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107)화 (107/120)

106화 선과 악의 경계

“뭐? 산 약초 불법 채취?”

“주야 왜 모르는 척하냐. 며칠 전엔 내가 직접 확인까지 했는데.”

자신이 산에서 겪은 일과 취재한 정보를 이미 제멋대로 끼워 맞춘 설민기는 확신했다.

“누가 그래?”

백 실장, 한 부장, 김현철.

설 기자의 정보통 중 한 명은 셋 중 하나인 모양이다.

비슷한 착각을 했던 무리는 그들밖에 없으니.

‘백 실장이면 곤란한데.’

백 실장은 누구보다 도희에 대해 많이 아는 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 도희 곁에 가까이 있는 인물.

“그게 중요하냐? 도희씨 이미지가 워낙 정의롭잖냐. 만약 불법적인 행동 하나 꼬투리라도 잡혀봐. 바로 언론 매장 당할걸?”

“그래서?”

“뭐?”

“그거랑 네가 도희씨 미행하는 거랑 뭔 상관인데.”

“너 저번에 기억 안 나? 어떤 여자가 따라다니는 것도 내가 너한테 말해 줬잖아!”

설민기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왜 진작 그때 이상한 걸 알아채지 못했을까.

“너 대체 언제부터 쫓아다닌 건데.”

“어허. 우리 주야 또 엇나가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까?”

“그게 중요해. 당사자가 싫어하면 그거 스토킹이다. 너도 이제 장난 그만해라.”

“물어보면 되잖아.”

역시, 설민기 이 자식은 제정신은 아닌 놈이다.

“강도희씨한테.”

이미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민기 말에 우주는 고개를 절로 내저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     *     *

“그냥 두세요.”

“예?”

목을 긁적이는 우주는 당황한 내색을 감출 생각 없어 보였다.

“설 기자님 우주씨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사람 아닌 거 같던데.”

“…그건 맞는데…….”

“설마 평생 쫓아다니겠어요? 얼마간 그러다 말겠죠. 오히려 하지 말라면 더 오기 생길 타입 같던데?”

조금 전, 예상치도 못한 우주의 등장이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건 사실이다.

물론 우주에게 아까의 다급했던 모든 상황을 말할 순 없었다.

“쯔, 뭐 그것도 그렇긴 한데. 설민기 저 자식 제정신 아닙니다. 워낙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라 걱정돼서 그러죠. 오죽하면 그 잘난 집에서도 포기한 놈이니까요.”

설민기의 조부는 3선 국회의원, 아버지는 굵직한 방위산업체를 다수 보유한 사장이란다.

물론 기업들은 모두 조부와 아버지가 비리로 빚어 낸 합작품들이지만 증조부 때부터 국회의원을 역임한 집안인지라 꽤나 입김 센 집안이었다.

“그 자식 형이랑 어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사고 쳐도 집에서 다 해결해 주니까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이 자란 놈이에요. 세상일을 전부 오락거리로만 봐서 괜히 깊게 엮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놈입니다.”

잠자코 우주의 말을 듣던 도희가 문제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우 형사님 친구잖아요?”

“예? 그게 친구는 맞는데…….”

다른 형사들에겐 숨겼지만 애초에 오피스텔 사건 때 기자인 설민기를 끌어들인 게 우주 자신이다.

그 순간의 선택이 이런 화근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놈이에요. 특종이라면 도희씨에 관해 나쁜 기사도 쓸 수도 있는 놈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딱히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건 없는데…….”

도희가 설민기에게 도사나 요물에 대해 들킬 확률이 얼마나 될지 갈등하는 사이.

“그럼 그냥 경호원이다 생각하시고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도희씨가 싫다면 제가 때려죽여서라도 떼어 놓을 테니까.”

짧게 숨을 내쉰 우주는 부디 민기의 행운이 도희의 불운이 되어 날아오질 않기만을 빌었다.

그는 운이 지나치게 좋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불운으로 돌아간다는 게 문제일 뿐.

“풉. 고마워요. 공짜 경호원 생겨서 좋네요.”

행동할 때 좀 더 주의해야겠지만 꼭 붙어서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 결론 낸 도희였다.

“근데 오늘 윤지석은 왜 만난 겁니까?”

올 것이 왔다.

도희는 침착하게 준비했던 거짓말을 내놓았다.

“앞으로 약도 안 하고 착하게 살겠다던데요?”

“예?”

우주의 표정만 봐도 거짓말인 걸 아는 눈치지만 사실을 말할 순 없다.

‘또 끌어들일 순 없지.’

한때 손모아에게 놀아났던 윤지석은 그녀에 대한 악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문란하게 노는 모 재벌가 자녀, 데이트 폭력에 살인 청부 의뢰까지.’

그가 도희에게 늘어놓은 말들은 손모아가 비산의 딸이기에 그룹 이미지에 흠을 내긴 충분했지만, 딱 그뿐이다.

‘이걸 터트린다 해도 증거가 없으니까 또 나만 놀아나겠지.’

윤지석이 터트리지 않는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약은 자식.’

비산 관련 일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신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도희였다.

“정말 별일 아니에요. 윤지석 다신 사고 안 친다니까 믿어 보죠, 뭐.”

사실 사고 칠 상황도 아니었다.

‘당분간은 알아서 조심하겠지.’

여전히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던 우주는 어색하게 입매를 올리는 도희를 보곤 못마땅한 표정으로 앞머릴 쓸어넘겼다.

“그럼 이번 일 모른 척 넘어가는 대가로 오늘 저녁은 저랑 드셔야겠습니다.”

“밥은 제가 살게요. 우 형사님 뭐 드실래요?”

“아쉽지만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네요.”

*     *     *

치이익—

달궈진 불판 위로 올려진 고기들은 머금고 있던 붉은 핏기가 없어지기 무섭게 형사들의 젓가락에 붙들려 사라졌다.

“천천히 좀 먹어라 이 자식들아. 천천히. 누가 보면 소고기 처음 먹는 줄 알겠네.”

도희를 슬쩍 흘겨본 서 팀장의 핀잔에도 그들의 젓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에이, 맨날 우 경위가 사 준 소고기만 먹었지, 오늘은 팀장님이 사는 소고기를 먹는 역사적인 날이잖습니까. 저희가 잘 먹어야 사 주는 팀장님도 기분 좋게 쏘시죠.”

서 팀장은 집게 들린 손을 박 경위를 향해 들어 올렸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낯선 시선에 슬며시 팔을 내렸다.

“그래. 박 경위 많이 먹고 꼭 밥값 해라아?”

“예?”

“먹어, 먹어. 어서 손에 들린 쌈부터 입에 넣어야지. 왜? 못 먹는 거 보니까 요즘 밥값 못하는 건 알고 있나 보네?”

서 팀장의 장난스러운 말투에도 일순간 강력2팀원 모두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우리 도희씨는 밖에서도 혼자 척척 사건 해결 잘만 하고 다니던데. 우리는 월급 받으면서도 참… 맨날 이 모양이라 면목이 없다. 면목이 없어.”

애써 꾸며 낸 웃음을 흘린 도희는 우주의 부탁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걸 후회하는 중이었다.

‘밥을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오.’

“근데 누나는 진짜 막 나쁜 놈들 속마음이 들리고 그런 겁니까? 뉴스에서 보니까 그러던데.”

젓가락을 휘저으며 넉살 좋게 묻는 막내 지 순경의 물음에 모두가 도희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도 궁금한 참이었다.

“뭐… 생각이 들리는 건 가끔이고, 기운을 느낀달까요. 나쁜 놈한텐 역한 기운이 느껴져요.”

“우와… 세상에 진짜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허어…….”

입까지 벌리며 감탄하는 지 순경과 도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 경위, 그리고 고갤 갸웃거리며 화들짝 놀라는 박 경위의 반응에 도희는 다시 한 번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비교적 담담한 표정의 서 팀장은 애꿎은 다 익은 고기 하나를 연신 뒤집고 있었다.

‘더 한 것도 있어요, 이 사람들아. 서책에 갇혀 말하는 도사도 있고 신묘한 요물도 있는걸.’

악한 기운을 구분해 내는 안경은 이들도 탐내지 않을까.

“…억울하네요. 누나 같은 능력이 저한테도 있었으면 경찰이 이렇게 욕먹진 않을 텐데.”

언론을 크게 탄 마 부장과 부사장 사건 조사가 지진 부진하게 흘러가면서 연일 쏟아지는 언론의 비판은 경찰 몫이었다.

“오죽하면 경찰청 게시판에 누나한테 자문 받으라는 글까지 올라올까요.”

“저도 죽은 사람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어요. 모든 사람 생각이 다 들리는 것도 아니구요. 지금도 여러분 생각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주 가끔 들릴 뿐이에요.”

이젠 거짓말이 아주 청산유수다.

딱히 다른 변명거리도 없으니 이 컨셉으로 밀고 나가야지, 별 수 있나.

“근데 막 귀신도 보이나요?”

“아니요.”

“예지몽을 꾸거나 미래가 보이는 건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럼 그냥 나쁜 놈 보면 아, 이놈은 나쁜 새끼구나. 정도?”

느릿하게 끄덕여지는 도희의 고갯짓에 기대감에 차 있던 지 순경의 눈빛은 살짝 빛을 잃었다.

“경찰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예?”

내내 묵묵히 젓가락질만 하던 이 경위였다.

지금도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는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제가 무슨 경찰을 하나요. 능력 있는 형사님들 여기 다 계신데.”

“어? 그거 반어법 같은데.”

“어우, 아니에요. 자그마한 도움은 드릴 수 있을지 몰라도 전 정말 경찰을 할 만한 자질은 없어요.”

일 년 뒤면 도사와의 인연도 끝이다.

지금 도희가 보여주는 것들은 한시적 능력에 불과했다.

‘그전에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겠네. 돕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만약 정말 제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능력이 되는 한 힘껏 도와드릴게요.”

“막내야 저 말 녹음해 놔라.”

내내 무심한 표정이었던 서 팀장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옙. 저도 그 능력 구경 좀 해보고 싶습니다!”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게요.”

“그럼 우리 팀원 하나 느는 겁니까? 업무 분담해야겠습니다. 막내야 너 막내에서 벗어나서 좋겠다?”

너스레 떠는 박 경위의 농담에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을 무렵.

“어? 서부서 강력팀 우 모씨?”

와이프에게 전달받은 기사를 읽은 이 경위가 고갤 옆으로 기울였다.

“우리 서에 우씨가 우 경위 말고 또 있었나?”

“예? 흐음… 우리 서에는 없는 거 같은데.”

“왜 무슨 일인데.”

“이, 이거…….”

이 경위의 휴대폰이 박 경위 손위로 건네졌다.

“국회의원 외동아들? 결호온?!”

실눈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박 경위의 눈이 크게 뜨이며 그의 입에서 외마디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예?”

“비산 그룹 손남수 회장의 장녀 손 모양과 새민당 우 정모 의원의 외동아들 우 모씨가 다음 달 말 비밀리에 결혼…….”

순식간에 일이었다.

하얗게 질린 우주의 손이 박 경위의 손에 있던 휴대폰을 낚아챘다.

‘우 정모 의원의 외동아들인 우 모씨는 서부서 강력팀 형사로…….’

빠르게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우주의 두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그가 힘겹게 이뤄 낸 평범한 일상이 처참히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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