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117)화 (117/120)

116화 소문

도희의 한쪽 입꼬리가 가파르게 올라간다.

“지금 수사 기밀을 유출하란 건가요?”

삐딱한 시선에도 무혁은 의연하다.

“저는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았으면 해서 드린 말씀인데.”

무표정한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봅니다.”

피해자 핑계라니.

그답지 않게 사족이 길다.

“사장님께 먼저 사건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과 피해자랑 무슨 상관인가요.”

“도희씨가 정보를 주시면 저희도 도희씨가 필요한 정보를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꾸 돌려 말씀하시네요.”

“그럴 리가.”

“돌려 말하는 거 안 좋아하는데.”

“역시, 저랑 취향이 같네요.”

“그걸 취향이라고 표현하진 않아요.”

“이런, 한글부터 다시 배울까요?”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도희가 몸을 당기며 턱을 괴자, 무혁도 그녀를 따라 몸을 당기며 어서 말하라는 미소를 보냈다.

“언론 대응을 해야 하니, 사건이 터지면 기사 나기 전에 미리 말 좀 해달라.”

연달아 터진 화정기획 해고자들의 살인 사건으로 회사도 곤란을 겪는 모양이다.

안 좋은 사건에 회사 이름이 계속 거론되니 회사도 난감하겠지.

“경찰에서 기자에게 정보를 건넬 때 저희에게도 같이 전달해 달란 말이 어려웠나요.”

“죄송하지만 저는 아는 게 없어요. 제가 경찰도 아니고.”

“도희씨 현장 드나드시는 거 압니다.”

“그야 경찰은 제가 관련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뭘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전혀 아니거든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같다니?

“도희씨가 무언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

“싶은데.”

“…….”

“아닙니까?”

“제가 아는 만큼 사장님도 피해자들을 잘 아실 텐데요.”

“에이, 도희씨만 할까요.”

도희는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그리고 지금은 피해자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중요하죠. 사장님도 피해자들이 화정기획 사람들이라 신경 쓰시는 거 아닌가요?”

“전 범인이 더 중요합니다. 혹시 의심 가는 사람 없습니까?”

“글쎄요.”

“전 있습니다.”

“예?”

도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자 무혁이 답했다.

“회사 안에.”

“이 사건의 범인이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능성 있지 않습니까?”

“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 누군가요? 사장님이 의심하는 사람이.”

도희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저도, 그룹 입장에서도 이번 사건들이 조속히 해결되길 원합니다.”

누군지는 말하지 않고 웬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무혁이었다.

“의심 가는 사람이 누군가요?”

도희가 재차 물었다.

“그건 도희씨가 알아보시죠.”

누구 놀리나.

“괜히 확증 편향이 생길 수도 있잖습니까.”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요.”

“특별한 능력이 있으시다던데.”

또 그놈의 무당 타령이다.

“그런 능력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무혁이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시험이라도 하겠다는 말로 들리네요.”

“글쎄요.”

“증거라도 있나요?”

확신에 찬 모습이 마치 증거라도 있는 모양인데…….

“증거는 없습니다. 의심일 뿐이죠.”

“의심하는 이유는요?”

“제가 내일 일본으로 출장을 갑니다.”

또 뜬금없는 말이다.

“돌아와서 말씀드리죠.”

“일종의 테스트인가요? 제가 그 사람을 찾는지 못 찾는지?”

“이번 사건이 빨리 해결돼야 도희씨한테도 좋은 거 아닙니까?”

또 말 돌리네.

“저희도 협조하겠습니다. 윈윈하시죠.”

무혁의 미소가 얄미워 보이는 도희는 입매를 불만스레 비틀었다.

“의뢰라더니, 협박이네요.”

“아, 의뢰금은 드릴 생각입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니까 사양은 마시…….”

“현금으로 부탁드려요.”

도희 말에 크게 실소를 흘린 무혁은 입 끝을 올리며 도하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도하씨는 내일…….”

*     *     *

“으~ 흐아아암~”

철제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도희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밀려오는 잠을 몰아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더니 하품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그러게. 왜 사서 고생하십니까. 쉽게 가게 도와드린다니까.”

옆자릴 차지한 전 상무는 상황이 탐탁지 않은 듯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전사 회의를 소집해 사원들을 모아준다던 그의 호의를 거절한 도희였다.

“번거롭게 그러실 거 없어요.”

띠— 띠—

사원증을 찍으며 입구를 통과하는 직원들의 의아한 눈초리가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

“이게 더 번거롭습니다.”

“업무에 지장 주고 싶진 않아서요.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피해볼 필욘 없잖아요.”

이러니 싫어할 수가 있나.

“복귀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누굴 위해서요. 저를 위해서는 아닐 거 같은데.”

“먹고 사실 만해졌나 봅니다.”

“그것도 제 얘긴 아닌 거 같네요.”

전 상무가 작게 웃자, 그녀가 코끝에 걸린 안경을 쓸어올렸다.

“근데 그 안경은 뭡니까.”

“얼굴 유심히 보려고요. 나쁜 놈이 있나, 없나.”

“살인범 잡으러 왔다고 대놓고 광고라도 하실 작정이십니까.”

이미 수군거리는 사원들을 보니 오늘의 핫이슈는 출근길 1층 로비를 차지한 도희와 전 상무일 듯하다.

“겸사겸사 나쁜 짓 하는 놈들도 잡고. 거참, 이게 전 상무님 수고 덜어드리는 거예요.”

“감시하는 거 같고 아주 좋네요. 오늘 신문고에 불만 글 꽤나 올라오겠습니다.”

“감시로 느낀다면 더 좋죠. 이 상황에서 섣부른 행동하는 사람은 없을 걸요?”

하긴, 도희가 회사에 나타난 이상 사원들은 갖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소문이나 하나 슬쩍 흘려주세요.”

전 상무의 의아한 눈빛이 도희를 향한다.

“강도희가 살인범 잡으러 왔다고.”

*     *     *

‘이건 마 부장, 황이재 부사장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던 자들 명단입니다.’

도희는 오전 내내 전 상무에게 넘겨받은 명단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으, 골이야.’

아무리 안경을 짧게 썼다 벗어도 빠르게 소모되는 기운을 막을 순 없는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몰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부여잡는 도희가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팀장니이임!”

멀리서 익숙한 듯한 높고 명랑한 목소리가 도희를 멈춰 세웠다.

앞서 뛰어오는 소하의 모습을 확인한 도희는 시선을 그 뒤로 옮겼다.

도희의 눈을 어색하게 피하는 서 대리의 뒤로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한 여자가 보인다.

‘강선미?’

저 여자가 왜…….

도희가 생각을 끝낼 겨를도 없이 소하가 달려들었다.

“전 팀장님이 연락 없이 그냥 가신 줄 알았어요!”

“에이, 아까 가기 전에 개선부 들렀다 간다고 했잖아요. 아직 일이 안 끝나서요.”

사실 정신없이 몰두했는지 소하와 아침에 나눈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주 술술 늘어. 으휴.’

“팀장님도 식사 안 하셨죠? 우리랑 같이 가면 되겠다!”

“아, 저는 아직…….”

“팀장님 오랜만인데 빼지 마시고 같이 가시죠.”

“이 팀장님도 없는데 오늘 팀장님이 자리 채워 주셔야겠습니다.”

‘이 팀장?’

진명과 두산까지 나서자 소하는 확정 난 듯 도희 팔 사이로 팔짱을 끼고 들었다.

“맞아요! 그리고 팀장님 평소에 연락도 잘 안 받으시잖아요. 언제 또 우리가 이렇게 만나겠어요.”

그러고 보니, 퇴사한 뒤로 정신없이 사느라 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럼 오늘만 껴도 될까요. 뭐 드실래요.”

“팀장님 파스타 좋아하시잖아요! 파스타 어때요!”

“전 아무거나 좋아요.”

*     *     *

“근데 이 팀장님은 갑자기 무슨 출장이래요?”

도하가 팀장이라니.

도희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글쎄요. 급하게 잡힌 출장이라 저도 잘 모르겠네요.”

굳이 출장 전날 밤, 파트너를 도하로 정한 무혁의 변덕을 도희가 어찌 알까.

“출장은 맞죠? 저는 괜히 걱정했잖아요. 어제 일 때문에 출근 안 하시는 건 줄 알고.”

“어제 일요?”

“어제 강 부장님이랑 도하 팀장님이랑 한바탕하신 거 같더라고요.”

둘 사이가 좋아진 줄 알았는데.

“도하 팀장님이 강 부장님 만나고 오신 뒤로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지… 하여튼 요즘 팀장님 말수도 줄고 외출도 잦으시고…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다 걱정하고 있었어요.”

외출이 잦아?

“너무 걱정 마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애써 웃는 도희의 미소는 어딘가 어색했다.

“팀장님… 근데 회사는 무슨 일로…….”

타이밍 좋게 진명이 내내 참고 있던 물음을 터트렸다.

“아, 부탁받은 일이 좀 있어서요.”

자신이 나타난 일로 회사가 떠들썩한 건 도희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전 상무가 흘린 소문은 불난 집에 기름을 한 트럭 붓는 격이었다.

“정말 복귀하시는 겁니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소문에 더 힘이 실린 거 같지만.

“아니요. 복귀는 아니고 다른 일이에요.”

“헐, 팀장님 그럼 그 소문이 진짜예요?”

역시, 여전히 솔직한 소하였다.

틱—

“윤소하씨.”

그때, 날카로운 포크 소리와 함께 날 선 목소리가 소하에게 날아든다.

“여기서 누가 팀장이에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까 겁나네. 호칭 정리부터 똑바로 하세요.”

당황한 소하는 입을 벌린 채 도희와 선미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니…….”

소하의 입술이 열리지 않고 들썩거리는 사이 도희가 나섰다.

“그래요. 이제 편하게 언니라고 해요, 소하씨.”

“정말요?!”

표정이 풀린 소하가 금세 다시 웃어 보이자 선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언니는 무슨.”

순간 식탁엔 서늘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불편한 분위기에 고개 숙인 팀원들은 애꿎은 포크를 돌리거나 물 잔을 들이켰다.

도희의 시선을 받은 선미는 느린 동작으로 냅킨을 들더니 입술을 닦았다.

“강선미씨.”

냅킨을 내려놓으며 턱을 높이 치켜든 선미가 도희를 쏘아본다.

“혼잣말이 크시네요.”

“어머, 들렸나요? 제 목소리가 좀 커서.”

묘하게 달라진 선미였다.

과한 적대감이 느껴진달까.

“아니에요. 예전처럼 뒤에서 욕하시던 것보단 낫죠, 뭐.”

선미는 눈썹을 비딱하게 추켜세우며 얼굴을 구겼다.

“지금 뭐라고…….”

“근데 이상하네.”

도희도 얼굴을 굳히며 선미를 쏘아봤다.

“뒷담화나 하던 사람이 갑자기 뭐가 당당해서 대놓고 이러실까.”

선미의 신랄한 비웃음 소리가 주변을 메운다.

“너보단 당당하지.”

“너?”

“안 그래도 나 너 만나면 묻고 싶은 거 있었는데.”

대단한 약점이라도 잡은 표정이다.

이번엔 도희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물어.”

낮게 깔린 도희 목소리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선미는 입매를 끌어올렸다.

“물어보라고.”

그리고 선미는 신난 듯 입술을 놀리기 시작했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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