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들의 최애는 나 (13)화 (13/152)

조제프와 테레사는 누군가 나서서 말리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것처럼 서로를 헐뜯었다.

직장이 달린 문제다 보니 집사와 하녀장이 발레스 부인을 열렬한 시선으로 응원했다.

그건 하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티라미수 가루라도 떨어질까 봐 기대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들은 랑슈스 저택에서 십 년 이상 헌신한 이들입니다.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 자르듯 갑자기 생계를 끊으면 어떡합니까?”

모두의 기대를 등에 입은 테레사가 말했다.

그녀의 주장은 일관적이었다.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정머리 없는 조제프에게는 눈썹 한번 까딱하기 힘든 사유였다.

“해서는 안 될 실수라고 생각됩니다. 아랫것들의 태만이고, 교만인데 그깟 생계가 문제입니까?”

의견 차가 결코 좁혀지지 않는 와중이었다. 문득 테레사가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엔디미온도 이 집의 주인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엔디미온의 의견도 물어보도록 하죠.”

테레사는 엔디미온이 제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 잃은 아이에게 저를 의지하라고 당부한 데다 가주 노릇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하지 않았던가.

큰 사고를 당한 직후여서 그런지 그동안 대답을 어물쩍 넘겼지만 결과는 뻔할 뻔 자였다.

‘그 애가 내 제안을 결코 거절할 리 없지. 아닌 척하고 있지만, 지금쯤 날 가족이라 여기고 있을 터.’

테레사가 엔디미온을 포섭하려고 하는 건 조제프 또한 알고 있었다.

때문에 테레사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눈치만 보던 하녀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엔디미온을 부르러 달려갔다.

“다수결로 정하죠.”

“부인, 그 다수결에 당연히 아랫것들의 의견은 빼는 겁니다.”

으르렁-.

엔디미온이 올 때까지 조제프와 테레사의 냉전 상태가 계속됐다.

그 끝을 알린 건 문 너머에서 들린 하녀의 목소리였다.

“엔디미온 도련님을 모셔왔습니다.”

벌컥-.

문이 열리고, 사태를 전혀 전달받지 못했는지 살짝 어리둥절해하는 엔디미온이 들어왔다.

“엔디미온! 어서 들어오거라!”

테레사가 기세등등하게 엔디미온을 반겼다.

그러나 엔디미온의 시선은 제게 다정한 고모님이 아닌 얌전히 앉아 있는 루미나에게 박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이다.”

테레사가 나서서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엔디미온은 아픈 다리를 움직여 루미나에게 다가왔다.

테레사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시한 채였다.

“누님.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덤벙거렸어.”

헤헷.

루미나가 일부러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엔디미온은 안심하기는커녕 도리어 화가 난 듯했다.

잡티 없이 하얀 뺨에 생채기를 주렁주렁 단 채로 웃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얼마나 덤벙댔으면 얼굴이 이 지경이 되는 겁니까?”

“정원 풍경이 예뻐서 난간에 매달린 채로 구경하다가 그대로 떨어진 것뿐이야.”

“그 상태로 세 시간이 넘게 방치돼 있었지.”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제프가 끼어들어서 뒷말을 덧붙였다.

일순 엔디미온의 입매가 일자로 딱딱하게 굳었다.

“누님의 방에서 일어난 일이니 근처에 하녀들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들은 무엇을 한 겁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엔디미온의 의문을 듣자마자 조제프가 열심히 추임새를 넣었다.

물론 이 역시도 엔디미온에게 무시당했다.

“바빴대. 다들 사정이 있었겠지.”

“누님.”

마냥 착하기만 한 루미나의 대답을 듣고 엔디미온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루미나의 꼴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바빴다는 핑계를 들어준다고?

“……어쨌든 그래서 멜칸 백작은 집사와 하녀장까지 사용인들을 모두 내쫓자고 하는구나. 사람이 인심도 없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여론이 나빠지자 테레사가 황급히 수습했다.

“엔디미온, 네 생각은 어떠냐? 네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지켜본 이들인데 쫓아내는 건 너무 과한 처사라고 생각한다면 솔직하게 말해주렴.”

테레사가 은근슬쩍 본인의 주장을 강요했다. 그런 얕은 꼼수에 당할 엔디미온이 아니었다.

“누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응? 나?”

“지금 피해를 입은 건 누님 아닙니까. 그러니 누님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해야죠.”

“…….”

“게다가 원래라면 결정을 내릴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장녀인 누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원칙상 옳다고 생각됩니다.”

지독할 정도로 원칙주의자 같은 대답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있건만 제 의견을 물어봐 준 사람은 처음이었기에 루미나는 속으로 놀랐다.

‘눈치를 보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들려고 했는데.’

엔디미온 덕분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엔디미온이 제 안부부터 걱정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 루미나가 테레사를 똑똑히 쳐다보며 말했다.

“고모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그렇지?”

루미나가 자신을 옹호할 줄 몰랐는지 일순 테레사가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재판에 회부하지 않도록 해요.”

“……재판이라니?”

예상치 못한 단어가 계속 나오자 테레사는 당황하고 말았다. 반면 루미나는 태연했다.

“제가 알기로 이런 일이 생기면 호되게 매질을 한 뒤에 불에 달군 쇠붙이로 등을 지진대요. 다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거죠.”

히익-.

누군가 겁에 질린 숨소리를 냈다.

“관리 미숙. 근무 태만.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장시간 방치당했으니 유기에 해당된다고 했어요. 그러니 충분히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누님.”

테레사는 직감했다.

이 자리에 엔디미온을 부른 게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저는 고모님과 외숙부님의 의견을 전부 존중하고 싶어요. 그러니…….”

루미나가 고개를 돌려서 하인들을 쓱 훑어봤다. 그들 모두 이어질 말을 예상한 듯했다.

벌써부터 체념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해고야.”

“…….”

“불미스러운 일로 나가게 됐으니 퇴직금은 당연히 못 챙겨줘. 추천서도 마찬가지야.”

“아가씨!”

“특히 집사와 하녀장은 이들을 대표해서 책임을 지는 게 맞겠지? 만약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같이 법정으로 가면 되는 거고.”

법정까지 가면 일이 훨씬 귀찮고 복잡해진다.

명확한 증거까지 있었으니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공방 중에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 가능성도 높았고.

하녀장이 루미나를 말려보라는 듯 테레사를 쳐다봤다.

그렇지만 테레사 또한 아이들이 강경하게 나오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조제프라도 없었거나 엔디미온이 제 편을 들어줬으면 조금 더 제 뜻대로 휘둘러 볼 만했는데.

테레사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하지만 루미나의 발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를 담당한 하녀들은 다른 하녀들보다 엄중히 벌해야겠지.”

사만다를 포함한 하녀들이 움찔했다.

그들 모두 유난히 지독하게 루미나를 괴롭혔던 자들이었다. 또한 최근 루미나의 총애를 받았고.

“아가씨……. 아가씨께서는 제게 무척 의지하셨잖아요. 그런데 빈손으로 내쫓으시다니요.”

고개를 푹 숙인 사만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는 건 너무 억울해요.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물론 조금 전까지 서로의 뺨을 할퀴면서 동료 하녀들과 싸우긴 했지만, 이 상황이 너무 부조리하다고 느껴졌다.

한때 루미나의 좁고 더러운 다락방에 쥐를 풀어놓긴 했지만. 최근엔 그때 일을 잊은 것처럼 잘 지내지 않았던가?

한창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데 루미나가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만다의 앞에 선 루미나가 말했다.

“자비는 충분히 베풀고 있잖아.”

“…….”

“정말 다행이야. 등을 지지진 않잖아. 안 그래?”

열두 살 아이가 하기에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그동안 루미나가 제게 잘해줬던 게 다 의도적이었음을 깨달은 사만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항상 겁에 질려 있고 벌벌 떨기만 하던 아가씨의 분홍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더는 쥐를 보고 놀라던 소녀가 아닌 것이다.

‘사소한 괴롭힘 따위는 금세 잊을 수 있었어.’

사만다와 마주한 루미나가 생각했다.

계모의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변명조차 들어줬을 거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악의를 갖고 저를 화풀이 용도로 삼은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루미나는 전혀 아쉽지 않다는 듯 사만다에게서 등을 돌렸다.

***

늦은 밤.

사용인들이 모두 쫓겨나서 쥐 죽은 듯 조용한 저택.

어둠만이 덩그러니 남은 복도를 절뚝거리면서 나아가는 자그마한 인영이 있었으니.

바로 루미나였다.

창문에 투과된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밀빛 머리칼이 반짝였다.

암살자처럼 최대한 기척을 죽인 루미나는 다른 이의 방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곤히 자고 있는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엔디미온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루미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남매가 비슷한 곳을 다쳐 있으니 제법 웃긴 꼴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넌 아프지 마.”

나에 대한 지금 네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이 난 널 지켜주기로 결심했으니까.

루미나가 엔디미온의 다리에 손을 댔다. 빛 무리가 모이더니 나비 형상을 했다.

치료해야 할 부위가 큰 탓인지 무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나비가 많았다.

강렬한 빛과 마주한 루미나는 느릿하게 날갯짓하는 나비들을 봤다. 그것들은 빛가루를 뿌리다가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윽.’

동시에 다리가 끊기는 듯 강렬한 통증을 느낀 루미나가 휘청거리면서 황급히 비명을 삼켰다.

현재 루미나도 다리를 다친 상태라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그런데 엔디미온의 것까지 합쳐지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 조금만 버티자.’

입술을 꾹 다문 루미나는 치료도 끝냈겠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덥석-.

손목이 잡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