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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13화 (113/164)

113화

리하르트는 다른 팔로 엘리사의 머리를 감싸며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살기 어린 눈으로 크리스티안을 노려보았다.

그 섬뜩할 정도로 살벌한 기세에 크리스티안의 시종들조차 리하르트를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크리스티안은 리하르트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 했으나, 리하르트의 악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의 팔을 부러트리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것처럼.

크리스티안은 잡힌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리하르트를 쏘아보았다.

“이거 놓지 못해?”

“먼저 놓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리하르트의 싸늘한 시선이 엘리사의 가녀린 손목을 붙잡고 있는 크리스티안의 손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크리스티안의 손목을 쥔 리하르트의 손이 더욱더 강하게 크리스티안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큭….”

자존심을 내세우며 물러서지 않으려던 크리스티안은 결국 그 고통에 못 이겨 먼저 엘리사의 손목을 놓았다.

리하르트는 엘리사의 얼굴을 제 가슴팍에 묻게 했다.

마치 그녀의 시선에 크리스티안이 잠깐이라도 담기는 것조차 싫다는듯이.

“놓으란 말 못 들었나, 공작?”

크리스티안의 재촉에도, 리하르트는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그 잠깐 새 엘리사의 새하얀 손목이 발갛게 부어오른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약하고 소중해서, 그녀에게 닿는 매 순간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욕망에 휩쓸렸을 때조차 제 욕망이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소중히 대했다.

그런데, 눈앞의 파렴치한이 소중한 아내를 함부로 대했다. 아프게 했다.

엘리사의 손목을 본 리하르트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굳어졌다. 크리스티안의 손목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크리스티안의 손목 아래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감히, 황태자인 나를……!”

참다못한 크리스티안이 악에 받쳐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엘리사가 리하르트를 끌어안았다.

“리하르트, 난 괜찮아. 그만해.”

저를 타이르는 그녀의 온기에, 들끓던 분노가 한층 누그러들었다.

리하르트는 엘리사를 안은 팔로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지못해 크리스티안의 손을 내팽개치듯 놓아주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을 노려보는 눈엔 여전히 싸늘한 살기가 가득했다.

크리스티안은 그에 움찔했으나, 지지 않고 구시렁거렸다.

“무식하게 힘만 센 새끼…….”

엘리사는 그런 크리스티안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긴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정식으로 공작저를 방문해 주세요, 전하.”

“……..”

“귀부인이 감히 황태자궁을 방문하는 건, 호사가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기 딱 좋은 일이니까요.”

‘귀부인인 내게 네가 방금 하려던 행동이 얼마나 무례하고 파렴치한 같은 짓인지 알아라’ 라는 의미였다.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엘리사는 리하르트와 함께 돌아섰다.

크리스티안은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리하르트는 엘리사의 부어오른 손목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마치 저가 더 아프다는 듯 애틋해 보였다.

조금 전의 치욕이 떠오른 크리스티안은 옆에 있던 시종을 걷어찼다.

“뭘 가만히 보고 서 있어? 네놈들이 그러고도 내 시종이야?”

“소, 송구합니다, 전하!”

크리스티안은 시종을 몇 대 더 때린 후에야 겨우 분을 삭이고 이를 갈았다.

‘건방진 계집. 순순히 날 따라오기만 했어도….’

멀어지는 엘리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크리스티안의 눈빛이 희번덕였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신년 국경일이 지나고 첫 귀족 회의가 열렸다.

리하르트는 귀족 회의로 자리를 비웠고, 엘리사는 오늘 세리어트 후작저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단장을 마치고 시간이 남은 엘리사는 반나절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하네스와 놀아 주고 있었다.

“하네스, 힘내! 힘!

“으아으아.”

요즘 하네스는 눕혀 놓으면 뒤집기를 시도했다.

아직 머리가 무거워 목을 가누기 힘들 텐데도, 누워만 있는 것이 답답한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용을 쓰며 몸을 뒤집으려 했다.

엘리사는 하네스가 뒤집기 시도를 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 옆에서 열심히 응원했다.

하네스를 돌보는 하녀들과 유모 역시 옆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련님, 힘내세요!”

하네스는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끙끙거리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파닥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통통한 옆태가 숨 막히게 귀여웠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아이를 응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으아으!”

“어? 도련님이 엎드리셨어요!”

나름의 기합과 함께 몸을 거의 뒤집었던 하네스는 하녀의 말이 끝나 기가 무섭게 도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지켜보고 있던 하녀들은 저가 더 아쉬워했다.

“에구, 아쉽다.”

천장을 보고 누운 하네스의 표정이 어쩐지 허탈해 보였다.

그 모습에 엘리사가 웃음을 터트리며 쪽쪽 입을 맞췄다.

“잘했어, 하네스, 아직 너한텐 힘든게 당연한 거야. 잘했어요.”

이제 겨우 생후 2개월 좀 더 지난 하네스에겐 굉장히 빠른 성장 속도였다.

허탈한 표정으로 가쁜 숨을 색색 내쉬던 하네스는 엄마의 칭찬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듯 방긋 웃었다.

그때, 집사 그레이슨이 방으로 들어왔다.

“마님,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세리어트 후작저로 갈 시간이었다.

엘리사는 하네스를 유모에게 안겨주고 겉옷을 입었다.

그런데, 유모의 품에 안긴 하네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으에에엥!”

기저귀는 방금 전에 갈아 깨끗했고, 젖도 조금 전에 먹어 배가 고플때가 아니었다.

유모와 하녀들이 딸랑이를 들고 하네스의 주의를 끌었지만 소용없었다. 하네스의 시선은 오직 엘리사에게로 향해 있었다.

엘리사는 유모에게서 하네스를 받아 안았다. 그러자 하네스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하네스의 의도를 눈치챈 엘리사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하네스, 엄마랑 같이 가고 싶어?”

“우웅.”

하네스는 엄마의 물음에 대답하듯 옹알거렸다.

그 모습에 엘리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저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이 기껍지 않을 리가.

엘리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네스의 통통한 뺨에 입을 맞췄다.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가자.”

*

루벨린 공작가의 마차가 세리어트후작저에 도착했다.

맞이하러 나와 있던 카밀라와 프레드릭은 마차에서 내리는 엘리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엘리사의 품에 귀여운 곰 인형이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테디 베어 의상을 입은 하네스는 토실토실 귀여운 자태를 뽐내며 세리어트 후작가의 사람들을 향해 옹알이를 했다.

“우으에.”

아이의 인사를 받은 세리어트 후작저의 사용인들은 모두 광대가 터질듯 미소를 지었다.

매사에 표정 변화가 없던 카밀라 역시 이 순간만큼은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프레드릭은 흔흔한 눈으로 하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소공작께서도 동행하실 줄은 몰랐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요람이라도 준비해 두었을 텐데……….”

“나도 우리 아드님이 동행하려고 할 줄은 몰랐던 거라, 괘념치 말아요.”

엘리사와 하네스는 사용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세리어트 후작저로 들어서려 했다.

그런데 저택 한 편에 서 있는 익숙한 문양의 마차가 보였다.

황실의 문양이었다.

엘리사의 시선을 눈치챈 프레드릭은 언제 웃고 있었냐는 듯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이름을 들음과 동시에 엘리사의 눈빛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엘리사는 곧장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실 앞에는 황실의 기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안, 하네스 좀 데리고 있어.”

엘리사는 접견실로 들어서기 전, 하네스를 앤에게 건넸다.

하지만 앤의 품에 안기기가 무섭게 하네스가 자지러질 듯 울음을 터트렸다.

“으에에엥!”

“도, 도련님. 저랑 옆방에 가서 놀아요. 네?”

앤이 하네스를 달래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하네스는 오히려 몸을 뻗대며 기를 쓰고 울었다.

결국 엘리사는 하네스를 다시 안았다.

톰슨은 접견실로 들어서는 엘리사에게 말했다.

“문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마님.”

그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 들어가겠다는 의미였다.

엘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접견실로 들어섰다.

차를 마시고 있던 크리스티안은 엘리사를 보고 알은체하려다, 엘리사가 안고 있는 하네스를 발견하고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소공작은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빼닮은 것 같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네요.”

엘리사는 조금도 기쁘지 않은 얼굴로 그의 칭찬을 받아쳤다. 그의 칭찬에 진심이 담기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찾아주셨나요? 혹, 일전에 하시려던 말씀 때문인가요?”

“역시 공작 부인은 눈치가 빨라.

덕분에 나도 이야기하기 편하겠군.”

크리스티안은 엘리사의 품에 얌전히 안겨 손을 빨고 있는 하네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나도 슬슬 후사를 봐야겠어.

지난 몇 년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비에게서 후사를 보긴 힘들 것 같고, 정부를 들여야 할 것 같아서.

공작 부인에게 의견을 구할까 하고.”

아렌시아는 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지향했다. 황제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신, 서로 남편과 아내를 두고 암암리에 정부를 따로 두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가 후계를 낳지 못하면 정부에게서 후사를 보기도 했다.

황제와 황태자는 제국 내의 지존들이었기에, 평민이 아닌 귀족 영애나 귀부인들이 정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 황제 로암도 황제의 정부였던 베이린 백작 부인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왜 내게 의논하는 건데?’

엘리사는 미심쩍은 눈으로 크리스티안을 쳐다보았다.

크리스티안은 이번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공작 말이야. 연회 때보니 너무 폭력적이더군. 꼭 멍청한 놈들이 힘부터 쓰던데, 딱 그 짝이지.”

난데없는 리하르트 욕에 엘리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크리스티안은 멍든 제 손목을 매만지며 은근슬쩍 보여 주었다.

“반평생을 전장에서 뒹굴다 와서인지 사람이 너무 거칠어. 혹시 공작부인에게도 그리 거칠게 대하나?”

한 마디 언질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아내와 자식의 앞에서 남편의 욕을 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엘리사는 말 같지 않은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를 경계하듯 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크리스티안은 그런 엘리사의 모습에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내 여자가 되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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