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
그 시각, 아카로아 외곽의 빈민가.
“꺄악!”
난데없는 몬스터들의 침공에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어린 남매는 창밖의 소란을 보고 집 안으로 숨었다.
“누나, 무서워…….”
“집에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소리내면 안 되니까 울지 마.”
“응….”
누나는 어린 동생을 품에 안고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몬스터는 약한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사색이 되어 늑대형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크르륵!”
몬스터는 침을 흘리며 아이들을 찢어 삼킬 듯 다가왔다.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몬스터가 아이들을 향해 입을 벌린 그 순간이었다.
부서진 문으로 들어온 성기사단이 몬스터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기사들은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다급히 품에 안아 들었다.
“이곳은 위험하다, 얘들아. 같이 신전으로 가자.”
기사들은 아이들을 안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밖에 이미 비행형 몬스터는 물론, 지상형 몬스터들까지 즐비했다.
빈민촌은 아카로아의 외곽에 있기에, 지상형 몬스터들이 이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이다.
기사들이 맞서 싸우고 있음에도 몰려드는 몬스터들 전부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젠장, 이 괴물 같은 것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구만! 사람들의 안전이 먼저다. 모두 신전까지 전력 질주해라!”
성기사들은 상관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데리고 신전으로 향했다.
그때, 인파에 밀려 허둥지둥 달리던 여자가 넘어졌다.
몬스터들이 어느덧 여자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순간, 신성력의 장벽이 빈민촌을 감싸며 여자에게 다가오던 몬스터들을 밀어냈다.
에이든이 정화의 샘을 작동한 것이다.
신성력의 장벽은 부딪치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버텨 낼 정도로 견고했다.
“성하께서 우리를 구하셨어!”
신전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신성력의 장벽을 보며 안도했으나, 그들을 지켜보는 성기사단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에이든을 만나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섰다.
에이든은 신전의 중앙에 있는 정화의 샘에서 샘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안심하고 있었지만, 자그마치 20년간 에이든을 섬겨온 성기사단장은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넓은 반경에, 견고한 신성력의 장벽을 유지하는 것이 에이 든의 몸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 일인지를.
특히나 저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한다면 더더욱.
그러나 에이든은 성기사들에게 몬스터들에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신성력의 장벽 뒤에서 기다리길 명했다.
하지만 에이든이 무너지면 이 안전 지대도 무너진다.
성기사단장은 굳은 표정으로 에이 든에게 다가섰다.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성하.”
“안 됩니다. 경들은 최후의 카드입니다. 제가 더 이상 이 방어막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이 사람들을 지켜 줄 유일한 사람들이지요.”
“그럼 성하께서 쓰러지실 때까지 손 놓고 가만히 있으란 말씀이십니까?”
에이든은 내심 놀란 표정으로 성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평생 에이든의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르던 성기사단장이 처음으로 제기한 이의였다.
“저희는 신과 성하를 섬기며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런 저희에게 어찌 성하의 뒤에 숨어 있으라 말씀하십니까?”
“……”
“성하와 백성들을 위해 싸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의 의견에 동조하듯, 옆에 있던 성기사단도 일제히 목소리를 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성하.”
그렇게 말하는 성기사단장과 기사단의 눈엔 죽음을 각오한 듯 굳은 결의가 어려 있었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이든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약한 자들을 위해, 그리고 그대들 자신을 위해 싸워 주시겠습니까.”
성기사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성하신 명을 받듭니다.”
*
엘리사가 황궁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하늘에서 나타난 붉은 눈의 몬스터들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 모습을 지나칠수밖에 없었다.
지금 엘리사에게 붙은 호위 기사라곤 다섯이 전부였고, 무엇보다……….
‘지금은 비행형 몬스터만 등장했지만, 곧 지상형 몬스터도 도착할 거야.’
그러니 눈앞의 상황을 수습하기보다는, 서둘러 원흉을 제거하여 곧 닥쳐올 더 큰 재앙을 막아야 했다.
엘리사가 탄 마차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뚫고 가까스로 황궁에 도착했다.
엘리사는 흔들리는 마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황궁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곳곳에서 뻗쳐 온 검은 기운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생명을 앗아 갔다.
그리고 생명을 흡수하여 더 강해진 그 힘이 죽음을 넘어 더 멀리, 황궁밖까지 뻗쳐 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건……… 리하르트가 가지고 있던 그 힘이야.’
하지만 리하르트의 영혼은 분리되었고, 분리된 반쪽짜리 영혼은 그대로 사라졌었다.
‘대체 누가 이런 힘을………?’
검은 힘이 황궁에서 발현된 시간과 리하르트가 떠났다가 다시 황궁으로 향한 시간이 거의 일치하니, 이 힘의 근원은 리하르트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리하르트가 먼저 황궁에 도착했을 텐데도 이 힘이 계속해서 더 커지고 있다는 건, 그토록 강한 그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라는 의미니까.
혹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거나.
‘서둘러 리하르트를 찾아야 해.’
엘리사가 불안함에 휩싸여 있던 그때, 가까이에서 꺼져 가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살려….”
황궁의 하녀 하나가 검은 힘에 잡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마차 멈춰요!”
서둘러 마차를 멈춘 엘리사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하여 황궁의 하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신성력을 이용하여 하녀와 검은 기운 사이에 물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러자 황궁 안쪽에서 뻗쳐 나온 사슬처럼 하녀를 옭아매고 있던 검은 기운이 끊어지며 하녀가 풀려났다.
바닥에 넘어진 하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엘리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은 위험하니, 어서 황궁 밖으로 나가요.”
하녀는 엘리사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한 후, 서둘러 황궁 밖으로 나갔다.
엘리사는 멀어지는 하녀의 모습을 지켜보다 굳은 표정으로 다시 황궁 쪽을 돌아보았다.
검은 기운에 당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엘리사가 입술을 짓씹고 있던 그때, 톰슨이 다가왔다.
“마님, 저희가 각하를 찾아보겠습니다.”
톰슨은 그대로 돌아서 리하르트를 찾아 나서려 했다.
엘리사가 그런 톰슨을 불러세웠다.
“톰슨 경,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게요.”
“예?”
“각하는 내가 찾아볼 테니, 경들은 이곳에 남아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도록 도와주세요.”
엘리사의 위험천만한 명령에, 톰슨은 질겁했다.
“절대 안 됩니다, 마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님을 지키는 것이 각하께서 내리신 명령이고, 저희의 소명입니다.”
“경들도 봤으니 짐작했겠지만, 저 힘은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흡수하는 위험한 힘이에요.
그 생명을 흡수하여 반경을 더욱 넓히고 있죠.”
“…….”
“저 힘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요.”
“내가 가진 힘으로 저 힘을 막을 순 있지만, 전투 상황이 되면 경들을 지켜 줄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저쪽의 힘만 키워 주는 꼴이 될 테고요.”
“하지만….”
“그동안 저쪽이 더 이상 양분을 얻을 수 없게, 그 누구도 저 힘에 희생되지 않게 경들이 도와줘요.”
결의 어린 엘리사의 눈빛에, 톰슨과 기사들의 눈빛이 동요했다.
기사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부기사단장인 톰슨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책임자인 톰슨의 결정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톰슨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다, 이내 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마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대신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안 그럼 각하께 저희가 죽을 테니까요.”
“집에서 엄마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는데, 그 애를 두고 내가 어딜 가겠어요?”
엘리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거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황궁 주위를 감싸는 방어막을 형성할 거예요. 이 힘이 황궁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
“경들은 그 누구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엘리사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방어막을 구축하겠다, 혼자서 해결하겠다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마음 한편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당연히 존재했다.
줄곧 세리어트의 힘을 다루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해 왔지만, 이렇게 많은 힘을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에이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한 번에 사용하면, 육신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리하르트를 찾기도 전에 엘리사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망설일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망설이는 이 순간에도, 죄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 가고 있었다.
‘해야 돼. 내가.
엘리사는 빠르게, 그러나 신중하게 황궁의 주위에 신성력의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장벽을 완성했다.
무리한 탓인지 호흡이 가빠지고 조금 어지러웠지만, 버틸 만했다.
“그럼 뒤를 부탁해요, 톰슨 경.”
엘리사는 톰슨에게 마지막 명령을 한 후, 곧장 황궁 안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