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93)화 (93/120)

092화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진짜 웃겨. 기껏 도와주려고 했더니, 뭐? 자기한테 관심 있냐고? 아니, 그리고 그 표정은 또 뭐야, 허!”

우주가 돌아가고 밤이 깊었지만, 강아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신경 써 준 게 고마워서 도와주려고 했더니… 괜찮으면 괜찮다. 거절 한마디면 될 것을 사람 기분 나쁘게!”

—크흠…….

심기가 불편한 강아 때문에 괜히 도사도 눈치를 보며 조용히 항아리와 여인의 손위를 오가는 중이었다.

탕!

“아오!! 진짜 열 받네.”

거칠게 물 컵을 내려놓는 소리에 움찔한 백 실장은 병실을 가득 채운 냉기에 잠시 자리를 비웠고, 보다 못한 도사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런 마음이 아닐 걸세. 때론 보이는 것과 실상이 다를 때도 있으이.

“어찌 됐든 저렇게 정색하는 거 보면 싫은 건 맞잖아요. 저건 선을 딱 긋겠단 거라구요.”

—예나 지금이나 남녀 사이가 제일 어렵구나.

“도사님도 연애를 해보셨어요?”

—허허, 그럼 나라고 평생 도만 닦았겠느냐.

“오~ 그럼 결혼도 하셨어요?”

—…….

“…죄송해요.”

—‘…어여쁜 여인이었네. 그 여인에게도 아픈 어미가 있었지. 자네처럼.’

그렇게 도사는 또다시 끊어 낼 수 없는 깊은 과거의 상념으로 홀로 끌려 들어갔다.

*     *     *

목숨이 달린 일은 한시도 지체해선 안 된다는 도사의 채근에 마지못해 아침부터 한 명씩 남자들을 찾은 도희였다.

“혹시 이분에게 살해 협박 편지를 보내셨나요?”

그들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택한 정공법.

“예? 전 그 여자 꼴도 보기 싫어요. 편지는 무슨.”

전날과 달리 말귀도 못 알아들으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남자부터.

“그럴 줄 알았어. 누가 했는지 잘했네. 걘 정신 좀 차려야 돼요.”

솔직한 건지, 얼버무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남자.

“전 아닙니다. 그 여자 집도 몰라요.”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남자까지.

이 셋 중에 협박 편지를 보낸 놈이 있긴 있었다.

—이 놈일세.

결국 편지 협박범은 마지막에 만난 거짓말을 늘어놓던 남자였다.

“그쪽이 편지 보낸 거 다 알고 왔어요. 지속적인 살해 협박만으로도 협박죄로 처벌받으실 수 있다는 거 아시나요?”

“예…? 저 아닙니다!”

“다 알고 왔다니까 그러네. 경찰 불러요?”

눈빛이 애처롭게 변한 남자는 갑자기 도희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저 진짜 죽이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겁만 주려고, 겁주려고 그런 겁니다. 너무 괘씸하잖아요!”

—이 자가 하는 말이 거짓은 아닐세.

“그건 경찰서 가서 말씀하세요.”

*     *     *

여자에게 협박죄로 신고당한 남자는 경찰서에 가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여자의 행동이 괘씸해 겁만 줬을 뿐, 진짜 살인을 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였다.

세 다리 걸친 여자에게 협박 편지 몇 통 보낸 것도 죄가 되냐며 따지는 남자에게 설득된 몇몇 경찰도 끽해야 벌금으로 끝날 것이라는 말들을 뱉어 냈다.

그렇게 그들의 태도에 환멸을 느낀 도희는 고개를 내저으며 경찰서를 나왔다.

*     *     *

직장인들에게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인 점심시간.

식사를 끝낸 이들은 커피 한잔과 함께 각자의 휴식에 빠져 있었다.

“대박! 선미야 이거 봤어?”

“뭐?”

대답은 했지만, 선미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의 휴대 전화 화면이었다.

“강도희 SNS에 사진 올라옴!”

“그게 뭐 대수라고.”

선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힐끔 고갤 돌리자, 여자는 자신의 휴대 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이도하랑 찍은 사진인데?”

“뭐어?!”

선미는 여자의 휴대 전화를 아예 뺏어 들었다.

화면 속에는 커플 교복을 입은 도희와 도하가 여느 때보다 예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런 미친…….”

처음 보는 도하의 화사한 미소와 그의 머리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 머리띠가 선미의 신경을 건들었다.

“봐, 봐. 나도 볼래!”

“놔 봐!!!”

살기 어린 표정의 선미는 옆에서 사진을 보겠다며 끼어든 여자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왜 나한테 성질이야.”

여자가 신경질적인 말을 내뱉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선미는 휴게실을 그대로 빠져나갔다.

*     *     *

“이게 정말 그 대단하다는 도사님의 영험한 영단(靈丹)이에요?”

흑갈빛이 맴도는 작고 동그란 단약에선 향긋하디 매운 한약재 냄새가 폴폴 풍겨 왔다.

—그래. 하나는 네 것이다.

“예?”

‘먹고 괜히 잘못되는 거 아냐?’

매사 쉽게 남을 믿는 일이 없는 도희였다.

—고얀 놈.

“하하… 제가 한약은 안 먹어 봐서… 이런 건 뭐 안 맞는 체질도 있고 그렇다던데… 하하.”

도사는 기껏 힘들게 만들었더니 엄한 소리나 내뱉는 도희 때문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놈아, 오죽하면 민생에선 소생단(蘇生丹)이라 불렸겠느냐. 남들은 죽고 없어서 못 먹는 이 귀한 것을.

“그래요?”

‘그래.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냥 삼키면 돼요?”

—너에겐 안 준다, 이것아!

“뭘 또 삐지셔가지고는.”

“도사님, 이 정도 가루면 되나요?”

강아는 이미 엄마에게 먹일 영단을 가루로 빻는 중이었다.

—더 잘게 빻아야 함세. 효험은 보다 못하겠지만 하는 수 없으이.

의식이 없는 어머님에겐 물과 함께 가루를 아주 소량씩 털어 넣는 방법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도사님 나 진짜 먹어요?”

—먹지 말고 이리 내놓거라.

도사의 말로는 이걸 먹으면 도희의 기운을 빌려 요물 하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일단 하고 후회하는 성격의 도희였다.

‘일단 먹자!’

—잠깐! 어찌 여인이 저리 성질이 급할꼬. 일단 이리 와 바닥에 앉게나.

이미 영단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말하는 도희를 도사가 서둘러 막아 세웠다.

—손을 올리게.

정좌를 틀고 바닥에 앉은 도희가 양손을 가슴 앞으로 올렸다.

—단약(丹藥)을 입에 넣고 씹진 말게나.

지금만큼은 잘못될세라 도사의 말을 아주 잘도 듣는 도희였다.

단약을 입에 문 도희의 양손 위로 서책이 고이 내려앉았다.

—이제 천천히 음미하며 씹어 보게.

도희가 어금니로 단약을 짓이긴 순간, 입 안 가득 향긋한 한약 냄새가 맴돌더니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     *     *

“후우…….”

도희가 가벼운 숨을 내뱉으며 눈을 뜬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기분은 찝찝했다.

“일단 씻고 와야겠어요.”

바로 샤워실부터 향한 그녀였다.

샤워하는 동안 온몸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감각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호오, 역시 내 제대로 만든 것이 맞구나!

샤워하고 나온 도희를 본 도사의 첫마디였다.

“예?”

곧 쏜살같이 공중으로 떠오른 서책은 도희의 머리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정갈한 기운이 들어참은 물론 그릇도 커졌음이야. 이리 손을 내보게나.

뻗어진 도희의 손위에 서책이 내려앉았다.

—흐음… 이 정도면 가능헐 듯 허이. 아까 그 물건 꺼내게.

“최대한 예쁜 걸로 골랐어요.”

도희가 가방에서 얇은 갈색 뿔테 안경을 꺼내 들었다.

—이것으로 악을 보게 만들어 달라?

“네. 그럼 도사님이 쫓는 악인 찾는 게 편하지 않겠어요?”

도사는 이렇게 자신도 돕고 그녀의 바람대로 돈도 버는 방법을 찾아낸 도희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야 할지, 또 그놈의 물욕을 앞세운다며 욕을 해야 할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일단 해 봄세. 허나 나도 예전 같지 않아 실패할 수도 있음이야.

“기대 안 할게요.”

—고얀 놈.

“그래야 실망도 안 하죠.”

세상의 이치를 빨리도 깨달은 여인이다.

—다시 바닥에 앉게.

또다시 곧은 자세로 바닥에 앉은 도희의 양손엔 각각 서책과 안경이 들려 있다.

—숨을 크게 들여 마시고.

“후웁…….”

—내쉬고.

“후우…….”

—천천히, 더 자연스럽게.

도사 말에 따라 느리게 심호흡하던 도희의 몸 주위로 어디선가 나타난 빛무리가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면 될 게다. 계속 그리 숨만 쉬거라.

눈부시게 밝은 빛무리에 온몸이 감싸인 도희는 곧이어 나타난 영롱한 청색 빛무리에 휘감겨지더니 이내 크게 번쩍였다.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환한 빛에 저절로 눈이 감긴 강아가 눈을 떴을 땐,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도희가 있었다.

“도희야!!!”

*     *     *

“이도하!”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여성의 외침에 모두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급작스레 사무실로 들이닥친 선미는 울분을 욱여넣은 눈빛으로 도하를 쏘아봤다.

잠시 고갤 든 도하의 냉담한 두 눈은 그녀에게 스치듯 준 시선조차 금방 거두었다.

“네가… 네가 어떻게…….”

사무실 문 앞에 선 선미는 더는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분만 토해 낼 뿐이었다.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이!”

팀원들의 황당한 눈빛이 쏟아지자 여자는 더욱더 거친 말을 내뱉었다.

“너 강도희가 어떤 앤지 몰라? 남들 다 아는데 왜 너만 모르냐고! 왜 하필 강도희야? 왜!”

선미는 속에 무한히 쌓여 있던 도희에 대한 자격지심을 한없이 토해 냈다.

“남들이 다 걔보고 뭐라는 줄 알아? 남자에 미친년, 걸…….”

콰앙!!!!

그 순간, 책상이 부서질 듯한 굉장한 소음이 사무실을 덮쳤다.

지켜보던 팀원들의 고개가 소리 난 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자리에서 일어나며 책상을 내려친 도하가 주먹을 쥔 채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나가.”

몹시 차가운 음성이었다.

“이도하!”

“우리가 반말하는 사이였나?”

“…….”

아니.

넌 내 연락에 답 한 번 한 적 없고, 한 번도 웃어 준 적 없고, 시선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어.

넌 그런 애니까.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힘껏 소리치고 싶지만, 속에서만 맴도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이었다.

도하가 아닌 자신을 무너트릴 말인 것을 잘 알기에.

“너 진짜 강도희랑 만나?”

“어.”

그래.

이도하는 항상 이런 사람이었다.

시릴 만큼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던 남자.

천천히 다가가면 언젠가는 따뜻해질 줄 알았던 남자.

“나는? 나는 너한테 뭐였는데?”

이 상황에도 여전히 도도하고 매력적인 얼굴에 시선을 뺏긴 선미였다.

이렇게 물러설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도하, 너 나랑 만나고 있었잖아.”

싸늘하게 내린 침묵이 주변을 감싸고, 모두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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