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66)화 (66/120)

065화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도희는 백 실장 뒤로 등장한 남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도하씨?’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도하씨가 여길 어떻게…….’

―내 어쩔 도리가 없었네.

‘예?! 아니, 그새 홀라당 다 말해서 저 사람을 여기까지 끌고 와요?’

―다른 방도가 없지 않은가…….

‘도사님은 누구 편이에요!’

―필시 도움될 걸세. 혼자보단 둘이 낫지 않겠나.

곧 도희 근처까지 올라온 백 실장이 자신을 기다리는 도희를 어이없게 쳐다본다.

“무슨 짓입니까.”

“저 따라오신 거 아니에요?”

멀뚱히 쳐다만 보며 대답하지 않는 그녀였다.

“또 저번처럼 길 잃고 다칠까 봐요. 약초 캐러 갈 건데 같이 가요. 이왕이면 하나보단 둘이 낫죠.”

백 실장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번지는 사이 도하가 도착했다.

“도하씨, 늦었네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아, 네. 차가 막혀서요.”

‘눈치는 좋은데 거짓말은 못 하네. 고속도로 타고 오는데 무슨 차가 막혀. 풉.’

“뭐, 두 분 앞으로 볼 사이는 아니니까 인사는 필요 없고… 그럼 이제 가 볼까요?”

도하의 두 발짝 뒤에 팔짱 끼고 삐딱하게 선 백 실장이 말했다.

“여기서 약초를 캔다고?”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비웃는 투로 반말을 내뱉었다.

“못 믿겠으면 따라오던가.”

역시나 지지 않는 도희였다.

도희는 허탈한 표정의 백 실장을 지나쳐 등산로를 벗어났다.

*     *     *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백 실장을 산속 깊숙한 곳으로 데려가야 했다.

도희가 앞장서서 걷자, 도하와 백 실장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앞서 걷던 도희는 힐끔 뒤를 살폈다.

옆으로 떨어져 숲속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

화보와 다름없이 숲속을 거니는 흑발의 두 남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빛도 통하지 않을 듯한 흑 단발의 백 실장은 다시 봐도 도하에 뒤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미인이었다.

속에서 이유 모를 불편함이 끓었지만, 애써 시선을 돌린 도희였다.

그렇게 등산로를 벗어난 이들은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주위엔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와 날갯짓 소리만 들려온다.

―되었네. 저 자에게도 다 말해 두었네.

‘넵. 그럼 시작할게요.’

“아, 목말라.”

티 나게 꾸며낸 말투였다.

멈춰선 도희는 가방에서 검은 천으로 감싼 물병과 종이컵을 꺼내 들었다.

“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마셔요.”

새침한 말투로 종이컵을 건네는 도희였다.

“됐어요.”

백 실장은 더 새침한 표정으로 고갤 돌려 먼 산을 바라본다.

“예뻐서 주는 거 아니거든요. 쓰러지면 안 데려가요.”

입술을 짓이기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백 실장은 거칠게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도하씨, 목마르죠? 한잔해요.”

도희가 도하에게 건넨 종이컵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도하는 애써 컵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렇게 서로 눈짓한 도하와 도희의 눈동자는 슬며시 백 실장을 향했다.

스르르 쓰러지는 백 실장을 보며 도희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     *     *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백 실장의 목은 한껏 꺾여 있다.

나쁜 꿈을 꾸는지, 그녀의 고운 이마엔 깊게 팬 주름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백 실장! 백 실장 일어나!”

누군가 그녀의 어깰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백 실장!”

“으…….”

꺾였던 목이 아픈지, 목을 만지며 눈을 뜨는 그녀의 인상은 한껏 구겨져 있다.

“아저씨?”

“뒤따라왔더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쓰러지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머리만 띵할 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속도 울렁거리는 것이 마치 숙취를 겪는 기분이었다.

“아… 머리야. 아저씨가 여기까지 왜 따라왔어요?”

“지금 그런 말할 시간이 없어! 강도희는 내가 붙어 있을 테니까 넌 빨리 가서 그것 좀 가져와!”

“뭘 가져와요?”

머리가 지끈거리는 백 실장은 연신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한 부장은 다급한 몸짓으로 백 실장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

“그거! 백 실장한테 있는 부사장 자료! 황이재, 그 자식이 우릴 버렸다고! 너랑 나한테 다 뒤집어씌울 거 같아. 자료 나한테 넘기고 백 실장은 빠져. 괜히 불똥 튈 거 같으니까.”

“아저씨 혼자 어떡하게요?”

“딜이라도 해야지! 살려 달라고. 일단 주소 적어 줄 테니까 빨리 가서 여기로 퀵 보내!”

*     *     *

깨질 듯이 아픈 머릴 부여잡고 지하철 보관함까지 겨우 찾아온 백 실장이었다.

급히 물건부터 찾아 퀵 서비스를 보낸 백 실장은 한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방금 보냈어요. 근데 혼자 괜찮겠어?”

―뭘 보내?

“퀵 방금 보냈다고요.”

―퀵? 무슨 퀵?

“아저씨 지금 어딘데? 강도희랑 같이 있어? USB 퀵으로 보내 달라면서!”

―대체 뭔 말이야? 나 지금 부사장님이랑 골프 라운딩 돌고 저녁 먹는 중인데.

백 실장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 전화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전화를 끊은 뒤 바로 퀵을 보낸 주소지를 찾은 백 실장은 다시 한 번 심장이 내려앉았다.

계산대에 있는 남자는 제일 바쁜 시간에 찾아온 불청객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 퀵이요? 방금 어떤 여자 분이 오셔서 가져가셨는데.”

“혹시 이 여잔가요?”

화면을 본 남자가 대답했다.

“네. 이분 맞아요.”

백 실장 휴대 전화 화면엔 환한 미소의 도희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     *     *

“그 요물이란 거 신기하네요.”

“이 붓이요?”

도희가 붓을 들고 휘두르자,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도하였다.

“풉, 안 닿아요. 안 닿아.”

“꼭 머리에 닿아야만 도술이 걸립니까?”

―가장 확실한 방법일세.

“잠들게 하는 술병도 요긴했어요. 술 취해서 잠들게 하는 건 줄은 몰랐네요. 숙취까지 오는 거 같던데요?”

―술법이 새겨진 병에 오랜 시간 담겨 있던 물이니 그 효과가 더 할 걸세.

“으, 아까는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백 실장한텐 제가 한 부장으로 보인 거죠?”

―그랬을 걸세. 그래도 자네가 잘해 주었어.

‘하긴, 아저씨라고 할 땐 좀 뜨끔했지.’

둘 사이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기에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둘이 그렇게 친할 줄은 몰랐지.’

눈치껏 맞장구치며 편하게 말한 도희였다.

“그나저나 둘이 부사장이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그만큼 믿음이 없었나 봅니다.”

“그게 사실일지도요. 내일 뭐, 이걸 터트려 보면 알겠죠.”

띵동―

“사장님 오셨나 보네요.”

*     *     *

“이도하 대리도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둘이, 그것도 호텔에서?”

왠지 살벌한 분위기를 내뿜는 무혁이었다.

“이걸 들고 집에 갈 순 없잖아요?”

그들이 있는 곳은 회사 근처 호텔의 스위트룸이었고, 결제도 전 상무가 한 상태였다.

“그 말이 아닌데.”

묘하게 흐르는 분위기에 전 상무가 나섰다.

“물건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네. 여기.”

전 상무는 도희가 내민 작은 USB를 받아들었다.

“감사부 관련 부정 내용뿐만 아니라 예전에 말씀하셨던 장 이사 쪽 사람들 협박 영상과 사고 영상도 들어 있어요.”

“예? 사고 영상도요?”

예상대로 조작된 사고가 맞았다.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범인은 백 실장이 아니에요.”

“그럼…….”

“박 비서.”

“부사장 비서가 직접 움직였단 말입니까?”

입을 연 무혁은 곁눈질로 전 상무를 쳐다봤다.

“예. 그래서 백 실장이 이걸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부사장에게 한 부장이나 백 실장이나 꼬리 잘리기 딱 좋은 조건이니까요.”

자신이 한 일이 아니지만, 자신이 뒤집어쓰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이걸로 부사장까지 가겠습니까?”

“이걸로도 안 되면 법으로 잡을 방법은 없을 걸요? 본인이 직접 한 건 아니라도 지시한 정황은 확실해요. 백 실장이 통화 녹음본이랑 돈 받은 내역까지 정리해 뒀더라고요.”

무혁이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전 상무, 김 변은?”

“김 변호사 지금 오고 있답니다.”

“오면 같이 확인하고, 강 팀장은 방 잡아 줄 테니 이만 쉬어요. 수고했어요.”

“이도하 대리도 같이 고생했습니다.”

“이도하 대리도 수고했어요.”

문으로 다가선 무혁은 도희에게 나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의 눈짓에 짐을 챙겨 든 도희가 따라나서려는데…….

“마무리하고 가시죠.”

도희의 손을 잡아끄는 도하였다.

“아직 마무리할 게 남았습니까?”

싸늘한 표정의 무혁이었다.

“예. 먼저 가시죠. 방은 이미 제가 옆에 잡아뒀습니다.”

무혁의 입가가 올라가며 오묘한 미소가 번졌다.

“내일 뵙죠.”

도희에게 눈짓한 후 도하에게 살짝 고갤 숙인 전 상무도 무혁을 뒤따랐다.

“도하씨, 고마워요. 저도 사장님은 불편해서…….”

도희의 반달 눈웃음에 도하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술 한잔하실래요?”

“도하씨는 술 안 마시잖아요?”

“오늘은 마시고 싶어서요.”

‘…뭐야.’

얼굴의 화끈함을 느낀 도희는 괜히 볼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요. 저도 오늘은 한 잔만 하죠, 뭐.”

*     *     *

재즈 음악이 잔잔히 울려 퍼지며 어둑한 공간까지 가득 메운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네요.”

“그런가요?”

“조명이 어둡잖아요.”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눈부셨다.

그런 도희를 보며 도하도 작게 따라 웃었다.

“선곡도 좋네요. 여기 라운지 바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와보셨어요?”

“로비에 적혀 있던데요.”

“그래요? 난 왜 못 봤지.”

직원에게 따로 물어봤단 말은 굳이 하지 않는 그였다.

“맨날 소주만 마시다가 칵테일은 오랜만이네요.”

“저는 술이 오랜만입니다.”

“회식 때 한 입도 안 드셨어요?”

“도희씨가 제 것까지 다 드셨잖아요.”

“헐.”

충격 받은 척 입까지 틀어막은 도희였다.

“농담입니다.”

“뭐, 인정! 그날 제가 많이 마시긴 했죠. 으, 다음날 숙취 생각하면 정말… 오늘은 적당히 마실 거예요.”

몸을 감싸며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한 도희는 칵테일을 홀짝 들이켰다.

“취하신 거 또 보고 싶은데.”

“네? 그 꼴을요?”

“귀여웠습니다.”

“푸흐, 그게 뭐가 귀엽다고…….”

도희는 뻘쭘한지 홀짝거리던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켰다.

도하 눈엔 지금 모습도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지금도 귀엽습니다.”

“네? 아, 도하씨 정말…….”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 한 도희의 입가에 한가득 미소가 걸렸을 때.

“강도희.”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

다신 듣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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