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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39화 (139/164)

139화

하이델 마을은 규모는 여느 산골마을처럼 아담했으나 그 어떤 마을 보다 활기찼다.

조금 전, 촌장을 데리고 온 소녀는 활을 겨누었던 아이들을 데려와 엘리사와 리하르트의 앞에 세웠다.

그리고 아이들의 등을 한 번씩 툭툭 쳤다.

아이들은 우물쭈물 리하르트와 엘리사의 눈치를 살피다,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목소리 크게, 고개도 숙이고.”

소녀의 불호령에 아이들은 엉거주춤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은 소녀가 그만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후다닥 사라졌다.

마을 촌장은 아이들을 대신해 한번 더 허리를 숙여 공손히 사과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사리 분별을 못 합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아니에요. 무장한 기사들을 대동하고 있었으니 아이들이 겁먹을 만도 하죠.”

엘리사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마을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마을 한편에 위치한 수련장에서 활을 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수련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아이들을 구경하며 걷는 사이, 어느덧 촌장의 집에 도착했다.

촌장의 집은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촌장은 다른 이에게 기사들과 사용 인들을 머무를 곳을 안내하도록 한 뒤, 엘리사와 리하르트를 마주했다.

그녀는 엘리사의 찻잔을 채워 주며 운을 뗐다.

“율리아 님은 저희 마을의 은인이십니다.”

“…….”

“지천에 널려 있는 약초를 쓸 줄 몰라 독초로 취급하던 저희들에게 율리아 님께서 약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지요. 그 덕에 살게 된 아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

“그때 목숨을 건진 아이들이 살아남아 저 아이들을 낳았지요.”

촌장은 그렇게 말하며 바깥에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엘리사는 그 아이들을 보며 또 한번 모친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에이든의 말에 의하면, 율리아는 임신한 몸으로 이 마을에 몸을 숨기고 살았다고 했다.

그 짧은 기간,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한 마을의 미래를 바꾸는 큰일을 셈이었다.

그녀는 비록 죽었으나, 그녀가 남긴 흔적들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여서 새삼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저희들에게 바깥의 문화도 알려 주셨습니다. 덕분에 그때부터 외부와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지요.”

“…….”

“율리아 님의 따님이시라면 마찬가지로 저희들의 은인입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은 부족하나마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저도 어머니 덕분에 이렇게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되었네요.”

엘리사는 차로 목을 축이고 운을 뗐다.

“혹시 신목의 현자를 알고 계시나요?”

“신목의 현자라면… 신목과 하나가 되었다는 라르딘 에스더 님을 말씀하시는지요?”

“네, 맞아요. 혹시 그분을 실제로 만난 사람이 있나요?”

엘리사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노파를 바라보았으나, 노파는 고개를 내저었다.

“바라시던 답이 아니라 송구하지만, 그분을 실제로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 실제로 만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기록에 남겨진 것은 없군요.”

“그렇군요…….”

“하지만 먼 고대에, 라르딘 님이 신목과 하나가 되기 이전의 지도가 남아 있습니다.”

“지도요?”

“예. 그 지도에 신목의 위치가 남아 있습니다. 그 지도를 복원한 것이 있으니, 빌려 드리겠습니다.”

촌장의 말에 엘리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도가 있다면, 무작정 온 숲을 뒤 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촌장은 손녀를 시켜 가져오게 한 고대의 지도 복원품을 내밀었다.

“이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편해지겠어요.”

그녀로부터 지도를 받은 엘리사는 숲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그런 엘리 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리하르트가 엘리사를 말렸다.

“숲은 금방 어두워지니,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가자.”

벨테인 후작가의 별장을 떠나온 이틀 동안 길가의 막사에서 잔 탓인지, 뒤늦게 피로가 몰려왔다.

엘리사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

다음 날 아침, 체력을 회복한 엘리 사와 리하르트는 해가 뜨기 무섭게 신목의 숲 안쪽으로 향했다.

기사들에겐 그들의 호위 대신 하네 스와 리온의 곁을 지키도록 했다.

활동하기 편한 바지로 갈아입은 엘리사는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오늘 오랜만에 운동 좀 하겠네.”

다른 곳이라면 리하르트의 비행 마법으로 날아갈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울창한 숲이라 위에선 나뭇잎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상공에서 지도를 확인하며 길을 찾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두 사람은 별수 없이 두 발로 걸어 숲으로 들어섰다.

두 손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그의 큰 손을 잡은 채 나무뿌리 위를 위태롭게 걷던 엘리사가 문득 생각난 듯 이야기를 꺼냈다.

“있잖아, 리하르트.”

“응.”

“우리도 나이가 들면 벨테인 후작부부 같은 부부가 될까?”

리하르트는 웃으며 말하는 엘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나무에서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아니, 예시가 그렇단 거지! 누가 진짜 나무에서 떨어지랬어?”

김새는 그의 대답에 토라진 엘리사가 입술을 삐죽이며 그의 손을 뿌리치고 나무뿌리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런 엘리사를 리하르트가 다시 받아 제 품에 안으며 대답했다.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혼자 둘 일은 만들지 않을 거니까.”

그의 돌직구 대답이 훅 치고 들어왔다.

엘리사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듯 진득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 괜스레 부끄러워져 시선을 피했다.

“이, 이미 한발 늦었어.”

리하르트는 그런 엘리사의 입술에쪽 입을 맞췄다.

가볍지만 애정 어린 입맞춤이 반복되자, 엘리사가 졌다는 듯 까르르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도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가볍던 입맞춤은 두 입술이 맞붙는 순간, 짙어졌다 다시 옅어지길 반복했다.

도란도란 장난을 치며 걷던 두 사람은 해가 하늘 정중앙에 뜰 무렵 신목의 숲 정중앙에 도착했다.

“지도상으론 여기 같은데……”

엘리사는 마을 촌장이 준 지도를 살펴보다, 고개를 들어 이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목이 있다고 전해지는 그 장소엔 신목은커녕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주위의 울창한 숲 가운데, 아침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공터만 있을 뿐이었다.

“확인해 볼게.”

리하르트는 지도를 가지고 날아올라 주위를 살핀 후, 다시 내려왔다.

“위에서 봐도 이쯤이 지도와 맞는거 같아.”

그의 말에, 잔디만 무성한 눈앞의 공터를 바라보던 엘리사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건만, 그 지푸라기마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자 마음이 막막해졌다.

리하르트는 그런 엘리사의 마음을 눈치채고 다독였다.

“지도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

주변을 좀 더 둘러보자.”

엘리사는 그렇게 말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장 초조할 사람은 그일 텐데, 그는 오히려 제 마음을 먼저 도닥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니 다시 마음이 굳어졌다.

이 다정한 남자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신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포기 못 해.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엘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는 리하르트의 뒤를 따랐다.

그때, 문득 조금 전 보았던 공터의 풍경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엘리사는 다시 볕이 내리쬐는 공터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들어.”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분명 신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공터뿐인데도.

‘만약 신목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리고 라르딘 에스더가 정말 신목과 하나가 되었다면……….

그는 고대의 서처럼 신목도 숨겨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대의 서를 불러냈을 때처럼 해보자.’

거기까지 생각한 엘리사가 정신을 집중해 물의 힘을 사용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웃..…!”

엘리사가 힘을 사용하기도 전에, 공터에 내리쬐던 볕이 강렬해지더니 이윽고 엘리사를 덮쳤다.

한발 늦게 이상함을 눈치챈 리하르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땐, 엘리사가 이미 빛에 삼켜진 뒤였다.

그 광경을 본 리하르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엘리사!”

리하르트는 빛 속으로 사라지는 엘리사를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빛이 사라진 자리에 공터만이 남겨져 있었다.

*

‘눈부셔….’

엘리사는 저를 감싸는 눈부신 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빛이 옅어지고 나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고개를 든 엘리사는 눈앞의 거대한 나무를 보고 말을 잃었다.

사람이 족히 서른 명은 둘러서야 겨우 감쌀 수 있을 듯한 넓이와 성인 남자의 키 수십 배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거대한 나무였다.

그 거대함은 단순히 크다는 감상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

‘혹시, 이 나무가 신목인가……?’

신목을 발견한 엘리사는 리하르트를 찾으려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의 뒤에 녹음이 우거진 숲뿐이었다.

주위에 평화로운 새 울음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득했으나, 엘리 사는 단박에 알아챘다.

‘주변에 강한 마나가 느껴져.’

이질적인 이 공간은 지금 느껴지는 낯설고도 강력한 마나가 만들어 낸 아공간이라는 것을.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 마나……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어.’

두렵다는 생각보단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에 놀란 엘리사가 돌아보자, 눈부신 은발과 녹음을 닮은 연둣빛 눈을 가진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낯선 듯,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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