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99)화 (99/120)

098화 망했다.

몽환적인 연하늘색 조명이 비추는 통로로 들어서자, 온몸을 진동시키는 음악이 귓가로 때려 박혔다.

다소 시끄러운 음악에 인상을 찡그린 도희는 애써 표정 관리하며, 직원을 따라 클럽 안으로 발을 옮겼다.

소음 같았던 음악도 계속 듣다 보니 저절로 몸이 들썩거렸다.

‘사람 많은가 보네.’

음악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간간이 들려온다.

낯선 설렘을 가득 안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마치 사람들의 숨결처럼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확 와 닿았다.

확 트인 넓은 스테이지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선 젊은 남녀들이 서로 엉켜 박자에 몸을 맡긴 채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워.’

쉼 없이 깜빡이는 조명과 거세지는 음악 소리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도희가 잠시 한눈판 사이 직원과 강아는 이미 스테이지 옆에 있는 철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도희도 급히 그들을 쫓아 클럽의 2층으로 올라섰다.

클럽의 2층은 1층과 훤히 트인 공간으로 2층 난간에서 스테이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이곳도 스테이지와 마찬가지로 난간을 빽빽이 둘러선 남녀들이 각자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신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도희!”

강아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도희가 쫄래쫄래 강아를 쫓아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 형사님이랑 도하씨는?”

분명 먼저 클럽으로 들어간 둘이었다.

시큰둥한 표정의 강아가 턱짓한 곳을 쳐다보니, 도희네 테이블과 정 반대편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보인다.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고 알아본 것이지, 그마저도 난간을 잡고 흔들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왜 이렇게 멀리 앉았대!”

소란스러운 음악에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내가 최대한 먼 테이블로 달라고 했어!”

강아도 도희에게 들리도록 크게 소리치며 외쳤다.

다시 목을 가다듬던 도희는 결국 편한 대화를 위해 강아의 귓가로 다가가 물었다.

“왜?”

“둘, 둘이 따로 놀자고 하잖아. 소원대로 해줘야지.”

도희의 가늘어진 눈매가 강아를 훑는다.

“너 저번에 소고기 먹을 때도 이상했는데.”

“뭐가.”

“우 형사님이랑 싸웠어?”

“뭔 소리야. 싸울 일이 뭐가 있어.”

“에이, 저번부터 둘이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섞더만.”

“뭐래. 안 들려 이것아.”

“싸웠네. 싸웠어.”

“야, 헛소리 말고 우리도 오늘 제대로 놀자.”

“뭘 놀아. 일하러 왔는데.”

이 클럽은 부사장 비리 장부 인물 중 하나인 윤상원 판사의 둘째 아들이 매주 주말 이곳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온 곳이었다.

“너만 일하러 왔지. 난 아니야.”

“다들 올 때는 나 도와주러 오는 거라더니, 와서는 놀겠다고 난리네. 참나!”

도사는 시끄러운 곳을 질색이라며, 본인이 오지 않는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빠져 버렸고, 백 실장도 차라리 병실을 지키겠다며 강아를 내세웠다.

‘우 형사님도 뭐? 마약 투약 현행범으로 잡는 걸 도와줘?’

그렇게 오게 된 네 명 중 지금 제일 신난 것은 우주였다.

도희의 시야에 난간에 기댄 채 여자들과 신나게 대화 중인 우주가 보인다.

멀리서 봐도 하늘로 치솟은 그의 입매가 선명하게 보였다.

‘도하씨는 왜 따라온 거야.’

그 뒤로 도도하게 다릴 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도하는 술인지, 물인지를 모를 무언가를 홀짝이고 있다.

오늘따라 넘겨 올린 머리 때문인지, 화려하게 비추는 조명 때문인지, 가뜩이나 뚜렷한 이목구비가 더 훤칠하게 드러났다.

맨날 보는 도희마저 도하의 얼굴에서 시선을 못 떼고 있는데, 남들은 오죽하겠나.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는 도하에게 쉴 새 없이 다가가 말을 거는 낯선 여자들의 모습에 도희의 눈썹도 쉼 없이 꿈틀거렸다.

곧 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발길을 옮기자, 도희도 도하를 쫓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2층 여자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을 지나쳐야 하는 구조였다.

“아니라니까.”

도하를 따라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로 들어선 도희의 귓가에 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의 음성에 멈칫한 도희는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도하의 모습이 보일 텐데, 어째선지 누군가 붙잡은 듯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먼저가.”

‘반말?’

상대방의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도하의 대답만큼은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 곧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도희보다 네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에 여자가 도희를 지나친다.

‘지금 처음 보는 여자한테 반말한 거야? 나한테는 아직도 말 못 놓으면서?!’

“허!”

짧은 신음을 내뱉은 도희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자리로 돌아왔다.

*     *     *

철제 난간에 기대선 우주의 불안한 시선은 오래도록 난간 너머의 도희와 강아를 쫓았다.

“저 두 분 취한 거 같은데.”

건너편 난간을 붙잡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와 무언가를 병째 마시고 있는 도희를 본 우주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매만졌다.

머리를 흔드는 강아의 몸이 살짝 비틀거리는 것이, 그녀의 취기가 우주에게까지 풍겨 왔다.

치마는 왜 저리 짧은 걸 입고 와서, 자칫 발이라도 삐끗해 넘어졌다가는 못 볼 꼴 보이기 딱 좋은 상태였다.

그녀들에게 온 신경을 빼앗긴 우주는 이제 곁에 있던 여자들이 귀찮아졌다.

도하도 우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가온 여자들을 무심하게 뿌리친 도하의 눈길도 줄곧 도희를 향해 있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도희와 강아에게 다가가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포착됐다.

물론 두 여자에게 다가간 남자들이 이들 뿐만은 아니었기에 도하가 술잔을 들기 위해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어?”

우주의 의아한 신음에 도하의 고개도 우주를 따라 격하게 꺾였다.

“저건 뭐죠.”

다가온 남자 무리와 말을 나누는 도희는 몸까지 꺾어 가며 간드러지게 웃고 있었다.

곧 강아마저 합류하더니, 두 여자는 낯선 남자들을 따라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기로 가면 룸인데.”

순간, 굳은 안색으로 눈이 마주친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들을 쫓기 시작했다.

*     *     *

‘요놈 봐라. 손버릇까지 나쁘네.’

도희는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남자의 손길을 능숙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반대편에 앉은 강아를 힐끗 보니, 그 옆에 앉은 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이강아 꽤 잘 참네.’

애써 웃으며 남자를 거부하는 강아에게 남자는 예뻐도 내숭 떠는 컨셉은 별로라며 그녀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안 더워? 예쁜 옷을 입고 왜 머리로 다 가려.”

‘으, 느끼해.’

남자의 손길이 도희의 머리카락에 닿기 직전, 얼굴에 와 닿는 남자의 숨결이 기분 나쁜 도희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뭐냐.”

순간, 그늘진 남자의 얼굴이 악귀 같이 구겨졌다.

“쿨럭. 응? 미안, 기침이 나서.”

도희는 또 남자가 핑계 삼아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덥네. 여기 룸 공기가 안 좋은가 봐.”

도희의 핑계에도 남자는 눈썹을 치켜세운 살기 띤 눈빛으로 도희를 노려봤다.

“술을 덜 마셨네. 마셔.”

도희 손에 양주가 가득 담긴 온더락 잔을 쥐여 준 남자는 그녀에게 어서 마시라는 고갯짓을 해 보였다.

입매를 끌어올린 도희는 남자에게 도로 잔을 건넸다.

“……?”

남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자 도희가 말했다.

“바꿔 마실래?”

남자는 당돌한 도희가 꽤 마음에 들었다.

“훗, 의심이 많네? 내가 이상한 약이라도 탔을까 봐?”

불쑥 끈적한 남자의 손이 도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진득하게 쏟아지는 남자의 눈빛을 온전히 받아 낸 도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에이, 그럼 더 좋지. 오늘 재밌게 놀고 싶었는데.”

도희의 미소를 본 남자의 눈빛에서 역한 음흉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도희에게 건넸던 잔을 다시 받아든 남자가 그 잔을 입가로 가져다 대는 순간!

쾅—!

거세게 열린 클럽 VIP룸의 문이 벽에 거칠게 부딪혔다.

그리고 룸 안으로 우주가 비장하게 들어서고, 그 뒤로 다소 화난 듯한 도하가 보였다.

‘아, 다 됐는데! 우 형사님, 잠깐만!’

도희가 작게 고갤 저으며 열심히 우주에게 신호를 보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안 돼, 아직 아니야!’

제발 그냥 나가라는 도희의 눈짓을 보고도 외면한 우주는 입술을 짓이기며 남자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서부서 강력 2팀 우주 경위입니다. 잠시 불심 검문 있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남자들은 우주 손에 들린 경찰 공무원증을 봤음에도 시큰둥했다.

강아 옆자리의 앉은 남자가 도희 옆의 사내에게 눈짓하자, 사내의 입가엔 비릿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수색 영장 없는 소지품 검사는 위법인 거 모르시나?”

역시, 사내는 아버지가 판사여서인지 법에 문외한은 아니었다.

“중범죄에 한해 현행범일 경우 가능하다는 거 모르시나?”

우주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건 내가 판단하는 거고.”

우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내 무리에게서 ‘크큭’ 거리는 신랄한 비웃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푸하, 올~ 쎈데~”

“하, 우리 형사 아저씨 뭘 모르시네.”

“와, 나 방금 무서워서 지릴 뻔했잖아, 크윽.”

전형적인 양아치스러운 발언들에 도희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어디 삼류영화도 아니고… 설마 이러다 서로 싸움 나는 거 아니야? 막 주먹 날리고? 에이, 설마…….’

“얘들아, 소지품 내놓을래 아님 서까지 임의 동행할래? 선택해.”

“뭐든 해줄 테니까 영장 가져와.”

이들이 협조해 주지 않는다면 영장 없이 이들을 수색할 권리가 없는 우주였다.

“아~ 그치. 내가 너무 장난 섞어 말했지? 그래서 너희들이 못 알아들었다. 그치?”

우주는 고심에 쌓인 표정으로 미간을 매만지며 테이블 가까이 다가왔다.

서늘한 시선을 뿌리며 다가오는 우주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남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하까지 우주 곁으로 다가오자. 도희의 얼굴엔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하,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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