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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63화 (63/164)

63화

신전에 도착한 엘리사는 앤과 기사들을 신전 앞에서 기다리게 한 후, 리온만 데리고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교황 성하를 뵙고 싶습니다.”

엘리사를 알아본 신관은 엘리사를 신전 안쪽 응접실로 안내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자, 노크와 함께 에이든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표정으로 엘리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몸은 나아지셨나 보군요. 지난번에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많이 걱정했습니다.”

“이젠 괜찮아요. 괜히 아이들이 걱정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어쩐 일로 찾으셨냐 물으려던 에이 든은 엘리사의 등 뒤에 숨어 있는 리온을 발견했다.

“혹, 오늘 저를 뵙고자 한 이유가 이 아이 때문입니까?”

“네. 이 아이를 성하께서 거두어 주셨으면 해서요.”

“신께서 기뻐하시겠군요. 제가 이 아이의 입적을 도와드리지요.”

“아뇨. 이 아이는 성하께서 직접 거두어 주셔야 해요.”

엘리사의 말에 에이든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그녀와 아이를 바라보았다.

엘리사는 제 등 뒤에 찰싹 붙어 있는 아이를 안아 앞쪽으로 내세웠다.

“리온. 아까 마차에서 했던 거 보여 줄래?”

“엄마가 다른 사람한테 보여 주면 안 된다고 해써.”

“맞아, 다른 사람한텐 절대 보여주면 안 돼. 그런데 이분은 너를 도와주실 분이니까 보여 줘도 돼.”

“우음.”

하지만 엘리사의 설득에도 아이는 에이든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배배비틀기만 할 뿐,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킨 모양이었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아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엘리사는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보여 주면 빵 많이 사 줄게.”

그 말에 리온은 언제 망설였냐는 듯 고사리 같은 조그마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에이든의 의아한 눈이 아이의 손바닥에 닿은 순간, 아이의 손바닥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것을 봄과 동시에 에이든의 눈빛이 거세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저 힘은……?’

아직 미약하지만, 저 힘은 분명 황가인 카이로트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힘이었다.

“이제 그만 보여 줘도 돼, 리온.”

리온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곧장 손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엘리사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빵 언제 사 조?”

“이따가 사 줄게. 잠깐만 밖에서 구경하고 있을래?”

“비밀 얘기 하는 고야?”

“어? 으응.”

“근데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죠?”

리온이 조그마한 입술을 삐쭉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사가 저를 빼고 다른 이하고만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잖이 서 운한 모양이었다.

엘리사는 뜻밖의 관문에 난감해하다가, 이내 아이를 살살 달랬다.

“리온에게는 이따가 엄청 중요한 비밀 이야기 해 줄게. 알았지?”

“우웅. 아라쏘.”

“착하네, 리온. 그럼 밖에서 조금만 놀고 있어.”

아이는 엘리사의 설득에 넘어가 순순히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아이가 나가고 방문이 닫힘과 동시에 에이든이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저 아이를 거둘 수 없습니다.”

“…….”

“부인께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지 모르나, 저 아이는 황실의 핏줄입니다. 함부로 숨겼다간 부인께서도, 그리고 자칫하면 저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전으로 데려온 거예요.”

에이든에겐 지켜야 할, 그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엘리사는 그간 에이든의 처세로 그가 매사에 방어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그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리온을 보호할 방법이 이뿐이기에 데려온 것이었다.

엘리사는 그 부분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신전은 부모 잃은 모든 아이를 거두는 곳이니까요. 부모 모를 아이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지요.”

“…….”

“만약 발각되면 성하께서는 그저 제가 맡긴 아이를 데리고 있던 것 뿐, 이 아이가 어떤 아인지는 몰랐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너무 무모합니다.”

에이든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엘리 사의 대책에 반기를 들었다.

가뜩이나 호시탐탐 루벨린의 입지를 뒤흔들 만한 거리를 노리고 있는 황제에게 빌미를 제공해선 안 되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의 말에 곧장 반박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물었다.

“제가 설마 그 죄를 다 뒤집어쓸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마저 드리워 있었다.

“황실에서 찾고 있는 황가의 핏줄을 죽이려는 자와, 그 핏줄을 보호하기 위해 숨기려는 자. 둘 중 어느 쪽의 죄가 더 클까요?”

후자는 엘리사니, 전자는 또 다른 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에이든은 의문이 담긴 눈으로 엘리 사를 바라보았다.

“황실에서는 후계자로 삼을 황가의 핏줄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핏줄을 이은 아이가 절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한 사람 있죠.”

“황태자비입니까?”

“네. 황태자비는 황제보다 먼저 아이를 찾아 죽이려고 사람을 풀었어요. 사생아가 나타나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면, 자신의 입지가 매우 위태로워질 테니까요.”

원작에 나오는 리온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알고 있는 엘리사는 로제의 행동을 간파하고 있었다.

“전 기사들을 풀어 며칠 안으로 그 증거를 잡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에이든은 엘리사가 마냥 무모하게 아이를 신전으로 데려온 것은 아님을 알아챘다.

“그러니 제가 증거를 잡고 나서는 안심하셔도 돼요.”

“송구하지만, 저는 황실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설득에도, 에이든은 딱 잘라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엘리사는 처음 보는 그의 싸늘한태도에 흠칫 놀라 눈을 깜빡였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놀란 듯한 엘리사의 모습에 에이든은 설핏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지극히 사적인 이유입니다.”

엘리사는 그제야 에이든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이유를 알아챘다.

이십 년 전, 황제에 의해 아내를 잃은 그에게 황실은 원수나 다름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리온이 일으킬 불행한 참사를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에이든밖에 없었다.

엘리사는 다급히 그에게 호소했다.

“저 아이의 능력은 위험합니다. 이대로 황궁으로 보내면, 황궁이 불바다가 될지도 몰라요.”

에이든은 엘리사의 말에 입매를 비틀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을 바라 온 염원이었다.

율리아가 에이든에게 간절히 지켜주길 바랐던 이들 때문에 감히 행할 수 없었던 복수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신의 뜻이겠지요.”

“저 아이가 신전 옆의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도, 그것도 신의 뜻이라 받아들이실 건가요?”

싸늘히 가라앉아 있던 에이든의 눈동자가 그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엘리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성하의 기분이 얼마나 슬프고 외로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저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요.”

“…….”

“그래서 주제넘은 말인 걸 알지만, 한 가지만 여쭙고 싶어요.”

엘리사는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에이든을 흔들림 하나 없는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성하의 그 슬픔과 저 아이는 무관하지 않나요?”

아이는 황가의 피를 이어받았을 뿐,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아비가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길거리에 방치되지 않았나.

그 물음에 에이든은 허를 찔린 듯 일순 동요했으나, 금세 갈무리했다.

엘리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 작은 불꽃입니다. 장차 생명을 태우는 불꽃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 주는 불꽃이 될 수도 있지요.”

“…….”

“성하께선 그 불꽃을 어떤 방향으로든 바꾸실 수 있어요.”

에이든은 그렇게 말하는 엘리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할 말이 없었다.

엘리사는 그것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에이든에게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갑자기 찾아와서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해요. 주제넘은 말을 한 것도요.”

“……”

“리온은 제가 다시 데려가겠”

“…두고 가십시오.”

순간, 엘리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 싸늘하게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던 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에이든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엘리사에게 확답을 주듯 마주 보며 덧붙였다.

“단, 금주 안으로 황태자비의 행적에 관한 단서를 찾아오셔야 할 겁니다.”

그제야 그의 뜻을 이해한 엘리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엘리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물론이죠.”

*

엘리사는 리온에게 약속한 비밀 이야기와 당부를 한 후, 기사를 시켜다양한 종류의 빵을 사다 주고 공작저로 돌아갔다.

에이든은 리온을 당분간 자신의 방에 재우며 리온이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리온?”

하지만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습 신관이 주고 간 꿀을 탄 따뜻한 우유가 들어 있던 잔만이 텅빈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위를 살피던 에이든은 꺼진 벽난로 앞에 작은 몸을 옹송그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뭘 하는 거지?’

아이는 잔뜩 집중한 건지, 그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의아한 눈으로 아이를 보던 에이든은 아이의 손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불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에이든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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