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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23화 (123/164)

123화

리하르트는 하네스를 엘리사에게 안겨 주고 두 사람을 보호하듯 앞으로 나섰다.

짐승형 몬스터부터 거대 슬라임, 언데드형까지 어림잡아도 십여 마리는 되어 보였다.

‘영주의 별장이 가까운 곳에 몬스터들이 대거 돌아다닌다고?’

영주의 별장 근처라면 진즉에 영지의 기사들이 토벌했어야 한다.

그런데 별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몬스터가 대거 돌아다니는 것이 이상했다.

게다가 -

‘눈이 붉다.’

꼭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이었다.

그때, 고요한 적막 속에서 그들을 빤히 바라보던 몬스터들이 사납게 돌변하며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엘리사는 재빠르게 빙벽을 만들어 그들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그사이, 리하르트는 바람을 일으켜 뇌운을 만들었다.

“우웅.”

엘리사의 품에 안겨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네스가 그를 따라 하듯 조그마한 손을 파닥거렸으나, 몬스터에게 집중한 엘리사와 리하르트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리하르트는 포악하게 빙벽에 부딪히는 몬스터들을 낙뢰로 공격했다.

“크륵!”

낙뢰에 맞은 몬스터들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새까맣게 지져져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그 순간, 리하르트에게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다른 몬스터들의 죽음에도 개의치 않고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순간적으로 주춤하더니, 그대로 돌아서 달아났다.

마치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었다.

‘뭐지……?’

리하르트와 엘리사는 의아한 눈으로 물러나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미처 알아챌 새도 없이, 리하르트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검은 기운이 엘리사가 만들어 준 정화의 펜던트에 의해 억제되었다.

때마침 그 소란을 들은 톰슨과 기사들이 달려왔다.

“각하! 마님! 괜찮으십니까?”

달려오던 그들은 눈앞의 몬스터 시체를 보고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리하르트는 톰슨에게 물었다.

“주변에 몬스터가 살았던 흔적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영주의 별장 주변이라 그런지 조용했고요.”

그에 리하르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위에 몬스터의 생활 흔적이 없다는 건, 그의 예상대로 어디선가 갑자기 몬스터가 몰려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는 뜻이니까.

‘그럼 저 몬스터들은 뭐 때문에 이곳에 나타난 거지?’

겨울이니 먹을 것을 찾아 민가 가까이 내려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하르트가 마주한 몬스터들은 굶주렸다기보다는, 꼭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악마의 영혼석에 홀린 몬스터들 같았어.’

예감이 좋지 않았다.

리하르트는 톰슨에게 지시를 내렸다.

“톰슨, 달아난 놈들이 주변의 민가에 피해를 끼칠 수 있으니, 그전에 쫓아가서 처리해.”

“넵.”

“그리고 시체에서 악마의 영혼석이 발견되면 즉시 수거해라.”

“명을 받듭니다.”

리하르트의 명을 받은 톰슨은 부하들과 함께 숲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하르트는 엘리사에게 말했다.

“엘리사. 하네스를 데리고 먼저 별장으로 돌아가. 난 이 사체들 좀 살펴보고 갈 테니.”

엘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네 스를 안고 별장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뒤를 기사 두 명이 따랐다.

엘리사가 멀어지자, 리하르트는 남은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사체에 악마의 영혼석이 있는지 살펴봐라.”

기사들은 리하르트의 명령대로 몬스터의 사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악마의 영혼석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레이모어 그자라도 이런 변방의 마을에 악마의 영혼석을 풀 리는 없지.’

레이모어라면 자신의 행선지를 알고 있으니 함정을 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몬스터 몇 마리로 자신에게 위협이 될 리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을 테고, 마찬가지로 이 변방의 마을을 어지럽혀 봤자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터.

‘그럼 정말 단순히 먹이를 찾아 내려온 몬스터들인가.’

정황상 그 가능성밖에 없었으나, 어쩐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

일찍 잠자리에 든 엘리사와 리하르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진리의 탑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 마차를 타고 달려, 주홍빛 노을이 마차 창문으로 스며들 무렵.

루벨린 공작가의 일행은 진리의 탑앞에 도착했다.

“으음….”

리하르트의 어깨에 기대어 단잠에 들었던 엘리사는 눈을 떴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노을빛이 눈을 찌른 탓이었다.

고개를 들자, 잠든 하네스를 안고 잠들어 있는 리하르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의 창문으로, 노을 이 부서져 반짝이는 바닷가에 우뚝선 거대한 탑이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이젠 탑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으에우…….”

그때, 하네스가 잠결에 칭얼거렸다.

그러자 리하르트가 여전히 잠든 채로 반사적으로 하네스를 토닥였다.

익숙한 아빠의 손길에 아이는 금세다시 잠들었다.

엘리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다, 다시 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서 너를 구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이윽고 마차가 탑 앞에 멈춰 섰다.

아가일은 마차에서 내려 탑의 거대한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리형 손잡이를 잡고 쾅쾅 내려치며 노크했다.

하지만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엘리사는 의아했으나, 탑 출신인 아가일은 익숙한 듯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 탑 위쪽 창문에서 열한두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이 빼꼼튀어나왔다.

소년은 방문객들을 살피고는 금세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문 안에서 쿠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이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야야….”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다 구른 듯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아이가 문 너머로 물었다.

“누구세요?”

진리의 탑은 출입구가 하나뿐이라, 누군가 마음먹고 틀어막으면 도망갈수 없는 구조였다.

그 때문에 외부인을 굉장히 경계했다.

아가일은 아이에게 말했다.

“대학자께 전해라. 루벨린 공작 각하와 세리어트 후작 각하께서 오셨다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가일을 비롯한 루벨린 공작가의 일행은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슬슬 석양이 저물 즈음, 또 창문 쪽에서 불쑥 얼굴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엘리사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아직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여자였다.

여자는 루벨린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를 본 후, 다시 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굳건히 닫혀 있던 탑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날카로운 인상에 머리가 희끗한 노인과 조금 전 얼굴을 비쳤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일은 엘리사와 리하르트에게 노인을 소개했다.

“각하, 마님. 이쪽은 제 스승님이자, 탑의 주인이신 브랜든 아이너대학자십니다. 그리고 이쪽은…….”

브랜든 옆의 안경 쓴 여자를 소개하려던 아가일은 말을 멈췄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여자를 모르는 아가일을 대신해 브랜든이 입을 열었다.

“이쪽은 제 손녀딸 헤일리입니다.”

“반갑소, 대학자. 그리고 영애.”

“이쪽이 루벨린 공작 각하시고, 이쪽이 이번에 작위를 계승하신 후작님이시겠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브랜든 경.”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두 분.”

리하르트와 엘리사, 브랜든과 헤일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친 후, 브랜든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데, 이곳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이 탑에서 지식을 구하고자 하오.”

“그런 이유라면 이 녀석을 보내셔도 되었을 텐데, 귀한 걸음을 하시다니.”

브랜든은 아가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사다망한 분이 무엇 하러 귀찮게 여기까지 왔냐는 뜻이었다.

리하르트는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고대의 서. 그 책을 보기 위해 왔소.”

레이모어가 진리의 탑에서 답을 구하라고 했을 때부터 제일 먼저 ‘고대의 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였다.

그 이름을 들은 브랜든의 눈이 놀라 커졌다.

“이 탑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그것을 본 자가 없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몇 세기에 한 명 정도, 운이 좋아 선대의 결계가 흐려지는 순간에 본 자가 있기도 합니다만……”

몇 달 전 리하르트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던 아가일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의식을 잃었었다.

어렴풋이 고대의 서를 발견했던 것이라 추측할 뿐,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고대의 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자는 몇 세기에 한 명 정도였다.

브랜든의 말은 즉, 리하르트가 그 책을 발견하거나, 발견해도 기억할 가능성이 희박하니 도서관에 가도 소용없다는 의미였다.

외부인의 방문을 달갑지 않아 하는 그의 심리가 반영된 말이었다.

그러나 리하르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 한 명이 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브랜든은 리하르트의 말에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기도 하고,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그의 기세에 눌려서 이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먼 길오셨으니, 오늘은 우선 쉬시지요.”

루벨린 공작가 일행이 기뻐하며 탑으로 들어갈 짐을 챙기려던 그때, 뒤이어 브랜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기사들과 사리 분별 못 하는 아이는 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에 리하르트의 미간이 설핏 일그러졌다.

“진리의 탑은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깨닫는 경건한 곳. 그러나 예로부터 검을 쓰는 자들은 넘치는 체력을 감당하지 못해 탑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했지요.”

“…….”

“탑의 주인으로서, 학자들의 학문수행을 방해하는 이는 탑에 들일 수 없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그가 기사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사들은 탑 밖에서 막사를 치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단호한 말에, 옆에서 하네스를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고 있던 헤일리가 브랜든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아직 젖도 못뗀 갓난아기예요. 그런 아기를 엄마랑 떼어 놓을 수는 없잖아요.”

“나는 엄마와 떼어 놓으라고 한 적없다.”

그 말은 즉, 아이를 떼어 놓을 수 없다면 엘리사도 함께 탑 밖에서 지내라는 뜻이었다.

브랜든이 냉정하게 말하고 시선을 돌리던 그때, 엘리사의 품에 안겨 있던 하네스와 눈이 마주쳤다.

하네스는 큰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며 옹알거렸다.

“으부?”

그 목소리를 들은 브랜든의 시선이 흠칫 멈췄다.

실로 오랜만에 본, 티 하나 묻지 않은 맑고 순진무구한 눈이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하네스는 그에게 조그마한 손을 뻗으며 방 웃었다.

“꺄우!”

그 미소에, 브랜든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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