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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04화 (104/164)

104화

30분 전, 광장의 제과점 앞.

자신의 힘에 대해 언급하는 남자의 등장에 동요하던 리하르트는 위협적인 눈빛을 하고 남자에게 다가섰다.

“네 놈이 그 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지?”

“그에 대한 대답은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군요. 저도 ‘그 힘’에 대해 아는 분께 들은 이야기라서요.”

남자는 과장되게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힘’에 대해 아는 분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리하르트의 곁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던 아가일은 남자의 눈이 교활하게 번뜩이는 것을 보고 리하르트에게 귀엣말을 했다.

“각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가일의 말에도 리하르트는 별 감흥 없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함정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함정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함정이라면, 파이란 왕궁을 쓸어버렸듯 모두 쓸어 버리면 그만이니.

하지만 만약, 저자가 정말로 이 힘에 대해 알고 있다면…….

엘리사는 몸이 무거워진 요즘에도 틈틈이 정화의 힘을 다루는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리하르트는 그녀가 그렇게 연습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검은 힘을 정화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쓰였다.

하루빨리 이 힘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어 그녀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런 그녀를 생각하면 실낱같은 가능성조차 뿌리칠 수가 없었다.

리하르트는 남자에게 위협조로 경고했다.

“내가 바라는 답이 아니라면, 그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다.”

“아무렴,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안내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차를 가져오겠습니다.”

남자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제과 점에서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리하르트는 들고 있던 쿠키 상자와 수제 캔디가 든 유리병을 아가일에게 건넸다.

“먼저 돌아가.”

그런데 쿠키 상자와 알록달록한 수제 캔디를 보자, 불현듯 엘리사가 생각났다.

동시에 어제 에이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각하께선 엘리사에게 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하셨지만, 엘리사는 저보다는 각하가 훨씬 의지가 될 겁니다.

‘……,’

‘저 아이에게 당신이 가장 필요할 때 그 곁에 있어 주십시오.’

절대로, 그 아이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에이든의 말을 떠올리는 순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나를 노린 함정이 아니라, 엘리사를 노린 함정이라면?’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왜인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가일. 저놈 붙잡아 놔.”

“예?”

리하르트는 갑작스러운 자신의 행동 변화에 얼떨떨해하는 아가일을 뒤로한 채 날아올랐다.

*

세리어트 후작저에 도착한 리하르트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건, 엘리사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들이었다.

그것을 본 리하르트의 눈에 선연한 살기가 어렸다.

그가 살의에 사로잡힘과 동시에 그에게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검은 기운은 지상의 궁수들을 모조리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의 숨통을 조였다.

검은 기운에 사로잡힌 궁수들은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다 죽었다.

리하르트는 그제야 사용하지 말았어야 할 힘을 사용했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그에게 최우선은 엘리사의 안위였다.

지상으로 내려온 리하르트는 다급히 엘리사에게 다가섰다.

“엘리사.”

“리하르트…….”

리하르트의 얼굴을 보고서야 긴장이 풀린 엘리사는 그의 품에 쓰러지 듯 안겼다.

덜덜 떨리는 엘리사의 몸이 그녀가 겪었을 공포를 방증했다.

“이제 괜찮아.”

“…….”

“늦어서 미안해.”

리하르트는 떨고 있는 엘리사를 달래듯 그녀의 이마 언저리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팔에 난 상처를 확인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진 않았으나, 리하르트의 표정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의 등 뒤로 넘실거리던 검은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리하르트는 톰슨에게 엘리사를 맡기고, 얼어붙어 있는 케인과 그 무리에게로 다가섰다.

케인에게 다가서는 그의 눈빛이 살벌했다.

“누구와 손을 잡았지?”

소가주의 자리를 박탈당한 케인에게 이 많은 인원을 동원할 힘은 없다. 분명 배후가 있을 터였다.

“말해.”

케인은 제게 다가오는 리하르트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 어떻게 온 거지……?’

물지 않을 수 없는 미끼를 던졌으니, 분명 붙잡아 둘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리하르트가 엘리사의 죽음을 알아했을 땐, 자신은 이미 도망친 후일 것이라 했는데.

망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킬 순 없었다.

케인은 고용된 용병들에게 소리쳤다.

“뭐, 뭘 멀뚱히 보고 있는 거냐?

어서 공격해!”

용병들은 머뭇거리다,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일제히 리하르트에게 덤벼들었다.

리하르트는 폭풍을 일으켜 그들을 공중에 띄웠다가 그대로 떨어트렸다.

우두둑.

곳곳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끔찍하게 울렸다.

케인은 제게 다가오는 리하르트를 보며 덜덜 떨었다.

눈앞의 끔찍한 아수라장보다 무서운 건,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곳에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무심한 얼굴을 한 리하르트였다.

그 얼굴을 보자, 파이란 왕국군이 그를 지칭하던 ‘전장의 악마’ 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런 그가 두려운 한편으로, 사무치게 억울해졌다.

‘어째서…….’

어째서 신은 그에게만 이다지도 강력한 힘을 주었을까.

억울하고 비참했다.

그러나 살고 싶었다.

케인은 다가오는 리하르트에게 이 실직고했다.

“레, 레이모어 펠리스!”

“…….”

“그 사람이 저를 도와줬습니다.”

“…….”

“사실대로 고했으니 부디 목숨만은…….”

리하르트의 걸음이 고개를 조아린 케인의 앞에서 멈췄다.

그런 케인의 위로 섬뜩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런 협상은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파지직 -

이윽고 내려친 낙뢰가 케인을 관통했다.

*

엘리사를 데리고 공작저로 돌아온 리하르트는 제일 먼저 주치의를 불렀다.

세틸은 침대에 앉아 있는 엘리사와 리하르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팔에 상처가 -”

“아기…. 우리 아기부터 봐 줘요.”

엘리사의 상처부터 치료하려던 리하르트는 엘리사의 말을 듣고 말을 멈췄다.

기력이 빠져 내내 말이 없던 엘리 사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세틸은 엇갈린 두 사람의 요구에 슬그머니 리하르트의 눈치를 살폈다.

리하르트는 초조해하는 엘리사의 기색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사의 출혈이 걱정되긴 했지만,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지금은 아기에 대한 걱정으로 초조해하는 엘리사를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세틸은 엘리사의 지시대로 배 속아이의 상태부터 진찰했다.

“아기님의 심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건강하게 뛰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증상은 없으셨나요? 배 뭉침이 평소보다 심하다거나…….”

엘리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증상은 없었다.

“그럼 아기님께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우선은 며칠 안정을 취하시면서 지켜보시지요.”

세틸의 말에 엘리사는 그제야 안심했다.

떨리던 엘리사의 몸이 많이 안정된 것을 느낀 리하르트의 표정 역시 한결 풀어졌다.

세틸은 엘리사의 팔에 난 상처를 간단히 치료해 주고 방을 나갔다.

리하르트의 예상대로 큰 상처는 아니었다.

리하르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엘리사를 눕혀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누워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놀란 엘리사를 달랬다.

“옆에 있을 테니까 한숨 자.”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아가일이었다.

“각하, 마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요.”

엘리사가 잠들 수 있도록 리하르트가 나가겠다고 대답하기 전에 엘리 사가 아가일의 출입을 허락했다.

침실로 들어온 아가일은 소식을 전했다.

“후작저 지하실에 구금되어 있던 세리어트 후작저의 사용인들 모두 무사하다고, 방금 톰슨 경에게서 서신이 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안도했다. 그러잖아도 그들을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제과점에서 만난 그 남자를 신문한 결과, ‘그 힘’에 대해 알려 준 사람이 레이모어 펠리스 후작이라고 하더군요.”

그에 리하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엘리사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놀란 눈으로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펠리스 후작이 네 힘을 알아? 그럼 황제도 ‘이 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아마, 그럴 확률도 있겠지.”

어쩌면 이 힘이 생긴 것부터가 황제의 의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 힘의 정체에 대해 알기 전까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아가일이 덧붙였다.

“그리고 그자가 말하길, 펠리스 후작이 각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리하르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당장에라도 그를 찾아가 ‘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엘리사를 죽이려한 죄를 묻고 싶었지만, 아직 안정되지 않은 엘리사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은 엘리사가 입을 열었다.

“다녀와, 리하르트.”

“…엘리사.”

“대신 조심하고, 알지? 너한텐 지켜야 할 처자식이 있어.”

잠시 갈등하던 리하르트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금방 다녀올게. 쉬고 있어.”

그는 엘리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섰다.

엘리사는 침대에 누운 채로 배를 쓰다듬으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려던 때였다.

“아……….”

엘리사는 배가 단단하게 뭉치는 듯한 진통을 느끼고 눈을 떴다.

가끔 있던 일시적인 증상이려니 넘기려 했지만, 증상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설마….…..’

예감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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