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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10화 (110/164)

110화

집무실에서 아가일의 보고를 들은 리하르트가 침실로 돌아왔을 땐, 배고픈 하네스가 다시 깨서 모유를 먹고 있었다.

하네스에게 젖을 먹이고 있던 엘리 사는 잠기운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 갔다 왔어?”

“잠깐 이야기 좀 하느라.”

리하르트는 엘리사의 곁에 다가앉으며 하네스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아기의 말랑말랑한 볼은 손이 닿는 곳에 있으면 본능적으로 손길이 가는 마력이 있었다.

“이 녀석, 금방 먹어 놓고 또 배가 고픈가 보네.”

“많이 먹고 얼른 자라서 아빠랑 뛰어놀고 싶어서 그러지요. 그치, 하네 스?”

엘리사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럼에도 하네스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묻어났다.

하네스는 가까이 다가오는 엘리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젖을 먹다가, 이내 배가 찬 듯 입을 뗐다.

엘리사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언제 울었냐는 듯 똘망똘망했다.

리하르트는 엘리사에게서 하네스를 받아 안았다.

“내가 소화시킬게. 먼저 자.”

“엄마는 너무 졸려서 먼저 누워 있을게, 하네스, 아빠랑 이야기 많이 해, 우리 아가.”

엘리사는 리하르트에게 멀뚱멀뚱안겨 있는 하네스의 뺨에 입을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리하르트는 하네스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침실을 한참 서성거렸다.

이윽고 하네스의 입에서 귀여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번번이 리하르트의 옷에 토하길 반복하다 간만에 듣게 된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리하르트는 놀란 눈으로 하네스를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잘했어, 하네스.”

하네스는 멀뚱멀뚱 리하르트를 바라보다, 그의 칭찬을 알아듣기라도한 듯 방 웃었다.

그 미소가 퍽 사랑스러웠다.

리하르트는 엘리사가 맡긴 ‘하네스트림시키기’ 미션에 성공했다는 것에 내심 뿌듯해하며 엘리사를 돌아보았다.

“엘리~”

엘리사를 부르려던 리하르트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자세로 잠든 엘리 사를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사이에 벌써 잠든 걸 보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리하르트는 침대로 돌아와 하네스를 엘리사 옆에 눕히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내 조용하던 하네 스가 커다란 눈을 울멍울멍하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흐에엥….”

“으응…….”

그 소리를 들은 엘리사가 잠에서 깨려 하자, 리하르트는 하네스를 냉큼 다시 안아 들었다.

그러자 칭얼거리던 하네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뚝 울음을 그쳤다.

‘기저귀가 젖었나?’

리하르트는 하네스의 기저귀를 슬쩍 들춰 보았다. 하지만 간 지 얼마 안 된 기저귀는 뽀송뽀송했다.

잠시 기색을 살피던 리하르트가 하네스를 다시 눕혔다.

하네스는 등이 침대에 닿기가 무섭게 양팔과 양다리를 바동거리며 울멍울멍했다.

리하르트는 하네스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다시 안아 들었다.

‘대체 왜 우는 건데……?’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

리하르트는 난감한 표정으로 하네 스를 보다가, 슬그머니 하네스를 다시 눕혔다.

하네스는 이번에도 울음을 터트리려 했다.

리하르트는 그제야 하네스의 의도를 파악했다.

“자기 싫구나, 너?”

그는 결국 하네스를 다시 안아 들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 준 후, 하네스를 두꺼운 담요로 감싸고 복도로 나왔다.

창문으로 스며든 달빛이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리하르트는 하네스를 안고 복도를 거닐었다.

아직 시야가 불분명한 하네스는 리하르트의 얼굴이 있는 허공을 말똥말똥 바라보며 작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 움직임을 눈치챈 리하르트가 하네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많이 먹고 얼른 자라서 밤에 엄마좀 양보해 줘.”

“으우아!”

하네스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그를 바라보며 방 웃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사르르 접으며 웃는 모습이 엘리사와 꼭 닮아 있었다.

그 눈웃음을 보자, 얄미운 마음이 눈 녹는 듯 사라졌다.

리하르트는 빙긋 웃으며 하네스의 통통한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하네스가 꺄르르 웃었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이 행복을 잃을까 두려워지는 법이다.

방긋 웃는 하네스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리하르트는 문득 조금 전, 아가일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이래저래 조사해 봤지만, 두드러지는 점은 없었습니다.’

아가일로부터 건네받은 서류에 레이모어의 인적 사항이 전부 적혀 있었는데, 그의 말대로 언뜻 보기엔 특별한 점이 없었다.

‘그나마 특이점을 한 가지 꼽자면, 본디 선황제 폐하의 측근이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군요. 갑자기 변절을 하다니………..’

‘현 황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겠지.’

레이모어는 선황후의 동생이었고, 선황후와 금슬이 좋았던 선황제는 그를 지극히 아꼈다.

그야말로 권력의 정점.

이십 년 전 협곡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는 선황제의 명령으로 에이든과 함께 협곡으로 보내졌다.

레이모어가 떠난 직후 선황제가 독살 당하고 현 황제 로암이 황위에 오르자, 협곡에서 돌아온 레이모어는 바로 로암의 측근으로 돌아섰다.

리하르트는 그것이 레이모어가 현황제에게 복수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으나, 아가일은 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상하죠. 비록 선황제 폐하와 선황후 폐하가 돌아가셨다고는 하나, 두 분 사이에 황태자 전하가 있었는데.’

아가일의 이야기를 들은 리하르트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당시에도 현 황제 로암의 세력이 크긴 했지만, 선황제의 적장자인 황태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조금 더 컸다.

만약 레이모어가 조카를 황위에 올리고자 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쪽이 그가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훨씬 쉬웠을 것이고.

굳이 복수를 위해 로암에게 고개를 조아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쉽게 자신의 주군으로 로암을 택했다. 게다가 어린 조카가 암살당했음에도 침묵했다.

레이모어가 내린 결정을 바탕으로 추론하던 리하르트는 입을 열었다.

‘혈육이 선택한 주군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주군을 황제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거나…….’

‘권력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거나.’

협곡에 다녀온 직후 변절한 레이모어와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생각하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내 반평생에 걸쳐 완성한 역작.’

‘내가 만든, 나의 신이시여.’

어쩌면, 레이모어의 그 다른 목적’이 자신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으에엥!”

생각에 잠겨 있던 리하르트는 하네 스의 울음소리를 듣고 번뜩 정신을 차렸다.

리하르트의 품에 안긴 하네스는 그의 접힌 옷을 쭙쭙 빨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하르트는 하네스가 우는 이유를 알아챘다.

입가에 닿는 그의 잠옷이 젖인 줄 알고 빨다가, 젖이 나오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리하르트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저가 착각해 놓고 성질부리는 게 웃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그는 하네스의 도도록한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건 엄마만 줄 수 있는 거야.”

“오옹?”

“엄마한테 가자.”

“아우!”

하네스는 ‘엄마’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듯 방긋 웃었다.

리하르트는 그런 아이를 보며 피식 웃었으나, 레이모어를 떠올리곤 표정을 싸늘히 굳혔다.

그의 ‘목적’이 무엇이든, 이 행복을 깨트리게 두진 않을 생각이었다.

#13. 내가 있어야 할 자리 한 달 후, 황궁은 새해를 하루 앞두고 연말 준비로 분주했다.

황제는 온실에서 레이모어와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그의 부름을 받은 크리스티안이 온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그리고 장인 어른.”

두 사람에게 인사한 한 크리스티안이 착석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하녀가 그의 몫의 차를 우려 따라 주었다.

크리스티안은 목을 축이고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내일이면 새해네요. 이 제국에 폐하의 치세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새해에는 황손을 보고 싶구나.”

황제는 인사치레 없이 대뜸 본론을 꺼냈다.

예상치 못한 황제의 공격에, 찻잔을 쥔 크리스티안의 찻잔이 흠칫 떨렸다.

“이번 달에 한 번도 황태자비와 합방을 하지 않았다지. 홍등가에는 매일 같이 드나들면서.”

크리스티안이 난감해하며 대답하지 못하자, 옆에서 차를 마시던 레이모어가 입을 열었다.

“한창 젊은 혈기를 감당하기 힘드실 때지요. 제가 딸아이를 잘못 키운 탓도 큽니다.”

“후작은 황태자에게 너무 무르군.”

“누구의 배를 빌려 태어나는 황실의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전하를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십시오.”

황제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곧 다시 싸늘하게 굳혔다.

“그나저나 루벨린 공작 부인이 다시 세리어트 후작저를 드나들고 있다고 하더군. 아니, 조만간 정식으로 가주의 자리를 잇게 될 테니 세리어 트 후작이라 불러야 하나.”

레이모어는 황제가 왜 크리스티안에게 대뜸 후사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아챘다.

엘리사가 루벨린의 후사를 이은 데다 곧장 세리어트 후작가의 후계자로서 입지까지 다지기 시작하자, 두가문의 세력이 커질까 봐 불안해진 것이다.

황제의 걱정을 읽은 레이모어는 목을 축이고 대답했다.

“잊으셨습니까, 폐하? 그 계집은 후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찻잔을 내려 두는 그의 표정이 지극히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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