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71)화 (71/120)

070화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또 여론을 이용하실 생각이군요.”

도희의 여론 이용을 이미 경험한 우주였다.

“너무 섣불리 기사 내는 거 아니야?”

강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일단 다른 피해자라도 없게 해야지. 우린 보호자로서 의혹을 제기할 뿐이야.”

“그래. 그럼 내가 기자님 만날게.”

“제보자는 내가 될 거야.”

“야! 강도희, 소송 걸려도 내가 걸려.”

“보호자님은 빠져서 어머님 걱정이나 하세요. 그전에 너부터 챙기고. 계집애가 꼴이 그게 뭐야.”

“야! 너나 씻고 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가만있냐. 다들 나서서 이렇게 도와주는데…….”

“그럼 나중에 너도 도와.”

“야 그게 무슨…….”

“제보 내용은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알아서 할 일을 찾은 도하였다.

“그럼 전, 기자한테 연락부터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바쁘겠네요.”

*     *     *

[유명 병원의 수상한 의혹.]

[대기업이 운영하는 모 병원이 최근 불법 장기이식의 장소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평소 원인불명의 심장질환을 앓던 A씨.

정기 검진을 위해 입원한 A씨는 바로 다음 날 뇌사 판정을 받았다.

보호자의 진술에 따르면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뇌사자는 불가한 정상적인 자가 호흡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병원의 뇌사 판정이 오진이라 판단한 보호자는 즉각 병원에 항의했지만, 병원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 수상한 점은 환자의 약물 검사를 의뢰한 결과, 다량의 근육 이완제와 수면제가 검출됐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보호자는 수소문한 끝에 최근 해당 병원에서 고위층의 불법 장기이식이 비밀리에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며 자신의 가족도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다.

병원은 기타 의혹 여부와 상관없이 뇌사 판정 오진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해당 병원에서 사건에 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사건의 귀추가 주목된다.

—설민기 기자— (비산일보)]

*     *     *

“기사는 내일 뿌려질 겁니다.”

“내용은 이 정도면 충분하네요.”

언뜻 보면 객관적인 시점으로 보이지만 의혹이 사실인 거 같으니 해명을 내놓으라는 글이었다.

“그쵸? 제가 아는 기자 중에 부정적 기사는 제일 잘 쓰는 기자예요. 찌르면 아픈 곳만 쏙쏙 골라서.”

도희의 눈에 기자 이름 뒤에 적힌 비산일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비산일보 기자가 비산병원을 까는 기사라니.”

“그러게. 이분 괜찮을까요?”

“괜찮을 걸요? 얘도 빽이 좋아서. 취미로 기자 놀이하는 인간이라 상관없을 겁니다.”

“병원에서 소송 걸고 그러진 않겠죠?”

“이름도 안 밝혔고, 제보자에게 받은 의혹 보도일 뿐이니… 뭐, 제재는 받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기자님에게 전해주세요. 누가 물으면 제보자가 병원은 어딘지 안 밝혀서 자기는 어느 병원인지도 모르고 기사 쓴 거라고.”

기자가 이슈될 만한 제보를 기사로 싣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역시, 도희씨. 크으.”

우주는 도희를 향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 후에 제보자에게 화살 돌리면 기자님은 괜찮으실 거예요. 역풍을 맞아도 제보자가 맞겠죠.”

그 제보자는 바로 도희였다.

“네가 역풍 맞으면 어쩌자고.”

“괜찮아. 자기들이 날 뭐 어쩌겠어. 죽일 거야?”

“너는 가끔 보면 진짜 대책 없어.”

“걱정 고맙다.”

“으!”

—내버려 두거라. 저 아집을 누가 말릴꼬.

침상 옆에 놓인 커다랗고 둥근 갈색 항아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도사는 항아리와 누워 있는 여인의 손을 오가며 기운을 전달하는 중이었다.

“항상 남이 피해 보실 것까지 생각하시나요?”

“예?”

“도희씨는 생각보다 친절해요.”

“그 생각이 바닥에 붙어 있었나 봐요.”

“도희씨 생각은 여기 밑으로 내려간 적 없어요.”

우주가 펼친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 위로 올리며 쓰다듬었다.

“풉, 푸하하하.”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아에게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죄송해요. 두 사람 말하는 게 너무 웃겨서… 푸웁, 혼자 보기에 아깝네요.”

오전 반차만 썼던 도하는 출근한 상태였다.

혼자 허리까지 꺾어가며 웃던 강아는 돌연 정색하더니 떠오른 표정들을 모두 지워 버렸다.

“하, 내가 미쳤나 봐. 별게 다 웃기네… 이 상황에서…….”

“뭐래, 웃어야 복이 온대. 청승 그만 떨고 퇴원 수속부터 하자.”

*     *     *

도희는 로비에 앉아 퇴원 밟는 강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곁으로 한 아이가 다가오더니 도희를 향해 귀엽게 배꼽 인사를 한다.

어제 본 바가지 머리의 꼬맹이였다.

“안녕 모세야.”

“누난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응?”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걸 말하는 듯했다.

“모세도 기억력이 좋은가 봐. 누나도 기억하고.”

도희가 환히 웃어 보이자, 아이도 도희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나 다 잘될 거예요.”

아이는 뜬금없는 말을 내뱉으며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응? 그래. 모세 너도 다 잘 될 거야.”

다가온 아이는 멀뚱멀뚱 도희를 바라본다.

왜인지 아이의 눈빛이 부담스러운 도희였다.

“오늘은 머리 안 쓰다듬어 줘요?”

“응?”

‘꼬맹이는 꼬맹이네.’

도희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밥 잘 먹고 엄마 말 잘 들으면 건강하게 클 거야. 알았지?”

애써 아이에게 해줄 법한 말을 생각해 낸 도희였다.

“그럼 또 봐요, 누나.”

아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뒤돌아 걸어간다.

“강아 누나랑 인사 안 하고 가?”

“오늘은 누나 보러온 거라서요.”

“그래. 잘 가.”

아무래도 저번 일이 신경 쓰였나 보다.

‘낯가리던 아이가 웬일이래.’

*     *     *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사가 나가고 새로 옮긴 병원으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허위사실을 기정사실인 척 유포하시면 형사처벌은 물론…….”

“천 변호사님이라고 하셨나요?”

강아는 이미 만난 적이 있던 여자였다.

말이 끊긴 천 변호사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도희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혼자 법 아는 척하지 마시고.”

천 변호사의 입가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여긴 왜 오셨어요?”

공격적으로 말을 내뱉던 천 변호사보다 더 공격적인 말투의 도희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시는 거 같아 경고하러 왔습니다. 환자분을 생각해 여기까진 봐 드리겠지만 더 이상 선처는 없습니다.”

여자가 강아를 보며 말하자, 옆에 있던 도희가 대답했다.

“와! 그거 듣던 중 제일 웃긴 소리네요.”

팔짱을 낀 여자는 도도한 표정으로 도희를 쳐다본다.

“환자를 생각하다니! 누가? 그쪽이? 아니면 병원이?”

도희는 더 과장되게 비아냥댔다.

“보호자로서 의혹 제기도 못 해? 충분히 이상한 상황 아닌가? 아, 그쪽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고 혼잣말이에요.”

“사실 확인됐습니까?”

“그건 당신네가 확인해야지. 왜 우리가 해요?”

천 변호사는 도희에게 향했던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고 다시 강아에게 말했다.

“절대로 보호자님이 생각하시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봐, 이봐. 뭘 알고 말하는 건지.”

말끝마다 끼어드는 도희였다.

“저기요. 근데 그쪽은 누구신지?”

“그건 알 거 없고, 하던 거 계속하세요.”

애써 도희를 무시한 여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약물 의뢰를 어디에 어떻게 맡기신지 모르겠지만, 해당 약물은 비산병원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원하시면 저희 쪽에서 재검해보겠습니다.”

“그 결과를 어떻게 믿나.”

힘들게 표정을 꾸며내고 있는 여자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세로로 생겼다 빠르게 사라진다.

“뇌사 판정 시엔 확실한 뇌사 상태셨습니다. 의사 한 명만의 진단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후에 환자가 회복되어 자가 호흡이 가능해진 듯합니다.”

천 변호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병원은 잘못이 없단 말씀이신가요?”

굳게 닫혀 있던 강아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환자의 회복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병원에서도 도의적 책임은 느끼고 있습니다.”

천 변호사의 말은 병원은 잘못이 없단 말과 같았다.

“그래서요?”

이어 그녀는 서류 한 장을 강아에게 내밀었다.

이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은 강아였다.

“앞으로 환자의 모든 의료비용은 저희 쪽에서 부담하겠습니다. 보호자님도 오해를 푸시고…….”

“아하, 돈 받고 입 닫아라?”

여전히 도희를 무시한 채 말을 잇는 여자였다.

“어머님의 심장질환도 원인을 꼭 밝혀 치료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소정의 위로금입니다.”

꽤 두툼한 흰 봉투 하나가 탁자 위에 올려진다.

“맨입보단 낫네.”

봉투를 집어 든 도희가 곁눈질로 내부를 확인했다.

“에이~ 근데 너무 작다.”

“부족하시다면 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소란스러워지는 걸 원하지 않는 병원 측의 위로금이라고 생각하시죠.”

“얼마나요?”

여자의 입가를 차지한 건 ‘역시나’ 하는 비웃음이었다.

“섭섭하지 않게 준비하겠습니다.”

“강아야, 싸인해.”

“뭐?”

“싸인해. 위로금도 주고 앞으로 의료비용도 대준 대잖아.”

강아 머리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도희였다.

“돈 준다고 그냥 싸인해?”

“돈이라도 받아. 어차피 저쪽에선 증거 없다고 그냥 넘길 거 같으니까.”

“하.”

입을 가린 여자는 표정 관리에 여념 없었다.

“왜 웃죠? 웃긴가요 이 상황이?”

“현명하셔서요. 모쪼록 빨리 정리하시죠.”

결국 도희의 눈짓을 못 이긴 강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     *     *

“난 도저히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일단 하란 대로 하긴 했는데…….”

“걱정 마. 합법은 아니지만 죽이진 않을게.”

강아의 가느다래진 눈매가 도희를 노려본다.

“뭘 놀래. 농담이지.”

“진짜 그냥 이렇게 넘어가? 우린 그렇다 쳐도, 다른 피해자가 또 생길 수도 있는 거고!”

흥분한 강아에게 앉으라고 손짓한 도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넌 이제 빠져. 내가 할 테니까.”

“서명까지 다 했는데 뭘 더해.”

“너만 싸인했잖아.”

“저도 서명 안 했습니다.”

그녀들이 대화하는 동안 그들과 떨어진 침상 옆에서 묵묵히 회사 업무를 처리하던 도하였다.

“아니, 이 사람들아! 저기선 그 말이 아니잖아. 우리 전부…….”

“그건~ 쟤들 생각이고. 너는 너고, 우린 우리야. 너 혼자 이 일에 대해서 다신 언급하지 않는다고 동의한 거지. 우리까지 동의한 건 아니잖아?”

“강도희, 너어는 진짜…….”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도희의 입가를 차지한 악랄한 미소에 고개를 절로 내두르는 강아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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