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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81화 (81/164)

81화

“이 장부를 직접 작성한 마젠타 자작입니다.”

“미, 미천한 몸이 아렌시아의 찬란한 태양을 뵙습니다.”

마젠타 자작은 벌벌 떨며 황제의 앞에 조아렸다.

황제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마젠타 자작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마젠타 자작. 여신의 앞에 맹세하고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이다.”

“예, 예!”

“루벨린 공작이 말하기를, 그대가 이 장부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가?”

“예, 그, 그렇습니다. 미, 미천한 소인이 한순간 악마의 꾐에 넘어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폐하!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자비를……….”

리하르트는 황제의 앞에서 이실직고하는 마젠타 자작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젠타 자작의 꼬리를 밟는 건 엘리사의 생각이었다.

리하르트에게서 오닉스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의심하던 엘리 사는 톰슨에게 신전 주위를 둘러보며 수상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전에 도착한 톰슨은 근처 수풀에서 오닉스의 알과 다른 몬스터들의 분변을 발견했다.

어린 몬스터들의 분변 냄새로 새끼들이 이곳에 있는 것처럼 혼선을 주어 어미를 신전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마젠타 자작이 꾸민 일이 맞다면, 몬스터 퇴치제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알들을 수거하러 올 거예요.’

엘리사는 톰슨에게 알을 회수하는 대신 잠복하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늦은 밤이 되자, 엘리사의 말대로 용병들이 알을 수거하러 왔다.

그들을 잡고 나자 마젠타 자작을 잡아 그 배후를 파헤치는 건 쉬웠다.

리하르트는 그에게 겁을 주어 황제 앞에서 자백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대는 감히 황제 폐하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에 가담했으니 반역죄에 처해질 것이다.

‘저,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일의 주모자냐 수족이냐에 따라 죗값은 달라지겠지.’

눈앞의 상황은 그렇게 회유한 결과였다.

마젠타 자작의 자백으로 졸지에 반역자로 몰린 다이온 후작은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며 발악했다.

“이, 이건 음모야! 모함이라고! 네놈, 네놈이 네 죄를 피하려고 나를 모함하는 것이지?”

그는 리하르트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리하르트는 그의 무릎을 차주저앉히는 것으로 간단하게 제압했다.

황제는 리하르트와 다이온 후작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여 이 사달을낸 다이온 후작도 한심했고, 그걸 귀신같이 눈치채고 제 사위를 귀족들 눈앞에서 기어이 반역자로 만든 리하르트도 못마땅했다.

“다이온 후작, 이번 일은 전적으로 그대의 책임이다. 이번 일로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은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황제의 불공정한 처사에 리하르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는 다이온 후작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사위를 어떻게든 감싸 주려 하고 있었다.

다이온 후작을 벌하는 건, 곧 제 딸인 미카엘라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일이나 다름없으니까.

“폐하. 후작은 폐하와 폐하의 백성들을 해치려 했습니다. 그에 합당한 벌을 주십시오.”

“하지만 짐의 백성들 중 그 누구도안 다치지 않았나? 마침 제국 전체의 기쁜 날이었기도 하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까 하네.”

황제의 말에 리하르트는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이온 후작이 일으킨 이번 사건으로 빈민가의 몇몇 사람이 죽었고, 꽤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며, 그들 중 몇은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다.

그런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겠다니.

‘다친 그들은, 네 ‘백성’이 아닌가?’

황제를 바라보는 리하르트의 눈빛이 싸늘하게 침잠했다.

죽어 간 이들의 목숨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간 이에게 합당한 벌을 받게 하고 싶었다.

“다이온 후작은 감히 폐하를 위험에 빠트렸습니다. 이는 명백한 반역죄가 아닙니까.”

“…..”

“이번 일에 자비를 베푸신다면, 차후에 또 폐하의 안위를 노리는 반역자가 나타났을 때 반역자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겁니다.”

“…….”

“또 한 번 폐하의 안위를 노리는 반역자가 나타나도, 너그럽게 자비를 베푸시겠습니까?”

한 마디, 한 마디 짓씹 황제에게 묻는 리하르트의 목소리에 한기가 서려 있었다.

황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묻는 리하르트의 눈빛이 살벌했다.

이번에 다이온 후작을 봐주면, 다음엔 그 자신이 반역자가 될 것 같은 눈빛이었다.

황제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이마를 매만지다,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공작의 말대로 감히 짐과 귀족들의 안전을 위협한 죄가 엄중하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

다이온 후작은 절망적인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으나, 황제는 그 시선을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반역자 마르셀 다이온의 후작 위를 박탈한다.”

*

황제는 다이온 후작에게서 후작 위를 빼앗고, 미카엘라와 이혼시켰다.

후작도 아닌 자를 황녀의 반려로 둘 수는 없으니.

그리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단, 루벨린 공작가만 제외하고, 건국제 이후, 리하르트는 줄곧 별채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건국제 때 폭주했던 그의 힘과 그것을 해결할 단서를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리하르-”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리하르트를 찾던 엘리사는 텅 빈 침대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아, 맞다….”

그제야 그가 별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엘리사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협탁 서랍에서 튼살 크림을 꺼냈다.

밤마다 그가 발라 주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가 곁에 없으니 혼자 해야 했다.

매일 밤 그가 해 주던 일이기에, 아직 그녀에겐 어설프기만 했다.

“사랑아, 오늘은 엄마가 동화책 읽어 줄게.”

마사지를 마친 후엔 근처에 놓여 있는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파랑이는 마녀에게 붙잡힌 친구를 구하기 위해 마녀의 집에 찾아갔어요. 그런데…….”

하지만 혼자서 읽으니 감흥이 살지 않았다. 배 속의 아이도 어쩐지 평소보다 반응이 없는 듯했다.

엘리사는 부쩍 나온 제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루만졌다.

어느덧 6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배가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아이의 태동도 강해지고 있었다.

아이는 나날이 자라는데, 그 과정을 함께해 줄 사람이 지금 당장 곁에 없다는 사실에 괜스레 기분이 울적해졌다.

가만히 배를 쓰다듬던 엘리사가 슬그머니 물었다.

“사랑아, 너도 아빠 보고 싶지?”

혼잣말에 가까운 물음이었다.

그런데 내내 조용하던 배 속에서 통통! 대답이 돌아왔다.

그 작은 움직임에, 울적해하던 엘리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우연히 타이밍이 맞았던 것이겠지만, 아이가 제 말에 대답을 할 때마다 마치 아이와 대화를 하는 듯해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가 발로 찬 부위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던 엘리사는 침대에서 일어나 뒤뜰 쪽 창문가로 다가갔다.

리하르트가 머물고 있는 별채에 아직 희미한 빛이 켜져 있었다.

그 빛을 본 엘리사에 미소가 번졌다.

작은 발광석이 은은한 빛으로 채우고 있는 적막한 방 안,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울렸다.

리하르트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족히 수십 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이 거대한 침대 가득 널려 있었다.

‘이 책에도 없군.’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읽어 내리던 리하르트는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덮었다.

건국제 사건이 정리된 후, 에이든은 다시 한번 리하르트의 힘을 정화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검은 기운은 약해지긴 해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 힘’에 관련된 정보를 찾고 있었지만 지금껏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리하르트는 얼굴 위에 책을 덮어 짜증 섞인 표정을 가렸다.

눈을 감자, 문득 언젠가 들었던 기괴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오래…… 기다… 렸다. 나의……

염원…….’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가 이 힘과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검은 존재에 대한 정보는 지금까지 본 오염된 땅에 관한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았다.

‘엘리사….’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졌다.

자신의 몸이야 어찌 되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나날이 불러 오는 배를 안고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엘리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졌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절대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켜주리라 결심했는데.

제 아이를 가진 채 도망가던 그녀를 붙잡고서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녀에게 걱정만 끼치고 있는 제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보고 싶어.”

그가 엘리사에 관한 그리움에 젖어 있던 그때, 창문가에서 무언가가 창을 툭 치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또 한 번 툭, 가벼운 마찰음이 들렸으나 리하르트는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며 창문을 때리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 순간.

와장창!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창문이 깨지고 커다란 돌이 데굴데굴 굴러들어왔다.

‘뭐지?’

그 소란에 흠칫 놀란 리하르트가 얼굴 위의 책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공작저에 돌을 던지며 장난칠 어린아이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은 모두가 휴식을 취하거나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리하르트가 창문 아래에 굴러다니는 커다란 돌멩이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밖에서 경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마님!”

앤의 목소리였다.

리하르트는 의아해하며 창문가로 다가갔다.

그곳엔 기겁한 앤과 그를 올려다보며 만면에 반색을 내비치는 엘리사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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