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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37화 (137/164)

137화

16. 운명

어느덧 겨울잠에 들었던 생명들이 깨어나고, 또 다른 새 생명들이 움트기 시작하는 3월이 되었다.

엘리사와 리하르트는 남서쪽에 위치한 신목의 숲으로 향했다.

신목의 숲은 마차를 타고 일주일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하네스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일원이 하나 추가되었다.

“리온, 네 차례야.”

엘리사가 리온에게 알렸다.

리온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두 개의 카드를 소중히 거머쥐고 살폈다.

맞은편의 리하르트에게 카드를 보여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장시간, 좁은 마차에서 넘치는 시간을 때울 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엘리사와 리하르트는 리온에게 카드 게임을 알려 주었고, 그 덕에 아이는 카드 게임에 재미를 붙인 상태였다.

리온은 테이블에 놓인 하트 3 카드를 노려보다가, 다시 제 손에 든 두 장의 카드를 살폈다.

스페이드 A와 스페이드 3.

리온은 스페이드 3 카드를 긴가민가한 눈으로 바라보다, 슬쩍 들며 엘리사를 쳐다보았다.

확인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엘리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온은 스페이드 3 카드를 하트 3카드 위에 얹으며 신나서 소리쳤다.

“나 카드 한 장 남아파!”

리온은 의기양양한 눈으로 맞은편의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리하르트 역시 카드 두 장을 쥐고 있었지만, 문양만 바뀌지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이제 스페이드 A 카드만 내면 리온의 승리였다.

하지만 리하르트가 무심한 표정으로 내민 카드는 다름 아닌, 조커였다.

“어?”

멍하니 조커를 바라보던 리온이 엘리사를 쳐다보았으나, 조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리하르트는 리온이 가져가야 할 카드 5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남은 카드 한 장을 쌓인 카드들 위에 내려놓았다.

“끝.”

리온의 첫 번째 패배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리온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마차 안에 리온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퍼졌다.

리온의 감정에 동조라도 한 건지, 우는 리온을 빤히 바라보던 하네스도 덩달아 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흐에엥!”

졸지에 두 아이를 울려 버린 리하르트는 황당한 눈으로 리온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계속 져 주니까 재미없다며…?”

하네스를 달랜 엘리사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리온을 토닥였다.

“아까는 아저씨가 져 줘서 싫다며?”

“시러……”

“아저씨가 이기는 것도 싫고?”

“리온이가 이기고 시퍼!”

“네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싶은 거구나?”

리온은 ‘정정당당’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엘리사라면 제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줄 거라 믿었으니까.

엘리사는 리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하지만, 리온. 그건 리온이 아직 어려서 힘들어.”

“왜?”

“아저씨는 저만큼 자랄 때까지 카드 게임을 백 번도 넘게 했거든. 리온은 아직 백 번도 못 했으니까 아저씨보다 못하는 게 당연한 거야.”

“우웅…….”

“리온도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계속 연습하다 보면 아저씨도 이기게 될걸?”

“백 번 연습하면?”

엘리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리온은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을 그치고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우리 또 하자, 아조씨!”

리온이 다시 카드를 집어 든 그 순간,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곧이어 마차 밖에서 톰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몬스터들이 출몰했습니다.”

그 소식에 리하르트와 엘리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목의 숲으로 출발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

“조심해.”

엘리사는 마차를 나서는 리하르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일이고 그가 다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으나,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엘리사는 하네스와 리온을 감싸 안았다.

이윽고 마차 밖에서 몬스터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엘리사와 리하르트 일행은 해 질녘, 벨테인 후작가의 별장에 도착했다.

마침 별장에 있던 올리비아와 리제가 그들의 방문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올리비아는 대뜸 하네스부터 받아 안았다.

“어머나, 하네스, 몇 달 새 훌쩍컸구나. 소공작님답게 아주 의젓해졌어.”

“우웅.”

하네스는 올리비아에게 인사를 하듯 옹알거렸다.

올리비아는 엘리사의 출산 전 약속대로 엘리사가 출산하고 한 달 정도 공작저에 머무르다 돌아갔었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엘리사는 커다란 눈으로 멀뚱멀뚱올리비아를 쳐다보는 하네스를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요즘 부쩍 낯을 가리던데, 부인을 보고 울지 않는 걸 보니 얼굴을 기억하고 있나 봐요.”

“아이구, 그랬어? 아이, 예뻐라.”

“꺄히.”

하네스와 인사를 나누던 올리비아는 엘리사의 옆에 서 있는 리온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리온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냐하세요.”

“안녕, 아가. 넌 성하께서 데리고 있던 방계의 아이가 아니니?”

“아, 그게…… 당분간 일이 있어서 제가 데리고 있게 되었어요.”

엘리사는 적당히 둘러댔다.

리온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리하르트와 엘리사, 에이든을 제외하곤 비밀에 부치기로 합의된 것이었다.

그것은 리온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만에 하나 이번 일이 황제의 귀에 들어갈 경우에 상대를 보호하기 위함이 더욱 컸다.

올리비아는 엘리사와 리하르트를 별장 안으로 안내했다.

벨테인 후작가답게 별장치고는 그 규모가 제법 컸다.

“다들 먼 길 오느라 피곤했겠구나.

저녁 식사 준비를 늦게 시작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씻고 쉬다가 천천히 내려오렴.”

올리비아는 ‘천천히’에 악센트를 주어 말하며 장난기 어린 윙크를 했다.

엘리사는 그 의미를 몰라 의아해하다, 방으로 안내하는 하녀를 따랐다.

부부가 쓸 침실은 별장 3층, 복도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욕실은 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방 앞까지 안내를 마친 하녀는 조용히 물러갔다.

방으로 들어온 엘리사는 제일 먼저 리하르트의 검은 기운부터 정화하고자 했다.

“리하르트, 정화부터 하자.”

리하르트는 엘리사의 말대로 겉옷부터 벗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겉옷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무언가가 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옷 안주머니에 든 무언가 단단한 것이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엘리사는 그 소리에 의문을 품었으나, 곧이어 드러난 그의 상체에 시선을 빼앗겨 금세 잊어버렸다.

탄탄하고 넓은 흉근과 그 아래의 선명한 복근.

언제 보아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몸이었다.

“……엘리사?”

리하르트가 얼어 있는 엘리사를 의아하게 쳐다보자, 엘리사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이럴 때가 아니라!’

엘리사는 리하르트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의 등에 손을 얹는 엘리사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두워져 있었다.

리온의 사건 이후, 밤마다 리하르트의 기운을 정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화의 능력은 에이든의 말대로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을 정화시킬 뿐, 그의 근원적인 힘까지 정화시키진 못했다.

즉, 정화를 해도 몬스터들을 미쳐 날뛰게 하는 그의 힘까지는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건 정화뿐이라 매일 그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시작할게.”

엘리사는 눈을 감고 리하르트의 등에 얹은 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정화의 힘을 사용하자,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씻겨 사라지며 그의 안에 자리 잡은 힘의 원형이 보였다.

그 순간, 검은 기운의 가운데에 희미한 빛이 보였다.

‘저게 뭐지………?’

유심히 살펴보자, 빛보다는 가느다란 틈같이 보였다.

마치 검은 힘에 균열이라도 생긴 것처럼.

“엘리사, 괜찮아?”

엘리사가 한참 그대로 가만히 있자, 혹여나 제 힘이 그녀를 다치게 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된 리하르트가 다급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바람에 그의 힘을 살피던 엘리 사의 집중력이 깨지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왜 그래?”

“네 힘에 뭔가 틈 같은 게 보인 거 같아서….”

“틈?”

“응. 뭔진 모르겠지만……. 돌아가면 아버지께 여쭤봐야겠어.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대답한 엘리사는 문득 그의 벗은 상체를 보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그에게 먼저 물었다.

“음, 먼저 씻을래………?”

그러자 리하르트의 한쪽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엘리사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왜?”

“어? 그야, 욕실이 하나뿐이니까 너 먼저…….”

“그러니까, 그게 왜?”

리하르트는 엘리사를 가볍게 안아들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나 직이 덧붙였다.

“같이 씻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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