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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41화 (41/164)

41화

엘리사와 앤은 어둡고 좁은 통로를 따라 한 시간 넘게 걸은 끝에 통로의 끝에 다다랐다.

“마님, 이쪽에 나가는 문이 있어요.”

앞장서서 걸어가던 앤이 소리쳤다.

엘리사는 들고 있던 발광석으로 그쪽을 비췄다.

앤의 말대로 통로의 끝에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고, 그 옆에 루벨린을 상징하는 흰 늑대 문양이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앤은 통로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액자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빽빽하게 삐걱거리던 액자가 돌아가자, 닫혀 있던 계단 위의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엘리사와 앤은 눈부신 햇살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그 빛에 적응하고 계단을 올랐다.

통로가 연결된 곳은 제도 외곽 지역 근처에 있는 작은 숲이었다.

계단 밖은 봄을 맞아 연둣빛 싹이 돋아나 싱그러운 나무들이 사방에 드리워져 있었다.

“마님.”

먼저 계단을 올라간 앤은 주위를 살펴보고는, 엘리사를 향해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엘리사는 눈을 찌르는 듯한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인적이 드문 숲은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만 울릴 뿐, 고요했다.

햇빛 아래로 나온 앤은 재빨리 엘리사의 상태부터 살폈다.

“힘들진 않으세요? 배가 땅긴다거나…….”

“괜찮아. 모험 떠나는 기분 들고 재미있는걸?”

“음…. 그래도 조금 쉬었다 갈까요?”

“어차피 마차 탈 거니까, 그때 쉬면 돼. 가자.”

사실 아침부터 몸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었다.

하지만 엘리사는 임신한 후로 늘 그랬으니,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기며 앤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내일 아침이면 공작저에서 우리가 사라진 걸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숲을 나온 엘리사와 앤은 삯마차를 잡아탔다.

“아르덴 상단으로 가 줘요.”

아르덴 상단은 안셀이 이끌고 있는 상단의 이름이었다.

아르덴 상단의 본거지는 동쪽 해안가의 아르덴 영지에 있었고, 제도에 있는 건 지부였지만 그 규모가 꽤 컸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차는 빠르게 달려 아르덴 상단지부 앞에 도착했다.

아르덴 상단은 제도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사는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차에서 내렸다.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우와.”

뒤따라 마차에서 내린 앤은 주위의 낯선 풍경에 감탄했다.

상단의 지부에 남부와 동부에서 온 듯한 구릿빛 피부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즐비했고, 북부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신기한 물건들도 많았다.

마차에서 내리는 엘리사를 본 상단의 심부름꾼이 엘리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맡겨 놓은 물건이 있어 찾으러 왔어요.”

엘리사는 그에게 안셀의 편지를 건넸다.

편지에 찍힌 물고기 형상의 문양을 본 지부장의 눈빛이 순종적으로 바뀌었다.

물고기 문양은 아르덴 백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이었기 때문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부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심부름꾼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지부장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엘리사에게 안으로 들 것을 제안했다.

“구하시는 물건은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안에서 차라도 드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러면 나야 고맙죠.”

벌써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엘리사는 흔쾌히 그녀의 뒤를 따라 접견실로 향했다.

조용히 들어온 하녀가 은은한 분홍빛을 띠는, 향기가 나는 차를 두고 나갔다.

그것을 마시며 잠시 기다리자, 지부장이 직접 금화 주머니를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부탁하신 여비입니다. 의류와 필요한 물품은 마차에 실어 두었고요. 용병은 가시는 길에 붙여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엘리사와 앤의 목적지는 로엔그린 자작가의 별장이 있는 소르네티였다.

앤은 엘리사 대신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받아 챙겼다.

“마차에 짐을 다 실으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 식사를 하고 가는 건 어떠신가요?”

지부장이 엘리사에게 제안했다. 그녀는 상단주의 친구인 엘리사에게 뭐라도 더 해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좋아요.”

엘리사는 딱히 허기를 못 느꼈지만, 배 속의 아기와 고생할 앤을 위해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부장은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엘리사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아랫배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느낀 엘리사의 몸이 굳어졌으나, 다행히 증상은 금방 사라졌다.

엘리사는 또 증상이 나타날까 걱정이 됐지만, 애써 불안을 가라앉히고 앤과 함께 지부장의 뒤를 따랐다.

식당에 호화로운 음식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 여정을 대비해서 든든히 드십시오.”

지부장은 두 사람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덕분에 앤은 든든히 먹었지만, 엘리사는 좀처럼 입맛이 없었다. 입덧약을 먹었는데도 그랬다.

‘몸살 기운인가………?’

가뜩이나 임신 증상으로 힘든 몸에 몸살 기운까지 겹쳐 온몸이 무겁고 힘이 없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까지 다시 당기기 시작했다.

앤은 그런 엘리사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채고 물었다.

“마님? 왜 그러세요?”

“아……. 약이 잘 안 듣나 봐. 입맛이 없네. 나 신경 쓰지 말고 너라도 많이 먹어 두렴.”

엘리사는 애써 웃으며 앤을 안심시켰다.

앤은 그런 엘리사를 걱정하면서도 든든히 챙겨 먹었다. 몸이 약해진 엘리사를 지키려면 자신이라도 튼튼해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까지 먹고 나자, 지부장이 다시 돌아왔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럼요. 덕분에 잘 먹었어요.”

“이제 마차 쪽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바로 떠나실 건가요?”

“그러려고요.”

엘리사는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자고 대답했다. 최대한 빨리 제도를 벗어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눈앞이 하얘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마님!”

앤은 쓰러지려는 엘리사를 재빨리 감싸 안았다. 엘리사의 상태를 살피는 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세상에, 마님. 열이 나잖아요!”

“…….”

“아, 안 되겠어요. 이대로는 큰일이 날 거예요. 몸이 나을 때까진 쉬었다 가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내일 아침이 되면 우리가 사라진 걸 알게 될 텐데……….”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

어스름이 남아 있는 이른 새벽, 아카로아의 서쪽에 위치한 테아릴 백작령.

인적이 드문 숲에 그림자 하나가 스며들었다.

로하스 자작이었다.

“헉, 헉….”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달리고 있었다.

지난밤, 그가 은신하고 있던 알리 타 상단 근처까지 리하르트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리하르트가 자신을 찾아오기 전에 선택해야 했다.

계속 알리타 상단에 숨어 있을 것인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달아날 것인지.

리하르트가 상단에 숨은 자신을 찾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찾게 된다면 벗어날 다른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로하스 자작은 숨는 대신 도망을 선택했다.

그런 그에게 상단 지부장이 길을 알려 주었다.

‘아침이 되면 루벨린 공작이 이곳에 들이닥칠 겁니다. 그 전에 이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십시오. 통로를 빠져나가면 숲이 나올 텐데, 숲을 가로질러 벗어나면 그곳에 저희 마차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로하스 자작은 지부장이 알려 준 상단 내부의 비밀 통로를 통해 인적이 드문 숲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가 알려 준 대로 숲을 가로질러 벗어나는 중이었다.

숨이 막힐 때까지 한참을 달린 끝에, 마침내 숲의 끝이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로하스 자작이 한시름 덜며 걸음을 늦추던 그때였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고요한 숲에 난데없이 바람이 들이닥쳤다.

‘바람이라면 설마………?’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로하스 자작은 제 앞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리하르트는 그런 그의 앞에 가볍게 착지했다.

“이른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바삐가는 거지? 자작.”

그를 바라보는 리하르트의 눈빛은 그를 얼려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서늘했다.

숨을 돌리는 척, 잠시 머리를 굴리던 로하스 자작은 먼저 발뺌을 하기로 했다.

“고, 공작 각하께서 이 으슥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그것도 이 이른 시간에.”

“그건 그대가 더 잘 알지 않나?”

“하하,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로하스 자작은 애써 웃으며 로브안으로 손을 넣었다.

상단을 떠나기 전, 지부장이 줬던 독이 발린 단검이 손에 잡혔다.

기사들은 다 어디에 떼어 두고 온 것인지, 지금 리하르트는 혼자뿐이었다.

“정말 모르나?”

“제가 어찌 그 깊은 뜻을 알겠습니까!”

자작은 꺼낸 단검을 들고 리하르트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리하르트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자작의 공격을 피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사지가 부러져도 과연 모를까?”

그리고 가뿐하게 그 팔을 비틀었다.

우두둑, 끔찍한 소리와 함께 자작의 팔이 반대로 꺾였다. 그 충격으로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악!”

자작은 그 끔찍한 고통을 느낀 후에야 새삼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 무엇인지를.

폭풍의 루벨린.

단신으로 파이란 왕궁에 쳐들어가 전쟁을 끝낸 전쟁 영웅.

“아니면….”

리하르트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작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를 서늘하게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낙뢰에 지져지면 알게 되려나.”

그런 그의 위로 검은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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