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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78)화 (78/120)

077화 어딥니까?

고급 주택가 구석진 골목에 세워진 차량의 양쪽 문이 동시에 열렸다.

곧 다시 문이 닫히지만, 타는 이도 내리는 이도 없다.

“잘 찾아오셨네요?”

앞이 보이지 않는 도포가 답답했던 우주는 훌러덩 도포부터 벗어젖혔다.

“지하로 가는 입구가 안방 침실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도하 딴에는 농담이었다.

“저희 아버지가 좀 그래요. 제정신이 아니시라.”

하긴, 아들은 집 지하실에 가두는 아버지가 흔하진 않았다.

“원래 부모답지 않은 부모들도 많죠.”

우주는 의아한 눈빛으로 도하를 쳐다봤다.

“겪으신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가볍게 어깨를 들썩인 도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지이이잉—

“예, 도희씨.”

—도하씨, 어디예요! 빨리 도망쳐!

“예?”

차 안을 울리는 도희의 다급한 목소리에 도하와 우주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     *     *

“그래서 그 반지로 도망치신 거예요?”

도희의 양손엔 은색 수갑까지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아니! 또 잡힐 순 없잖아요. 하… 나 미치겠네.”

잔뜩 입술을 짓이기며 수갑 채워진 양손으로 머릴 쓸어 넘기는 그녀는 불량한 영화 속의 터프한 여주인공 같았다.

“진짜 이 은가락지 아니었으면 저 꼼짝없이 잡혀갔어요. 하… 그 순간에 딱 반지가 말을 들어서 다행이지.”

도사는 강아 어머니의 회복에 여념 없었기에 병실에 붙어사는 상황이었다.

“화장실에 간 사람이 귀신처럼 사라지다니, 경찰들은 지금쯤 난리 났겠네요.”

팔은 안으로 굽는 건지, 우주는 괜히 풀리지 않을 의문으로 골머리 썩을 경찰들이 안타까웠다.

“또 말도 안 되는 걸로 누명 쓴 거 같은데, 잡혀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경찰이 뭐라고 하던가요?”

“뭐라 했더라, 산업 기술 뭐? 부정 경쟁 뭐라던데.”

“산업 기술 보호법이랑 부정 경쟁 방지법이겠네요.”

“네! 맞아요. 그거!”

“이건 산업 스파이 혐의인데…….”

“산업 스파이요?!”

어이가 없는 도희의 턱이 떨어질 듯 내려앉았다.

“그럼 지금 이도하씨도 긴급체포 영장이 떨어졌단 말인가요?”

“네! 아니, 내가 너무 급한데 우리 집은 이미 경찰이 알지, 강아 병실도 알지, 생각나는 곳이 도하씨 집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게 딱! 도하씨 집으로 이동을 했는데 글쎄, 도하씨 연차라고 경찰들이 도하씨 집을 찾아왔더라니까!”

“도망치는 게 능사는 아닐 텐데…….”

“그럼 유치장 거길 또 가요? 그건 안 돼요.”

도희는 단호했다.

“내가 거기 있어 봤잖아요. 거기선 아~무 것도 못 해.”

누명을 쓰고 갇힌 채로 감옥 갈 날만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지옥인지 이미 경험한 도희였다.

“근데 우리가 무슨 산업 스파이야? 꾸며도 그럴싸하게 꾸며야지. 이건 또 누가 한 짓이야.”

“비산일 가능성이 큽니다.”

도희도 도하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긴, 부사장이라면 도하씨까지 엮진 않았을 거예요.”

“일단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체포 영장이 떨어진 도하와 도희보다 형사인 우주가 움직이긴 수월했다.

“그나저나 우주씨 얼굴이 왜 그래요.”

이제야 상처 가득한 우주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도희였다.

“지금 저 걱정해 주는 겁니까.”

“아주 엉망이네.”

“풉, 고생 좀 했습니다.”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안 물으시네요? 어디 숨어 있었는지.”

“갇혀 있었겠죠. 얼굴 보니까 딱 상황이 그려지네요.”

“더 오래 보면 또 뭐가 보일 거 같으세요?”

“으그…….”

가느다래진 도희 눈이 우주를 쫓았다.

“일단 두 분 다 핸드폰 끄고 이 주소로 가 계세요.”

우주는 차량 네비게이션에 주소 하나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 집이요.”

*     *     *

우주의 집은 도하 집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그레이 색과 진한 우드톤으로 꾸며진 거실은 고급 카페 인테리어와 맞먹었다.

“요즘은 혼자 사는 남자들이 더 잘 꾸미고 사네요. 여기 보니까 우리 집은 동물농장이네.”

“다음에 도희 집도 가 봐야겠네요.”

순간적으로 도희 말에 웃으며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도희의 멀뚱멀뚱한 두 눈을 보고 당황한 도하였다.

“아… 그게 혼자 계실 때 말고…….”

“푸훕! 다음에 초대할게요. 꼭 놀러 와요.”

도하는 몸에 오른 열을 식히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가 돌아왔다.

돌아온 우주는 도희 손목에 채워진 수갑부터 풀어주었다.

“빨개졌네… 멍들겠어요.”

손목에 남은 붉은 흔적을 매만지는 우주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도희였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손길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도희가 급하게 손을 내뺐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반응도 못 했네. 위험한 남자야 정말.’

당황한 도희가 고갤 돌리자, 그 모습을 지켜본 도하가 있었다.

도희는 괜히 도하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피해버렸다.

“상황은 어때요?”

화제를 돌려야 했다.

“일단 두 분은 부정 거래 및 기밀 유출 건으로 기소당한 상태에요. 한마디로 산업 스파이죠.”

이젠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상대 기업은요? 우리가 그 정보를 넘긴 기업이요.”

“당연히… 비산이죠.”

“정말 악질도 이런 악질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판이네요.”

이들이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감옥에 있을 것이다.

“조작된 증거와 정황이 그럴 듯해요.”

“참 능력도 좋네요.”

“도희씨가 사기죄를 면하기 위해 화정 그룹의 기밀 정보를 비산에 줬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도운 건 이도하씨.”

우주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다 도하에게 멈췄다.

“어때요.”

우주의 눈짓에 도하가 대답했다.

“상황이 꽤 그럴싸합니다.”

“아니, 내가 뭐 우리 회사 기밀도 모르는데 무슨 우리 그룹의 기밀을 알지? 무슨 기밀 정보? 팀장이 접근할 수 있는 기밀이 뭐가 있다고!”

말을 하다 보니 점점 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삼킬 수가 없는 그녀였다.

“일단 증거 서류 전부 몰래 복사 좀 해달라고 요청해 놨으니까 잠시 기다려 보죠.”

*     *     *

찻잔에 차가 가득 따라지면서 향긋한 차향이 은은하게 주변으로 스며들었다.

“곧 잡힐 겁니다.”

황이재의 앞에 마주 앉은 손남수는 별다른 대꾸 없이 찻잔을 입에 가져가 댄다.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마침 저도 그 직원이 골치 아팠는데 이렇게 사장님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도움은 무슨, 전부 자네의 생각이지 않나.”

“사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자네 말대로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지. 나도 딸아이 부탁으로 한 일이니, 빚이라 여길 거 없네.”

그에겐 벌집과 같은 비산병원을 건드린 몫도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는 손남수였다.

‘딸’이라는 단어를 들은 황이재의 눈동자엔 이채가 서렸다.

손남수의 말대로라면 손남수의 딸 손모아도 강도희와 감정이 좋지 않단 말이었다.

그에겐 패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그 여자가 적이 많은 편입니다.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않겠습니까.”

도희가 들었다면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거품 물고 달려들 말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자들 싸움이 더 무서운 법이지.”

손남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 딸이지만 참 무서운 아이야. 자기가 못 가지면 꼭 아무도 못 가져야 해요. 어릴 적부터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은 꼭 망가트리더라고.”

“저도 비슷합니다, 하하.”

“허허, 그럼 자네도 무서운 사람이구만.”

첫 만남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의 둘이었다.

그렇게 이들의 웃음 뒤에 감춰진 악랄하고 비열한 사실들은 아무도 모르게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     *

쿵쿵쿵쿵!

띵똥— 띵동 —

쿵쿵쿵!

“어떻게요?!”

인터폰 화면으로 도희를 잡으러 왔던 형사들의 얼굴이 띄워졌다.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일단 이럴 시간 없어요. 도희씨 빨리 이동하세요!”

문밖에서는 연신 우주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왔다.

“우 형사!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문 열어 봐!

쿵쿵쿵!

현관문을 얼마나 세차게 두드리는지, 거실까지 쿵쿵 울렸다.

“하… 이게 막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일단 도하씨 이리 와요.”

다급하게 울먹이는 도희의 목소리에 도하가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자, 손!”

도희의 손 위로 도하의 손이 겹쳐진다.

“후!”

눈을 감은 도희가 안간힘을 써보지만 꿈쩍도 않는 둘이었다.

“왜 안 되지? 기운이 모자라나. 하…! 미치겠네.”

오늘 이미 두 차례나 이동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제가 해볼게요.”

급히 손에 끼워진 은가락지를 뺀 도희는 도하의 새끼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자, 눈 감고 이동하고 싶은 곳을 자세히 떠올리면 돼요! 심호흡 한 번 하시…….”

그 순간, 지독하게 검붉은 빛이 둘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도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여기가 어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 저번에 묵었던 호텔인 거 같네요.”

“예? 호텔로 오면 어떡해요.”

누군가 체크인 한다면 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게 뻔했다.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어서…….”

“하, 저도 그래요. 더는 갈 곳도 없는데…….”

“아니면 무인으로 운영하는 모텔이라도…….”

다행히도 고민에 잠긴 도희는 새빨개진 도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순간, 도희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곳이 있었다.

“아! 있긴 있는데 그곳을 갈 수가 있을지…….”

도희도 한 번밖에 가 보지 않은 곳이기에 강아 병실에 들러 도사님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나 싶었지만.

이미 도희 집과 도하 집에도 형사들이 잠복해 있다는 우주 말을 빌리자면 강아 병실에도 형사들이 있을 게 높았다.

“어딥니까?”

“못 갈 수도 있어요.”

“일단 시도는 해 보죠.”

“가기 전에 먹을 것도 챙겨야 해요.”

“그럼 한적한 마트부터 들려야겠네요.”

현금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었다.

“도망치는 주제에 장까지 보고… 풉,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상황이 웃기네요.”

“전 도희씨랑 둘이라서 좋은데요?”

“뭐, 저도 혼자인 것보단 나은 거 같아요.”

괜히 새침하게 말한 도희였다.

“근데 저희 어디로 가나요?”

“궁금해요?”

“그렇게 뜸들이시니까 더 궁금하네요.”

도희가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대답을 기다리는 도하의 시선은 달싹거리는 도희의 다홍빛 입술에 꽂혀 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 폭포 뒤 동굴.”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뜻밖에 장소에 도하는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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