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72)화 (72/120)

071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도희의 계획은 일명, 양동 작전이었다.

“네가 서명까지 했으니까 이제 쟤들은 우리가 포기했다고 생각할 거 아냐. 이때 증거를 잡아서 뒤통수를 딱!”

“그게 다야?”

도희의 설명을 들은 강아의 첫마디였다.

“이것보다 완벽한 작전이 어디 있다고.”

도희는 의아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증거는 어떻게 찾을 건데.”

“죽어라 쫓아다니면 뭐든 나온다니까?”

“언제까지?”

“증거가 나올 때까지?”

“네가 죽을 때까지는 아닐까? 이 멍청아! 쟤들이 이런 상황에서 뭘 또 하겠어?”

“증거 없애려고 정리는 하겠지.”

“이미 다 처리했겠지.”

한심하게 쳐다보는 강아의 눈빛에 결국 시무룩해진 도희였다.

“그럼… 음… 뭐 하나는 나오지 않을까? 헤헤.”

“잘도 나오겠다. 잘도.”

“야, 회장이란 사람이 일정까지 다 뺐다는데 어차피 불법으로 하는 일인데 어떻게든 몰래 하지 않겠어?”

이번엔 꽤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든 강아는 도희를 쏘아보는 눈빛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도희와 강아는 차분하고 감미로운 도하의 목소리에 빨려들었다.

도하의 작전을 듣던 강아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박! 그럼 증거도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도하가 설명한 작전은 도희는 안에서, 나머지는 밖에서 흔드는 작전이었다.

“그럼 저는 병원 내부자들 쫓아다니면서 상황을 살펴볼게요.”

“근데 고위층인 척 접촉은 누가 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오~ 도하씨 인맥이 좋나 봐요.”

“우 형사님이 해주실 겁니다.”

“우 형사님이요?”

목을 긁적이는 강아를 본 도희가 말했다.

“하긴, 형사님이 그쪽 정보도 알아 오셨으니까 선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쪽에서 안 도와준다고 하면?”

“물어보면 되지. 전화해 볼게.”

“그럼 그건 일단 물어보고, 여론으로 압박 주는 건 역시 글 올리는 게 최고인가? 기사는 이미 묻힌 거 같던데.”

이미 작성된 기사를 제외하고 새로운 기사는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저번처럼 내 계정에 올릴 수도 없고, 여기저기 커뮤니티라도 올려야 하나?”

“글은 제가 최대한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써보겠습니다.”

“그럼 도하씨가 쓰신 글 제가 퍼트릴게요.”

컴퓨터로 하는 일은 뭐든 자신 있는 강아였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이 정해진 넷이었다.

*     *     *

도하는 두 여자가 커피 한 잔을 마실 짧은 시간 동안, 인터넷을 흔들 만한 자극적인 글을 완성했다.

“일목요연하게 정말 잘 적었네요.”

“그러게. 너무 감정적이지도 않은데 읽다 보면 화가 난달까.”

“글의 화자도 지인이 전해 듣고 쓴 느낌이라 우리가 아니라고 발뺌해도 되겠어.”

노트북 앞에 옹기종기 붙어 도하의 글을 읽는 두 여자는 서로 글에 대해 칭찬하기 바빴다.

두 여자의 칭찬에 멋쩍게 웃어 보인 도하는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일단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들부터 올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번처럼 SNS는 위험합니다.”

‘저번?’

왠지 도희 실종 때를 말하는 듯한 뉘앙스에 도희와 강아는 의문을 담은 눈짓을 주고받았다.

‘뭐야, 다 안다는 듯이…….’

여러 커뮤니티의 창을 띄운 도하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저쪽에선 최대한 언론 막고 작성자 찾으려고 할 겁니다. 그럼 저흰 해외 IP로 우회…….”

“훗, 그건 제 전문이에요.”

알 만하다는 듯 고갤 끄덕인 도하였다.

“그럼 전 글부터 올리겠습니다.”

“초반 댓글 작업은 제가 할게요.”

의외로 합이 잘 맞는 두 남녀였다.

“그럼 난 비산병원 다녀올게.”

“너 혼자 괜찮겠어?”

걱정 담긴 강아의 눈빛에 눈부신 미소로 답하는 도희였다.

“인생은 원래 혼자야. 간다.”

*     *     *

타다다닥!

타다닥.

타닥!

분노에 찬 키보드 두드리는 소음과 차분하고 빠른 속도의 키보드 타자 소리가 합을 이뤄 병실 안을 메웠다.

각자의 노트북을 끼고 앉아 작업하는 둘의 모습만 보자면, 이곳이 사무실인지, 병실인지 구분이 힘들 지경이었다.

“그쪽은 반응 어때요?”

“이제 막 실시간 이슈 하단에 뜨네요.”

“여기도요. 댓글도 뜨문뜨문 달려요.”

도하와 강아의 합작품은 모든 커뮤니티 사이트의 실시간 핫이슈 자리를 떡하니 차지했다.

“이젠 댓글 작업할 필요도 없겠는데요?”

[이거 기사 난 일 아님? 대기업 병원?]

[ㅇㅇ 나도 이 사건 기사로 봄. 이 기사인 듯. 링크 http://vsnew.com.3214]

[피셜 뜸. BS]

[BS 병원이면 비X이네.]

강아는 뉴스 기사를 본 사람인 척 댓글로 게시글엔 적지 못한 정보들을 퍼트렸다.

“이 정도면 이제 저흰 빠져도 될 거 같습니다.”

이슈 목록에 진입하자 실시간으로 댓글들이 수십 개씩 달리며 사람들이 알아서 이곳저곳 퍼 나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도하의 말처럼 강아도 이젠 한발 물러나 흔적을 지울 생각이었다.

“네. 노트북 로그부터 지워야겠어요.”

“예. 저도 정리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자세가 흐트러질 법도 한데, 도하는 아침과 다름없는 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머리나 스타일까지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단정했다.

‘무슨 남자 피부가…….’

자신의 푸석해진 피부와 달리 생기 하나 잃지 않은 뽀얀 피부와 연한 핏빛 입술이 문뜩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듯한 눈매에 내리깔린 긴 속눈썹은 높은 콧대와 어우러져 누가 봐도 미남이라 인정할 만한 외모였다.

‘강도희, 이년은 복도 많아.’

도하도 피곤하긴 한지, 목을 돌리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물끄러미 도하를 바라보던 강아는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도하씨 정말 고마워요. 연차까지 빼시면서 이렇게 도와주시고… 저도 혹시 도하씨가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도와드릴게요!”

순간,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 도하는 멀뚱히 강아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망설이듯 입술을 달싹이는 그를 본 강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도희가 왜 도하씨를 믿고 부른지 알 거 같아요.”

도희란 이름이 등장하자 그의 입매가 슬며시 올라간다.

“어머, 이름만 들어도 좋으세요?”

강아의 말에 도하는 더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게요. 이름만 들어도 좋네요.”

“의외로 솔직하시네요. 쑥스러워하실 줄 알았는데.”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강아를 바라보며 입을 뗀 도하에게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강도희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무슨 짓을 했는지 복도 많네요.”

애써 시선을 거둔 강아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실시간 이슈 목록에 강아의 글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뭐야.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 뭐? 삭제?!”

도하도 급히 다른 사이트들을 확인했다.

“여기도 지워졌습니다.”

강아가 다른 곳에 올린 글들도 역시나 삭제되어 있었다.

“…비산에서 손 쓴 거 같습니다.”

도하와 강아의 눈이 마주 닿았지만 쏟아지는 허무함에 서로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하아! 그래 너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몇 초 만에 급변한 강아는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리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특이 사항은?”

“시간 외나 내일 장초에 비산 쪽은 잠시 정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비산? 전부?”

기획 관리팀은 부사장 황이재의 주식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팀으로 쓰이는 중이었다.

“일부라도 하시는 게… 인터넷에 올라오는 비산병원 관련 글이 심상치 않습니다. 비산 이미지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아 단기 하락은 피하기 힘들 거 같습니다. 보시죠.”

기획팀장이 내민 태블릿을 받아든 이재의 입가엔 오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비산에서 정리는 하고 있지만, 확산세가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비산병원이라… 보나 마나 이거 또 강도희가 꾸미는 짓인데…….’

이미 연차를 쓴 도희가 비산병원 기사와 관련되었다는 걸 보고 받은 황이재였다.

“밀어줘.”

“예?”

“이 글 더 확산되게 밀어주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산 관련주 정리하지 마.”

“예.”

부사장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도 기획부장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판이 이렇게 깔리다니… 훗.’

황이재의 비틀린 입매엔 음흉하고도 섬뜩한 미소가 점점 진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     *     *

“어머니는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의 첫마디였다.

“넌 오자마자 네 어미부터 찾니. 앉아.”

여전히 강압적인 아버지의 말투에 아들은 쓰게 미소 지어 보였다.

하지만 부탁하러 온 입장인지라 그의 말을 따른 아들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용건만.”

“여전하시네요.”

냉담한 표정의 우정모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막 내려놓은 찻잔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찻잔이 받침과 부딪히며 날카롭게 울렸다.

“이것 좀 알아봐 주실래요? 수사상 필요해서요.”

“네가 변명을 다 붙이는구나.”

역시나 날카로운 우정모였다.

“알아보시고 연락 주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요. 그리고 조건은 이번 아버지 유세 도와드리는 걸로 할게요.”

“집에 들어올 거냐.”

“그건 생각해 볼게요.”

“선 잡아 놨다.”

“예?”

우정모는 구겨진 우주의 표정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장소랑 시간은 따로 보내마.”

“지금 시대가 어느… 하…….”

정모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 조건은 이것이었다.

정모가 가족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은 없었다.

“알아서 하세요. 아버지가 들고 온 카드 보고 생각해 보죠.”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이는 정모를 본 우주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집을 나섰다.

마당을 나서는 그의 시야엔 우주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늘씬한 여성이 이제 막 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야 어머니가 여행 간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 우주였다.

“하아… 여전하시네.”

유난히 그늘진 우주의 얼굴엔, 따사로이 닿는 햇빛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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