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69)화 (69/120)

068화 귀한 목숨

“강아야, 잠깐만.”

불쑥 튀어나온 손 하나가 강아의 손을 잡아 세웠다.

그 순간 선했던 여자의 얼굴엔 어둠이 스몄다 사라졌다.

다시 표정을 고친 여자는 애써 웃으며 물었다.

“더 궁금하신 점이라도…….”

“하루만 더 생각해 볼게요.”

“혹시 어떤 점 때문에…….”

“내일 뵐게요. 이만 가 주시겠어요?”

도희는 여자를 쫓아내듯 병실에서 내보냈다.

문을 잠그려 했지만 병실 문은 잠금장치가 없었다.

닫힌 문을 확인한 도희는 그것도 불안한지 아예 문에 기대섰다.

“이강아,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어.”

방금 전, 도사의 말대로 의자 뒤로 간 도희는 살짝 찢은 서책 종이를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트렸다.

여자와 마주 보고 앉아 있던 강아는 그런 도희를 흐린 눈으로 힐끔 보고 말았었다.

“강도희, 너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왜 그래.”

“나도 아직 몰라. 도사님 이제 말씀해 보세요. 대체 무슨 일인지.”

곧 도희 가방 속에 있던 서책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일단 내가 저 여인을 봐야겠구나.

이제 도사의 말은 강아에게도 들렸다.

“뭐야! 도사님 혹시 다른 방법이 있어요?!”

흥분해서 벌떡 일어선 강아의 목소리는 크게 떨리고 있었다.

—본래 심장이 좋지 않다고 하였느냐?

“…네 원인은 모른대요.”

—내가 저 여인에게 닿아도 되겠느냐?

“네, 그럼요.”

강아의 허락과 함께 날아오른 서책은 침상에 누운 여인의 손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곧이어 서책은 눈부시도록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역시 이상하구나. 분명 머리가 기능을 못 한다고 하였다지?

“네, 뇌사상태라고 했어요. 혼자 호흡도 못 하는 상태라고.”

—호흡을 못 한다고 하였다?

강아와 도희가 격하게 고갤 끄덕였다.

—이 여인의 입을 막은 물건을 떼어 보거라.

“그게 호흡기예요. 호흡기를 떼라고요?”

—머리의 내상은 있으나, 모든 기능이 정지한 건 아닐세. 그렇다면 어찌 이 여인이 꿈을 꾸고 있겠나.

“…엄마가 꿈을 꿔요?”

강아는 여인이 누워 있는 침대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내상도 치료가 불가할 정도는 아닐세.

“정말요? 진짜요? 도사님이 치료할 수 있어요?”

강아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크흠… 당장은 불가하나, 방도가 없는 건 아니란 말이었네.

“도사님 말대로라면 뇌사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의문스러운 표정을 한 도희가 끼어들었다.

그 순간, 강아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호흡기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도희야, 이리 와봐!”

호흡기를 들지 않은 강아의 다른 손은 여인의 코 밑에 닿아 있었다.

“숨 쉬는 거 같지 않아?”

도희도 손을 갖다 대었다.

분명 코에선 미세한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럼 대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오진 아니야? 우리 엄마 살 수 있는 거야?”

도희는 도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사님 병원 실수인 거예요?”

분명 ‘찢어 죽일 것들’이라며 소리친 도사였다.

실수라고 해도 이상했다.

‘아니, 오진이면 오진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혹시 소송 걸릴까 봐?’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들은 첫마디는 “아, 회장님 기다리시는데 빨리 싸인이나 하지. 힘들게 찾았는데 작업이 여기서 밀리네.” 이거였네.

‘회장님?’

“근데 뭘 힘들게 찾았단 말이죠?”

—낸들 알겠느냐. 문제는 그다음 말이다.

침을 꼴깍 삼킨 도희는 도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끄응…….

도사는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뭔 말인데 뜸을 들여요.”

—상처받지 말거라. 악한 자의 말이니.

도사의 말에 도희는 강아의 손을 끌어 잡았다.

강아는 고갤 끄덕이며 괜찮다는 눈짓을 보냈다.

—“이 여자가 이 작업이 얼마짜린 줄 알고 이러나. 네 엄마보다 귀한 목숨 살리는 거라고.”

“……!!”

“……!!”

동시에 벌어진 입을 막은 두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     *

도희의 전화를 받은 우주가 헐레벌떡 병실로 들어섰다.

그의 눈엔 창가에 뒤돌아서서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과 침대의 누운 중년 여성의 손을 잡고 엎드려 엉엉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우주가 힘겹게 입을 열자, 뒤돌아 서 있던 여인이 고갤 돌렸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눈물범벅인 도희였다.

“…형사님.”

한달음에 도희 곁으로 다가온 우주는 도희를 꼬옥 감싸 안았다.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제발 도와달라며 통곡하는 전화를 받고 달려온 우주였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너무… 너무…….”

우주는 다음 대답을 묵묵히 기다렸다.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허어어엉어엉. 흐으…….”

도희는 숨까지 헐떡이며 갑자기 미친 듯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엔 끝도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도희가 크게 소리 내어 울자, 침대 옆에 앉아 있던 강아도 고갤 젖혀 들더니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이런 개XX 내가 다 죽여 버릴 거야! 인간도 아닌 *&^*$들!”

강아의 입에서 차마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흘러나왔다.

“진짜 인간도 아닌 XX들 진짜 가만 안 둬! 내가 씨&%$**!”

한술 더 뜬 도희의 비속어에 머리가 어질해진 우주는 그녀들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     *     *

멘탈이 나간 도희와 강아는 머리가 텅 빈 공허한 상태였다.

머리끝까지 격하게 솟아오른 화를 억지로 억누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희였다.

그나마 침착한 도사의 말에 따라 우주를 부른 도희였다.

“병원에서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주의 질문에 이제는 조금 진정된 강아가 입을 열었다.

“아파서 온 게 아니라 검진한다고 하루만 입원한 거였어요. 하… 내가 옆에 있어야 했는데, 엄마가 간단한 검진이라 괜찮다고 그래서…….”

얼굴을 감싼 채 고갤 떨어트린 그녀는 크게 숨을 내뱉은 뒤 다시 힘겹게 고갤 들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몇 번이나 심정지가 왔대요. 그때마다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호흡이 끊겼을 때 뇌에 쇼크가 와서 뇌 손상을 일으켰다고…….”

“하, 우리가 뭐 의사가 아니니까 그게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네.”

눈이 팅팅 부은 도희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건 일단 알아보죠. 그리고 나서는요?”

“그리고는…….”

강아의 설명이 끝나자 고개를 갸웃거린 우주가 물었다.

“근데 두 분은 어머님이 자가 호흡이 가능하신지 어떻게 아신 거죠?”

“우, 우연히요. 우연히.”

—그냥 털어놓거라.

‘털어놓긴 뭘 털어놔요! 도사님도 더 알게 되는 건 싫다면서요.’

—저자가 천치가 아니라면 더는 속지도 않을 터.

“우연히 동의서에 서명하는 걸 중단한 뒤에 또 우연히 자가 호흡하는 걸 알았다?”

“네!”

“아까 의심스러워서 동의서 서명은 내일 하신다고 돌려보냈다 하셨죠? 어떤 부분이 의심스러웠던 거죠?”

‘도사님 이렇게 될 거 다 알고 부르셨구나?’

—내가 네 머리 위에 있느니.

평소 같으면 개연성 있게 상황을 꾸며냈겠지만, 둘 다 종일 우느라 머리가 띵한 탓에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뱉어 버린 강아와 도희였다.

“우주씨.”

“그 소린 언제나 듣기 좋네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오… 저도 드디어 도희씨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건가요?”

“네?”

“전 도희씨 믿어요.”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 뒤로 이어진 우주의 말은 도희를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뭐, 신내림, 무당 같은 건가요?”

*     *     *

“무당이거나, 귀신을 본다거나, 초능력자라거나… 별별 상상을 다 했는데 이건 생각도 못 한 장르네요.”

“제가 그렇게 이상했나요?”

“아뇨. 그저 아름다웠는데요?”

눈이 가늘어진 도희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요즘 제 관심사가 도희씨뿐이라서요. 도희씨가 벌인 일 중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긴 했죠.”

“그렇게 허술했다니, 충격적이네요.”

“증거도 있는걸요?”

“네?”

“일단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우주는 자신의 앞에 놓인 누런 양피지 서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도희씨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 책이…….”

“염치없지만 지금이라도 엮이고 싶지 않으시면 만지지 않으셔도 돼요. 붓도 있으니까 전부 꿈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하하… 난 도희씨랑 엮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인데.”

말과 함께 거침없이 손을 내민 우주였다.

—반갑네.

귓가에 울리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들은 우주의 입가엔 뜻 모를 미소가 떠올랐다.

*     *     *

“예.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우주가 두 여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일단 약물검사는 맡겼습니다.”

“약물이 나오길 바라야 하는 건가요?”

“만약 누군가 고의로 멀쩡한 어머님을 하루 만에 이 상태로 만들었다면 그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우주가 의사 친구에게 자문한 결과, 다량의 근육 이완제와 수면제를 동시 투입 후 호흡을 막는 것이 빠른 뇌 손상을 입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단다.

“근육 이완제가 그렇게 무서운 약물이었나요?”

“멀쩡한 사람이라면 숨이 막히는 호흡 곤란 상태가 온다면 정신이 번쩍 들었겠죠. 가령 코와 입을 막는다든가…….”

사색이 된 강아를 본 우주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곧 말해 달라는 그녀의 눈짓에 애써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근육 이완제와 수면제를 다량으로 맞은 상태라면.”

“…누군가 숨을 막아도 반응할 수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또한 자가 호흡이 가능한 상태라면 뇌사 판정은 나올 수가 없답니다. 그럼 의사도 한 통속이라는 거죠.”

“의사도 장기 코디도 다 한통속이다? 허!”

“뇌사 판정을 받더라도 장기 기증 전에 뇌사판정위원회가 나와서 조사를 한답니다. 사실 그전까진 뇌사 추정이고 조사위원회에서 뇌사 판정을 받아야 뇌사자라네요.”

“설마 그 사람들까지?”

“그거야 모르죠. 서류 조작으로 가능한지, 누군가 직접 나와서 조사하는지는.”

“아니어야 할 텐데.”

오랜 시간 입을 다물고 있던 도희였다.

우주와 강아가 대화하는 내내 조용히 병실을 빙글빙글 돌던 도희의 발은 이제야 멈춰졌다.

“내 생각이 아니어야 할 텐데.”

“뭐, 뭐가?”

“도사님의 말과 지금의 상황을 종합해 본 결과.”

강아는 잠자코 도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나, 돈 많은 회장이라는 사람이 장기 기증자를 찾고 있다.”

멈췄던 도희의 발은 다시 병실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둘, 우연히 어머님이 그 회장님에게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조건이다.”

다시 멈춰선 도희의 입이 벌어진다.

“셋, 고액의 돈을 받기로 한 관련자들이 계획적으로 어머님을 저 지경으로 만든 후 장기이식을 준비 중이다.”

“…….”

“넷…….”

강아의 몸은 넷을 듣지 못하고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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