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29화 (29/164)

29화

“이쪽입니다!”

기사들은 엘리사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곧장 비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다. 엘리사 역시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그 길을 따라가자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주위를 살피며 덜덜 떨고 있던 소년은 엘리사와 기사들을 보고 반색을 비쳤다.

“마님……?”

“이제 괜찮아, 조나단. 같이 돌아가자. 네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안도하는 듯했던 소년은 엘리 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사색이 되었다.

겁에 질린 소년의 시선은 엘리사가 있는 나무 위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에 의아함을 느낀 엘리사가 고개를 든 순간, 나무 위에서 때를 노리고 있던 거대한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크르르!”

그와 동시에 늑대가 뛰어내려 엘리 사를 덮쳤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마님!”

한발 늦게 상황을 알아챈 기사들이 다가왔으나, 엘리사를 짓누르고 있는 늑대의 공격을 막기엔 이미 늦었다.

거대한 늑대는 엘리사를 씹어 삼킬듯 입을 벌렸다.

엘리사는 필사적으로 늑대를 밀어 내려 했으나, 성인 남자보다 큰 늑대를 힘으로 이겨 낼 순 없었다.

엘리사는 끔찍한 죽음의 공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싫어……!’

날카로운 이빨이 엘리사의 목덜미를 뜯으려던 그때였다.

허우적거리던 엘리사의 손이 늑대의 심장 부근에 닿자, 엘리사의 손에서 새어 나온 희미한 기운이 늑대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늑대의 움직임이 멈췄다.

엘리사의 손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보지 못한 기사들과 아가일, 엘리사는 갑작스러운 늑대의 행동 변화를 놀란 눈으로 지켜보았다.

“크르륵……!”

늑대는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엘리사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크륵! 크르르!”

“지금이다! 모두 공격해!”

기사들은 그 틈을 타 늑대의 몸뚱이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이윽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거대한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아가일은 엘리사의 상태부터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요. 그런데 이 늑대는….”

“다이어울프군요. 이 녀석들의 서식지는 이곳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다이어울프는 늑대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로, 늑대와는 아예 다른 종이었지만 비슷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습성 중 하나는……….

‘다이어울프는 늑대와 마찬가지로 겨울이 되면 단체 생활을 한다.’

엘리사는 책에서 보았던 내용을 떠올리곤 고개를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새 굵어진 눈발 사이로 다이어 울프 십여 마리가 모여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님, 뒤로 피해 계십시오.”

기사들은 엘리사를 자신들의 뒤로 보내며 보호했다.

앞은 다이어울프들로 막혀 있었고, 뒤는 낭떠러지였다.

엘리사는 낭떠러지 끝부분으로 밀려났다.

“크르르르…”

다이어울프들은 한동안 기사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동태를 주시하더니, 곧 달려들었다.

물론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루벨린의 기사들이 아니었다.

“마님과 소년을 보호해라!”

그들은 자신들의 덩치보다도 큰 다 이어울프와 호각으로 싸웠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한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체격에서 오는 힘의 차이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그사이, 설상가상으로 내리던 눈이 눈보라가 되어 몰아치기 시작했다.

“큭…….”

시야가 흐려지자, 처음엔 호각으로 싸우던 기사들이 점점 힘에 부쳐 뒤로 밀려났다. 그럴수록 엘리사 역시 벼랑 쪽에 가까워졌다.

그 순간, 주위의 바람과 다른 기류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 바람에 눈을 감았던 엘리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리하르트?”

리하르트는 앞으로 나서며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물러서라.”

기사들은 그의 명에 따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제일 앞은 리하르트가, 그 뒤는 기사들이 막아서며 2차 방어선을 세웠다.

갑자기 나타난 리하르트를 잠시 경계하던 다이어울프들은 이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리하르트의 주위를 거센 바람이 보호하듯 감쌌다.

바람이 커지자, 주위의 기물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충격으로 얼어 있던 벼랑 끝의 땅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으나, 모두 눈앞의 전투 상황에 급급해 눈치채지 못했다.

폭풍이 된 바람은 다가오는 다이어 울프들을 삼켰다.

그 모습에 잠시 주춤했던 후방의 다이어울프들은 리하르트의 뒤에 선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리하르트가 만든 폭풍에서 뻗쳐 나온 번개가 다이어울프들에게 적중했다.

“크르륵!”

다이어울프들은 번개에 끔찍하게 지져졌다. 폭풍에 삼켜진 다이어울프들 역시 뇌우 속에서 죽어 갔다.

끝까지 버티던 다이어울프가 마침내 무너졌다. 그 충격으로 땅이 쿵하는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그 모습에 기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리하르트에게 다가섰다.

“천만다행입니다. 각하께서 와 주신 덕분에 -”

모두가 안도하던 그때, 가까운 곳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금이 가 있던 벼랑 끝의 지반이 무너졌다.

“어……?”

그 위에 서 있던 엘리사는 무너지는 땅과 함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다급히 뒤돌아본 리하르트의 눈에,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엘리사의 모습이 비쳤다.

늘 고요하던 그 눈빛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엘리사!”

리하르트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금방 엘리사를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젠장, 비행 마법이…….’

시시각각 높이가 변하는 탓에, 고도의 집중력과 계산을 요구하는 비행 마법을 빠르게 사용할 수가 없었다.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도 한몫했다.

그가 비행 마법을 시도하는 사이, 강물이 점차 가까워졌다.

리하르트는 엘리사를 감싸 안고 눈을 감았다.

풍덩!

이윽고 얼음장 같은 강물이 두 사람을 삼켰다.

*

북부는 이제 막 봄이 오고 겨우내쌓여 있던 눈이 녹아 유속이 강해지는 시점이었다.

리하르트는 거센 유속에 엘리사를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끌어안은 채 헤엄을 쳤다.

하지만 거센 유속의 강물에서 한손으로 헤엄치는 것은 전쟁에서 십수 명을 상대로 혼자 싸우는 것보다 어려웠다.

‘빨리 나가지 않으면……….’

물에 빠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구현한 비행 마법이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엘리사에겐 큰 충격이었던 듯 엘리사는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위험했다.

리하르트는 숨을 들이쉬고 엘리사에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공기를 불어 넣은 후, 헤엄치기를 반복했다.

차츰 산소가 부족해지고 정신이 어질해져 갔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포기할 수 있어도 품 안의 온기는 놓칠 수가 없었다.

엘리사와 함께 강에서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강물의 흐름이 바뀌더니 엘리사와 리하르트를 강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강물의 흐름이 바뀌었다………?’

리하르트는 의아해하면서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엘리사를 데리고 강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엘리사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엘리사의 숨이 멈춰 있었다. 그와 동시에 리하르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엘리사.”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젠장, 안 돼. 안 돼, 엘리사…….”

리하르트는 다급히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수차례 그녀의 입에 공기를 불어 넣기를 반복했다.

“숨을 쉬어, 제발……….”

그렇게 얼마나 시도했을까.

간절함이 닿은 것인지, 엘리사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더니 마침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을 토해 냈다.

“콜록!”

“……하아.”

엘리사의 호흡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리하르트는 그제야 안도하며 엘리사를 끌어안았다.

엘리사를 품에 안은 채 잠시 지친 숨을 돌리던 리하르트는 엘리사의상태를 살폈다.

젖은 옷과 찬바람 때문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고, 그 탓인지 혈색이 죽은 사람처럼 파리했다.

‘이대로는 위험하겠어.’

하지만 눈보라는 더 거세어지고, 바닥에는 눈이 쌓이고 있었다.

눈보라로 시야가 불분명한 이 상황에선 비행 마법을 사용하기도 어렵고, 사용하더라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눈 속을 헤맬 확률이 높았다.

그러는 동안 엘리사의 몸은 상공의 찬바람과 기온에 노출되어 더욱 빠른 속도로 체온이 떨어질 터였다.

게다가 이 정도로 눈보라가 치는 상황이면 기사들도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 그쪽에서 자신들을 찾기는 힘들 듯 보였다.

우선 어디든 이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강 주변이니 근처에 민가가 있을지도.

리하르트는 자신의 로브로 엘리사를 감싸 안고 일어났다.

강물에 젖은 로브가 보온을 해 주진 못하겠지만, 찬 바람을 막아 줄순 있을 터였다.

그렇게 강을 따라 얼마간 내려가자, 바위 사이에 자리한 허름한 오두막이 보였다.

불빛이나 연기 같은 사람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노크를 했다.

예상대로 목소리도,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리하르트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러자 좀 뻑뻑하긴 해도 쉽게 문이 열렸다.

오두막은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듯 비교적 깨끗했으나, 식기나 다른 물건들이 없었다. 다행히 낡은 모포와 불쏘시개로 쓸 만한 부서진 가구 같은 것들은 남아 있었다.

‘우풍은 좀 있지만, 바위 뒤에 지어진 집이라 바람이 직격타로 들진 않아.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추위를 피할 수 있겠군.’

리하르트는 엘리사를 근처에 눕히고 모포를 덮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얼어 가는 몸을 녹이기엔 부족했다. 그녀의 체온을 떨어트리고 있는 원인을 제거해야 했다.

리하르트는 엘리사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드레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