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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50화 (150/164)

150화

*

제도 외곽, 숲 근처.

“옵니다!”

검은 힘에 현혹된 몬스터 수십 마리가 루벨린의 기사들과 리하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리하르트는 왼쪽을, 기사들은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아섰다.

리하르트는 제게로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뇌운을 형성했다.

손바닥만 하던 뇌운은 점점 크기를 키우며 더욱더 검어졌다.

그리고 몬스터가 리하르트를 향해 마지막 도약을 한 순간.

파지직!

뇌운에서 뻗어 나온 번개가 몬스터를 관통했다.

“키에엑!”

뒤이어 달려들던 몬스터들 역시 차례로 번개에 관통당해 꿈틀거리다 쓰러졌다.

그 순간, 리하르트의 등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거리더니 엘리사의 펜던 트에 미약한 금을 그었다.

그것을 느낀 리하르트의 미간이 설핏 찌푸려졌다.

‘루벨린의 힘을 쓸수록 이 힘도 세지는 건가?’

리하르트는 눈앞에 죽어 있는 몬스터의 사체를 보고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니면…… 생명을 앗아가는 힘이니 살생을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건가.’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더 이상 살생을 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몬스터들이 날뛰는데 죽여선 안 된다니.

진퇴양난의 형국이었다.

‘엘리사를 설득해서 영혼을 희석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서둘러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리하르트는 착잡한 마음으로 돌아 섰다.

마침 기사들도 몬스터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였다.

리하르트는 톰슨에게 말했다.

“다른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가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여긴 저희가 처리할테니 먼저 들어가세요.”

톰슨은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리하르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일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도.

그래도 측근인 제게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은 좀 아쉬웠지만, 리하르트를 이해했다.

‘뭐, 남자라면 혼자 짊어지는 고민하나쯤 있을 수도 있는 거지.’

톰슨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묵묵히 주군의 옆을 지키기로 했다.

그는 날아서 공작저로 돌아가려는 리하르트를 배웅했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다.

한둘이 아닌, 최소 수십은 될 듯한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멈춰라! 황명이다!”

리하르트와 기사들은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황실 기사단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 그리고 그 중심에 크리스티안이 있었다.

그들은 다가와 리하르트와 루벨린의 기사들을 에워쌌다.

리하르트와 톰슨은 물론, 전장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루벨린의 기사들 모두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리하르트는 그들의 앞으로 나서서 크리스티안을 마주했다.

“전하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크리스티안은 살기 어린 눈으로 리하르트를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크리스티안의 옆에 선 기사단장이 답했다.

“반역자 리하르트 루벨린을 황궁으로 압송하겠다. 죄인은 황명을 받들라.”

리하르트가 무어라 물을 틈도 없이, 말에서 내린 크리스티안이 성큼 다가와 다짜고짜 리하르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네놈 짓이지?”

리하르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크리스티안의 손을 떼어 냈다.

“다짜고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뭐가 제 짓입니까?”

“네가 아버지를 죽였잖아.”

그에 리하르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황제가 죽었다고?’

그 순간, 크리스티안의 옆에 서 있는 레이모어가 보였다.

이 사건을 벌였을 이를 본 리하르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아버지 다음엔 나도 죽일 생각인가?”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이미 저를 범인으로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네 뜻대로는 안 될 거야.

그 전에 내가 네놈을 죽일 생각이거든.”

리하르트를 노려보는 크리스티안의 눈에 증오와 분노, 슬픔과 혐오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살기 어린 시선을 리하르트에게서 떼지 않은 채로 기사단장에게 명령했다.

“기사단장. 반역자 리하르트 루벨린을 감옥으로 압송해라.”

“지엄하신 명을 받듭니다.”

기사단장은 적대감이 역력한 눈으로 리하르트에게 다가서며 검을 꺼냈다.

그리고 손바닥을 들어 뒤에 버티고선 기사들에게 수신호를 내렸다.

그 의미를 알아챈 궁병들은 리하르트와 루벨린의 기사들을 향해 일제히 활을 겨누었다.

“지엄하신 황태자 전하의 명을 받들어 반역자 리하르트 루벨린에게 황제 폐하를 독살한 죄를 묻겠다.”

“이에 불복하여 무력을 사용할 시그 죄가 더 가중되어 죄인의 가족들의 형량도 더해짐을 알고 복종하라.”

검을 뽑아 든 황궁의 기사들이 루벨린의 기사들에게로 다가서며 포위를 좁혀 왔다.

루벨린의 기사들은 다가오는 황궁의 기사들을 경계하며 리하르트를 쳐다보았다.

주군이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곧장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마물이든, 이 제국의 황실이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만큼이나 긴장감이 팽팽해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리하르트였다.

“증거가 있습니까?”

그와 동시에 루벨린의 기사들과 황궁의 기사들 사이에 일어난 바람이 두 진영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마치 바람이 루벨린의 기사들을 보호하듯이.

루벨린의 기사들은 놀란 눈으로 바람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리하르트는 살벌한 분위기에도 눈하나 깜짝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 폐하의 승하는 몹시 침통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객관적인 정황이나 증거도 없이 단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내 사람들을 건드린다면 복종할 수 없습니다.”

증거 없이 루벨린을 건드리면 내전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의미였다.

그에 분개한 크리스티안이 언성을 높이려던 그때,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던 레이모어가 나섰다.

“공작 각하의 태생, 정치적인 입장.

그 모든 것이 이번 일의 동기로 충분하지요.”

“후작의 생각과 달리, 난 고작 그런 일에 내 시간을 쓸 마음이 없는데.”

증거라기엔 터무니없는 말에 리하르트가 싸늘히 응수했으나, 레이모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아카로아에 루벨린의 기사들을 불러들이셨더군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몬스터의 습격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함이다. 황궁의 병력을 풀어 치안을 강화하면 그들을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으나, 황궁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

“기사들을 부른 이유가 단지 그뿐인지는 알 도리가 없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잠시 뜸을 들이던 레이모어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 각하의 집에 들인 아이가 있지요. 그 아이가 황손이라고 들었습니다만.”

“……..”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독살하고 그 아이를 황위에 올려 휘두르기 위함이 아닙니까?”

예상치 못한 리온에 대한 언급에, 리하르트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엘리사는 로제가 리온을 비롯한 크리스티안의 사생아를 죽이려 했던 증거를 가지고 있다.

레이모어는 크리스티안의 앞에서 리온의 존재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제 딸을 버린 것이다.

리하르트는 일순 동요했던 감정을 감추고 냉소적으로 답했다.

“후작의 소설에 초를 쳐서 미안하지만, 그 아이는 세리어트의 방계 아이다.”

“그 말이 진짠지는, 친자 검사를 해 보면 알게 되겠군요.”

“번거로워지지 않도록 공작저에 미리 사람을 보냈습니다. 결과를 기다려 보지요.”

루벨린에서 리온을 빼돌릴 수 없도록 이미 손을 써 둔 레이모어의 입꼬리가 흡족하게 올라갔다.

리하르트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그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신전에서 돌아오는 마차가 공작저로 들어섰다.

엘리사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정말 영혼이 둘이고, 나눌 수 있다면….’

이 희망을 어서 빨리 리하르트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때, 마차가 멈추고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엘리사는 마차 문을 열고 내렸다.

“무슨 일이죠?”

마차 밖에 황궁의 기사 제복을 입은 남자들 십수 명이 루벨린의 기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중에 황궁의 부기사단장과 시종장도 있었다.

루벨린의 기사 하나가 엘리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님, 이자들이 방금 마님이 타고 계신 마차에 뒤이어 무단으로 침입했습니다.”

그에 엘리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엘리사는 황궁의 기사들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리 황궁의 기사들이라 해도 공작저에 무단으로 침입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군요.”

“반역자 엘리사 세리어트. 감히 황손을 은폐하고 빼돌린 죄로 황궁에 압송하라는 명을 받았다.”

부기사단장의 말에 엘리사는 물론, 루벨린의 사용인들과 기사들 모두 놀랐다.

엘리사는 애써 놀란 기색을 숨기며 태연하게 물었다.

“황손을 은폐하다니요?”

그때였다.

마차에 잠들어 있던 리온이 소란을 듣고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왔다.

“누나?”

황궁의 기사들을 포함한 공작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리온에게로 향했다.

부기사단장이 엘리사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황손 저하인가?”

“이 아이는 세리어트 가문의 방계 아이예요. 사정이 있어 잠시 데리고 있는 것뿐이고요.”

하지만 부기사단장은 막무가내였다.

“진실은 친자 검사를 진행해 보면 알게 되겠지.”

황궁의 기사들은 리온 주위에 있던 루벨린의 기사 하나를 재빠르게 제압한 후, 리온을 붙잡았다.

그 모습을 본 엘리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리온!”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리온이 본능적으로 힘을 사용하려는 그 순간.

고개를 필사적으로 내젓는 엘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리온은 잠자코 엘리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들은 리온의 가발을 알고 있었던 듯, 가발을 들추고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았다.

부기사단장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검사 시작해.”

황궁의 기사들은 미리 받아온 크리스티안의 머리카락과 리온의 머리카락을 쟁반 위에 놓고 시약을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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