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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30화 (130/164)

130화

몇 시간 전, 로제는 요양차 근교의 황실 별장으로 가기 위해 마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모습이었다.

로제는 요양을 가는 척, 자신의 자리를 지킬 방법을 찾았다.

‘크리스티안의 사생아를 데려와 내 자식으로 입적시키면, 지금처럼 대놓고 정부를 들이려 하진 못할 테지.’

비록 천한 피가 섞인 반쪽짜리라도 황손은 황손.

정부를 들이는 가장 큰 이유였던 후사가 생긴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황손을 직접 찾아온 공이 생기기도 할 테다.

로제는 몰래 사람을 풀어 엘리사가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을 뒤져 보도록 지시했다.

아마 그곳에 크리스티안의 사생아를 숨겼으리라.

‘엘리사 그 계집애라면 아이의 안위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제아무리 엘리사라도, 자신이 먼저 아이를 찾아 아이의 안위를 가지고 협박하면 황제에게 일러바치진 못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전처럼 아이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데려가 잘 키우겠다는데.

괜히 제 심기를 거슬러 아이를 죽이는 것보다는 황손으로 잘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엘리사의 입장에서도 낫지 않은가.

‘물론, 내 수중에 있는 편이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리하기도 쉬울 테고.’

로제는 마음이 급했다.

‘그 계집애가 돌아오기 전에 빨리 사생아를 찾아야 해.’

아랫것들에게 아이를 찾는 일을 맡기고 홀로 요양을 떠나자니 마음이 초조했다.

마차 안이 갑갑해진 로제는 아카로 아를 벗어나 외곽 지역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마차를 세웠다.

“바람 좀 쐬다 가자꾸나.”

마침 근처에 인적이 드문 호숫가가 있었다.

며칠 날씨가 온화했던 덕에 호수는 녹아 있었다.

로제는 잠시 초조한 마음을 달랠겸 호숫가를 거닐기로 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 발밑에 부서지는 낙엽 소리만이 가득한 호숫가를 거닐고 있던 그때였다.

호수 반대편에 일곱 명의 어린아이들이 나타났다.

‘신전의 고아들인가 보군.’

아이들은 신전에서 입히는 어린 사제의 옷을 입고 있었다.

로제는 금세 시선을 돌렸다. 신전의 고아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엘리사가 보육원을 후원한다고 했기에, 신전 고아들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무엇보다, 황손을 신전에 숨겼다간 자칫 황실과의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을 터.

엘리사가 그런 위험을 감수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가까운 곳에서 불길한 기척이 느껴졌다.

바스락 - 바스락 -

로제조차도 느낄 만큼 많은 수의 기척이었다.

무심코 시선을 든 로제는 눈앞의 흉측한 몬스터들을 보고 겁에 질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 초점이 없는 새빨간 눈.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전하!”

다행히 빠르게 상황을 눈치챈 호위기사들이 달려와 그녀의 앞을 보호 하듯 막아섰다.

“이런 곳에 왜 몬스터가……!’

“비전하를 마차까지 모셔라!”

로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로 향했다.

그때였다.

“으아악!”

호수 반대편에서 들려온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로제가 반사적으로 그곳을 본 순간, 그녀의 눈에 선명히 보였다.

한 아이에게서 뻗어 나오는 거센 불꽃과 바람에 흔들리는 금색의 가발 사이로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이.

‘카이로트의 힘…….…?’

리온을 발견함과 동시에, 조금 전까지 겁에 질려 있던 로제의 표정이 돌변했다.

……저거다.

엘리사가 제게서 숨긴 아이.

현재 자신의 자리를 지켜 줄 유일한 패.

현재 황실에는 황제도, 크리스티안과 황녀인 미카엘라도 카이로트의 힘을 발현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로트의 힘을 이 어받은 저 아이가 나타난다면.

저 아이라면 더 이상 정부를 들여 후사를 생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저 힘은 더 이상의 후사는 필요 없는, 그야말로 명실공히 황제가 될 자격을 갖춘 힘 그 자체니까.

“전하, 먼저 마차로 돌아가시지요.

이곳은 저희가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로제가 우두커니 서 있자, 걱정이 된 기사가 다가왔다.

하지만 로제는 겁먹긴커녕, 광기에 번뜩이는 눈으로 명령했다.

“저거, 잡아. 지금 당장.”

‘저거’를 지칭하는 로제의 손가락이 호수 반대편, 리온에게로 향해 있었다.

*

아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몬스터들과 자신들 사이를 갈라놓은 불을 바라보았다.

“키에엑!”

불에 휩싸인 몬스터들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불에 닿지 않은 몬스터들은 보호하듯 아이들을 둘러싼 불의진 앞에서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런 몬스터들을 살기등등하게 노려보던 리온은 불꽃을 더욱 키웠다.

거세진 불꽃은 남은 몬스터들마저 태워 버릴 듯 맹렬히 타올랐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몬스터들의 눈빛이 본연의 색으로 돌아오더니, 번져가는 불길을 피해 달아났다.

리온은 몬스터들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형아! 갠차나?”

“우린 괜찮아.”

“근데 리온. 방금 그 불…… 네가한 거야?”

한 소년의 물음에 리온은 흠칫했다.

그제야 뒤늦게 ‘다른 사람 앞에선이 힘을 쓰지 않겠다’며 에이든과했던 약속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우웅………. 근데 성하한테는 말하몬 안 대. 비미리야. 말하몬 혼나.”

“우와, 신기하다. 리온 너 진짜 대단하다. 엄청 멋있어!”

아직 어린 아이들은 리온의 힘을 막연히 멋있어했지만, 가장 큰 형인 벤자민은 그럴 수 없었다.

‘불꽃의 힘이라면…….’

황가에 전해 내려오는 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에이든이 숨기고자 한 것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아무에게도 들켜선 안되었다.

벤자민은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신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얘들아, 오늘은 그냥 신전으로 돌아가자. 몬스터들이 있어서 위험할 것 같아.”

“형아, 잠깐만!”

그때, 리온의 눈에 미처 끄지 못한 작은 불씨가 보였다.

리온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 불씨를 꺼트리려 다가가는데, 아이들의 앞을 로제의 기사들이 막아섰다.

“꼬마야. 귀하신 분께서 너를 보자고 하시는데, 잠깐 같이 갈까?”

“가면 맛있는 과자도 주마. 우리 나쁜 사람 아니야.”

기사들은 정확히 리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막내인 리온을 에워싸고 경계했다.

맏형인 벤자민이 그들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여신의 신실한 심부름꾼들이라, 성하의 허락 없이는 지정된 장소를 벗어날 수 없는 몸입니다.

용무가 있으시다면 신전으로 찾아와 주시겠습니까?”

벤자민의 정중한 거절에, 기사들은 재미있다는 듯 벤자민과 동료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싹 굳히며 동료들에게 명령했다.

“저거 잡아.”

기사들은 재빨리 리온을 잡으려 다가섰다.

그 순간 신전 아이들이 약속이라도한 듯 기사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눈에 흙을 뿌리며 붙잡았다.

“이것들이 겁도 없이 미쳤나!”

“리온, 도망가!”

벤자민은 남은 기사 하나를 붙잡고 늘어지며 리온에게 소리쳤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던 리온은 벤자민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산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어? 어서 쫓아가!”

기사들은 아이들을 차내고 리온을 쫓아가려 했으나, 아이들은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겨우 아이들을 걷어내고 리온을 쫓아가려는 그 순간.

통제를 벗어난 작은 불씨가 거대한 화마가 되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

해 질 녘, 신전 별관.

일과를 마친 에이든은 별관의 화단을 둘러보며 리하르트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힘………. 이십 년 전 협곡 너머에서 느꼈던 것과 흡사하다.

매우 위험하고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힘.

그 힘을 생각하면 당장 엘리사를 리하르트의 곁에서 떼어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엘리사가 곁에 있기에 ‘그 힘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엘리사가 절대 공작 각하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을 테지.’

에이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엘리사와 리하르트가 진리의 탑에서 해답을 찾아내기를 바랄 수밖에.

그가 근심에 잠겨 있던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성하!”

에이든은 신관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를 듣고 곧장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크, 큰일 났습니다. 신전 옆 산에 산불이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다급한 소식에 에이든의 미간이 설핏 일그러졌다.

산과 밀접한 곳에 있는 빈민가도 있다. 산불이 커지면 그곳에 사는 이들도 피해를 입을 터였다.

“가죠.”

“그, 그리고……….”

곧장 방을 나서는 에이든을 신관의 떨리는 목소리가 붙잡아 세웠다.

“땔감을 구하러 갔던 아이들이 조금 전에 돌아왔는데, 리온이 웬 기사들에게 쫓기고 있답니다. 기사들을 피해서 산으로 도망쳤으니 찾으러 가야 한다고……….”

그 소식에 에이든의 눈빛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땔감을 구하러 갔던 아이들.

리온을 쫓는 기사들.

그리고 갑작스러운 산불.

서로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 사건들이었다.

*

산속은 빠르게 해가 저물어 금세어둑어둑해졌다.

“꼬마야, 우리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겁먹지 말고 어서 나와. 엉?”

“지금은 착한 아저씨지만 계속 숨어 있으면 나쁜 아저씨가 되는 수가 있다.”

로제의 기사들은 계속되는 수색에도 리온을 찾지 못하자, 짜증 섞인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 이 쥐방울만 한 게. 꽁꽁 잘도 숨었네.”

그들이 서 있는 곳 아래, 큰 나무의 뿌리 아래에는 리온이 숨을 죽인 채 숨어 있었다.

춥고 무서워……….

리온은 공포와 추위에 덜덜 떨며 작은 몸을 옹송그렸다.

그때, 발목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커다란 거미였다.

“흡!”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려던 리온은 재빨리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저 아저씨들이 들었을까………?’

극도의 공포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리온은 기사들이 제발 제 비명을 듣지 못했길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리온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던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 있었네?”

리온은 다가오는 그들을 피해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러나 등 뒤는 나무뿌리가 단단히 막고 있었다.

“숨바꼭질은 이제 끝났다, 꼬마야.

전하께서 기다리시니 어서 가자.”

기사들은 리온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리온의 팔을 잡는 그 순간.

그들의 발밑에서 거센 불꽃이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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