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115)화 (115/120)

114화 요상한 주머니

“뭐? 정신병동?”

백 실장의 눈이 크게 뜨인다.

“얼마 전부터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대. 음침한 남자 목소리라나…….”

백 실장이 마지막으로 한 실장을 만났을 때도 그는 이상한 말과 행동을 반복했다.

누가 자신을 죽일 거라며 불안에 떨면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서 상태가 어떤데? 정신병동으로 이감될 만큼 안 좋다는 말인가?”

입을 여는 도희의 안색도 좋진 않았다.

“아마도.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발작 증세도 보이고. 교도관 말론 김현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더 심해졌대.”

믿지 않았다.

그의 불안감이 만들어 낸 헛소리라 생각했다.

마 부장, 부사장에 이어 김현철.

한 부장까지 저 지경이 되고 나니 그의 불안은 백 실장에게까지 옮겨졌다.

“한 부장 안전한 건 맞아? 저렇게 그냥 정신병동에 처박아 둔다고 될 게 아니잖아!”

발악하듯 소리치는 백 실장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진다.

그녀의 어릴 적, 고아원 시절부터 유일하게 알고 지낸 어른.

비록 그 때문에 몹쓸 짓도 많이 했지만 한 번도 그를 원망한 적 없다.

한 부장과 백 실장, 개선부의 두산까지 셋이 나름 각별한 사이인 것은 모두가 알았다.

“조현병 초기 증상 같다는데 치료는 받아야지. 단순 불안감에서 오는 과대망상일 가능성도 커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게 해주면 괜찮아질 수도 있대. 너무 걱정 마.”

그리도 다음 말은 우주가 덧붙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보호 인력도 붙여 뒀고, 우리 팀에서도 수시로 들여다보기로 했으니까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긴 힘들긴 한데…….”

우주도 이미 대비를 해뒀다.

이대로라면 다음 타겟은 한 부장이 제일 가까웠다.

만약 그가 아니라면…….

“백 실장.”

차가운 눈매의 우주가 백 실장을 응시했다.

“당신도 위험한 상황이야. 알지?”

물론, 그녀도 알았다.

우주의 시선을 외면한 백 실장은 대답 없이 입매를 굳게 말아 올렸다.

“정리하자면.”

어디서 구해 온 건지 우주는 병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큰 화이트보드를 끌고 왔다.

“시작은 마 부장.”

그리고 그 중앙엔 검은 보드 마카로 ‘마 부장’이란 단어를 적는다.

“그 다음은 황이재 부사장.”

바로 아래 적히는 황이재 부사장.

그리고 그 밑엔 오피스텔 살인범.

끝으로 김현철이란 이름을 적고서야 우주는 보드 마카를 내려놨다.

“일단 오피스텔 살인범을 제외하고 이 세 명은 전부 화정기획에 다니던 사람이고.”

다시 빨간 보드 마카로 셋의 공통점을 적어 내려가는 우주였다.

“세 사람 전부 화정기획에서 일련의 사고로 해고된 사람들.”

‘화정기획’이란 단어 밑으로 한 부장, 백 실장의 이름도 적혀진다.

“그리고 같은 공통점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는 사람 둘. 이 외에 더 있습니까?”

손을 든 도하가 말했다.

“도희씨요.”

이에 도희가 의아한 듯 반문했다.

“예? 저 사람들은 잘린 거고 저는 자발적 퇴사입니다만…….”

“사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사건을 겪고 그만둔 건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네요. 퇴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도희씨도 해당되겠네요.”

백 실장의 이름 밑으로 도희의 이름도 써진다.

“자, 그리고 화정기획과 관련 없는 이놈.”

우주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오피스텔 살인범이 있다.

“그럼 이제 넷의 공통 분모를 찾자면, 바로 범행 도구.”

굵은 밧줄.

“그리고 두 사람.”

굵은 밧줄이란 단어 밑에 써지는 이도하, 강도희.

“더 있나요?”

대답이 없자 낯빛이 어두워진 우주가 펜을 내려놓았다.

짧지만 묵직한 침묵이 흐르고.

“더 분명해졌네요.”

앞으로 나선 도하가 우주가 내려놓은 펜을 다시 집어 들었다.

“사건의 범인이 우리랑 관련 있다는 거.”

그리고 그는 도희 옆에 떠 있는 서책을 응시했다.

“이제 알고 계신 걸 말씀해 주시죠, 도사님.”

도하의 말이 끝나자, 날아오른 서책은 보드판 위로 안착했다.

—아직은 짐작일 뿐이네.

“여기서 확실한 게 어디 있어요. 전부 짐작일 뿐이죠.”

도희는 속사포 같은 대답으로 도사를 재촉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도사는 결국 입을 열었다.

—하나, 도술을 부리는 자가 이 세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든다.

—자넬 처음 봤을 때 내가 건넨 말을 기억하는가.

뭐든 쉽게 털어내는 도희는 한 달 전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중요한 일 아니면 잊는 게 속 편해서… 헤.”

짧게 혀를 찬 도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 도가(道家)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였지.

아! 그랬던 것도 같고.

고된 기다림 끝에 도사가 도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수일인지, 수년인지 알 수 없으나, 그곳에 있는 동안 도기(道氣)가 느껴진 것은 자네가 처음이었네. 물론 그 기운이 미천할 만큼 옅긴 했으나 도기는 도기.

그리고 도사는 산에서 내려온 뒤로 도희와 함께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허나 그 후로 자네 말고는 만나지 못했네. 단 한 명도.

도기(道氣)라니.

모두의 시선이 도희에게로 몰렸다.

—자네에게 느껴지는 도기도 아주 옅어 홀로는 아무 술법도 행할 수 없을 정도지.

“그때 도사님처럼 도술을 부리는 도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알지 못 한다 하여 없다 할 수 없지 않으냐.

‘그래, 이제 기억난다.’

그때도 이렇게 모호하게 말한 도사였다.

“그럼 두 번째는요?”

하나라고 운을 띄었으니 둘도 있을 터.

—그자가 온 게지.

안색이 급격히 굳는 도희를 보며 모두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예? 도사님이 말한 그 자라면…….”

악에 잡아먹혔다던 악의 도사.

—부디 아니길 바라네만…….

“아니, 그 사람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도 없고, 그럼 도사님처럼 이런 모습이거나 아니면 환생…….”

터무니없는 상상이지만, 그간 겪은 일들을 떠올려보면 말이 안 될 것도 없다.

“그래. 말도 안 되지만, 환생이라도 했다 쳐. 근데 그 사람이 도술을 어떻게 부려요? 과거의 기억이라도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내 어찌 알겠나.

“말도 안 돼.”

—그 어떤 것이라 한들, 자네와 내가 모른다 하여 부정할 순 없네.

“두 분 대체 무슨 말입니까.”

도하와 백 실장의 몫까지 대신 물은 우주였다.

그들의 의아한 눈빛을 읽은 도희는 도사의 과거와 자신이 아는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나자 도사가 거들었다.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우리의 상황을 아는 누군가가 주머니를 가졌을 경우네.

“주머니요?”

—기억의 주머니.

교도소 사건 장면을 본 도사가 내린 결론 중 하나였다.

—그 주머니는 한 번 넣은 물건은 언제든 다시 꺼내 쓸 수 있네.

“그게 정확히 무슨 말입니까?”

차분히 흘러나온 도사의 음성을 모두 또렷이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어떠한 것이든 주머니에 한 번 담긴 적 있던 물건은 주인이 언제든 자유로이 그 물건을 다시 꺼내 쓸 수 있단 말일세.

“그러니까 그 요물 주머니가 담았던 물건들을 복사라도 한단 말이네요?”

—그런 셈이지.

“그럼 원래 물건은요?”

—본래의 물건은 그대로 온전히 남는 게지. 주인이 사용하는 건 그 속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별개의 물건일세.

“허…….”

—다만 물건을 사용하려면 주머니를 꼭 패용하고 있어야 하네.

“본체는 본체대로 남고, 주머니에서 새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주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주머니를 가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물건이든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이었다.

무엇이든 잠깐 빌린 뒤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돌려주면 같은 물건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단 말이잖나.

“그 말은 그 주머니를 가진 누구나 술법 걸린 요물들을 쓸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바로 그 말일세.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악의 도산지 뭔지가 이번 사건들의 범인인 것이 차라리 나았다.

적어도 도사가 아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 우주의 말대로라면 범인의 범위가 너무도 넓어진다.

이번 일들이 도희가 겪은 일들과 관련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도희의 일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기사까지 나는 바람에 사회 이슈에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중에 그 주머니를 가진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걸 가졌다 해도 왜 이런 짓을…….’

악의적인 마음을 먹고 도희를 괴롭히려고?

거기다 살인까지 해가면서?

왜?

무엇을 위해서?

주머니의 사용법은 또 어떻게… 아, 오피스텔 살인범도 투명 목걸이를 사용했으니 사용법은 어떻게 알 수 있다 치자.

‘그럼 그 주머니에 요물이 어떻게… 예전에 담겼던 거? 그럼 그 주머니에 요물들이 담겼었단 말이야? 언제? 그럼 범인이 오만가지 도술을 다 쓸 수 있단 말인가?’

—과거, 그곳에 넣어졌던 것은 몇 가지 없으이. 더군다나 개중 목걸이나 도포는 없었네.

둘 다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 요물이다.

—어찌 된 영문인진 모르나, 범인 손에 있는 주머니엔 그것들이 담겼던 거 같구나.

“그 범인이 요물을 사용한 게 아니라 도사님처럼 술법을 사용한 걸 수도 있잖아요.”

—몸을 투명하게 하는 술법은 지금의 나로서도 행할 수 없네.

“그 사람은 할 수 있을지도 모…….”

—희박하긴 하네만…….

도희의 말을 끊으며 고민에 잠긴 도사의 말끝이 흐려진다.

—암, 그럴 리 없네. 불가능허이.

짧은 침묵 후 단호하게 말하는 도사였다.

“그럼 진짜 범인이 그 요상한 주머니라도 가지고 있단 말인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잡아요?”

최악이다.

—부디 아니길 빌어보게나.

이러나저러나, 둘 다 문제였다.

앞으로 더 큰 일이 몰아닥칠 게 불 보듯 뻔했다.

묵직한 답답함이 숨통을 꽉 조여 오며 머리가 핑 돌았다.

도희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예상보다 일찍 들어맞았다.

“…도, 도희야.”

강아가 떨리는 손으로 움켜쥔 휴대폰을 도희에게 내밀었다.

“…어떡해, 설 기자가 미쳤나 봐…….”

몰아닥칠 고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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