때문인 건 아니겠죠?”
―…장담할 수 없네.
“맞단 말이네요?”
―크흠…….
대답을 피한 도사는 둥 둥 날아 거실로 자릴 옮겼다.
―없어진 것이 없나 살펴보게나. 요물들은 그대론 듯 허이.
“글쎄요. 집에 돈 될 만한 건 없는데.”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집어 줍던 도희는 털썩 주저앉더니 발을 동동 굴렸다.
“…이걸 언제 다 치워.”
온 집안 물건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어?!”
그 순간 식탁 위로 향한 도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인다.
“없어요!”
―무언가!
“내 노트북!!”
* * *
노트북 외에도 카메라와 목걸이 등 귀중품 몇 개도 없어진 상태였다.
“와, 나 살다 살다 집에 도둑이 다 드네.”
도희가 사는 낡은 빌라는 비록 동네 구석진 곳에 있지만 도심 한가운데였기에 유동 인구가 많아 도둑이 들기엔 힘든 지역이었다.
“일단 신고는 해야겠죠?”
―우리가 잡으면 될 것을, 뭣 하러 포졸을 부른단 말이냐.
“잡아서 경찰에 넘겨야죠. 제가 혼내줄 순 없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려무나.
“근데 어떻게 잡아요?”
―네가 묵은 정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도해 보자꾸나.
“정기요?”
―지물(知物)술은 네 기운으론 턱도 없다. 항아리에 담긴 정기를 이용해야 할 걸세.
물건의 기억을 읽는 도술이란 기억을 언뜻 떠올린 도희였다.
―오래는 안 될 걸세. 촌각 혹은 일다경의 시간 일지도 모르이.
“촌각이요? 1분 30초? 그렇게 짧은 시간 전으로 가 봤자 소용이 없잖아요?”
―자네가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일세. 그 짧은 시간에도 닷새는 훑어볼 수 있네.
“5일이면 차고 넘치겠네요. 일단 신고부터 할게요.”
* * *
출동한 경찰은 어질러진 집 안 사진을 찍더니, 몇 가지만 묻고 금방 돌아갔다.
“자, 빌드업은 끝났고 이제 해볼까요?”
띵동―
띵동띵동―
‘엥, 강아인가.’
“누구세…….”
문을 여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우주가 불안한 숨을 내뱉으며 서 있다.
“형사님이 무슨 일이세요?”
“도희씨, 괜찮아요?! 도둑 들었다면서요.”
숨을 헐떡이는 우주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였다.
“없을 때 왔다 간 거라 전 괜찮아요.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저번 일이 신경 쓰여서 이 건물에서 신고 들어오면 말해 달라고 요청해 놨습니다.”
‘경찰 돌아간 게 방금인데… 듣자마자 달려왔나 보네.’
“괜찮아요. 다친 데도 없고, 없어진 것도 큰 건 아니에요. 신고했으니까 곧 잡히겠죠, 뭐.”
도희는 환한 이가 가지런히 드러난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우주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도희씨는 유난히 사건에 많이 휘말리시네요.”
“그러게요. 요즘 평생 액땜 다 하네요.”
이제야 도희를 따라 밝게 웃는 우주였다.
“혼자 계실 수 있겠어요?”
“왜요, 또 자고 간다고 하시게요?”
“불안하시면 얼마든지요.”
“우주씨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요?”
“제가요? 저 위험한 남자 아닙니다.”
“에이, 그건 자기가 판단하는 게 아니지.”
“제가 위험해 보이십니까? 어딜 봐서?”
‘저 봐, 능글맞게 웃는 거.’
“저 이래 봬도 형삽니다.”
“그거 참 믿음이 가는 말이네요.”
“비꼬기도 잘하셔.”
“형사님은 퇴근도 안 하세요? 이렇게 맨날 시민의 안전만 걱정하면 언제 쉬어요.”
“도희씨의 안전이라면 24시간 밀착 근무도 가능한데.”
쭉 늘어진 눈의 도희는 말없이 우주을 노려봤다.
“풉, 알겠습니다. 그럼 전 퇴근해 보겠습니다.”
‘남자가 웃는 게 왜 이렇게 예뻐.’
예쁜 미소란 단어가 어울리는 흔치 않은 남자다.
“푹 쉬세요. 내일도 시민의 안전을 지키셔야죠.”
“내일 또 오란 말이죠?”
“그럼 가세요.”
지체 없이 닫히는 문을 보고 웃음이 터진 우주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다 집으로 돌아갔다.
* * *
지이이잉―
지이잉―
휴대 전화의 진동이 쉼 없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도하는 그대로 수신 거절 버튼을 누른다.
지이잉―
이번엔 문자였다.
역시나 발신자를 확인한 우주는 전화 외엔 모두 무음으로 변경했다.
도희의 전화를 받고 난 후 생겨난 변화였다.
퇴근 후엔 언제나 무음으로 생활하던 도하는 전화만은 꼭 진동으로 해두었다.
도희가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 줬으면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에 스스로도 놀란 그는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지이이잉―
이번엔 발신자를 확인한 도하가 전화를 받아 들었다.
“예. 말씀하세요.”
―내일 저녁 어떠니.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까.”
―그러게. 시간 참 빠르구나.
“점심은 어떠세요.”
―그래. 메뉴는 알아서 정하렴.
“예.”
전화를 내려놓은 도하는 지친 듯 힘겹게 눈을 감았다.
* * *
범인은 옆집 남자였다.
지물(知物)술에 성공해 범인을 확인한 도희는 출근한 후 옆집 남자가 수상하다 경찰에 전화만 했을 뿐, 나머지는 경찰의 몫이었다.
들이닥친 경찰에 놀란 남자는 순순히 범행을 털어놓았다.
밀린 월세와 생활비 압박으로 인한 우발적 범행이었단다.
도희는 향낭의 영향 때문이라 단언했지만, 도사는 확실치 않단 대답만 내놓았다.
도사와 향낭의 거취에 대해 다시 한 번 논하던 도희는 선물을 준다는 말에 결국 굴복했다.
그렇게 도사를 만나고 가장 평온한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았다.
* * *
“이 가방은 너무 클까요?”
도희의 등엔 그녀의 몸집 두 배만 한 커다란 등산 가방이 축 늘어져 있다.
―욕심도 많으이. 그것이 다 자네 욕심 주머닐세.
“아니, 진짜 약초를 캘 거잖아요! 눈에 보이는 약초들을 다 버리고 올 거예요? 그 귀한걸!”
등산 가방이 없던 도희는 이왕이면 큰 게 좋지 않냐며 제일 큰 가방으로 구매까지 했다.
―쯔쯔, 숲째로 옮겨오지 그러냐.
“산이 다 제 건가요. 전 약초 몇 개면 충분합니다.”
―참 소박하다, 소박허이.
이젠 도사의 비꼼도 익숙해진 도희였다.
“갑시다! 약초 캐러!”
* * *
삼삼오오 무릴 지어 오르는 등산객들 사이로 등산로 입구에 비켜선 도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날마다 쫓는 이가 바뀌더니. 오늘도 다른 이구나.
매일 다른 기운이 도희를 쫓고 있었다.
도희의 부탁으로 전 상무의 가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기에, 아마도 부사장이 붙인 사람이라 추정 중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한 명이니 다행이죠. 한 명은 눈 감고도 따돌리겠어요.’
―금일도 멀리서 지켜만 볼 생각인가 보이.
‘백 실장은요?’
―그것이… 요즘 나도 허해졌나 보이.
‘왜요?’
―무수히 섞인 기운들을 분리하기 힘드이.
사실 요즘 들어 모든 기운이 약하게 느껴지는 도사였다.
‘네?’
이해가 가지 않는 도희가 반문했다.
―집에서부터 쫓아온 이의 기운은 이미 감지한 터라 여기서도 찾을 수 있으나, 여기 섞여 있는 기운들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네.
‘갑자기요?’
―지물술을 쓴 것이 나에게도 영향이 있었나 보이.
‘영단(靈丹)이 필요한 건 도사님이셨네요.’
―나 좋자고 만드는 것이냐. 침 내놓으라고 협박하던 게 너 아니더냐.
‘침 내놓으랬지, 영단 내놓으랬나요.’
―기다려 보거라. 곧 찾지 않겠느냐.
‘영단이 효과가 있을까요?’
―영험한 영단의 효능을 자네가 어찌 알꼬.
‘지금도 한의원은 있다구요! 그 시절 좋은 약재들, 좋은 약들 지금도 다 있어요. 근데 사람 병 고치는 영단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네요.’
―그래. 네 말이 옳다면 돌아가자꾸나.
‘여기까지 왔는데 어딜 가요.’
도희의 발을 이미 산을 오르고 있었다.
―효능도 없는 영단을 만들어 뭐할꼬.
‘도사라는 양반이 속이 그렇게 좁아서야…….’
―양반은 아닐세.
‘뭐, 도술 부리는 도사님도 있는데 영단이라고 없겠어요? 그리고 도사님한테도 필요하다면 무조건 만들어야죠.’
도희는 어린아이 달래듯 부드러운 손길로 등에 멘 가방을 톡톡 쳤다.
―내 거처가 왜 여러 곳인 줄 아느냐?
‘욕심이 많아서?’
―내 영단을 노리는 자들이 아주 많았단 말이네.
‘오~ 그 정도? 그래서 도망이라도 다니셨어요?’
―도망뿐일까. 영단을 하지하겠다고 서로 싸우는 허다했네.
‘얼마나 대단하길래요?’
―본디 기운을 올리거나 내상에 쓰이는 것이나, 병도 어떤 병이든 어느 정도 호전은 될 걸세.
또 가격을 매기며 머릿속엔 팔 생각만 가득한 도희 때문에 혀를 끌끌 찬 도사였다.
‘근데 왜 저번엔 약초 말씀은 안 하셨지.’
―면왕산에는 있을 줄 알지 않았느냐.
‘하긴, 짐 다 싸서 내려올 때만 해도 기운을 늘릴 영단이 있을 줄 알았죠.’
―하물며 다른 약재들을 구했다 한들, 꼭 이곳에서 구해야만 하는 것도 있으이.
‘오늘 왕창 뽑아 가야겠네요.’
―허허허. 두 뿌리만 찾아도 심본 걸세.
‘에? 고생길이 훤하단 말이네요…….’
―끄응, 젊은 것이 시작도 전에 힘 빠지는 소리냐.
‘그럴 리가요. 다 뽑아 버리겠으!’
두 손을 불끈 쥔 도희는 호기롭게 당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 * *
땅을 딛는 도희의 발이 점점 느려질 무렵이었다.
―멈추거라!
도희가 막 등산로를 벗어나려 하는데.
‘왜요?’
―긴가민가했는데… 맞구나.
‘설마?’
도희가 지금 오르고 있는 코스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험한 코스였다.
작은 능선들을 지나 산을 빙빙 둘러 올라야 하기에 새벽 일찍 오르지 않고서야 정상에 오를 수도 없는 코스였다.
고로, 지금 이 시각에 이곳을 오르고 있단 말은 길을 잘못 들었거나.
‘날 따라왔단 말이지.’
―잘 보이지도 않았을 터인데 어찌 따라왔누.
‘그러게요.’
꼬불꼬불 꼬아진 산길 한참 아래로 열심히 산을 오르는 백 실장이 보인다.
―어쩔 테냐.
‘계획대로 가야죠.’
이미 한 부장의 의도를 훤히 들여다본 도사였다.
‘혹시나 했는데 한 부장도 참 단순해요. 대놓고 그렇게 물으면 누가 몰라.’
―그 자에겐 확신이 필요했을 게다. 네가 산에서 무언가를 할지도 모른다는.
‘한 부장과 백 실장이 한편이라는 것도 확실하네요.’
어느새 백 실장과 도희의 거리는 소리치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도희는 크게 소리쳤다.
“백 실장님!”
백 실장의 고개가 들렸다.
“빨리 와요!”
그녀의 얼굴엔 당혹감이 들어찼지만, 도희가 그걸 알아챌 만큼 가까운 거린 아니었다.
도희는 또 한 번 산이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약초 캐러 갑시다!!”
백 실장의 입에선 짧은 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백 실장의 뒤로 낯익은 얼굴이 한 명 더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