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68)화 (68/120)

067화 네 탓이 아니다.

의사는 6시간 후 재확인을 한다며 돌아갔다.

“…어떻게 된 거야?”

강아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 가득한 표정의 강아를 본 도희는 그저 말없이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     *     *

“검진 때문에 하루 입원하셨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셨다고?”

넋이 나갔던 강아는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응… 하아… 나 진짜 어떡해. 도희야, 우리 엄마 어떡해.”

그렇게 강아는 다시 말을 잇지 못한 채 도희에게 안겨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울어. 참지 마. 그냥 펑펑 다 쏟아내.”

누구보다 혼자인 외로움을 잘 아는 도희였다.

강아를 감싸 안은 도희의 눈시울도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그녀의 눈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지옥 같은 밤이 흘렀다.

의사는 6시간이 지난 후, 아침이 밝고도 한참 후에나 나타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과 나타난 그는 무덤덤한 말투와 표정으로 1차 판정 후 2차 판정까지 뇌사 판정을 받아야 최종 뇌사 판정이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자력 호흡이 불가하고, 뇌간 반사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지금 뇌파를 보시면 아까와 마찬가지로 뇌사상태로 판단됩니다.”

“그 말씀은…….”

눈물이 말라 퀭한 강아의 눈에선 더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이같이 뇌 기능이 정지한 경우 수일 내지, 2주 내 심정지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되어 저도 죄송스럽습니다.”

이어진 의사의 말은 강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동안 원인 모를 심질환으로 환자분도 너무 힘드셨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환자분을 위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2주 내로 심장이 멈춘단 말씀이세요? 그… 왜 뉴스에서 보면 식물인간 상태로 몇 년도 있고 하잖아요?”

간절하게 울리는 강아의 목소리에 의사는 고개를 한차례 내젓더니 덤덤하게 답했다.

“식물인간 상태는 대뇌의 손상 혹은 대뇌와 뇌간 사이의 연결이…….”

“쉽게 말하면요?”

“다릅니다. 식물인간은 자가 호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어머님을 보시면 호흡기에 의지하고 계시죠?”

강아와 도희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 얼굴 위에 올려진 호흡기로 향한다.

“쉽게 말해 식물인간은 일부 뇌기능의 정지라고 친다면, 어머님은 지금 뇌의 모든 기능이 정지된 상태라는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강아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괜찮아?”

도희에게 기댄 강아는 고갤 살짝 끄덕인다.

“…살 가망성이 아예 없단 말씀이신가요?”

“죄송합니다.”

의사가 고갤 숙이자, 뒤이어 서 있던 의료진들도 그를 따라 고갤 숙였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거네요. 그럼… 그냥 이렇게 엄마 심장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단 말인 거죠…….”

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은 다시 강아의 눈에 고이기 시작했다.

*     *     *

“먼저 보호자님께 어머님의 일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얼마 후,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라는 여자가 찾아왔다.

뻔한 위로의 말을 건넨 여자는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어머님은 이미 의학적 사망상태와 마찬가지예요.”

여자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이건 어머님의 선택입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강아의 느린 손길이 여자가 내민 서류를 힘겹게 받아들었다.

장기기증 동의서였다.

“저는 처음 듣는데요… 엄마가 언제 이런 걸…….”

“준비하신지 꽤 오래되셨습니다.”

강아는 말없이 서류를 읽어내려 갔다.

그리고 서류의 끝자락, 서명란에 적힌 엄마의 이름을 본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려 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혼자…….”

숨이 콱 막혀 숨쉬기가 힘들다.

“빠른 결단을 하셔야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루 평균 5분의 환자가 장기기증을 받지 못해 죽고…….”

여자가 한참을 장기기증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강아와 도희는 말없이 들을 뿐이었다.

여자가 나가고, 강아는 오랜 시간 멍하니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     *     *

1인실도 병원은 병원인지 이유 모를 답답함이 밀려왔다.

도희는 넋이 나간 강아를 억지로 병원 로비로 끌고 나왔다.

“조심해. 뜨거워.”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던 강아는 도희가 준 하얀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땡큐.”

컵에 담긴 커피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김이 얼굴에 와 닿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고소한 커피 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후.”

밀려오는 답답함에 크게 숨을 쉰 강아였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또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어? 꼬마야.”

귀여운 바가지 머리의 남자아이가 강아에게 다가온다.

“꼬마 아니고 모세.”

강아의 입가엔 옅디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모세 안녕. 나도 아주머니 아니고 누나.”

아이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퇴원 안 한 거니?”

사고 날 이후로 처음 만난 둘이었다.

“검사받으러 왔어요.”

“아… 사고 때 다친 곳이 아직 덜 나은 거야?”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요. 원래 매달 한 번씩은 와요. 아줌마도 어디 아파요?”

“다행이네… 아줌마는 안 아파. …아줌마 엄마가 아파.”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앉아 있는 강아의 머릴 쓰다듬었다.

“좋아질 거예요.”

아이의 똘망똘망한 눈을 본 강아는 작게 웃어 보였다.

어른을 위로할 줄 아는 의젓한 아이였다.

“그랬으면 좋겠다. 모세 너도 아프지 말고.”

“어릴 적에 머리가 아팠는데, 지금은 안 아파요.”

강아는 모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 가지런히 정돈된 머릴 헝클였다.

“누나가 기도해 줄게. 쭉 아프지 말라고.”

“저도 누나 기도해 줄게요.”

강아와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도희도 끼어들었다.

“이 누나도 기도해 줄게.”

도희는 의젓한 아이가 기특하고 귀여워 강아를 따라 아이의 머릴 쓰다듬었다.

아이는 낯선 도희의 손길에 조금 당황한 듯 뒤로 주춤거렸다.

“놀랐니? 미안해. 네 말에 이모가 감동받아서 그만…….”

당황한 도희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아이는 멀찍이 서 있던 검은 정장의 남자를 쳐다봤다.

“가 볼게요.”

강아에게만 손을 흔들어 보인 아이는 금세 멀어져 갔다.

“누구야? 네가 꼬맹이를 다 알고.”

“비밀이야.”

강아는 우주의 부탁대로 사고 날 이야기를 도희에게 하지 않았다.

강아의 말을 끝으로 묵직한 고요함이 둘 사이를 감쌌다.

“너 왜 아무 말도 안 해.”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아였다.

“무슨 말을 해.”

“괜찮냐고 왜 안 물어봐.”

“안 괜찮을 거 아니까.”

둘은 다시 말없이 커피만 홀짝였다.

“그래도… 면역이 좀 됐나 봐. 못 견딜 줄 알았는데 이렇게 견디는 거 보면…….”

도희의 하얀 손이 슬쩍 강아의 손위로 겹쳐진다.

“엄마 쓰러질 때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했어. …혼자 남으면 어떡하지, 그럼 난 이제 뭘 보고 살지. 다 의미 없어지는 건 아닌가 하고.”

“어머니는 너 예쁘게 사는 거 보고 싶으실 거야.”

“우리 엄마 이대로 정말 죽는 걸까? 아직 숨도 쉬고 몸도 저렇게 따뜻한데…….”

“…….”

도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까 그 여자 선생님 말씀처럼… 엄마 한시라도 빨리 보내드리는 게 더 편하게 해드리는 걸까.”

“강아 네 선택이야.”

도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도 너한테 강요하지 않아. 어머니가 기증하시기로 하셨어도 보호자 동의 없인 안 된대. 네가 보내드리기 힘들면 선택하지 않아도 돼.”

“우리 엄마같이 아픈 사람 돕는 거래잖아. 그리고 엄마 선택이니까… 따르는 게 맞겠지?”

“네 마음이 편한 대로 해. 하고 싶은 대로.”

도희는 힘없이 자신에게 기대는 강아를 꼬옥 안아주었다.

*     *     *

“별일 없었어요? 저 옷만 챙겨서 나가야 해요.”

축 처진 어깨의 도희가 집으로 들어섰다.

—네 탓이 아니다.

이미 도희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도사가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영단 재료라도 더 찾아볼 걸 그랬어요.”

—없는 걸 무슨 수로.

“혹시 모르잖아요. 산 전체를 뒤지면 찾을지도.”

—다시 가 보자꾸나.

“…이미 늦은 거 같아요. 나중에 가요.”

짐을 챙긴 도희가 집을 나서려 하자 서책이 가방으로 날아들었다.

—같이 가자꾸나.

도사는 밤에 자릴 비우는 도희를 대신해 집에 남아 있었다.

환한 낮은 괜찮다 쳐도,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밤에 악을 부르는 향낭만 달랑 집에 두기엔 불안해서 취한 조치였다.

“저 며칠 연차 냈어요. 당분간은 집에 못 들어올 건데 향낭 때문에 또 도둑 들면 어떡해요.”

—가지고 나가면 될 것 아니냐.

“예? 그걸 가지고 다닌다고요?!”

—그럼 내가 이리 매일 밤을 지키고 있으랴?

“아니, 뭐 그건 아닌데…….”

—나도 집은 답답허이.

‘향낭은 좀 불안한데…….’

악을 부르는 향낭을 가지고 다닌다니, 영 찝찝한 도희였다.

—비싼 밥 먹고 헐한 걱정을 하는 게구나. 자네와 내가 있는데 무얼 그리 걱정할꼬.

‘그러니까 걱정이죠. 그러니까!’

속으로 생각하나, 입 밖으로 내뱉으나 같았지만, 차마 입 밖으론 내뱉지 않은 도희였다.

*     *     *

도희가 병실로 돌아오니 강아는 아침에 봤던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라는 여자와 이야기 중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원하실 거예요.”

“…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나요?”

“곧 수술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

조심히 강아 옆자리에 앉는 도희 귓가에 도사의 전음이 들려온다.

—이상하구나.

‘뭐가요?’

—이 여인은 어찌 이런 기운을…….

‘이분요?’

도희는 친절히 설명을 늘어놓는 여자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다른 이에게 해를 입히는 것인지, 득을 주는 것인지…….

선한 인상의 여자는 진심을 담아 강아를 위로하고 있었다.

‘해를 입혀요?’

—탐욕이 가득한 묘한 기운일세. 악에 가까운 기운이야.

악이란 단어에 도희는 표정을 지워 버렸다.

“이제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모든 설명이 끝낸 여자는 강아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펜을 든 강아의 손이 움직이기 직전.

—이, 이 찢어 죽일 것이!

도사의 고성에 도희는 급히 서명하려는 강아의 손을 막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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