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88)화 (88/120)

087화 골동품 상점.

“이, 이게 뭐야?”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도희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이 자식 진짜 도라이네?”

“두 번이나 누명 쓴 여인, 신기로 벗어나? 이거 설마 네 이야기야?”

그렇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도희였다.

“아니, 이걸 이렇게 기사로 낸다고? 누가 읽는다고…….”

“조회수 난리 났는데? 아침 기사 중에 탑이야.”

“아… 어제 그냥 모른다고 딱 잡아뗐어야 했나.”

“그러게, 넌 그냥 어쩌다 한 번씩 이상하게 촉이 좋다고 하지. 뭘 신기가 있니 마니, 가끔 속마음도 들리니 그런 말을 해.”

강아는 한심하단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야, 내가 오죽 당황했으면 그렇게 말했겠냐고. 다들 내 대답만 기다리는데 머리가 하얘지더라니까? 그리고 그나마 제일 그럴듯한 변명 아냐?”

“뭐… 딱히 다른 변명이 없긴 하지. 게다가 사실대로 말한다고 자기들이 믿긴 할 거야?”

“몰라. 설 기자 그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라서 솔직하게 말했어도 그거 기사로 냈을걸? 직업의식이 이상하게 뛰어나다니까!”

“혹시 우 형사님이 다 말한 건 아니겠지?”

“우 형사님 얼굴이 나보다 더 가관이었을 걸? 당황해서 표정 관리도 안 되던데.”

“하긴, 입이 가벼워 보이진 않아.”

“속마음을 읽니, 어쩌니 하는 거 보면 한 부장이랑 백 실장한테 한 말이긴 한데.”

어제는 너무 당황해서 그에게 어디서 들은 말인지 물을 겨를도 없었다.

“분명 나중에 농담이라고도 했는데 이게 기사까지 낼 일이야? 그것도 바로 다음 날!”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뭘 어쩌겠어.”

이미 기사가 나간 이상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근데 설 기자란 그 사람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뭔가 좀 느낌이 안 좋은 게 찝찝한 사람이야.”

“사람이 후진이 없어. 직진뿐이야. 정말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겠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열띤 대화를 하던 두 여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문밖에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백 실장이 서 있었다.

*     *     *

강아는 음료를 사 오겠다며 자리를 비워 줬다.

둘만 남은 어색한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도희였다.

“여기서 다시 볼 줄 몰랐네요.”

“웬 존대야. 새삼스럽게.”

여전히 말을 밉게 하는 그녀였다.

물론 이젠 밉게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이번 재판 도와줘서 고마워.”

“됐어. 덕분에 나도 홀가분해졌으니까.”

말을 끝낸 백 실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근데 수사 받고 있던 거 아니었어?”

“난 불구속 수사. 황이재는 아직 조사받는 중. 물론 입은 열지 않고 있대.”

도희는 알 만하단 표정으로 혀를 작게 찼다.

“또 접대 장부 이용해서 빠져나오는 건 아니겠지?”

“황이재도 이젠 줄 다 끊겼을걸? 뭐, 많이 높으신 양반들이야 장부에서 자기 이름 하나 빼내는 건 일도 아니고, 끈 떨어진 강아지를 더 챙겨 주고 싶겠어?”

“거기도 참 냉정한 세계고만.”

백 실장은 그저 작게 웃어 보이고 말 뿐이다.

“근데 여긴 웬일이야? 아직도 부사장 쪽 사람이 쫓아와?”

“아니. 나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을걸.”

그럼 더더욱 볼일이 없을 터였다.

“나 여기 일 구하러 온 건데.”

도희 얼굴에 띄어진 의문이 더 짙어진다.

“사람 필요하지 않아?”

이제야 도희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져 올랐다.

*     *     *

“뭐하냐 너.”

“재밌잖아.”

우주의 정색에도 아랑곳 않는 그였다.

“지금이라도 기사 내려.”

“넌 혼자 조선시대냐? 이미 다른 언론사에서 다 퍼갔는데 나 혼자 지워도 소용없어.”

설민기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넌 대체 그런 이상한 얘길 누구한테 들은 건데.”

“주야 정직 먹으니까 심심해? 할 게 없어? 놀아! 넌 좀 놀아도 돼!”

“말 돌리지 마라.”

눈을 감고 입술을 짓이기는 우주의 표정을 본 설민기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화난 우주가 화를 터트리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김현철. 그 여자 때문에 감옥살이한다던데.”

“그 몰카범?”

도희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우주였다.

“어. 자기도 다른 사람한테 들었대. 근데 그 이야기가 묘하게 상황이라 들어맞더라고?”

비산병원 사건을 기사로 쓰면서 의문점이 드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주가 끼어 있다고 한들, 평범한 여자 둘이 알아내기엔 힘든 정보들이 수두룩했다.

“너는 뭐 아는 거 없냐? 너 강도희랑 친하잖아.”

“아, 이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뭔데, 뭔데.”

“나도 사실 네 마음이 읽혀.”

“미친놈.”

“너만 할까.”

“됐고, 뭐든 이상한 점 있으면 나한테 말해 주기다? 너 나한테 신세 진 거 다 기억하지?”

“네가 제일 이상하다니까. 네가. 뭘 멀리서 찾아.”

“아, 진짜 이 자식이.”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둘은 결국 웃으며 헤어졌다.

*     *     *

“이강아 너 좀 멋있어 보인다?”

“하! 뭘, 이 정도 가지고.”

강아의 콧대는 이미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근데 이렇게 쉬운 거였는데 지금까지 안 해줬어?”

“내가 지금까지 정신이 있었니?”

“말한 지가 언젠데.”

“얘는 해줘도 난리네, 해줘도.”

“고마워 이강아. 사랑해, 내 맘 알지?”

“너에게 영혼이란 게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도사님한테…….”

도사님이 돌아오면 물어보라는 말을 하려던 도희는 병상 옆에 앉아 있는 백 실장을 보며 황급히 입을 닫았다.

“아니, 도하님한테 물어봐.”

도희의 시선을 따라 백 실장을 본 강아도 눈치를 챘는지 열심히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도하님 오면 물어보지 뭐. 도하님이 그런 거 잘 알잖아.”

‘뭔 소리야.’

“훕. 크흠.”

억지로 웃음을 참는 도희의 모습에 반달눈이 된 강아도 입술이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꼴을 보니 웃음을 참기 힘든 모양이다.

“푸웁… 큼! 근데 이 남자 찾긴 찾았는데 어떡하려고?”

신문고 게시판에 올라왔던 여사원 스토킹 사건의 남자를 알아냈다.

그것도 SNS 세컨 아이디만 알려 줬을 뿐인데 용케도 알아낸 강아였다.

“일단 여자 분한테 알려드려야지.”

“너희 회사 사람이라며? 이 남자도 회사 사람이야?”

“글 올린 여성분이 회사 사람이긴 한데 나는 잘 몰라. 그분한테 이분 아는지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스토킹이라니.”

“그치? 나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 으.”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누군지 알아냈으니까 더는 그 짓도 못 할 거 아냐.”

“…그러게. 우리 강아가 사람 하나 살렸네.”

말을 끝맺은 도희는 갑자기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입을 닫았다.

곧이어 영롱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돌아온 그녀의 입꼬리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     *     *

딸랑딸랑—

문을 열자마자 쾌쾌하고 꿉꿉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윽, 냄새.’

골동품 상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게 좌우에 설치된 낡은 선반에는 각양각색의 골동품들이 두서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부 진짜 맞아? 너무 막 널려 있네.’

도희는 거침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계세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쪽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 가게인지, 주인에게까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사장님 계신가요!”

하는 수 없이 주인을 목청 높이 부르며 발길을 더 깊이 옮기는 도희였다.

“사장니임!”

끼이익—

어디선가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80살은 넘어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도희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놔봐.”

동그란 검은 뿔테 안경과 코에 난 수염이 아주 고집스러운 인상의 할아버지였다.

“예?”

“손에 든 거 내놔 보라고.”

도희는 홀린 듯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품 안에 있던 작은 술병을 꺼내 들었다.

“이리 줘봐.”

또다시 홀린 듯 술병을 내주려던 도희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게 좀 귀한 거라.”

도사의 동굴에서 가져온 물건이니, 최소 500년도 더 된 유물이었다.

머뭇거리는 도희 행동에 주름 가득한 영감의 이마엔 더 고집스러운 주름들이 생겨났다.

“감정부터 해야 될 거 아닌가. 감정부터!”

‘소린 왜 질러.’

“…여기요. 조심히 만지셔야…….”

술병을 건네받은 영감은 도희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가게 더 깊숙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딴 집 갈걸.’

하는 수 없이 영감을 따라가는 도희였다.

영감이 사라진 문을 따라 들어가니 좌우로 가지런히 정렬된 각종 유물들과 함께 정면에는 눈부시게 밝은 조명이 켜져 있는 책상이 보였다.

“어디서 구했나?”

조명 아래서 술병을 살펴보던 영감이 말했다.

“엄마 유품이에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엄마를 잘도 파는 도희였다.

“흐음…….”

잠시 턱을 어루만지던 영감이 입을 열었다.

“삼백, 이것도 많이 쳐주는 거야.”

“에게? 삼백요?”

“이런 흔한 술병은 널리고 널렸어. 이봐, 이것도, 저것도.”

영감은 여기, 저기 진열된 도자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건 찾는 사람도 없어서 잘 팔리지도 않아.”

“그래도 오백 년도 더 된 도자기인데 삼백은…….”

“이게 오백 년도 더 됐는지 자네가 어찌 아나?”

“예? …아,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삼백. 그 이상은 못 줘.”

‘적당한 가격이 얼만지를 모르겠네.’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다음에 오면 이백.”

“네?”

“어차피 이런 물건은 부르는 게 값이지. 딴 집 가도 이백 부르면 많이 부르는 거라고.”

역시, 장사꾼이라 그런지 도희의 속을 훤히 꿰뚫은 영감이었다.

‘하긴, 금방 들킬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생각보단 못하지만, 이 작은 물병 하나에 삼백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네. 팔게요.”

“젊은 아가씨 또 오라고 비싸게 쳐주는 거야.”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나 영혼 없는 인사였다.

“근데 그 손가락에 있는 반지는 팔 생각이 없는가?”

“예?”

“요거 말이네.”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영감은 도희의 손가락에 껴진 ‘옥가락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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