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92)화 (92/120)

091화 결혼할 여자입니다.

굿, 모—닝.

빠빠빠빠— 빠빠빠—

평온했던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도하 손에 의해 급히 꺼졌다.

분명 어젯밤 누운 침대에서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는데도 잠을 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머릿속은 맑고 기분이 방방 뜨는 것이, 이처럼 가볍게 눈을 떠본 적이 있었나 떠올리는 도하였다.

그의 두 눈은 품속에 안겨 세상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는 여인의 얼굴로 향했다.

긴 속눈썹이 내리깔린 곱게 감긴 눈이며, 적당하게 솟은 코하며, 작고 오밀조밀한 입술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는 여인이었다.

밤새, 혹시 도희가 깰까 뒤척임 하나 조심한 도하는 여전히 새근대며 잠들어 있는 그녀가 깰까 싶어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흐… 으음…….”

무슨 꿈을 꾸는 것인지, 도희가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였다.

쪼옥—

“으으, 으응.”

도하가 도희의 찡그려진 미간에 도둑 뽀뽀를 하자, 더 크게 찌푸리며 몸을 뒤척이는 그녀였다.

“푸웁.”

이대로 도희의 얼굴만 보다간 하루가 가 버릴지도 모른다.

애써 눈길을 거둔 도하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선 뒤 침실을 빠져나왔다.

*     *     *

도희는 낯선 듯 익숙한 향기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푹신하면서도 딱딱한 매트리스와 두툼한 이불 감촉도 평소와는 달랐다.

“…….”

눈을 뜬 도희는 바르게 누워 도하의 향기가 밴 이불을 목까지 덮고는 눈만 멀뚱멀뚱 깜빡거렸다.

이곳은 얼마 전에도 자본 적 있는 도하의 침실이었다.

‘어제…….’

도하와의 분위기에 취하고 와인에 취한 도희는 영화를 보다 잠들어 버린 것이 떠올랐다.

‘이 멍청이!’

그 좋았던 분위기의 산통을 깨버린 사람이 바로 본인이니 어쩌겠나.

불편한 숨을 작게 뱉은 도희는 침실을 나섰다.

그리고 식탁 위에 차려진 아침을 본 그녀는 다시금 도하의 품이 그리워졌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 사무실에 나타난 도하의 입가엔 화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도하 대리, 굿모닝. 기분 좋아 보이네?”

“그런가요.”

역시나 눈부신 미소를 남발하며 자리에 앉는 도하였다.

팀원들은 그런 도하를 보며 잠시 서로 의아한 눈짓을 주고받다가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아 맞다! 혹시 강 팀장님 기사 뜬 거 보셨어요?”

“어. 저번 회식 때 명함 준 그 기자가 쓴 거 맞지?”

소하와 더 가까워진 진명이었다.

“그날, 강 팀장님이 다른 사람 속마음을 듣니, 어쩌니 하더니 그걸 그대로 기사에 낼 줄은 몰랐네요. 아니, 그걸 누가 믿는다고.”

“그러게. 강 팀장님이 눈치는 좋은데 속마음 듣고 그런 건 모르겠던데.”

“에이, 나중에 팀장님이 다 농담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왜 신기 있으면 가능하지.”

“어머, 진명 대리님 그런 걸 믿어요?”

“믿겠어?”

“훗, 그죠?”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엥? 두산씨는 그런 말을 믿어요?”

“뭐, 외계인이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두산의 말을 들은 진명은 뒷목덜미를 긁적이며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두산씨 순수한 사람이었네. 근데 나는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꺼림칙한데…….”

“저도요. 강 팀장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만약, 정말 만약에…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좀 무서울 거 같아요…….”

“에휴… 강 팀장님 마가 끼었나. 별소릴 다 들으시고 바람 잘 날 없으시네.”

“그러게요… 우리 팀장님 언제쯤 조용하게 지내실 수 있으시려나…….”

이들의 걱정과 달리 당사자는 아주 안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사건을 맡기 전까진.

*     *     *

또르르르—

하얀 김을 뿜는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붓자, 투명했던 꽃잎 티백은 불그스름한 빛깔로 젖어 들며 향긋한 꽃 향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흐으음~ 으음~”

백조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녀가 늘 상상하던 여유로운 아침이란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었다.

해야 될 일도, 쫓기는 일정도 없는 자유로운 삶.

“이게 바로 행복이지.”

사설탐정 사무실을 개업한 도희였지만, 이곳은 도희의 자유로운 개인 공간과 마찬가지였다.

홈페이지 의뢰 게시판을 오픈한 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도희는 향긋한 차향과 함께 느슨해진 마음으로 의뢰 게시판을 열어 보았다.

‘죄다 불륜이거나 돈 받아 달라, 사람 찾아 달란 글뿐이네.’

첫 페이지만 해도 딱히 눈에 띄는 게시글은 없었다.

그리고 도희가 두 번째 페이지로 넘겼을 때.

[도와주세요. 살해 협박을 받고 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 나쁜 기시감과 함께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은 도희는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     *     *

“이걸 다 최근에 받으신 건가요?”

도희의 눈앞에는 족히 열 장은 넘어 보이는 협박 편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네. 한 달 좀 안 된 거 같아요…….”

프린터로 인쇄된 편지들은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폰트와 글자 크기가 오차 없이 똑같았다.

‘한 사람이 보냈다는 건데.’

의문의 살해 협박 편지들은 여자가 사는 현관문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고 했다.

이 겁도 없는 편지 협박범은 여자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 복도에는 방범 카메라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일 것이다.

“…누군지 찾을 수 있을까요?”

초췌한 여자의 몰골에선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짐작 가시는 분은 있나요?”

잠시 머뭇거리던 여자의 입에서 이내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는… 친구도 많이 없고… 혼자 조그마한 가게 하는 사람인데… 제가 사는 집을 알고 있단 건… 전 남친들 말고는…….”

‘전 남친들?’

“그중 가장 의심 가는 분이 있나요?”

여자는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소리로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막막한 건 도희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그분들 성함이랑 아시는 대로 전부 말씀해 주시겠어요?”

*     *     *

“도사님 내 얘기 좀 들어봐요. 그래서 내가 그분 헤어진 남자친구들을 찾아가서 만나봤는데 하나같이 다 여자 분한테 적대심을 품고 있는 거예요!”

“몇 명을 만났는데?”

“세 명!”

“셋 다 그 여자를 싫어한다고? 하긴 뭐 안 좋게 헤어지면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야. 셋 다 똑같이 말도 꺼내지 말라고 죽여 버리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거라면서 욕을, 욕을 얼마나 하던지. 허!”

“엥? 그 정도로?”

“…그게 여자 분이 그 남자 세 명을 동시에 만났대.”

“양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 욕 할 만하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한들 세상에 죽어 마땅한 이는 없으이.

“에휴… 여자 분이 잘못하긴 했죠. 그래도 죽인다고 협박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남자들 중 한 명이 너무 화나서 그냥 편지만 그렇게 쓴 거 아니야? 설마 진짜 죽이기야 하겠어? 말만 그런 거겠지.”

“확실한 게 좋잖아. 아닐 거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손놓고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입매를 굳힌 도희를 보곤 강아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을 다시 만나보자꾸나.

“도사님.”

잠시 머뭇거리던 도희는 생각을 정리한 듯 차분히 운을 띄었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도사님이랑 저랑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할 수도 있고, 도사님이 또 어디 북한이라도 다녀와야 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 된다.

벌써 도희의 속마음을 읽은 도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아니… 도사님처럼 손대면 속마음이 들린다든가… 그런 요물이 하나만 있어도…….”

—더는 세상에 만들어 내선 안 될 물건들이라 말했네.

“도사님이 지금 움직이시지 못하시잖아요? 근데 저는 도사님을 도와 악을 쫓아야 하고요. 그럼 제가 악을 쫓으려면 누가 악한 놈인지 알아야 쫓을 거 아니에요. 알아야!”

도희는 억울한 듯 열변을 토해 냈다.

“아니면 악을 담았던 그릇도 있고, 악을 부르는 향낭도 있는데 뭐, 악을 보는 안경 같은 건 없어요?”

—안경?

“이거요.”

도희가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두 눈에 가져다댔다.

—그 물건은 나도 이 시대에서 처음 본 물건일세.

‘아… 그 시절엔 없었나 보네.’

“우리나라에선 1600년대부터 만들어졌다는데?”

강아가 손에 든 휴대 전화를 흔들어 보였다.

새삼 도사와의 엄청난 시대 차를 느낀 도희와 강아는 이유 모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흐음… 자네 말도 틀린 말은 아니나 당장은 방도가 없네. 허나 곧 방도가 생길 듯 허이.

“네?”

—곧 알게 될 걸세.

*     *     *

“똑똑, 간식 배달 왔습니다.”

“어? 우 형사님!”

“잘 계셨나요.”

“복직하셔서 바쁘실 텐데… 쉬시지, 뭘 또 간식까지 사 오셨어요.”

“잠깐 여기서 쉬면 되죠, 뭐.”

예쁜 입꼬리를 올리며 소파에 앉는 우주였다.

“달달한 거 먹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역시 센스쟁이.”

강아가 크림 도넛을 한 입 베어 물자, 우주가 물었다.

“어머님은 어떠세요?”

“많이 좋아지셨어요. 이제 호흡도 많이 정상적이시고 가끔 손발도 움직이세요. …곧 의식도 돌아오시겠죠.”

“쾌차하실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럼요.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어나셔야죠.”

강아의 표정을 보고 안도의 미소를 짓던 우주도 도넛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우 형사님 커피 드릴까요?”

“좋죠.”

‘엄청 예쁘게 웃으시네.’

우주의 환한 미소는 언제 봐도 시선을 붙잡는 묘한 힘을 지녔다.

“우 형사님, 혹시 얼마 전에 여성분이랑 이 앞 사거리 술집에 오셨어요?”

우주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별일 아닌 듯 묻는 강아였다.

“아… 네.”

우주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 여자 분이랑 무슨 사이예요?”

대한민국이 아무리 좁다 한들, 대체 문지혁이 바람난 여자와 우주가 어떤 인연일지 무척 궁금했다.

“결혼할 여자입니다.”

“네에!?”

강아의 외마디 비명은 병실 문밖을 넘을 정도로 크게 울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였다.

“집에서 정해 준 여자거든요. 지금은 어떻게 엎을지 고민 중입니다.”

“예?”

‘엎는다고? 그럼 마음은 없단 소린데… 아니, 그럼 문지혁은 그 여자랑 끝난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폭탄 발언을 해놓고도 차분히 커피 잔을 집어 든 우주에게 강아가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우주는 집어 든 커피 잔을 그대로 입가로 가져갔다.

“혹시 알아요? 여자 있다고 하면 집에서도 포기할지.”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인 우주는 느린 동작으로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쨍!

유리 테이블에 커피 잔이 닿으면서 불편한 마찰음을 냈다.

그리고 우주는 뜻 모를 눈빛으로 강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강아씨, 나한테 관심 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