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화 콩밥 먹고 정신 제대로 차려!
자신이 살면서 경찰서 취조실에 오게 되리라 상상도 못 한 도희였다.
취조실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더 삭막했다.
“강도희씨 전부 인정하십니까?”
“인정하긴 뭘 인정해요. 아니라니까? 돈 뜯으려고 없는 사실 지어내서 협박한 적 없습니다.”
“인정 안 하신단 말씀이시죠.”
“형사님도 눈이 있으시면 기사 읽어 보세요. 병원에서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 만에 뇌사 판정받았는데 알고 보니까 뇌사자가 아니래. 안 이상해요?”
“…….”
“게다가 그 병원에서 불법 장기이식이 행해진다는데 의심 안 하겠냐고요!”
“증거 있습니까?”
“녹취 파일 못 들었어요? 드렸잖아요.”
“조작한 증거 말고 다른 증거 말입니다.”
“조작이라뇨?”
형사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랑 당신들이 짜고 비산에 돈 뜯으려고 이 짓 벌인 거잖아. 저쪽에서 다 자백했는데 이 아가씨가 자꾸 발뺌하네. 아가씨, 자꾸 그러면 아가씨만 곤란해져요.”
“자백요? 짜긴 뭘 짜요? 설마 그 브로커랑 우리가요?”
“브로커는 무슨. 그 남자 비산병원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 거 다 밝혀졌으니까 연기 그만하십시오.”
“하! 난 그 남자 얼굴도 모르는데 뭔 소리예요!”
“이래서 다 속았구만.”
“예?”
형사의 뜬금없는 말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찾아왔다.
“당신이 그 얼굴로 그렇게 말하니까 다 속을 만하네. 허! 참, 나도 속겠어!”
“후… 속이는 거 아니라니까… 도대체 누가 뭘 속여요! 형사님도 비산에 돈 받으셨어요?”
“허! 이제 생사람까지? 당신한테 속은 형사 하나도 정직 먹었어, 이 여자야! 이번에 콩밥 먹고 정신 제대로 차려!”
삿대질에 침까지 튀겨 가며 열을 내던 남자는 문을 ‘쾅’ 닫으며 취조실을 나섰다.
* * *
‘당신한테 속은 형사 하나도 정직 먹었어.’
형사의 말을 되뇌던 도희는 큰 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감쌌다.
그가 말한 형사는 우주일 것이다.
‘함정이었구나.’
자신도 우주도 함정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하필 이럴 때 도사님도 병실에 있는데…….’
어차피 강아와 어머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걱정되어 두고 온 서책이었기에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강아한테도 경찰이 간 거 같던데 걔도 잡혀 왔나? 그럼 병실엔 누가…….’
형사는 ‘당신들’이라고 했다.
‘당신들이 누구, 누구지.’
우주가 ‘속아서’ 정직을 당했다고 표현했으니 직접 고소당한 건 아닌 듯했다.
‘그럼 도하씨는…….’
이곳에 갇혀 있는 도희로써는 아무것도 단정 지어 생각할 수 없기에 답답해 죽을 노릇이었다.
‘생각하자, 강도희.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생각하자.’
형사의 말대로 브로커 행세했던 남자가 도희까지 물고 늘어지는 자백을 했다면 애초에 미끼일 가능성이 컸다.
‘비산에서 돈 줄 때부터 다 계획한 건가? 근데 우리가 접근할지 어떻게 알고?’
불가능했다.
더는 이 일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동의서에 서명까지 하고 돈까지 받은 마당에 고위층으로 위장해 접근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혹시 그럼 그 브로커를 소개해 준 사람이…….’
우주가 아버지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이 떠오른 도희였다.
‘자기 아들을 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도저히 풀리진 않는 의문이다.
“도희씨.”
그때,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하씨.”
유치장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된 도희와 도하였다.
* * *
좁은 접견실엔 달랑 책상 두 개만이 놓여 있었다.
“일단 이 친구가 도희씨 변호를 도와줄 겁니다.”
“반갑습니다. 하 대원입니다.”
뿔테 안경을 낀 깔끔한 인상의 남자는 전형적인 변호사 상이었다.
“네. 강도희입니다.”
도하가 하 변에게 눈짓하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예.”
하 변이 자릴 비우자 도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뭐, 나름… 생각보단 괜찮네요. 도하씨는 괜찮은 거예요? 강아는요?”
“전 괜찮습니다. 일단 병실엔 취재진이 몰리는 바람에 다른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취재진요?”
“기사가 나갔습니다. 보호자가 친구와 짜고 사기꾼 섭외해서 계획적으로 벌인 짓이라고…….”
“나랑 강아가?”
“예.”
“기사가 뭐라고 나갔어요?”
“평소 심장이 안 좋은 어머님을 이용해서 비산병원에 공갈 협박해서 돈 받아 낼 목적으로 벌인 짓이라고…”
“…인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짓이네요.”
“여론이 순식간에 뒤집어졌습니다. 상황이 좋진 않아요.”
한숨을 뱉으며 힘겹게 말하는 도하는 처음이었다.
“강아는요?”
“강아씨는 경찰이랑 나간 거 같긴 한데… 아직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다른 경찰서로 간 거 아닐까요?”
“일단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게 긴급체포까지 할 일인가?”
“금액대가 커서 그런 거 같습니다. 비산의 입김도 작용한 듯합니다.”
침착한 도하가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혹시… 병실엔…….”
괜히 도하에게 부담 주는 건 아닐까 말을 꺼내기 어려운 도희의 입술이 달싹였다.
“어머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설 경호를 붙여 놓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은 도하였다.
도하에 대한 믿음에 도희는 그저 고갤 끄덕이고 말았다.
“정말 고마워요. 도와주신 은혜 전부 다 갚을게요… 도하씨랑 우주씨는 정말 괜찮은 거죠?”
“예. 전 괜찮습니다만 우 형사님이 연락이 안 됩니다.”
“아까 여기 형사님이 그러시던데 정직 먹은 거 같아요. 저에게 속아서…….”
“여자에 빠져 함정 수사한 형사.”
“그것도 기사에 났어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도하는 말을 이었다.
“서부서에 알아보니까 우 형사님은 정직으로 마무리될 거 같습니다. 당장은 연차 내셨다는데 왜 연락이 안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따로 사정이 있을 거 같습니다.”
“하… 죄송해요. 우주씨도 도하씨도 저 때문에…….”
이마에 올린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지만, 북받치는 감정만은 도하에게까지 가닿았다.
“곁에 없는 것보다.”
도하의 손에 의해 도희 눈을 가리던 손이 내려진다.
“이렇게 곁에 있는 게 더 좋습니다.”
어느 때보다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도하의 얼굴이 도희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 * *
쾅쾅쾅!!
쾅!
쾅쾅!
성인이 되어서는 갇혀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어릴 적, 우주의 고된 기억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
쾅쾅쾅쾅!
“문 열어!!!”
회색 철문에는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어 검게 새겨진 손도장들이 가득히 찍혀 있었다.
“문 열라고오오!”
혹시 지나가는 누구라도 듣고 신고해 주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 보지만.
“아버지이!!”
이 넓은 주택 지하실에 있는 우주의 울부짖는 소리가 정원을 건너 담장을 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쾅쾅!
“우정모 이 개새X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소리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은 그였기에, 우주는 쉼 없이 감정을 뱉어 내고 있었다.
“하아…….”
끝없는 자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우주의 머릿속엔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강도희…….”
그의 몸이 철문을 기댄 채 스스르 무너진다.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모두 자신이 한 짓이라 소리치고 싶은 그였지만, 애석한 철문은 끝내 열릴 줄을 몰랐다.
그렇게 우주는 또 이곳에서 평생을 증오하던 아버지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 * *
“반갑습니다. 황이재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을 무시한 남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자리에 느리게 앉았다.
“화정 기획 부사장님이 약속도 없이 여기까지…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황이재가 허릴 숙여 보이자, 남자는 으레 불편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뭐,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차나 한잔하시고 가시죠.”
“예. 감사합니다.”
속없이 웃는 황이재를 보며 비웃음을 띤 손남수 사장은 작게 혀를 찼다.
황이재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무려 비산 그룹의 사장이었다.
화정 그룹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 한들 비산 그룹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작은 일로 온 거 같진 않고.”
빨리할 말만 하고 나가라는 신호였다.
“예. 귀한 시간 오래 빼앗지 않겠습니다.”
또 한 번 일어난 황이재는 이번엔 허릴 더 깊게 숙였다.
자신보다 강자 앞에선 철저히 비굴해지는 황이재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비굴해지는 것 따윈 아무 상관없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내 생각 읽어 봐.”
“뭐?”
“내 생각 읽어 보라고!”
뜬금없이 찾아온 백 실장은 막무가내였다.
“하… 나 지금 너랑 실랑이할 기운 없어. 돌아가.”
“너 신내림 받았어? 뭐, 무당이야? 아니면 귀신이라도 부려?”
또 같은 레퍼토리다.
우주와 비슷한 상상을 한 그녀였다.
‘하긴, 이 여자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긴 해.’
백 실장이 산에서 당한 일은 그녀의 머리로는 설명이 불가했다.
“어, 뭐 비슷해.”
“그럼 네가 날 좀 도와줘.”
“뭘 도와줘? 넌 알아서 잘 빠져나갔잖아?”
그녀가 도희에게 넘긴 증거 덕분에 백 실장 본인은 법망을 무사히 피해갈 수 있었다.
그녀는 미행 및 약점만 캐서 전달했을 뿐, 실질 행동자는 박 비서였기에 박 비서만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 재판 중이었다.
“그날 후로 도망자 신세라고. 너 때문에.”
부사장에게 쫓기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싸늘한 눈동자엔 도희를 향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하다.
“그건 네가 인생을 잘못 살아도, 한참 잘못 살아서고.”
“너 아니면 이렇게 될 일 없었다고!”
“누굴 탓해. 다 네가 뿌린 거지.”
그녀가 법망을 피했다고 한들, 부사장의 돈을 받고 남의 뒤를 쫓아 약점을 캔 것만은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 약점으로 부사장과 박 비서가 무슨 짓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강도희!”
귀를 파고드는 찢어질 듯 날카로운 목소리에 도희는 몸을 움찔했다.
“나 지금 목숨 걸고 온 거라고. 그러니까 내 생각 읽어.”
“내가 왜?”
“뭐?”
“내가 왜 네 말을 따라야 하냐고.”
백 실장의 불안한 눈동자는 쉼 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리고 그녀의 생기 잃은 입술이 몇 번 달싹이더니 힘겹게 입이 열린다.
“안 그럼 내가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