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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79화 (79/164)

79화

건국제에 참석했던 황실의 일원들은 다이온 후작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황궁에 도착했다.

황제는 그제야 안도하며 다이온 후작의 공을 치하했다.

“자네 덕분에 무사히 귀환했군. 고맙네.”

“아닙니다. 폐하께선 황녀 전하의 아버지이시니, 제게도 아버지와 같은 분이 아니십니까? 자식 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후작을 황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건 황실의 축복이군요.”

“과찬이십니다, 황후 폐하.”

황후의 칭찬에 다이온 후작은 멋쩍게 웃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운을 뗐다.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군요. 한동안 제도의 분위기가 뒤숭숭하겠습니다. 제국 최고의 기사들이 모여 있는 황궁이야 안전하겠지만, 귀족들과 일반 백성들은 어떨지…….”

말끝을 흐리며 미카엘라에게 슬쩍 눈짓을 하자, 미카엘레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숙부님께서 이번에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몬스터들이 기피하는 냄새를 풍겨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는다던…….”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는다고?”

미카엘라의 이야기에 크리스티안이 곧장 관심을 보였다.

다이온 후작은 그제야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설명했다.

“아, 맞아. 그런 게 있었지. 제 숙부인 마젠타 자작이 이번에 몬스터를 퇴치하는 향수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물건을 보급하면 사람들의 불안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좋겠군. 마젠타 자작에게 그물건을 속히 판매하라 하게.”

“지엄하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이온 후작은 황제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보좌관에게 고갯짓을 했다.

마젠타 자작에게 명을 전하라는 뜻이었다.

그의 명을 파악한 보좌관은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에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추고 곧장 방을 나갔다.

방문이 닫히자, 다이온 후작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몬스터가 거주지까지 쳐들어오다니요.”

“한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대체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몬스터들이 단체로 자살할 생각이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아, 참. 루벨린 공작이 제도 주변의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일을 맡고 있지 않습니까?”

황제는 국가 예산을 절약한다는 이유로 제도 외곽 지역엔 기사들과 병사들을 배치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몬스터들이 간혹 외곽지역에 출몰했으나, 귀족들은 제도안쪽에 살고 있어 피해를 입을 일이 없었다.

피해를 보는 건 항상 외곽 지역에 사는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리하르트는 소공작 때부터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외곽 지역의 몬스터를 정리하는 일을 맡아 하고 있었다.

백성들을 지키면서 루벨린의 명성을 올리고, 기사들도 훈련시킬 겸.

리하르트가 나서자, 황제는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제도 외곽의 치안을 맡기겠다며 나섰다.

마치 자신이 백성들을 생각해 리하르트를 움직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그렇네. 내 분명 공작에게 명을 내렸었지.”

“황명을 받고 하는 일에 소명감을 가지고 임하진 못할망정, 이 지경이 되도록 일 처리를 하다니…….”

다이온 후작은 불의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분개했다.

“공작에게 책임을 물으셔야 합니다, 폐하. 그 작자 때문에 폐하께서 위험에 처하셨고, 또 애먼 폐하의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까?”

“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 전부 그 자식 때문이잖아?”

다이온 후작의 말에 크리스티안이 맞장구를 쳤다.

이번이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루벨린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는 절 호의 기회였으니 그로서는 놓칠 수 없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제 역시 다이온 후작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의 말이 맞군. 내일 당장 루벨린 공작을 불러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야겠어.”

“지당하신 처사이십니다.”

황제에게서 바라던 답을 들은 다이 온 후작은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일이 뜻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습격은 에이든과 몇몇 가문의 기사들이 힘을 합쳐 나서며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에이든은 부상자들을 모두 신전으로 들이고, 정화의 샘을 이용해 주위에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 앞을 성기사단이 지키고 섰다.

에이든은 엘리사, 리하르트와 함께 별관으로 왔다. 리하르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리하르트는 별관으로 들어서기 전,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엘리사에게 말했다.

“엘리사, 가서 톰슨에게 명령을 전해 줘. 먼저 공작저로 돌아가서 기사단을 이끌고 남은 몬스터들을 정리하러 가라고.”

“하지만…….”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며.”

그의 말에 엘리사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의 말이 맞지만, 그를 두고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금방 다녀올게.”

결국 엘리사는 신전 중앙 예배당에서 기다리고 있을 톰슨에게로 향했다.

에이든은 멀어지는 엘리사의 모습을 지켜보는 리하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작 아픈 건 그 자신이면서, 그는 엘리사가 더 걱정된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 엘리사를 톰슨에게 보낸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럼 살펴보겠습니다.”

에이든과 함께 별관으로 들어온 리하르트는 에이든에게 통증이 느껴지는 등을 보여 주기 위해 웃옷을 벗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생긴 상처를 제외하고는 외관상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외관상으론 별문제가 없군요. 언제부터 이상 증상이 나타났습니까?”

“……3월 말쯤 제도에 도착하고부터 등 쪽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두어 번, 잠깐의 통증이라 근육의 문제라고 여겼죠.”

“그 전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에이든의 질문을 듣고 잠시 기억을 되짚던 리하르트는 무언가 떠오른 듯 대답했다.

“초봄에 오염된 땅을 조사하러 협곡을 넘어갔었는데, 어쩌면 그때 안좋은 기운이 묻어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에이든은 리하르트의 왼쪽 등에 손을 얹었다.

“우선 한번 정화를 시도해 보죠.

오염된 땅에서 묻어 온 기운이 맞다면, 다소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설명을 마친 에이든은 손에 정화의 힘을 집중시켜 리하르트의 등에 주입했다.

그의 예상대로 찢기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리하르트는 신음을 참으려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정화의 힘이 스며들자, 검은 기운이 어느 정도 잦아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잠시 후, 에이든이 손을 뗐다.

“……지금 제 힘으로는 완전히 정화되지 않는군요.”

현재 그는 신전 바깥쪽의 방어막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어 정화하는 데 온전한 힘을 쏟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안정되면 한 번 더 시도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땐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그렇게 말하던 에이든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리하르트의 옆을 떠나지 못하던 엘리사를 떠올리고 말을 덧붙였다.

“어느 정도 정화를 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당분간은 공작 부인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십시오.”

“…그게 좋겠군요.”

리하르트는 옷을 여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든은 리하르트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별관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이쪽으로 다가오는 엘리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시고요.”

리하르트는 에이든에게 묵례를 하고 멀어졌다.

리하르트에게 다가오던 엘리사는 그의 말을 듣고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한 채 거리를 유지했다.

에이든은 멀어지는 엘리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 며칠전, 리온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까 누나 손에서도 물 나와써요.’

그와 동시에 조금 전 신전 앞에서 보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힘은 분명 신성력이었다.

엘리사에게서 흘러나온 희미한 빛이 리하르트의 검은 힘을 억눌렀다.

하지만 신성력은 세리어트 가문의 피를 이은 아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으로, 로엔그린 자작가는 세리어 트 가문과 관련이 없었다.

‘방계의 피가 섞인 아이일까?’

그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순 없다.

아니, 흔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쪽이 더 가능성이 높았다.

그 아이가, 자신과 율리아의 아이라는 가능성보다는 훨씬 더.

그런데 어째서일까.

미소 짓던 엘리사의 모습과 이제는 흐려진 기억 속 율리아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율리아….’

에이든이 율리아의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그녀에게서 출산의 흔적을 발견했다.

에이든은 율리아가 임신 중이었다.

는 사실을 올리비아에게 듣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율리아의 시신이 발견된 때는 임신 7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아이를 낳은 시기를 감안하면 아이는 6개월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셈이었다.

‘칠삭둥이는 아주 희귀하게 있긴 하지만, 6개월 만에 태어난 아이는 현재의 의학적 소견으로는 살아 있을 가망이 없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죽은 채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에이든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아주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율리 아의 행적을 더듬었다.

그러나 율리아의 출산을 도와준 사람은 없었고, 율리아를 목격한 이들은 모두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몇 년을 찾아 헤매던 그는 결국 아이가 사산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당연히 가정을 꾸리고 대를 이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떻게든 가문을 잇는 것이 황제에게 복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너를 두고, 율리아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던 에이든은 침음을 삼켰다.

그 아이가 누구든 가문의 힘을 이 어받았다면 알아봐야겠지.’

어쩌면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한 복수를 해 줄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세리어트의 힘을 이어받은 게 맞다면 리하르트의 힘 역시 정화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에이든은 엘리사의 정체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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