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85)화 (85/120)

084화 그 전 죗값 받는다고 생각할게.

검사의 질문에 따라 증인석에 선 천 변호사는 차분하게 증언을 이어 나갔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피고 강도희와 친구 이강아는 의도적으로 비산병원에 입원해 어머니를 뇌사상태로 만들었으며, 사기꾼을 섭외해 비산병원 불법 장기이식 브로커라는 역할을 시킨 뒤 언론에 퍼트리고 비산에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는 증언이었다.

“그 뒤 체포된 피고 강도희씨는 이도하씨를 시켜 저에게 이 문서를 전달했습니다. 대신 자신의 사기 혐의를 덮어 달라는 뜻으로요.”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그럼 증인 측이 요구하지도 않은 기밀문서를 강도희씨가 전달했단 말씀이십니까? 또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강도희씨의 사기 고소를 취하해 준 저의는 무엇입니까.”

도하의 친구이자 도희의 변호인인 장 변호가 물었다.

“고소 취하는 강도희씨가 아닌 홀로 어머님을 모시는 이강아씨를 안타깝게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저희 비산병원에서는 인도적 차원으로…….”

이어서 그녀는 기업의 악질적인 산업 스파이 근절을 위해 화정 기획에 사실을 밝히고 제보한 것이라고 했다.

이미 도희를 옭아매기 위해 모든 것이 촘촘히 짜인 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도희는 천하의 악녀임이 분명했다.

법정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잡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천 변호사의 증언이 끝나자, 장 변호사는 도하와 도희에게 윙크를 해 보인 뒤 앞으로 나섰다.

“재판장님 증인은 지금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 변호사는 도희네가 겪을 일을 그대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검사를 위해 입원한 어머니가 하루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는데, 다음 날 뇌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이들은 비산병원의 실체를 파헤친 끝에 불법 장기이식이 행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나 오히려 사기꾼으로 몰렸다.

“브로커 역할은 맡은 사기꾼 김진수씨가 강도희씨의 사주가 아닌 비산 그룹의 사주를 받았다는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재판장님 김진수씨는 이미 저들에게 매수되어 같이 사기 행각을 벌인 자입니다. 증언의 신빙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변호인이 증언하고 있는 것들은 이번 재판과 관련 없습니다.”

이번 재판은 사기죄가 아닌 산업 스파이 혐의의 재판이었다.

“기각합니다.”

증거 채택이 거부된 장 변호사는 크게 실망한 기색도 없이 다시 발언을 이어 나갔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그 후부터입니다. 김진수가 비산병원의 사주를 받아 강도희씨에게 사기죄를 씌운 것을 알게 된 이도하씨는 천 변호사를 찾아가 서로 조용히 넘어가자는 합의 끝에 사기 고소는 취하되었습니다.”

그 후 도희, 도하 누구도 천 변호사에게 문서를 건넨 적은 없으며 이 모든 것은 거짓 증언을 하고 있는 천 변호사와 비산병원, 그리고 화정 기획의 내부자의 소행이라고 밝힌 장 변호사였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거짓된 망상만으로 허위 사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피고측 변호인 증거 있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그럼 검사 측은 이도하씨에게 기밀 서류를 넘겨받았다는 천 변호사의 증언 말고 증거가 있습니까?”

“여기 서류가 있잖습니까.”

“그 서류는 화정 기획 다른 내부자에게 받을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장 변호사의 말이 끝나자, 청중석엔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재판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판장님 이도하씨가 검사 측 증인인 천지인 변호사를 만난 영상과 진짜 진범의 증언을 할 증인 신청합니다.”

재판장의 시선은 슬쩍 자신의 입 모양만 바라보는 기자들에게 향했다.

다시 그 시선은 증인석에 서 있는 천 변호사에게 향했지만,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재판장의 시선을 받지 못한 천 변이었다.

재판장은 하는 수 없이 고갤 끄덕였다.

“먼저 증거 영상부터 제출하겠습니다. 피고 이도하씨와 증인의 영상입니다.”

곧이어 법정에 준비된 큰 화면으로 도하와 천 변호사의 모습이 띄워졌다.

[도하씨가 나 만나주면 고민해 보지.]

[조건은 그거 하나?]

[어려운 건 아니잖아?]

[그럼 난 뭘 얻지.]

[그럼 뭐, 집행유예 정도야.]

[나도 좀 억울해서 말이야. 내가 한 짓도 아닌데.]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일을 이렇게 키워.]

[근데 자기도 위에서 시켜서 없던 죄도 힘들게 만들어 낸 거 아니야? 다시 날 집행유예로 꺼내줄 수 있을까?]

[없던 죄도 내가 만들었는데 있는 죄 없애는 것도 할 수 있지 않겠어?]

[못 믿겠는데.

[믿어봐. 보여 줄게.]

[아냐. 됐어.]

[뭐?]

[영 못 미더워서 말이지.]

[지금 나랑 뭐하니, 너?]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어차피 진짜 내가 한 짓도 아니잖아?]

[풉, 이도하씨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누가 네 편인지가 중요한 거라고, 내 말 알아들어? 응?]

[근데 증거 있어? 내가 당신 만나서 서류 건넸다는 증거.]

[그게 필요해? 서류는 내 손에 들어왔고, 이도하씨는 나랑 만났었는데? 그것도 비밀리에. 어떤 모질이가 이런 증거를 남겨.]

[그럼 증거는 없단 말이지 않나?]

[하, 내가 증거라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가 좀 돼?]

[…….]

[당신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고, 이 남자야. 자기는 그냥 강도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만 말해. 그럼 자긴 내가 구해줄 테니까.]

이 재판의 중심엔 천 변호사가 있다.

그녀의 증언이 증거이자 전부인 재판.

모든 사실을 뒤로하고, 그녀의 증언에 정당성이 사라진 순간, 재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증인은 지금 모든 정황과 증거를 조작하고 피고 강도희와 이도하에게 혐의를 씌우려 한 점 인정하십니까?”

“판사님 이의 있습니다. 불법 녹취는 법정 효력이 없습니다.”

“판사님 제3자 간의 대화가 아닌 본인과 상대방의 대화 녹음은 불법 녹취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 녹음은 피고 이도하씨가 증인을 만나 직접 녹음한 녹취 파일입니다.”

도하의 변호를 맡은 장 변호사가 증인석에 있는 천 변호사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에헤이, 변호사가 이것도 모르시나.”

“야 이도하!!!”

“판사님, 이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는 증언을 할 증인 요청합니다.”

“허가합니다.”

그리고 증인석에 등장한 뜻밖의 인물로 인해 재판장은 한층 더 소란스러워진다.

“선서.”

죄수복 복장의 한 부장이 증인 선서문을 읊자, 청중석에 앉은 화정기획 부사장 황이재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 버리기 시작했다.

*     *     *

백 실장과 두산이 준비한 훼이크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알고 보니 백 실장과 두산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두산도 한 부장과의 인연으로 화정 기획에 입사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두 사람에게 설득된 한 부장은 모든 것을 뒤집을 증언을 시작했다.

“저 여자에게 기밀 서류를 넘긴 것은 화정 기획 황이재 부사장입니다.”

한 부장의 증언이 시작되자 법정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황이재 부사장이 평소에도 자신을 비롯해 여러 사람을 시켜 강도희 팀장을 노렸으며, 그 외에도 황이재는 본인에게 방해되는 자들은 여러 누명을 씌어 회사에서 내보냈다는 증언이었다.

한 부장은 황이재가 자신에게 강도희에게 산업 스파이 죄를 뒤집어 씌여 제거할 것이라 했다는 거짓 증언까지 덧붙였다.

자신은 오래전부터 그의 지시를 따른 결과로 지금 형량을 살고 있으며, 저번 법정에서 밝히지 못한 그의 잘못을 낱낱이 밝힌다면서 증거를 내밀었다.

그만이 가지고 있던 황이재의 악행 지시 녹취와 불법 접대 장부였다.

“다음 증인 신청합니다. 황이재의 지시로 기밀 서류를 전달한 장본인입니다.”

장 변호사의 신호에 따라 다음 증인이 앞으로 나서 법정 선서문을 읽기 시작했다.

“선서,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백 실장이었다.

*     *     *

“그 전 죗값 받는다고 생각할게.”

백 실장의 증인 출석은 도희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마 한 부장과 백 실장의 의논으로 벌어진 일인 듯했다.

결국 정황과 증언뿐으로 이루어졌던 재판은 완전 다른 정황과 증언의 출연으로 논점이 흐려졌고, 뒤이어 진명과 두산의 추가 증언으로 부사장에 대한 의혹만 커져 갔다.

그렇게 난장판이 된 이번 재판에서 도희와 도하는 혐의 없음을 선고받았다.

*     *     *

“천 변호사 혼자 처리한 문제일 뿐, 우리랑 관련 없는 걸로 기사 내.”

“그럼 천 변호사가 허위 증언으로…….”

손남수의 싸늘한 눈길을 받은 남자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더는 잡음 나오지 않게 마무리 지어.”

“예. 알겠습니다.”

“저쪽에서 비산병원 일로도 더는 꼬투리 잡을 일 없게 보상 확실히 해주고, 아 물론 천 변한테도 확실한 보상 약속하고.”

“예.”

“병원 일은 당분간 중단시키게.”

“이번에 김 회장님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불난 집 기름 부을 일 있는가?”

“예. 전부 중단시키겠습니다.”

손남수 사장의 신경질적인 손짓에 허릴 숙인 남자는 조용히 사무실을 나섰다.

‘하필 재수가 없어도…….’

원래 비산 그룹 내 경영인을 따로 뒀기에 그룹 내 발생하는 문제에 잘 관여하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비산병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번에 도희네가 낸 기사 때문에 이곳과 관련된 고위층도 예민해진 상태라 급히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골치 아프게 꼬였군.’

비산병원은 기업가, 정치인 할 거 없이 모두 이곳을 찾아 그만큼의 서비스와 대접도 받으면서 비산에 여러 이익을 주는, 즉 서로의 필요를 주고받는 비리의 온상인 곳이었다.

이들은 불법 의료행위는 물론이며 이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도희네가 겪은 일처럼 살인과 같은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흐으음.”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흘러나간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비산도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도희의 이력서를 바라보는 손남수의 눈빛에선 형언할 수 없는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     *     *

“예? 도희씨 지금 뭐라고…….”

방금까진 환한 웃음이 차지했던 무혁의 얼굴엔 황당함이 들어찼다.

“안 됩니다!”

도희에게 달려든 전 상무는 그녀의 팔까지 부여잡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도희는 다시 한 번 하고 싶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전 이만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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