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118)화 (118/120)

117화 좋으신 분 같아요.

툭, 툭, 툭, 툭!

“윽, 윽, 윽!”

두산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소하의 몸은 앞뒤로 들썩거렸다.

“아, 답답해. 물이라도 마셔야겠어요.”

두산의 손길로도 모자랐는지 소하는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며 말했다.

“소화제가 있을 텐데… 잠시만요.”

두산의 손이 열심히 약통을 뒤져보지만, 휴게실에 비치된 약통엔 비어 있는 약상자만 가득하다.

“후우, 없죠? 제가 사 올게요. 두산씨도 필요해요?”

“전 괜찮습니다.”

“하, 먹은 것도 없는데.”

“그 상황에선 물만 먹어도 체할 겁니다.”

소하는 방금 숨 막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근데 강선미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너 사람 잡아먹는 팔자잖아. 너랑 엮인 사람들은 다 죽는다면서? 어릴 땐 네 부모 잡아먹었다더니 친구 엄마까지도 모자랐니? 거기에 마 부장부터 김현철까지 대체 몇 명이야.’

‘어디서 듣긴!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도하씨도 알아? 너 이런 앤 거? 하긴, 알면 못 만나지. 재수 없다고 진작 도망갔겠지. 아니다. 혹시 아는데 그 얼굴로 홀려서 붙잡아 둔 거니?’

‘으, 나는 죽기 싫어서 너랑 더는 안 엮이려고. 그러니까 이제 나 모르는 척 좀 해줄래?’

‘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 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 차릴지… 윤소하 너도 피 보기 싫으면 정신 차려, 이 여자야.’

소하는 희번덕거리던 선미의 눈빛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여자 제정신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까지 들먹이는 건 선 넘었지!”

“그러니까 소하씨도 저 여자 상종하지 말아요. 왜 자꾸 같이 싸우려 듭니까.”

“아니, 그럼 저렇게 날뛰는 거 그냥 구경만 하란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 저 여자랑 엮이지 말란 거죠.”

“두산씨는 은근 저 여자 편들더라?”

“예?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싫은 소리 한번을 안 하잖아요!”

“그건 그냥 말 섞기도 싫어서 그런…….”

“됐거든요. 진짜 너무해요. 아까도 강 팀장님이 그런 소릴 듣는데 다들 가만히 있었잖아요.”

“그거야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듣고만 있었던 거죠. 저런 말을 누가 믿습니까.”

“허, 무슨! 두산씨도 진명 대리님도 표정 싹 변해서 말 한마디를 안 걸더만!”

“그럼 그 상황에서 강 팀장님께 뭐라고 말합니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순 있었잖아요!”

“먼저 일어서서 나간 건 강 팀장이셨습니다. 뭐, 따라 나가기라도 해야 했습니까? 그러는 소하씨는요?”

“그러고 나서 그 여자한테 말은 왜 걸어요? 허! 내가 아까는 쪼잔해 보일까 봐 아무 말 안 했는데!”

“부모님이 어쩌니 기사에도 없는 소리를 하길래 물은 겁니다. 어디서 들은 건지. 근데 왜 소하씨가 쪼잔해 보이는데요?”

“그, 그야…….”

소하는 말을 더듬으며 얼굴이 발그레 붉혔다.

그런 소하를 보며 옅게 웃은 두산은 그녀에게 물 잔을 내밀었다.

물 잔을 받아들고 목을 축인 소하는 애석한 눈빛으로 두산을 바라볼 뿐이다.

휴게실 안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

문 앞에서 둘의 대화를 모두 엿들은 선미는 조용히 발길을 돌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디야? 응. 내가 너네 층으로 갈게. 근데 너 오늘 강도희 이야기 들었어? 걔…….”

그렇게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은 선미를 타고 사내 곳곳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     *     *

‘어디서 들었을까.’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서도 한 적 없다.

물론, 단 두 명.

강아와 도하는 예외였다.

근데 그들이 선미에게 말했을 리도 없고.

‘그리고 왜 죽었다고 단정 짓지?’

도희도 모르는 부모의 생사를 선미가 알 리도 없는데.

누군가 뒷조사라도 한 걸까.

그리고.

‘정말 죽은 건가.’

그래서 돌아오지 못한 걸까.

등본 상으론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흥신소를 통해 알아본 적도 있는데 생활 반응이 전혀 없다고 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도 모르는 부모.

근데 왜 선미는 죽었다고 했을까.

누구한테 듣고?

아님, 평소처럼 마음대로 지껄인 헛소린가.

아니다.

도희의 성역인 부모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부모에 관해 무언가 듣긴 들은 눈치다.

누굴까.

이런 악의적인 말을 꺼낸 사람이.

‘그럴 만한 사람이…….’

생각해 보니 한두 사람이 아니다.

‘와, 나 적이 이렇게 많았니.’

도희가 상념에 잠긴 사이, 어느새 다가온 중년의 여성이 도희 앞에 마주 앉는다.

“강도희씨.”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

그럼에도 언젠간 만나야 했던 사람.

그녀와 상당히 불편한 관계로 이어진 강 부장이었다.

*     *     *

도쿄의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 카페테리아 라운지.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낮의 한산함과 어우러져 기분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도하 대리.”

“예.”

도하는 무혁의 부름에 하늘에 닿아 있던 무심한 눈길을 거둬들였다.

“개선부 팀장은 할 만합니까.”

사장이 일개 팀장 승진까지 알다니.

인사 개입에 사장이 관련된 걸까.

“글쎄요. 팀장 된 지 하루 만에 출장을 오는 바람에 잘 모르겠습니다.”

덤덤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서린 불만을 무혁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자리가 싫으면 내 비서 실장 자리는 어떻습니까.”

무혁의 노골적인 시선이 도하를 훑는다.

“말수도 적은 게 내 비서로 딱인데.”

“괜찮습니다.”

“싫다는 겁니까. 좋다는 겁니까.”

“싫다는 겁니다.”

“거봐, 역시 딱이라니까.”

“그런 말씀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도하의 사무적인 말투에 무혁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도하씨 닮은 구석이 있네요. 강도희씨랑.”

“사랑하면 닮는다더군요.”

“하하, 사랑이라.”

비틀린 냉소를 흘린 무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출장이 예상보다 길어질 거 같네요.”

“그럼 전 다음 인계자를 찾아야겠습니다. 갓 부임한 팀장이 자릴 오래 비워서야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내놓을 팀장 자리라면 비서팀으로 오시라니까.”

“출장 인계자를 찾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도하의 말에 무혁은 또 한 번 크게 웃어 보였다.

역시 닮은 두 사람이다.

도하를 바라보는 무혁의 두 눈에 섬뜩한 이채가 스몄다가 사라졌다.

무혁이 아무리 웃음으로 표정을 꾸며 내도 도하의 눈가를 스친 서늘함은 오래도록 사라지질 않았다.

*     *     *

“오늘 하신 일은 잘되셨는지요.”

도하의 어머니인 걸 알고 나니 그녀를 대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무리 도하와 사이가 좋지 않아도 가족은 가족.

어떤 이유로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사이.

“아, 예. 뭐, 그럭저럭…….”

도희가 어색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강 부장의 입가에 닿았던 뜨거운 김을 품은 커피잔이 테이블에 내려졌다.

“그래서 의심 가는 사람은 있었나요?”

“예?”

“명단은 전부 살펴보셨나 해서요.”

뭐지.

강 부장이 도희가 받은 명단을 어떻게 아는 걸까.

도희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말을 이었다.

“도희씨를 부르자고 한 게 전데, 전 상무가 따로 말 안 하던가요?”

강 부장과 전 상무라니.

이건 또 무슨 조합인가.

“아, 이무혁 사장 화정 그룹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인연이 좀 있어서요.”

강 부장이 그룹에서 끗발 좀 날린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었다.

그런 그녀가 왜 일개 자회사인 화정기획 감사부 부장으로 온 건지는 모두의 의문이었다.

“명단에 적힌 인물들은 다 살펴봤고, 아직 오전 외근 나갔던 몇 명을 보지 못해서요. 그 사람들만 확인하면 될 거 같습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

“그래서 의심스러운 자는 있었나요?”

“사건과는 관련 없을지도 모르지만 몇 명 수상한 사람들은 따로 분류해서 명단 작성해 뒀습니다.”

“수상한 자들이요?”

“뭐, 예를 들어 밖에서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람이라던가.”

도희는 출근길부터 검은 기운을 내뿜는 남자를 잡고서 이름을 물었었다.

욕설과 함께 이름을 뱉고 사라진 그는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불법 도박으로 큰돈을 잃은 뒤 거액의 중고 거래 사기로 소송 중인 상태였다.

음산하고 질 나쁜 기운을 폴폴 내뿜던 걸 보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게 분명했다.

“신기하군요. 그런 걸 어떻게 알아보시는 거죠?”

“그냥 감이에요. 틀릴 수도 있구요.”

요즘은 폰 번호와 인적 사항만 있어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세상이다.

강아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들이라 틀릴 일은 없지만 미리 떡밥을 뿌려 놓는 도희였다.

세상에 100%란 없으니.

“전 어떤가요.”

“네?”

“도희씨 감으로 전 어떤 사람인가요.”

글쎄요, 안경을 껴야 아는데.

그러고 보니 출근을 늦게 했는지, 출근 시간 로비에서 강 부장을 보지 못했다.

“좋으신 분 같아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대답이 늦을수록 꾸며낸 말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듦과 동시에 불쑥 튀어나온 말.

“…그렇군요.”

기분 탓일까.

안색이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건.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사뭇 낯설다.

“제가 시간을 너무 뺏었네요. 이만 일어나죠.”

왜인지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강 부장의 뒷모습을 도희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     *     *

도하의 모닝콜을 받고 일어나서일까.

도하 없는 도하 집에서 홀로 맞는 아침이 썩 나쁘진 않다.

은근 잔소리가 늘어난 그는 오늘따라 도희의 아침을 챙긴다며 유난이었다.

‘살찐 거 같은데.’

요즘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온 거 같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도하의 잔소리와 달리, 도희는 간단하게 삶은 달걀과 샐러드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왠지 모를 썰렁함에 거실 티비를 켜자, 때마침 아침 뉴스가 흘러나온다.

[뉴스 속보입니다. 지난밤 서울 곳곳에서 지명수배자들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파악된 인원은 5명으…….]

“뭐?”

그리고 도희의 휴대폰이 거센 진동을 일으킨다.

우주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네. 우 형사님.”

—도희씨.

“저도 지금 막 뉴스 봤어요. 우주씨 어디…….”

—민기가 사라졌어요.

“예?”

우주가 말하는 민기라면 설 기자였다.

—하… 그 자식 벌써 며칠째 연락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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