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87)화 (87/120)

086화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다.

“뭐?!”

“뭘 그렇게 놀래. 눈치 다 채 놓고.”

“아니… 너랑 도하씨랑 눈빛이 묘하길래 느낌이 오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너 별로 안 좋아한다?”

“야 네가 남자 만나는데 네가 좋지, 내가 좋을 게 뭐 있냐.”

“뭐, 그건 그래.”

“근데 너…….”

움찔움찔하는 강아의 입꼬리를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도희가 불편해할 말.

“왜 뭐.”

“우 형사님은? 아니, 우 형사님도 너 좋다고 막 쫓아다니는 거 아니었어?”

“우 형사님한테 이미 도하씨 좋아한다고 말했어.”

“뭐?!”

“아, 깜짝이야. 왜 또 소릴 질러.”

“와… 넌 정말 전생에 나랄 구했구나. 나라를 구했어.”

“뭔 말이야.”

“우 형사님도 모자라, 도하씨까지… 그 잘난 얼굴들을… 아니, 얼굴만 잘났어? 둘 다 성격은 또 어때. 그만한 남자들이 없지. 넌 정말 예전부터 남자 하난 잘 만나…….”

도희의 전 남자친구인 문지혁도 대학교 생활 당시엔 동기 중 인기가 가장 좋았었다.

그를 쫓아다니던 여자들도 여럿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차마 장난이라도 그의 이름을 담을 수 없는 강아였다.

“너 혹시…….”

말을 잇다 만 강아에게 도희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쏟아졌다.

“야, 아니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챈 강아는 바로 선을 그었다.

“뭐가 아니야, 난 입도 안 뗐는데.”

“나 우주씨나 도하씨한테 관심 없다.”

“넌 제발 남자한테 관심 좀 가져.”

사실 도희보다 남자에 더 무감각한 사람이 강아였다.

“난 아직 내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한 거라고 몇 번 말해. 하여튼 너도 진짜 능력자는 능력자야. 그래서 도하씨랑 정말 만나기로 한 거야?”

“응…….”

“뭘 또 부끄러워해. 대차게 고백까지 해놓고.”

“뭐, 남자만 고백하란 법 있어? 그리고 도하씨는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고백까지 한 백 년 걸렸을걸.”

“허, 이 여자 봐. 진도까지 자기가 다 뺄 작정이네.”

“남자만 진도 빼란 법 있어?”

“얘가 미쳤나 봐!”

—크흠!

갑작스러운 도사의 헛기침에 머릿속에 떠오르던 온갖 상상들을 떨쳐낸 도희였다.

“도사님, 무슨 걱정 있으세요? 요즘 너무 조용하시네요.”

강아의 병실에 오고 나서부턴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진 도사였다.

—수련이 부족한 듯하여 명상 중일 때가 많았네. 자넨 요즘 몸 단련은 좀 하는가.

“…예?”

도희는 눈만 멀뚱멀뚱 깜빡였다.

—쯔쯔쯧, 게으른 저 여인을 어이할꼬.

“참나, 도사님 내가 게으르면요. 세상사람 다 게으른 거예요.”

—쯔쯧, 저 보게. 자신이 자신을 제일 모르이.

“운동할게요. 할 거예요. 요즘 너무 바빴잖아요. 이것도 정상 참작 안 해 주실 거예요?”

—자네 몸이 약하면 제일 힘들어지는 것도 자네일세.

“우리 도사님 또 오랜만에 본다고 잔소리 병 도지셨다.”

—끄응, 고얀 놈.

“야, 근데 너 진짜 뭐 하고 살 거야?”

“일주일 동안 묻지 말라니까. 아직 6일 남았어.”

“에휴… 그래 뭐, 도하씨가 너 하나 굶기겠냐.”

“야 내가 남한테 손 벌리겠냐? 이미 다 먹고 살 방법은 마련해 놨지.”

“뭔데?”

“일명 위장 탐정!”

“탐정?”

“우리나라 사설탐정 합법된 거 몰라?”

“아니, 듣긴 들어봤는데 네가 탐정을 한다고?”

“뭐, 사실 지금 하는 일은 흥신소랑 비슷하다고는 하는데 나는 다르게 일할 거야. 진짜 탐정처럼!”

“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어?”

“아니? 도사님이 있고, 요물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뭐? 그럼 도사님 믿고 일을 때려치웠단 말이야?!”

“그건 아니지. 더 많은 사람, 억울한 사람들 도와주려면 몸이 자유로워야겠더라고.”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도희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 갔다.

“이번에 우리가 당해 봤잖아. 돈 없고 힘없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억울한데, 정말 억울한데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하긴… 유치장에서 느낀 그 절망감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치가 떨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듯 눈을 질끈 감은 강아는 몸을 부르르 떨어 보였다.

“도사님이 말한 나쁜 놈들 쫓다 보면 억울한 사람들 만나지 않겠어? 이게 바로 일석이조지! 도사님 소원 들어드리고, 힘들고 억울한 사람도 돕고.”

—돈도 버는 것이겠지.

“그건 부업이고요!”

머리가 길어지는 참빗, 무려 없던 머리도 나게 하는 참빗으로 돈 벌 상상을 하는 도희의 머릿속을 읽은 도사였다.

—요물로 돈을 벌다 들통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게냐.

“들킨다고 그걸 사람들이 믿겠어요?”

—세상사 네 마음대로 쉬이 흐르지 않거늘.

“안 되면 뭐, 요것도 있잖아요.”

도희가 오른 손바닥을 내보이자, 검지에 끼워진 은가락지가 반짝거렸다.

“이걸로 물건 배송이라도 하죠, 뭐.”

—잘한다, 잘해.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요물로 돈 벌 방법인 게구나. 그 물욕을 버려야 한다 했거늘.

“분명… 도사님을 도우면 재물이 따라올 거라고 말씀하신 건 도사님인데…….”

—자연히 따라올 게다. 자연히. 너처럼 욕심을 세우면 붙을 재물도 붙지 않음이야.

“그럼 전… 다시 회사 다녀야죠, 뭐… 그렇게 바쁘게 회사만 다니면… 또 언제 시간 내서 언제 나쁜 놈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고가구를 내다 팔게.

“어? 맞다!”

보자기에 싸인 고가구들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던 도희였다.

—그리고 그 은가락지는 잠시 돌려주게나.

“왜 줬다 뺏어요?”

오른손을 품에 안으며 꼭 숨기는 도희였다.

—어차피 빌려준 거 아니더냐.

“그건 그런데…….”

—묘향산에 다녀와야 함이야.

“아, 언제 떠나실 거예요?”

도희의 손에서 빼진 은가락지는 서책의 품으로 쏘옥 들어가더니 그대로 삼켜졌다.

—그 헌앙한 청년이 준비되면 바로 떠날 생각이네.

“그건 제가 물어볼게요. 근데 도사님 묘향산에 가면 뭐가 있어요?”

—그것이 말이다. 그곳엔…….

*     *     *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릴 해질녘.

‘여기가 북한이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저 곳이구나. 이리 가까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오가지 못하는 곳이라니.

도하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교동도의 망향대였다.

이곳에선 바다 건너 북한의 황해남도의 풍경이 또렷이 보였다.

—평안북도까지 가야 하니, 갈 길이 멀구나.

지도로 확인해 본 결과 평안북도는 북한에서도 제일 북쪽 끝 지방이었다.

도하는 왠지 떨리는 마음에 주먹을 다부지게 쥐어 보였다.

—가르쳐 준 대로 수련을 많이 한 모양일세. 기운이 아주 두둑하구나.

‘덕분에 몸도 좋아진 거 같습니다.’

요즘 아무리 오랜 시간 운동해도 체력이 지치질 않았다.

—허허허, 자네 같은 제자만 있다면야 가르칠 보람이 있겠어. 고맙네, 고마워.

‘고맙다니요. 도와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말하는 예법마저 도사의 마음에 쏙 드는 청년이었다.

—자, 가 보자꾸나.

‘예.’

그렇게 홀로 노을을 맞으며 망향대에 서 있던 남자는 노을보다 더 진한 영롱한 붉은 빛과 함께 바람같이 사라졌다.

*     *     *

도하가 떠난 늦은 저녁.

그보다 더 야심한 밤에 한 여자가 병실로 도희를 찾아왔다.

“문지혁 어디 있어?”

“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문지혁 연락 오면 여기로 연락해.”

“이봐요, 아가씨.”

도희는 도도한 표정으로 명함 하나를 주고 돌아서는 모아를 붙잡았다.

“나랑 그 인간이랑 그만 엮어.”

“나라고 엮고 싶어서 엮겠니?”

“그러니까, 그럼 그만 엮어 줄래? 나 죽어도 다시 걔 만날 생각 없으니까.”

“하! 나는 문지혁이 왜 너한테 목매는지 이해가 안 가.”

“어. 나도 문지혁이 왜 너랑 바람났는지 이해가 안 가.”

“뭐?”

“왜 너랑 바람났던 남자가 다시 전 여친 찾아간다니까 미치겠어? 가만 못 있겠니?”

“미쳤니, 너?”

“바람난 여자가 얼마나 별로였으면 남자가 전 여친한테 달려왔겠어.”

탁!

순식간에 일이었다.

자신의 뺨으로 올려진 모아의 손을 잡아챈 도희였다.

“이것 봐. 수준하고는.”

“야 강도희!!”

“왜!!”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실 앞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손모아보다 더 큰 목소리의 도희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거 아니라고 이 여자야, 근데 너 같은 애들은 그런 줄 알지? 제발 다신 나 찾아오지 마. 또 오면 그땐 나도 가만 안 있어.”

*     *     *

“자, 쨘 한번 할까요?”

“좋아요!”

“그럼 모두 고생했어요. 쨘!”

“쨘!”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줄줄이 ‘쨘’을 외치는 소리가 룸 안을 가득 채웠다.

“크으! 역시 술은 쏘맥이야.”

도희가 커다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얼마나 무거운지, 한 손으로 들기 벅차 양손을 사용한 그녀였다.

“팀장님 하마터면 몇 년간 술 입도 못 대실 뻔하셨어요.”

“와, 나 그 생각하면 진짜 끔찍하잖아요.”

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저는 재판장에 있는 내내 심장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니깐요!”

“소하씨 나도 속으로는 열두 번도 더 기절했어요.”

“전 증인석에 서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으! 두 번 하라면 못 할 거 같습니다.”

저마다 한마디씩 도희 재판에 참여한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진짜 다들 정말 고마워요. 여러분 아니었으면 나 지금 아직도 죄수복 입고 있을지도 몰라.”

“근데 팀장님은 죄수복도 잘 어울리시던데요?”

“네에? 풉.”

소하의 말에 모두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이번 재판의 큰 역할을 한 우주와 설 기자가 룸 안으로 들어선다.

“어?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설민기 기자입니다.”

웃는 낯의 설 기자는 모두에게 명함부터 돌렸다.

“혹시 제보할 게 있으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주시면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사무적인 말이었다.

“야 넌 여기서도 영업하냐.”

찌푸린 표정의 우주가 나섰다.

“영업은 무슨,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서 힘쓰는 거지.”

티격태격하는 둘은 꽤나 친해 보였다.

“이번에 설 기자님 도움도 아주 컸어요. 정말 감사해요.”

둘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도희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재밌었습니다. 언론이며, 재판이며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지켜보는 맛이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아주 즐거워 죽겠단 표정의 그는 도희 사건 이야기를 시작하며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첫인상이랑 똑같네.’

역시나 특이한 사람이었다.

“근데 도희씨 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안주를 집던 도희의 고개가 들렸다.

“물어봐도 되나요?”

묻지 말란다고 안 물은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네. 말씀하세요.”

대답하고 나니, 이유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스쳤다.

아주 불길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어두워진 도희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그의 입이 열렸다.

“진짜 속마음이 들리세요?”

역시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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