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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아이가 생겼다-163화 (163/164)

163화

곧이어 홀의 출입문이 열리고 황제의 예복을 차려입은 리온이 등장했다.

리온은 귀족들이 양쪽에 늘어선 레드카펫을 걸어 선단으로 올라갔다.

위엄이 넘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

엘리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짝 긴장한 듯한 리온은 평소와 달리 의젓하게 즉위식에 임하고 있었지만, 엘리사의 눈엔 그마저도 귀여워 보였다.

교황의 신분으로 리온의 대관식에 참석한 에이든 역시 그런 리온이 귀여운 듯, 리온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리온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다음 순서를 잊은 눈치였다.

에이든은 웃으며 귀족들 쪽으로 고갯짓을 해 보였다.

그제야 다음 순서를 기억해 낸 리온은 허둥지둥 귀족들 쪽을 돌아보았다.

귀족들은 꼬마 황제의 서툰 모습이 귀여웠지만, 황제의 위엄을 생각해 애써 웃음을 참아 주었다.

리온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나, 리온 카이로트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고요한 홀에 그 목소리가 분명히 울렸다.

긴장한 형의 모습을 멀뚱히 보고 있던 하네스가 리온을 격려하듯 옹알거렸다.

“으떼떼떼!”

미소 띤 표정으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엘리사와 리하르트, 그리고 하네스를 발견한 리온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기억해 냈다.

“아, 아렌시아의 수호자가 되어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보살피고 지킬 것을 맹세함미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하는 리온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에이 든은 왕관을 들고 리온의 앞에 섰다.

리온은 긴장한 표정으로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에이든은 빙긋 웃으며 리온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었다.

“이로써 아렌시아는 온 제국에 큰 영광을 가져다줄 현군을 얻었으니, 오래도록 폐하의 치세를 누리길 기원합니다.”

에이든은 리온을 바라보며 다시 귀족들을 향해 고갯짓을 해 보였다.

리온은 왕관을 쓰고 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런 리온을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이번 사건 때, 지나가던 행인들을 지켜 준 꼬마 황제의 활약을 알고 있는 귀족들은 모두 리온을 칭송했다.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리온의 표정에서도 서서히 긴장감이 사라졌다.

멍하니 그들을 보던 리온은 뿌듯해 하며 미소를 지었다.

“꺄우!”

하네스 역시 기분이 좋은지 침까지 흘려 가며 꺄르륵 웃었다.

그런 하네스를 안은 채 리온을 지켜보던 리하르트가 엘리사에게 말했다.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현명한 황제가 되겠어.”

“응, 그럴 거야.”

그에 엘리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현명한 꼬마황제의 즉위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

즉위식이 끝난 후, 엘리사는 리온을 먼저 황제궁으로 보냈다.

아직 어린 나이에 공식 행사를 준비하느라 피곤했을 리온을 위해서였다.

리하르트는 리온을 대신해 즉위식을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두 사람은 하네스, 에이든과 함께 황제의 침실을 찾았다.

마침 리온은 목욕을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리온의 시중을 드는 하녀들이 물러 가자, 엘리사는 하네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온, 오늘 너무 잘했어. 사람들이다 멋진 왕님이라고 칭찬하던데?”

“진짜?”

“그럼. 오늘 아주 멋졌단다, 리온.”

“하네스도 형이 멋있다고 침까지 흘리던데.”

“으부부.”

에이든과 리하르트, 하네스도 엘리 사의 칭찬을 거들었다.

모두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리온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엘리사는 리온을 침대에 앉혔다.

“리온, 사람들 보니까 기분이 어땠어?”

“사람들이 다 리온이 조아해서 조아써.”

대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엘리사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리온도 그 사람들을 좋아하니까, 분명 멋지고 좋은 왕님이 될 수 있을 거야.”

“응!”

리온은 결의에 찬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리온의 입에선 하품이 새어 나왔다.

멋진 꼬마 황제는 이제 잠들 시간이었다.

“피곤하겠다. 이제 자자, 리온.”

“우웅……. 아!”

엘리사의 말대로 침대에 누우려던 리온은 무언가 생각난 듯 도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무언가를 가져와 리하르트에게 내밀었다.

“아조씨, 이거 읽어 조!”

「파르의 모험」

리온이 제일 좋아하는 동화책이었다.

그것을 본 리하르트와 엘리사, 에이든은 웃음을 터트렸다.

리하르트는 졌다는 듯 리온의 머리 맡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감히 황명을 거부할 순 없지.”

*

“우웅….”

이튿날, 리온은 창가에 스며드는 햇빛을 느끼고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낯선 방의 풍경이 펼쳐졌다.

루벨린 공작저에서 머물던 방도 컸지만, 황제의 방은 그보다 더 컸다.

크고 화려하지만, 황량한 방.

황궁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정도 되었으나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리온은 멍하니 방의 풍경을 바라보다, 침대에서 내려왔다.

“유모가 올 때까지 놀 고야.”

매일 아침 아홉 시가 되면 유모가 리온을 깨우러 오곤 했다.

일반적으로는 황제가 미리 명령하지 않은 한, 잠든 황제를 깨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황제에겐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했기에 유모가 찾아왔다.

그전까진 리온의 자유시간이었다.

리온은 근처의 장난감 상자에서 드래곤 모형을 꺼냈다.

동화책 「파르의 모험」을 읽은 이후, 리온은 드래곤에 꽂혀 있었다.

드래곤 모형을 들고 이리저리 휙휙돌아다니면 온 세상을 여행하는 드래곤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혼자 하는 놀이는 금세 흥이 식었다.

“누나 보고 싶따.”

리온은 장난감으로, 혹은 수련을 하며 저와 놀아 주던 엘리사를 떠올렸다.

중저음의 나긋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 주던 리하르트도, 제게 꺄르르 웃어 주던 동생 하네스도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리온도 알고 있었다.

황궁에서 자게 된 첫날, 엘리사는 리온에게 이야기했다.

리온, 왕님이 되면 사람들이 다리온을 좋아할 거야. 그리고 그날, 리온이 사람들을 지켜 줬던 것처럼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 있어.’

‘오옹, 조아.’

‘대신 이곳에서 지내야 해. 그래도 왕님이 되고 싶어?’

‘그럼…… 이제 누나 못 봐?’

‘아니, 매일 만나러 올 거야. 하지만 잠은 혼자 자야 해.’

‘우웅….’

리온은 엘리사와 떨어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대관식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본 순간, 흔들리던 리온의 마음이 굳어졌다.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이 좋았다.

리온도 그런 사람들이 좋아졌다.

그 짧은 순간에, 낯선 사람들임에도.

어제 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 리온은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리온이는 머찐 왕님이 될 고야.’

리온은 새 장난감을 꺼내 다시 놀기 시작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세숫물을는 하녀와 유모, 그리고 리온의 보좌관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벌써 일어나 계셨네요, 폐하. 역시 씩씩하세요. 간밤에 편히 주무셨나요?”

“녜…… 아니, 웅.”

“불편한 점은 없으셨고요?”

“웅.”

리온은 유모의 도움을 받아 세수부터 했다.

그동안, 또 다른 하녀들이 리온의 아침 식사를 가져와 테이블에 차렸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양송이 수프와 리온이 좋아하는 갓 구운 부드러운 빵, 그리고 신선한 샐러드와 베이컨, 해시 브라운 등 간소해 보이지만 알찬 식단이었다.

세수를 마친 리온이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보좌관이 오늘의 일정을 알려 주었다.

“오늘 점심때는 알현실에서 귀족들을 만나고 정식으로 인사를 받는 시간이 있습니다. 오후엔 황궁 밖으로 행차하셔서 백성들을 만나시고, 저녁엔 앞으로 폐하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실 스승님을……….”

리온은 보좌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식사에 집중했으나, 보좌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어린 황제는 일정을 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옆 사람들이 일정에 맞춰 보좌할 것이니 몰라도 무관했다.

리온의 일정을 잠자코 듣던 유모가 물었다.

“그럼 폐하, 점심때까진 일정이 없는데 그때까지 뭔가 하고 싶으신 것이 있나요?”

“우움….”

곰곰이 고민하던 리온은 문득, 이 이 황궁에서 자신이 만날 수 있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어머니를 만나러 갈래.”

리온의 말에, 유모는 물론 옆에 있던 하녀와 보좌관까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온이 말하는 ‘어머니란, 황궁 가장 안쪽의 궁에 유폐된 로제를 뜻했으니까.

크리스티안의 장례가 치러진 후, 로제는 황궁의 가장 깊은 곳에 유폐되었다.

죄명은 감히 황손을 시해하려 한죄.

사실상 반역죄로 몰려 처형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중죄였으나, 아비의 반역을 고발한 것이 참작되어 죗값을 던 것이었다.

그렇게 유폐된 로제는 오직 황제인 리온만이 만날 수 있었다.

리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제의 재판이 끝난 후, 엘리사가 리온에게 로제의 존재와 그녀의 죄에 대해 알려 주었기에.

‘리온, 아까 그 사람은 앞으로 리온의 엄마가 될 사람이야.’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는데?’

음, 그러니까… 왕님이 되면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 말고, 또 다른 엄마가 한 명 더 생기는 거야.’

‘오옹’제국법상, 오직 황후의 아들만이 황위를 이을 수 있었다.

그러한 법 때문에 리온은 로제의 호적상 아들로 올려졌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의 아들이 되다니,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리온 너를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하려고 했어.’

‘나뿐 아줌마야?’

‘응. 그런데 앞으론 착해질 수도 있어. 계속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착해져?’

‘응. 그 사람이 착해진 것 같으면, 그때 리온이 용서해 줘. 계속 나쁜 사람 같으면 용서해 주지 말고.’

엘리사는 로제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했지만, 어린 리온에겐 그 사실이 와닿지 않았다.

로제가 직접적으로 자신을 때리거나 못되게 군 것은 아니니까.

그저 궁금했다.

자신의 엄마가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송구하오나, 폐하. 당분간은 태황후 폐하를 뵙지 않는 것이…….”

“선생님이 부모님한테 매일 인사해야 착한 어린이래써.”

리온은 루벨린 공작저에서 지내는 동안 가정 교사에게 배웠던 말을 그대로 했다.

그 말에 보좌관과 유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 기대감 어린 리온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는 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폐하.”

보좌관은 호위 기사들을 불러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고, 그동안 유모는 리온의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이제 가실까요?”

“아, 잠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던 리온은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서랍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유모에게 돌아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제 가, 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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