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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49화 (149/164)

149화

*

다음 날, 엘리사는 신전을 방문했다.

리온, 하네스도 함께.

마침 정오 기도를 마친 에이든은 엘리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

간만에 에이든을 만난 리온은 만면에 반색을 띠며 달려갔다.

“성하!”

에이든 역시 반가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리온을 안아 주었다.

“잘 지냈니, 리온?”

“응! 보고 시퍼써요.”

“나도 보고 싶었단다.”

리온은 저를 다정히 안아 주는 에이든의 품에 안겨 히죽 웃었다.

에이든은 산불 사건 때와는 딴판으로 밝아진 리온의 모습에 기뻐하며 리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뛰어가는 리온보다 한발 늦게 엘리 사가 다가왔다.

“아버지.”

“왔구나, 엘리사.”

하네스는 에이든을 바라보며 히죽웃는 리온을 빤히 바라보다가, 에이 든에게로 고사리손을 뻗었다.

“으떼떼떼떼!’ 그 모습이 꼭 에이든을 반가워하는 리온을 따라 하는 듯했다.

아이의 옹알이를 들은 에이든은 웃음을 터트리며 하네스를 안아 들었다.

“어이쿠, 하네스도 잘 다녀왔니?”

엘리사는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에이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셨어요? 별일은 없었죠?”

“그래. 다들 신목의 숲에 잘 다녀온 모양이구나.”

“네. 걱정해 주신 덕분에요.”

엘리사가 무사함을 확인한 에이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부드럽지만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지던 미소와는 달랐다.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에이든은 엘리사와 하네스, 리온을 데리고 별관으로 들어왔다.

리온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벽난로로 다가가 불을 지폈다.

그 모습이 이젠 아주 능숙해 보였다.

그런 리온을 본 에이든이 리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리온.”

“히히. 연습 마니 해써요.”

리온은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엘리사는 리온이 가져온 동물 모양목각 장난감을 카펫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리온. 성하랑 누나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잠시만 혼자서 놀고 있어.

그래 줄 수 있지?”

“웅. 리온이 혼자 잘 놀아.”

리온은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놀기 시작했다.

엘리사는 하네스를 안고 에이든과 마주 앉았다.

에이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해결책은 찾았니?”

그의 물음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엘리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신목의 숲에서 - “

“음마. 음마.”

엘리사가 말하려던 그때, 엘리사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하네스가 손을 흔들며 엘리사를 불렀다.

엘리사는 아이의 조그마한 손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얼렀다.

“응, 하네스, 엄마 할아버지랑 이야기 좀 할게.”

하지만 엘리사가 다시 에이든에게 말하려는 순간, 하네스가 또다시 옹알이를 했다.

“으부부부. 따이!”

그런 하네스의 모습에 표정이 어둡던 엘리사도, 에이든도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부쩍 옹알이가 늘었어요. 제가 말하면 자기도 꼭 따라서 말하려고 하고요.”

“음마.”

“엄마라고 부르면 제가 돌아보는 걸 아는 것 같아요. 그치, 하네스?”

엘리사는 하네스의 손을 쥐며 다정하게 물었다.

엄마의 관심이 제게 향하는 것이 좋은지 하네스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든은 그런 하네스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그리 좋으니, 아가.”

“우웅.”

하네스가 자꾸 대화에 끼어들자, 엘리사는 리온에게서 장난감 하나를 빌려와 하네스에게 쥐여 주었다.

장난감에 관심이 쏠린 하네스는 금세 조용해졌다.

엘리사는 그제야 말을 꺼냈다.

“신목의 숲에서 라르딘 에스더, 그 사람을 만났어요.”

전설 속 영웅의 이름에, 에이든의 눈이 놀라 커졌다.

“그 사람이 정말로 실존하다니 …. 그래서, 방법은 찾았니?”

“아니요. 그분도 그저 리하르트의 힘을 정화해야 한다고만 하셨어요.”

불안해하는 엘리사를 바라보는 에이든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리하르트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요. 그 영향력의 반경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게 그 증거고요.”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구나.”

“리하르트는…… 아예 영혼을 건드려서 희석을 하자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요.”

“그렇지….”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에이든이 엘리사에게 물었다.

“각하와 함께 지내면서 발견한 특이점은 없었니? 혹시 그 특이점에서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특이점….”

곰곰이 기억을 되짚던 엘리사는 벨테인 후작가의 별장에서 보았던 ‘틈’을 떠올렸다.

“영혼에 틈 같은 게 있었어요. 보인 게 그때 한 번뿐이라,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틈?”

“따이!”

그때, 하네스가 쭙쭙 빨고 있던 목재 장난감을 냅다 패대기쳤다.

그 소리에 놀란 엘리사와 에이든은 물론, 놀고 있던 리온의 시선까지 하네스와 장난감에게로 향했다.

장난감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어머나. 리온, 아가가 장난감을 부심서 미안해. 누나가 다시…….”

엘리사는 부서진 장난감을 황급히 주워 들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개 모양 목각 인형의 안쪽이 뚫려있었다. 그리고 그 안은 그보다 작은 새끼 강아지 모양의 목각 인형이끼워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부서진 게 아니라…… 원래 두 개로 나눠진 장난감이었어.’

새로 산 장난감이라 너무 단단히 붙어 있어 하나로 보였을 뿐, 원래는 두 개로 만들어진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순간, 엘리사의 머릿속에 라르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영혼이 완전히 융합되지 않은 상태라 버티고 있지만, 곧 이 지를 잃고 살육을 탐하는 마왕이 될 거다.

융합이라는 건,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하나로 섞여 합쳐진다는 뜻.

즉, 리하르트의 영혼이 최소 두 가지로 이뤄져 있다는 뜻이었다.

“리하르트는 협곡에 다녀온 이후부터 그 힘을 사용하게 됐다고 했어.”

만약 그때, 무언가가 리하르트의 영혼에 깃들어 어떤 작용을 한 것이라면.

‘리하르트의 영혼을 정화하지 않더라도 그때 영혼에 깃든 것을 분리해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짙은 어둠 속 언뜻 보인 빛.

그건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 가설이 맞다면, 리하르트를 구할 수 있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에 잠긴 엘리사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에이든이 엘리사를 불렀다.

“엘리사? 왜 그러니?”

“한 가지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한 엘리사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최근 들어 부쩍 가까워진 아스트리 드 후작과 오찬을 마친 황제는 그와 잠깐 산책을 한 후, 오수에 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 후, 어느덧 해가 중천에서 기울기 시작하는 세 시가 되었다.

황제가 깨우라고 했던 시간이었다.

15분 전부터 황제의 침실 앞에서 대기하던 시종장은 세 시가 되자마자 노크를 했다.

“폐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하지만 방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종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황제는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음만 들려도 금방 잠에서 깨곤 했다.

특히나 한밤중이 아니라 낮잠에 들었을 때는 더욱더.

“폐하.”

두어 차례 더 노크를 하던 시종장은 황제가 대답이 없자, 조용히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황제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폐하, 이만 기침하셔야 합니다. 오후 일정이….”

조심스럽게 황제의 팔을 흔들어 깨우던 시종장은 멈칫했다.

평소 같으면 이미 깨고도 남았을 사람이, 몸에 손을 대도록 꿈쩍도 않는 것이 이상했다.

게다가….

‘숨소리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시종장은 떨리는 손을 황제의 코에 가져다 댔다.

산 사람이라면 으레 느껴져야 할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시종장의 눈빛이 거세게 동요했다.

그는 다급히 옆에 있던 설렁줄을 당겼다.

“황궁의, 황궁의를 불러와라!”

*

그 시각, 크리스티안은 측근들과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었다.

블랙잭.

카드를 나눠 받아 카드에 적힌 숫자의 합을 21에 최대한 가깝게 모으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이번엔 크리스티안이 카드를 받을 차례였다.

딜러가 크리스티안에게 물었다.

“카드를 받으시겠습니까, 전하?”

크리스티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수중에 있는 카드는 4와 5.

무엇을 받든 받는 것이 그에겐 이득이었다.

딜러는 크리스티안에게 카드 한 장을 건넸다.

크리스티안은 와인을 홀짝이며 제게 들어온 카드를 들췄다.

A.

1로도, 11로도 활용할 수 있는 에이스 카드였다.

11로 사용하면 크리스티안의 카드숫자의 합은 총 20으로, 크리스티안이 승리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내 승리군.’

자신의 승리를 예감한 크리스티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실룩였으나, 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때, 문이 예고도 없이 벌컥 열리고 시종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저, 전하!”

승리를 앞둔 순간, 예의를 갖추지 않은 시종의 등장에 크리스티안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노크도 없이 들어오다니, 네놈은 예의를 콧구멍으로 배웠나?”

“그, 그것이 아니옵고……….”

다급한 숨을 고른 시종은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은 크리스티안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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