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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최애는 나 (20)화 (20/152)

음식 앞에서 담배 냄새를 폴폴 풍기는 건 아무래도 비위가 상했다.

‘하지만 하트 공작이 담배를 피우겠다고 하면 내가 막을 수 있을까?’

……못 막는다. 절대.

루미나는 담배에 중독된 흡연자의 강력한 의지를 익히 알고 있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하기 위해 쭈뼛쭈뼛 잔뜩 긴장한 채로 루키우스를 쳐다봤다.

그가 담배를 입 안에 쏙 넣고 물었다. 이제 불을 붙일 차례였다.

그런데 라이터를 꺼내기는커녕 불을 붙이지 않은 채로 담배를 굴렸다.

어?

‘잠깐, 잠깐. 분명 포장을 까서 동그란 걸 입에 넣었는데?’

“담배가 아니네요?”

그렇다. 루키우스가 꺼낸 건 담배가 아니었다.

막대 사탕이지.

“금연 중이다. 아내가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말을 하기 위해 사탕을 볼 한쪽으로 밀어낸 루키우스가 대꾸했다.

루미나가 알기로 공작부인은 사망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금연을 실행하는 걸 보면 의외로 애처가인 듯했다.

‘하긴. 의외로 아들 사랑꾼이었으니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그렇지만 흉흉한 인상을 한 그가 깜찍한 막대 사탕을 물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불만스러운 눈빛이군.”

“네? 네? 저요?”

그럴 리 없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무려 하트 공작에게 불순한 눈빛을 쏴 보낼 리가.

루미나가 제 눈에서 불순함을 없애기 위해 열심히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불만이면 말로 하지 그래.”

“네?! 불만의 불도 없어요! 보세요!”

홉!

두 눈을 크게 뜬 루미나가 반짝거리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사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순진한 눈망울이었다.

하지만 루키우스는 루미나의 이런 노력을 딱히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다.

루미나를 보지 않은 채로 무심히 주머니에 손을 넣을 뿐이었다.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그의 손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주먹을 쥔 채였다.

‘뭐, 뭐지?’

손가락 사이사이로 하얀 막대기들이 튀어나온 커다란 주먹이 땡그랗게 눈을 뜬 루미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우르르-.

루미나의 앞에 색색의 막대 사탕이 쏟아졌다.

“앞으로 먹고 싶으면 말로 해라. 또 더 갖고 싶으면 말하고.”

“……네!”

그가 말한 불순한 눈빛의 의미가 사탕을 갈구하는 눈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도 그런 삿된 마음을 품은 적 없지만, 산처럼 쌓인 사탕을 거절하기도 뭣하니 활기차게 대꾸했다.

“따로 후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기절했다가 막 일어난 환자한테는 좋지 않다고 하더구나. 오늘은 이걸로 참아라.”

참을 필요도 없었다.

평생 사탕만 먹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양이 앞에 놓여 있으니까.

“그런데…….”

막대 사탕의 포장을 까지 않고 손에서 조몰락거리기만 하던 루미나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다른 맛은 없나요?”

선물 받은 주제에 맛까지 깐깐하게 따지냐고 뭐라 할 것을 각오하고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딸기 우유 맛은 전생에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리는걸.’

그가 건네준 사탕의 대부분이 딸기 우유 맛이었다. 포장지만 봐도 척하면 척이었다.

루미나는 자신이 어려서 일부러 이런 맛만 골라준 거라 생각했다.

선입견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뒷거래를 하듯, 되도록 신중히 얘기하게 됐다.

루미나의 요청을 듣고 루키우스가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꺼내자 식탁 위에 색색의 막대 사탕이 촤르륵 펼쳐졌다.

주머니가 아주 사탕 보따리였다.

“감사해요!”

아까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사탕이 놓였다. 망설임 없이 딱 하나 있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걸 좋아하나 보군.”

“네!”

루키우스가 의외라는 듯이 루미나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루미나가 고른 사탕은 계피 맛이었다.

루미나는 그와 함께 막대 사탕을 입에 넣는 것으로 식사의 끝을 알렸다.

‘타락한 기분이야.’

쪽쪽.

루미나는 루키우스와 나란히 사탕을 빨면서 배덕한 맛을 즐겼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시고, 입 안은 쌉싸름하다가 점점 단내가 짙게 올라오고 있었다.

테레사와 조제프가 악마처럼 지키고 있을 랑슈스 저택에서는 누리지 못했을 평온함이었다.

바깥사람들은 하트 공작을 미치광이 악마로 표현하고는 했다.

하지만 루미나가 봤을 때 진짜 악마는 자신의 혈족들이었다.

“제가 쓰러지기 전에 부탁한 일은 혹시 해결됐나요?”

쪽쪽.

루미나는 일전에 랑슈스 저택에서 일할 하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었다.

“그래. 곧바로 손 빠르고 입 무거운 놈들로만 골라서 보냈지.”

어쩐지 루키우스의 어조가 살벌했다.

“지금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버렸을 거다.”

“……뭘요?”

하인이 아니라 살수를 보낸 건가!

그새 조제프와 테레사의 목을 쓱싹해 버린 건가 싶어서 루미나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먼지 말이다.”

루키우스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이 대꾸했다.

잠깐이지만 유혈이 튀기는 엄청난 상상을 했던 루미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렇죠. 먼지. 중요하죠.”

“네가 집으로 돌아가면 먼지 한 톨 찾을 수 없이 깔끔할 거다.”

정작 악마라는 별명은 그에게 있는데 삿된 생각은 루미나 혼자 하는 듯했다.

“그런데 능력을 쓸 때마다 쓰러지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저번에는 멀쩡하던데.”

“잘 모르겠어요. 공자님을 한 번 더 치료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능력을 많이 쓴 탓에 쓰러진 거라고 딱 잘라서 대답하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카라얀에게 능력을 쓸 때만 이례적인 기분을 느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를 치료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가? 확실히 부러진 다리나 유리 조각이 박힌 상처를 치료하는 거랑 결이 다르긴 하지.’

루미나 나름대로 곰곰이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만약 치료할 때마다 요양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군. 그 편이 의심을 덜 받을 테니까.”

“하지만 저는 피후견인일 뿐인걸요.”

과분하다는 의미였다.

평민도 아니고, 상속권이 있는 귀족 영애를 집에 들이겠다고? 아무리 후원으로 엮인 관계라 해도 과했다.

그런데 루미나의 반박이 끝나자 돌아오는 대답이 굉장히 태연했다.

“피후견인이 아닌 혼인 관계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네?”

큰일 날 뻔했다.

하마터면 그의 얼굴에다가 사탕을 뱉을 뻔했다. 그랬다가는 선글라스가 깨져버렸을지도.

“이 가문을 이용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해 주는 과정의 일부인데 뭘 그리 놀라지?”

루키우스가 이상할 정도로 태연한 거지, 보통 사람이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드님의 의사는요?

제일 중요한 당사자인 카라얀의 의견이 쏙 빠져 있었다.

“혹시 내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당장 이 집에서 쫓겨날 것만 같은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질문은 아드님께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거라고요!’

이전에 비슷한 얘기를 들었을 때는 농담 취급하며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제안을 두 번이나 받으니 슬슬 두려워졌다.

그에게 항의를 하고 싶은 속마음을 숨긴 채 방긋 웃은 루미나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다만 저는 공작가의 후견인이라는 호칭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고 생각해서요.”

후, 이 정도면 부드럽게 넘긴 것 같았다.

루미나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벌써 반이나 줄어든 계피 맛 사탕을 굴렸다.

혹여나 대화가 길어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하인 하나가 루키우스에게 다가가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예정된 일정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워야겠구나. 그동안 저택에서 편히 지내거라.”

자리에서 일어난 루키우스가 말했다.

“귀한 손님이니 제대로 대접해 줘야지. 전담 하녀를 붙여주마.”

***

“안녕하세요. 랑슈스에서 온 아가씨. 한동안 아가씨를 보필할 올리비아라고 합니다.”

손님방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이 스스로를 소개했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녀는 화려한 인상 탓에 왠지 메이드 복장보다 파티용 드레스가 어울릴 듯했다.

공작가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을 때 얼굴도 보나 싶을 정도였다.

“거동이 불편하다고 들었는데 업어드릴까요?”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부축만 하면 돼.”

“하지만 공작님께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주방까지 오셨다는 얘기를 들은걸요.”

벌써 소문이 쫙 퍼졌나 싶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루미나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있을 일을 고민해야지.

아까는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였다.

이제는 식사도 제대로 하고 기력도 생겼으니 부축만 해 준다면 아까처럼 오뚝이 꼴은 면할 터.

“걱정 마세요. 제가 힘이 좋아요.”

하지만 올리비아는 다른 오해를 한 건지 루미나의 말을 듣기 전에 손부터 댔다.

루키우스와 달리 그녀는 여성이었고, 얼핏 봤을 때 가녀린 터라 무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

쑥.

‘……레기온인가?’

올리비아는 너무나 손쉽게 루미나를 들었다.

“잠깐, 잠깐!”

결국 극적인 타협으로 바닥에 발을 딛게 된 루미나는 올리비아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했다.

이렇듯 약간의 사건이 있었지만, 올리비아는 상냥한 하녀였다.

“산책을 나가고 싶은데 괜찮을까?”

“그럼요. 괜찮고말고요.”

선뜻 긍정한 올리비아가 옷시중을 들어준 후 길을 안내했다.

정원으로 나간 루미나가 느긋하게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무엄하다! 어서 비키지 못할까!”

정문 쪽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지?”

“가볼까요?”

어쩐지 루미나보다 올리비아가 더 신이 난 듯했다.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아쉬워할 것 같은 어조로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루미나는 소란의 근원과 가까워졌다.

날카로운 소녀의 목소리가 저택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울렸다.

“제국의 황녀이자 하트 공자의 약혼녀인 나를 이리 홀대하다니! 내 꼭 아바마마께 말씀드려서 너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꼴을 봐야겠구나!”

루미나의 귀에 익숙한 단어 하나가 꽂혔다.

하트 공자의 약혼녀.

‘……방금 공작님이 나한테 제안했던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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